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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2.11 [13:03]
손양원목사순교기념관 어떻게 건립됐나
고 이광일 목사(여수 애양원교회 담임)의 저서에서 소상하게 밝혀
 
김철영

 

 

전남 여수시 애양원에 소재한 손양원목사순교기념관이 지난 3월 잠정 폐쇄되면서 애양원교회(예장통합, 정종원 담임목사)와 일부 유족과의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 손양원 목사 기념관     ©뉴스파워

 

뉴스파워는 일부 유족의 주장을을 담은 문서 내용을 중심으로 애양원교회 측과 보훈처 등에 질의하여 정확한 사실 관계를 보도해왔다.

 

이번에는 손양원목사순교기념관이 어떻게 건립을 하게 되었으며, 어떤 분들이 후원을 했는지를 기념관 건립 당시 애양원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면서 온 힘을 다했던 고 이광일 목사가 쓴 사랑의 순교자 손양원 목사의 생애와 사상의 내용을 그대로 소개한다.

한편 손양원 목사의 셋째딸 손동연 사모는 지난 8월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 손 사모는 기념관 건립에 애양원 연보는 참으로 적었다. 가족의 모금액이 대부분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고 이광일 목사는 애양원교회 제6대 담임목사를 역임했으며, 손양원 목사의 설교를 엮은 성경대로 살자, 오늘이 내 날이다, 주 안에서 죽은 자가 복이 있다, 체형조사, 옥중서신등을 펴냈다
 

다음은 이 목사의 저서 중 일부 내용이다.(166페이지-189페이지)

 

1.손양원 목사 순교 기념관 건립

순교 신앙 계승을 위한 사업으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기념관 건립이었다.

왜냐하면 본 애양원에는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신앙을 이어가고자 하는 순례객들이 1년이면 3만면 정도가 다녀가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순교신앙을 좀더 잘 계승하기 위해서 순교기념관 건립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네 가지 기본적인 원칙을 세웠다.

첫째, 은혜스러운 일이 되어야 한다.

둘째, 은혜 받는 일이 되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 되어야 한다.

넷째,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 되어야 한다.

 

1)기념관 건립의 필요성

주변상황

애양원에는 14계절 계속해서 순례객이 방문을 한다. 그 수는 거의 연중 3만 명 이상이 된다. 그런데 다녀가는 분마다 왜 이런 곳에 기념관 하나가없느냐면서, 아직까지도 기념관 하나 건립치 못하고 무엇을 하느냐는 질책의 말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또한 신앙 수련회를 오는 팀마다 교육적으로 배울 수 있는 역사적 유품이나 사료를 찾으면서 기념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러한 주변의 요청에 의해서 본 교회가 기념관을 지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을 때에 1989년 안 용준 목사님께서 당신이 소장하고 있던 손 목사의 유품 150여 점을 보내 주셨다. 유품을 받는 교회는 더욱더 기념과 건립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서 적극적인 기념관 건립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게 되었다.

 

시대적 상황

오늘날 한국 교회가 성장한 밑거름이 순교자들의 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 교회주의, 성공주의, 물량주의, 기복주의 등에 의해서 순교 신앙이 희박해져가고 있다. 이러한 때 기념관을 건축해서 한국 교회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 손 목사의 순교 정신으로 무장을 시켜서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고 복음 사역을 더 힘 있게 감당하게 만들며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만들어야할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게 되었다.

 

문화적 상황

최근 문화부에서 펴낸 한국의 종교 문화와 예술책자에 의하면 여타 종교에 비해 개신교가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재 보유 상황을 각 조교별로 보면 불교가 368, 천주교 12, 개신교 10, 천도교 4, 무속 90건 등이다.

이 가운데 기독교 문화 유적지는 대부분이 외국인 선교사 당시에 지어진 건축물이란 서이다. 그나마 개신교는 역사에 교훈을 주는 사료가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드물다. 따라서 개신교는 교인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 주고 일깨워 줄 만한 유적지가 제암리 교회를 말고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실정임을 알게 되었다.

