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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0.24 [06:02]
덴마크 한인들의 등대지기 오대환 목사
덴마크한인교회 담임목사와 한글학교 교장으로 섬기며 ‘한국인의 집’ 운영
 
김철영

 덴마크는 훌륭한 목회자이자 정치인이자 예술가이자 교육자인 그룬트비 목사가 있고. 세계적으로 알려진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키엘 케고르와 세계적인 동화작가 안데르센을 배출한 나라다. 덴마크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13명이고, 코펜하겐대학에서만 8명이 수상했다. 인구 540만 명의 작은 나라에서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 덴마크한인교회 오대환 목사     © 뉴스파워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국제공항에서 20분 거리의 한 주택가에는 코리아센터라고 적힌 아담한 2층 주택이 있다. 1926년에 건축됐으며 1960년대 개축한 집이라고 한다.

 

덴마크를 찾는 한국인들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유일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1999년 문을 연 한국인의 집이다.

 

한국인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는 덴마크한인교회 오대환 목사다. 1991년 덴마크 땅을 밟은 오 목사는 1999년부터는 한글학교교장을 맡아 섬기고 있다.

 

한국 대사와 대사관 직원들은 임기가 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한다. 오 목사는 지난 27년 동안 300여 명의 한인들의 든든한 등대지기가 되어 한인들의 영적정신적 지도자로, 멘토로, 상담자의 역할을 감당해왔다.

 

지난 17일 저녁 한국인의 집을 찾았다. 덴마크 축구클럽 4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 스물일곱 살의 무명의 축구선수와 부산에 있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이곳에 있는 설계사무소의 인턴으로 1년 간 일하기 위해 와서 이곳에 머물고 있다. 이 나라의 물가와 집세를 고려할 때 이만한 생활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덴마크에는 현지인과 결혼한 한국 여자들이 꽤 있습니다. 한국에 파견되어 근무했던 이들과 결혼해서 이곳에 와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들을 포함해서 한인들에게 가정적으로 갈등이 생기면 언제든지 이곳에 와서 쉬었다 가라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다. 덴마크를 찾았다가 여권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대사관을 통해 소개를 받고 이곳을 찾아와 머물다가 가기도 한다. 덴마크에 공부하려고 찾아온 젊은이들도 이곳을 찾는다.

▲ 한국인의 집(코리아센터) 앞에서 오대환 목사     © 뉴스파워

 

 

오 목사는 한국인의 집에 거주하는 이들을 위해 직접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다가 음식을 만들고, 밥을 지어 내놓는다.

 

오 목사는 한글학교 교장으로도 열심이다. 7명의 교사가 섬기고 있고, 덴마크 사람들 중심의 성인반과 아빠가 덴마크 사람이고 엄마가 한국 사람인 아이들 중심의 아이들반 등 60여 명이 수강하고 있다. 현재 한글학교는 핀스처치 교육센터를 빌려서 토요일 오전 930분부터 1230분까지 진행하고 있다.

 

오 목사는 이 같이 교민사회의 융화와 복지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오 목사는 신학교 졸업을 앞두고 선교학 교수로부터 덴마크 선교사로 가면 어떻겠는가 하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의 뜻으로 믿고 19911월 이곳에 첫발을 내딛었다.

 

무척 추웠는데요. 저를 안내한 집사님이 파롬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집 지하에 우리 가족 방을 꾸며 놨더라고요. 그 집에서 가정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지요.”

 

오 목사는 그해 6월에 덴마크한인교회 설립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이민국으로부터 불법상태라면서 추방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다시 한국에 들어가서 비자를 신청하고, 2개월 남짓 있다가 독일 함부르크로 갔다. 그곳에 방을 얻어놓고 가족들을 불렀다. 3개월 만에 재회한 것.

 

그러면서 이곳 성도들과 통신으로 교제하면서 부인이 한국인인 현지인이 사정을 듣고 오 목사를 돕겠다고 나섰다. 그는 정부의 종교성장관실에 직접 들어가서 오 목사의 비자 발급 건을 종교성이 파악하고 있는지 물었다. 비자는 내무부장관이 발급 여부를 판단한다.