본 교회는 이러한 기독교 문화적 상황을 인식하는 가운데 손목사의 유물을 발굴 보존해서 한국 교회에 순교 신앙의 훈련장, 그리고 역사의식을 고취시크는 장으로써 만들 필요성을 절감케 된 것이다. 이는 전통을 중요시하고 정신을 계승하자는 의미로 손 목사 기념관을 건축하기로 한 것이다.

 

2)순교 기념과 건축 위원회 발족

본 당회에서는 1990년 말 순교 기념관을 건축하기 위해서 1차적으로 한 국 성지를 순례하며 자료 수집에 착수했다.

2차적으로 가족과 손 목사와연관이 있는 분들의 조언을 들었다. 이러한 준비 과정을 거쳐서 1991년에 손 양원 목사 순교 기념관 건축 위원회를 본 교회 당회원과 안수 집사들로 구성케 되었다.

동 건축 위원회를 발족하는데 많은 분들이 각 교단의 어른들을 추대해서 거()교회적으로 하라고 권면을 했으나 애양원 교회는 그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첫째는 교단의 큰 어른들 이름으로 하면 그 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는 것.

둘째는 손 목사의 순교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과 손 목사의 순교 신앙을 보여주는 건축 사업이 되게 하자 해서 이름도 없는 본 교회 당 회원들과 안수집사들로 위원회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동 위원회는 기념관을 짓는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했다.

 

첫째는 돈으로 짓지 말고 기도로 짓자는 것이고, 둘째는 큰돈으로 짓지 말고 작은 돈을 모아서 짓자는 것이다. 큰돈을 받아서 지으면 아무래도 큰돈을 내놓은 사람의 영향을 받을 수 있게 되어 다음 운영상에 문제가 생길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다른 하나는 많은 사람들을 동참케하므로 그들의 마음속에 함께 지었다는 생각과 함께 순교 신앙을 고취시코자 함이었다.

 

3)기도로 지어진 기념관

건축 위원회가 발족된 후 제일 먼저 기도회를 시작했다. 1991224일부터 예레미야 333절 말씀을 근거로 해서 기도하여 응답 받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자라는 표어 아래 매일 저녁에 한 시간씩 각 구역별로 돌아가면서 기도를 드렸다.

 

첫 기도 제목은 기념관을 지을 수 있는 부지를 주시라는 것과 건축을 설계할 수 있는 설계사를 보내 주시라는 것, 손 양원 목사의 생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가를 보내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집중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하기 3개월 만에 세 가지가 다 응답이 되었다.

 

첫째로 건축 부지로 현 기념관 부지 775평을 기적으로 마련하게 되었다. 기적이라고 한 것은 건축 부지를 위해서 날마다 기도하면서 부지를 사려고 했으나 방해하는 세력들만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땅을 팔지 않겠다는 사람들만 있을 뿐 선뜻 부지를 팔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3개월 가량 이런 어려움이 계속되자 동 건축 위원회는 이 기념관 건축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을 해서 기념관 건축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게 포기를 한 그 날 하나님께서 그 부지를 팔겠다는 사람을 연결시켜 주셔서 부지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부지가 마련되자 설계하실 분으로 나덕환 목사님의 섯째 사위가 되시는 광주 대호 건축 소장으로 계시는 광주 제일교회 송건 집사님을 만나게 해 주셨고, 그림을 그릴 분을 부산 미대 교수인 김영길 집사를 만나게 해 주셨다.

 

둘째 기도 제목은 건축을 위한 모금을 위한 것과 건축 설계를 위해서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를 하던 중 우리가 먼저 헌금을 하기로 하고 1991227, 34백만 원을 헌금을 했다. 그리고 설계를 들어갔는데 송건 집사가 건축비가 얼마나 마련이 되어 있느냐고 물었다.

1차고 헌금한 것은 부지 사는데 다 써 버려서 건축을 위한 헌금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밖에는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설계를 해서 자기 장인의 이름으로 회사를 하겠다고 하고 약 10억 짜리 집을 짓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건축 위원들은 깜짝 놀라서 할 말이 없었다. 돈은 다 쓰고 하나도 없는데 10억 원이 들어가는 공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한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오랫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때 송건 집사가 입을 열었다. ‘우리 함께 모금을 해서 아름다운 순교 기념관을 지어 봅시다.’

 

물론 우리도 모금을 해서 지을 계획은 세우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약 2억 정도로 계산을 했었다. 그런데 10억이라니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송건 집사의 끈질긴 설득으로 인하여 10억을 들여서 건축을 하기로 하고 설계를 시작했다. 그래서 기념관 건축이 끝날 때까지 우리 모두의 기도제목은 주여, 10억을 주오소서가 되었다.

설계가 끝나고 홍보 팸플릿을 제작해서 전국 교회에 발송하고 교계 신문과 기독교 방송 등에 홍보를 했으나 기대할 만한 성과가 없었다. 모금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금을 위해서 집중적으로 기도밖에 할 수가 없었다. 한편 필자는 손 목사 생애의 모습을 그리기 위한 부탁 때문에 부산에 계시는 김영길 교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림을 부탁하고 나오는데 그의 부인 민행양 집사가 자신의 성가 테이프를 주면서 그것을 팔아서 기념관 짓는데 보태서 쓰라고 샘플을 하나 주었다. 그것을 받아 부산에서 여수에 있는 교회로 오면서 차 안에서 그 테이프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 찬송을 듣고 있는 중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는데 테이프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모금용 테이프를 제작하는 것이다.

 

손 양원 목사의 순교 신앙을 널리 알릴 수 있는 테이프를 만들어서 손 양원 목사의 순교 신앙도 알리고 모금도 하면 된다는 지혜를 주신 것이다. 그래서 손 목사가 옥중에서 부르시고 평소에 좋아하셨던 찬송들을 모으고, 큰 딸의 간증과 함께 테이프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회로 돌아온 후 테이프 제작을 위한 기도를 일주일쯤 드리고 테이프 제작을 위해서 황순덕 전도사, 김수남 권사, 김주심집사, 박동수 장로, 이이섭 장로, 김원태 장로, 배길홍 장로와 함께 회합을 갖고 자료를 수집했다. 이렇게 자료를 정리해서 손 목사님께서 즐겨 부른 찬송을 테이프 두 개에 담아서 편집을 하고, 손동희 권사의 간증 테이프도 두 개 만들었다. 이렇게 4개를 한 세트로 해서 1만원 씩 보급을 하게 되었다.

 

맨 처음 전국 나환자 정착촌 교회들을 순방하면서 보급을 했고, 다음으로는 고신 측 노회와 각 교회들을 찾아가 보급을 했다. 그러나 이때에 수익은 너무나 미미한 것이었고 보급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이 있던 중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지혜를 주셨다. 노회를 거쳐서 본 교회가 속해 있는 총회에 모금 허락을 받고 보급하는 것이 쉬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처음 여수노회에 총회에 모금 허락을 받아 달라는 청원을 1991년에 내고, 노회에서 총회에 청원을 해서 1992년 가을 총회 때 모금 허락을 받아 본격적인 모금에 나서게 되었다.

1992년 당시 여수 노회장인 정선균 목사와 함께 19921년 동안 본 총회 산하 52개 노회를 방문하여 모금을 했다. 이렇게 모금이 진행되던 중 설계가 나오고 업자가 선정되었다.

이런 어려움과 노력 끝에 1991112, 기공식을 갖고 공사를 진행해서 1994327리에 준공을 했다.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만 했고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셔서 준공식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모금을 통해서 건축비 10억이 전부 마련되지는 않았지만 공사를 중단하지 않고 큰 어려움 없이 공사를 잘 마치게 되었다. 무엇 보다 더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일으켜 현장 소장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하셨다. 또한 7만여 개의 보급된 테이프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회개를 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으며, 은혜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다.

또한 주님께서는 많은 자원 봉사자를 보내 주셨다. 송건 집사는 설계를 회사하고 감리도 봉사를 해 주셨으며, 김영길 교수도 그림을 그려 전시케 해 주었으며, 김철성 집사는 기념관 내의 전기 공사 일체를 봉사해 주셨다.