 

그는 오 목사가 한국에서 비자 신청을 했고, 접수되어 있는데 내무부가 처리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내무부에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그러자 이 문제를 크게 확대하지 않으면 비자를 발급해 주겠다고 답변을 했다고 한다.

▲ 독일인교회, 프랑스교회, 덴마크한인교회가 함께 사용하고 있는 교회.     © 뉴스파워

 

 

그러자 오 목사는 덴마크에 들어와서 조치를 기다릴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했다. 이민국은 불법 상태로 추방된 상태이기 때문에 6개월 안에는 다시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오 목사는 이민국도 책임이 있다고 항의를 했고, 이민국이 수용을 했다. 비자가 발급될 때까지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으로 비공식 입국을 허용했다.

 

비자 발급의 우여곡절 속에서도 28년의 세월이 흘렀다. 독일인교회에서 주일 오후 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사용한다. 독일인교회는 올해로 329년이 된 역사적인 교회다. 루터교회가 아닌 칼빈주의를 지향하는 개혁교회로 프랑스교회, 한인교회, 독일인교회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3년 전부터는 가나교회도 이곳을 사용하고 있다.

 

독일인교회, 프랑스인교회, 한인교회 등은 개혁교회총회를 구성하고 매년 총회를 거쳐서 유럽개혁교회와 함께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한인교회는 매년 7000크로나(한국돈 130만원)를 회비로 내고 있습니다. 비자 때문에 가입을 했는데, 세계개혁교회 회원교회로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온 지 8년 만에 비자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어요. 나중에 정년퇴직을 해도 복지걱정이 없을 정도로 연금혜택을 받기 때문에 노후 걱정을 안 해도 됩니다.”

 

덴마크한인교회는 대사관 직원, 코트라 직원, 대학교수들, 연구소 연구원, 소수의 교민들, 소수의 유학생들이 출석하고 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귀국한다. 올해만도 5-6가정이 귀국했다. 그래도 새로운 가정이 3~4가정이 들어온다.

 

오 목사는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사랑이 강물처럼>이라는 A3 양면으로 된 한국뉴스를 발행했다. 한국 뉴스를 단신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진리가 자유를>이라는 설교 내용 전문을 실어서 덴마크 한인들에게 한 달에 두 번씩 발송했다.

특히 <사랑이 강물처럼>은 전 한인에게 발송했고, 스웨덴, 독일, 스위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여러 한인교회들에게 발송했다. 무료로 보냈는데, 독자들이 우표를 구입해서 보내주기도 했다. 전동타자기로 제작하다가 워드프로세스로 작업을 했다. 발행을 중단하게 된 이유는 눈이 극도로 피로한 증세 때문이었다.

▲ 오대환 목사 발행했던 [사랑이 강물처럼]     © 뉴스파워

 

 오 목사는 한국인의 집을 매물로 내놓았다. 규모를 축소하려고 한다. “한국인의 집은 한인교회나 정부에서 공식적인 예산지원이 전혀 없습니다. 교회에서 사례비 일부와 집사람이 공항에서 일하면서 받은 급여의 일부 등으로 연간 2000만원의 재정이 소요됩니다. 연간 내는 가옥세가 한국 돈 500만을 내고, 3개월마다 240만원을 할부금으로 들어갑니다.‘

 

이처럼 전기세와 물세를 제외하고도 많은 재정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사용 빈도가 낮아진 것도 규모를 축소하려는 이유다.

 

덴마크하면 낙농국가라는 인식이 있다. 그런데 사실은 알고 보면 첨단기술공업국가다. 한국의 조선소에서 제작하는 선박 설계 도면과 선박 엔진이 덴마크에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6.25 때는 전투병은 파송 안 했지만 의료지원을 했다. 당시 유틀란트호라는 의료선을 부산항에 정박해놓고 군인들을 치료했다. 전쟁이 끝난 후 의료장비를 기증하고 왔다. 또한 서울 을지로 6가에 있는 국립의료원을 지어주었다. 당시 노르웨이, 스웨덴도 참여했지만 덴마크가 중심이 되었다.