 

본 교회 성도들은 순교적 각오로 세 번이나 특별 헌금을 했다. 양로원에서는 자신의 장례비로 준비해 두었던 것을 헌금했고, 한 초등학생은 6년 동안 저금한 돈이 일백만육백원이엇는데 통장을 그대로 헌금했고, 유치원에 다니던 학생도 통장 그대로 헌금을 했다. 모든 부서가 긴축 살림을 살면서 기념관으로 경상비에서 1녀에 5000만원 정도씩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서울 영락교회에서 3천만원 헌금해 주었으며, 서울 새문안 교회에서 2천만원을 헌금해 주었다. 그 외의 헌금들은 아주 큰 돈은 아니었지만 그 작은 것들이 모여서 10(테이프 제작비 2억 포함) 공사를 해서 준공을 하고 순교 신앙을 계승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다. 준공 후 14천만 원의 부채가 남았으나 1994년 말에 본 교회 성도들의 정성 어린 헌금으로 완전히 부채를 청산하게 되었다.

정말로 손양원 목사 기념관은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건축하고 기도록 마무리를 짓게 된 것이다.

 

4)기념과 건축에 동참한 단체 및 사람들

본 애양원 교회는 지금도 기념관 사업에 동참해 주신 분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애양원 교회가 이 땅에 있고 기념관이 있는 한 이 사업에 동참한 분들을 위한 기도는 끈이지 않을 것이다. 기념관 사업에 동참해 주신 단체들과 개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본 기념과 건축 회계 장부에 기록된 이름들을 밝힌다. 여기에 밝혀진 것 이외에 더 많은 익명의 동참자들있음을 밝히며 감사를 드린다.

 

희사자들

대호 건축 송건 집사는 설계를 해서 나덕환 목사의 이름으로 회사를 했으며, 건축이 끝날 때까지 감리 및 건축 총감독을 해주셨다. 김영길 교수는 현 기념관 건물을 스케치해 주셨고 기념관이 지어지는 날까지 기도와 수고로 봉사하셨으며 기념관 개관부터 3년간 성화를 전시할 수 잇도록 해 주셨다. 김철성 집사는 기념관 내의 전기 시설을 봉사해 주었다.

특별히 본 애양원 교회에서는 1990년에서부터 1994, 기념관 부채를 정리할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온 교회와 성도들이 헌금을 했다.

 

교회 및 단체들

대경 기계, 경남 진해 용원 교회, 전주 침례교회, 군산 한일교회, 부산 성경학교, 용인시 장로회, 송생교회, 용인교회, 나주교회 청년 연합회, 부산 사직동 영광교회, 부산 전포중앙교회, 남광주교회, 진주 남선교회, 광주 충장로 교회, 장흥 중앙교회 여전도회, 진해 복민 감리교회, 서울 산돌교회, 전북 대흥교회, 경주 성락교회, 신안교회, 이리 청복교회, 부산 소금의집 권사들, 삼일 문화사, 대구 방주교회, 부산 세움사, 포항 인덕교회 여전도회, 대구 기독 청년 연합회, 서울 성동지역 한양대 C.C.C, 신활 교회, 현홍교회, 줄금교회, 흰돌교회, 제일교회, 삼거교회 칠곡교회, 송파교회, 구초전 교회, 신덕 중앙교회, 묘안교회, 해남내사교회, 기독 신우회, 진주 시온교회, 봉동교회, 영광교회, 호시니대 학생회, 신흥교회, 군산 한일교회 여전도회, 진주 봉덕교회, 대구 영랴교회, 광주 기독병원 자매들, 부산 대현교회, 광주 산수교회, 신광교회, 구포제일교회, 안동 성좌교회, 전주 태평교회, 서대문 동산교회, 경북 송죽교회, 평화교회, 목표 여전도회 연합회, 익산 중앙교회, 안동 미동교회, 부평 진광교회, 홍은교회, 방주교회, 추동교회, 선문교회, 두레교회, 성남교회, 신망교회, 신안 제일교회, 매표 순복음 교회, 운당교회, 성익교회, 장길교회, 도개 중앙교회, 교명교회, 새소망교회, 화치 교회, 오촌교회, 대교교회 신매교회, 청봉교회, 부산 맥산교회, 정선 제일교회, 성좌교회, 영복교회, 장유 제일교회, 숭의교회, 하다가리 제일교회, 석계 제일교회, 부산 남도교회, 경향교회, 오산 감리 교회, 기독백화점 신우회, 진남 감리교회, 익산 중앙성결교회, 수산교회, 순천 북부교회, 제일 영도교회, 부산 성화교회, 정읍 시찰회, 군사 세광교회, DS5 평신도회, 베데스다 선교회, 창원 시민교회, 신성교회, 동성교회, 남성교회, 중앙교회 북성교회, 광주 중앙교회, 무장 연합회, 전주 공업 전문데 학생들, 여천 자내리교회, 우리조합, 의령교회, 태평 예루살렘교회, 가리봉교회, 전주 중부교회, 제주 영락교회, 포항 제일교회, 반산교회, 랄송정교회, 수도교회, 부산서면교회, 홍광교회, 송하대교회, 전주 여울 교회, 새생명교회, 승리교회, 부산 사상교회, 양정교회, 망영교회, 진성교회, 영남 제일교회, 주님의 교회, 이리 성결교회, 한빛교회, 동성교회, 영화교회, 개도 서부교회, 전북 신흥교회, 신촌교회, 석창교회, 척령교회, 시온교회, 심포교회, 여차교회, 내판교회, 은광교회, 고수환 제일교회, 영락교회, 대진교회, 호죽교회, 성광교회, 목표노회, 현복교회, 소생교회, 성심교회, 영략교회 여전도회, 부산 반송교회, 여천 마산교회, 애양조합, 대구 영생교회, 신현교회, 여명교회, 포항 성결교회, 화평교회, 은광교회, 금촌교회, 소망교회, 광안 중앙교회, 일산 경성교회, 오금 중앙교회, 송도교회, 명덕교회, 남전교회, 울산제일교회, 대구 성민교회, 노원교회, 영화교회, 초포교회, 가야 제일교회, 여수 덕충교회, 평촌교회, 여수 온누리교회, 충신교회, 여천 봉두교회, 신광교회, 중흥교회, 경천교회, 성은교회, 복음교회, 중앙교회, 화양 제일교회, 금난 산길교회, 반여 소망교회, 유탕교회, 원당 삼우 교회, 여천 화동교회, 여천 중앙교회, 대구 은행 선교회, 월전 교회, 순천 제일교회 처년회, 부산 부곡교회, 창원 남산교회, 문백교회 여전도회, 전북 서노회 제1지회, 부산 거령교회, 여수 동광교회, 소정교회, 구포 청년회, 곡성읍교회, 경애교회, 주암교회, 산성교회, 경주 중앙교회, 빛과 소금의 교회, 평촌교회, 여수제일교회, 소금의 집, 부산 상애교회, 명성교회, 정주 중부교회, 한양 수동교회, 여천 신기교회, 여천 남광교회, 여천 벧엘교회, 여천 제일교회, 덕양 대광교회, 둔덕교회, 고창 신촌 교회, 동부교회, 덕화교회, 동신교회, 청농교회, 부산 산성교회, 서광교회, 장흥수문교회, 부안 제일교회, 목포 삼일교회, 부산 동신교회, 한성 신학교 동창일동, 김천C.C.C, 남포교회, 대구 서현교회 제3 여전도회, 마산 제일교회, 부산 성수동교회, 녹동 중앙교회 제2 여전도회, 순천 제일교회, 청학동 그리스도 교회, 한빛교회 중고등부, 부산 학신교회 청녀회, 여수 성광교회 중고등부, 여수 영락교회, 여천 상려교회, 증산교회, 성은교회, 광양 골약교회, 김천 경서 신학원 일동, 부산 구포 성동교회, 대구 서현교회 제3 여전도회, 울산 태화교회, 남부교회, 무등교회, 복문교회, 성산교회, 충광교회, 고창 중앙교회, 성남 경덕교회, 김제 제일교회, 대구 사천 동산교회, 산돌교회, 여수 광림교회, 순창 재건교회, 월광교회 소년부, 여수노회 남선교회, 안양 호계교회, 소망교회, 심복교회, 부흥교회, 황금교회, 성락교회, 여수 영락교회, 기복교회, 전부 대흥교회, 전주 전성교회, 전주 금성교회, 현천 중앙교회, 주천교회, 여수 성광교회, 목민교회, 천안 중앙교회, 부산 영락교회, 수산나 여전도회, 초량 여선교회, 경북 월산교회, 수원 천리포교회, 여수 신기교회, 남선 교회 연합회, 도성교회, 건국 남선교회 연합회, 광주 공혜교회, 광주 본향교회, 목포교회 요진, 성과교회, 양전교회, 양동 제일교회, 대전 제일교회, 당월교회, 진안 서부교회, 시온 명광교회, 진주 동인교회, 여수 충무동교회, 변산교회, 대창교회, 복음교회, 보은 단기교회, 김제 신흥교회, 서울 새문안교회, 광의교회, 동부서교회, 시민교회, 광성교회, 군산 신흥교회, 신수교회, 양문교회, 화평교회, 여천 북지방회, 광주 은성교회 제3 여전도회, 고한 중앙교회, 신산교회, 소라교회, 부산 노회 북부 시찰회 목사 일동, 울산 남창교회, 소망 선교회, 순천 신흥교회, 서울 동지망 6개 교회, 김해교회 여전도회, 전주 완산교회, 순천 성광교회, 여수 성은교회, 총회 신학교 연구생 일동, 상암교회, 전주 우방교회, 남원 동부교회, 순천 서부교회, 울산 동해교회, 여순 아카데미 합창단, 북아현교회, 전주 혜성교회, 안산교회, 울산노희 고신측, 충남 서부교회, 신일교회, 양정교회, 동백리교회, 광명교회, 경동 제일교회, 전북 신학 대학, 장흥 장평교회, 성일교회, 월간 목회사, 경남노회 고신 측, 순천매산 중학교, 왕십리 중앙교회, 명수대교회, 동승 교회, 광주 남양 교회, 장로회 신학 대학생들, 서울 개혁 신학 대학, 해표 사료, 덕수 교회, 포항흰돌교회, 마산 성산 교회, 숭동 교회, 서울 새빛사, 신석 교회, 제일 교회, 마포 교회, 거재 소량 교회, 대구 개인택시 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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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생 선교회, 용호 제일 교회