 

덴마크는 루터교가 국가교회로 85퍼센트 국민이 루터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극소수만 정기적으로 예배를 참석하고 있다. 태어났을 때, 세례식 때, 결혼식 때, 죽었을 때 등 평생 네 번만 교회를 간다는 말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을 정도다.

 

이 나라에서 자유학교’(프리스쿨)를 통한 신앙인재를 키워내고 있다. 전국에 20여 개의 자유학교는 공립학교가 아닌 측면에서 볼 때는 대안학교다. 한국에서처럼 학력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학력을 인정받는 학교다. 대학에 입학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 오대환 목사는 지난 2016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 뉴스파워

 

자유학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신앙과 학습효과입니다. 공립학교보다 수준이 높고, 교사는 신앙고백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교사들이 참으로 성실하게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신앙인재를 키워내는 산실이 되고 있다. 자유학교 출신들 중에는 하버드대학교 세계적인 유수한 대학에 입학을 하고 있다.

 

오 목사는 공립학교 교육 체계도 한국의 공교육에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폴크스쿨(초등학교)9년제인데, 7학년까지 숙제와 시험이 없습니다. 학교의 목표는 배움의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그리고 얀테의 법칙이라고 해서 잘 났다고 생각하지 말라, 끝없이 올라가려고 하지 말고 옆에 있는 사람을 살피면서 보조를 맞춰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수직적 질서보다 수평적 질서를 강조하는 것이지요.”

 

오 목사는 이 같은 덴마크의 학교 교육의 긍정적인 면을 한국에 알리는 일도 하고 있다. 대안학교인 소명중고등학교를 비롯해 여기저기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오 목사가 덴마크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것 중에는 지구 온난화에 대비한 덴마크 정부의 노력이다.

 

빙하에 창고를 만들어 세계의 씨앗을 저장하려는 계획이나, 지붕에 물탱크를 설치하여 허드렛물로 사용하는 것, 시내의 차선을 축소하고 나무와 잔디밭을 조성하는 것, 코펜하겐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 떨어져 있는 오덴사에 온난화를 대비하여 물 저장고를 만들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배워야 할 점입니다.”

 

덴마크 국회의사당 건물에는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국회의원들이 출근할 때마다 국민을 위해 고뇌하는 정치인이 되기를 다짐하게 한다고 한다. 덴마크 국회의원들 중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국회의원 보좌관은 없다. 다만 국회의원이 연구가 필요할 경우는 국회 사무처에 배치된 인력을 지원 받는다고 한다.

▲ '한국인의 집'에 생활하고 있는 청년과 함께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오대환 목사(우)     © 뉴스파워

  

전남 곡성군 석곡면 연반리 해주 오가 집성촌에서 태어난 오 목사는 어머니 등에 업혀 석곡교회를 다녔다. 고향인 연반리에 연반교회가 설립되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주일학교 반사를 했다. 당시 중학교 1학년 120명 중에 오 목사만 교회를 다녔다.

 

이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세운 순천 매산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순천중앙교회 주일학교 서기를 맡아 봉사하다가 순천제일교회로 학생회 활동을 했다. 학생회지 <계명성>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덴마크 한인들의 든든한 등대지기 오대환 목사는 지난 198세의 노모와 지상에서 이별을 했다.

 

어머님은 평생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특히 제가 목회자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를 깨우셔서 새벽기도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선교사로 파송된 후에도 밤을 새워가면서 교회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사역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 목사는 덴마크에서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신자와 비신자 구분하지 않고 한인들을 사랑으로 섬기고 있다. 시집 간 딸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친정을 찾듯이, 한인들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오 목사를 찾고 있다. 그가 덴마크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덴마크 한인사회의 든든한 등대지기로 한인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밤하늘에 불을 비추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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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19 [04:5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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