 

개인

이덕순, 김동규. 박재호, 박영출, 이희덕, 이봉래, 정남조, 김두형, 김주형,김영숙, 김희성, 손의원 목사 사모,  박진일, 손동길, 손동님,주승용, 김태성, 김광도, 배옥례, 윤재백, 박은숙, 조을훈, 서진승,최수곤,고영희,김장서,김일홍, 이상숙, 노미자, 이병일,김경자,이재덕, 김인수, 박순학, 양봉환,정영숙, 김상규, 김형모, 권종호,조종길, 권은섭, 김재근, 노상근, 최창갑, 예금순, 조창호, 배윤식,한송기,권돈채, 김재만, 오우산,우정시,김종식, 안양선,김승복

이운옥,이용병,윤차복,이영환,김하선,김차순,황동식,김은양,권태금,정진성,이정실,김치호,정한채, 반잠순,정오임,박종수,강기택,전영환,박운도,김종자,이성모,하계두,김영자,김도선

강판길, 이환용, 박은혜, 이의종, 박일문, 이장우, 최종단, 김동훈,최장근,박대권,이정일,김성수,이임자,김동희,손동희,안철호,방상순,김홍태,권한주,차성훈,정홍수,김인옥,이인재,최남주,

이진한,우유한,김덕용,김성준,서상모,류한복,염기연,이양목, 김미경,박동원, 이기찬,김성호,이상근, 유 준, 최상진, 유영학,양은승, 이상희, 임성우,김성원, 전유용, 김모진, 최중란,황기석.

최신예, 박유생, 김희진, 박성심, 최성금, 곽춘경,조용환, 김철성,임귀동,김순옥, 오윤길, 권영길, 최장조, 김옥석, 손동현, 성바울,한인철, 이방규,정해두, 박정숙, 박호준, 이상용, 이선우, 황기성,김병찬,최장근,김태수, 김정호, 배상해, 최도명, 조용섭, 김성길,이창우,조우언,김창수, 박경동, 장승현, 오양현, 안광욱, 김수국,최지연, 김성봉, 손선영,  서현식, 박경애, 김효순, 조정원, 정형애,정태인, 이기대, 김교진, 여수신기치과 의사 2, 유은정, 김숙자,

설학모, 김영곤, 김용욱,정낙철, 박승채,김미정,우희열, 김신욱,문상환, 박태남, 신종곤, 주상인, 최창근, 김장원,  김원식, 이희영,송태섭, 엄주성, 김현만, 이남일, 김인수, 이대선, 이선주, 백성환,이상신, 신우권, 최내화, 권오준, 유차복, 김옥순, 정성근, 유점식,장순적, 우정철, 정성섭,임종재, 임인호, 최괄봉, 유경선,화정갈비,배성조, 형성운,윤형근, 정상호, 백준화, 우낭자, 심정택, 오향현,이동춘,구춘회, 손정애, 김맹빈, 이성구, 손승현, 김원하, 김동창,

정방로,황순덕, 서재현, 조용민, 조충민, 김용두, 유경식, 김봉애,서정현, 한영재, 유규님, 고태우, 김익환, 최강삼,, 송현기, 이평도,김칠봉,한태진, 한영교, 김경재, 조남식, 박은식,오진우, 이태규,이경교, 홍원희, 신민법, 김현제,김창선, 구현주, 현해식,이송자,박세희,민경애, 유홍선,박영문,나요한,김원팔,박봉옥, 백살인,김기옥, 오양순, 김상호, 정방조, 박용규, 김재근, 임동희, 김정숙,김미경, 최한규,박귀순, 류수자, 정묘연,박기호,이요한,송태종,김동환,이정민,이기덕,유종길,안성열,손처례, 김귀상, 정수동,조영선, 정옥동, 장 군, 이인강, 김점덕, 송기현,, 황명암, 김창덕,최영권, 최병수, 박평수, 노정님, 권이덕, 오정화, 강정심, 정순애,

류재수,김창수,김영기, 민순엽, 강춘자, 박준의, 김종현, 백형죽,정재호, 정호균, 김을수, 정병윤, 최시용, 김홍조, 오평수, 박화자,강정엽, 오장만, 이경욱, 오도일, 박병수, 김영환, 이강필, 배병심,전계환, 정명섭, 강남석, 정정석, 이 근, 정성모, 송옥석,  김성영,이후성, 이중식, 김성환, 이유님, 엄기선, 이상열, 윤이남, 김한길,이희동,정한채,양정식, 강명희, 정길영, 송성현, 윤석규, 최용만,설학모, 서영애,  최귀순, 김우식, 배계옥, 박정환. 김준열, 조종래,

공진기, 이시도, 김순점,김종섭, 강차임, 박동화, 송정길, 김정자,이태종, 김만조, 김태근, 조 출, 박동환, 김재수, 서천심, 조수조,박석진, 박종선, 박상용, 신귀남, 노성택, 안귀님, 추명님, 유옥엽,황화자, 윤순자, 최자선, 엄기호, 백문도,황정엽, 박정관, 유우열,맹보망, 이도인, 이경순, 김정례, 김인수, 강이엽, 곽장하, 박정기,조기호,박경도, 김형모, 김수복, 김원옥, 김창오,권헉우, 최인학,이무생, 김호태, 양찬식, 황동식, 김용삼, 이재만, 유재명, 강학송,

강재식, 김화익, 김병렬, 박중구, 김 암, 박홍기, 허 돈, 박태남,김성호, 정채엽, 배성조,

김임심,김영재,김채식 

 

5)순교기념관 소개

1)장 소 : 전남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13-207

2)부 지 : 775(대지)

3)건물용도: 전시시, 예배실(수련회 가능)

4)건 평: 연건평 300( 지하 150, 지상 150)

5)총공사비:10

(부지 구입부터 진입로 개설 포장에서 건축 조경 내부 시설까지 전부포함)

6)건물소개:

1층 전시실, 1예배실, 2 예배실, 개인 기도실, 화장실, 기계실

(애양원의 시작과 애양원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 사랑의 사도들의 사진과

사랑의 사도 손양원 목사 삼부자의 사진 및 손 양원 목사의 유품,

광량 예림스튜디오 신윤식 집사의 예수님 생애의 성지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그 외에 한 완석 목사의 서예와 김동일 장로의 서예가 전시되어 있다.)

 

2: 전시실, 사무실, 화장실( 이곳에는 손 양원 목사 삼부자의 생애 사진과 손 목사의 옥 중서신, 한성 신학교 자료들과 많은 고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형상화해서 설계를 했으며, 삼부자의 순교를 형상화해서 설계했다, 또한 건물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서 건축을 했다.

 

특별히 손 양원 목사를 삼경 목사라고 하는데 그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 겉은 초라하게 짓고 속은 알차게 꾸몄다. 정성은 최대한으로 들여서 짓되 겉모습은 최대한 왜소하고 초라하게 보이도록 건축을 했다. 손양원 목사의 삶의 모습과 순교자의 삶의 모습을 건축물을 통해서 표현하려고 노력을 했다.

 

현재 1년 평균 3만 명이 넘는 순례객이 다녀가고 여름방학과 겨울 방학에는 수련회를 계속해서 하고 있다. 평일에는 철야하는 기도하는 팀들이 사용하고 있다. 또한 각종 세미나 장소로도 사용되고 있다.

 

6)신앙 계승에 대한 평가

1993427, 기념관이 개관되고 본 기념관이 순교 신앙 계승적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199310월가 목회에 본인이 간단하게 논술했던 것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제일 먼저 기능적인 측면을 방문객들이 남겨 놓은 글과 말들을 통해서 간단하게 소개해 본다. 지금까지 방명록에 기론된 인원은 199386일 현재 12,500명에 이르며,

기록하지 않은 인원까지 합하면 15,000여 명 이상이 다녀간 것으로 추측한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반응은 신앙의 활력소가 되는 곳이 라는 것이다.

방문객들이 이구동성으로 너무 좋다, 신앙의 활력소가 되는 곳이다라고 했다.

내 아내는 믿음이 독실한 사람으로 교회 집사인데 나는 그냥 왔다 갔다 하는 신자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손 양원 목사처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식어질 때마다 곡 이곳에 와서 재충전을 받겠습니다.”라고 사업을 한다는 한 남자 잡사의 고백을 했다.

 

그런가 하면 방명록이 하고 싶은 말 란에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이곳을 들러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적어 놓은 사람도 많이 있었다,

방문자들의 소감을 분석해서 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

.믿음의 도전을 받았다 45%

.순교 신앙 및 손 양원 목사를 본받겠다. 50%

. 참 사랑의 진리를 깨달았다 3%

 

그리고 나머지는 기타로써 2%에 해당한다. 기타에는 이곳에 와보니 한국교회 성장 이유를 알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상의 간단한 분석을 통해서 볼 때 순교 신앙을 계승하고자 하는 목적이 잘 수행되고 있으며 좋은 신앙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별히 부모들이 다녀간 후에는 꼭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친히 교육을 시키고 있다. 한 번 다녀간 사람들 중에는 거의가 다시 오겠다고 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신앙의 역사적 교육장이 많이 있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많이 느끼게 된다. 교회에서 단체로 야외로 나갈 때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관광지를 돌아다니거나 유흥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어떤 분들은 관광지로 가지 않고 여기로 오게 된 것을 백 번 잘했다고 하면서 이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 또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다녀간 분들이 기념관 운영 위원에게 부탁하는 것은 시설을 더욱 확충해서 세계적인 순교신앙 계승장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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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25 [14:36]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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