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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7.23 [01:03]
석가모니가 무신론 주장하는 근거는?
정성민 교수가 쓰는 [예수와 석가모니 5]
 
정성민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늙어가고 죽어가는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이러한 인간의 삶은 우울하고 슬프고 고통스럽다. 그러기에 절망스러운 것이다. 쉽게 말해, 신이나 우주 아니면 자연이 인간이 지닌 삶의 고통을 해결해 없다는 것이다. 석가에 의하면, 이러한 인간의 고통을 멈추는 것이 바로 열반이다. 열반은 그러한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지식으로 얻어질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석가의 결론적인 입장을 한번 들어보자,

 

그러면 말룽끼야뿟따여, 내가 가르친 것이 무엇인가? 나는 괴로움, 괴로움의 발생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말했다. 말룽끼야뿟따여, 나는 그러한 것들을 말했는가? 왜냐하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정신적인 고귀한 생활과 연관되어 있으며 멀리 떠나고 사라지고 소멸하고 그치고 곧바로 알아 올바로 깨닫고 열반에 이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가르쳤다.[1]

 

그렇다면 석가는 신이나 우주와 같은 이상적인 질문들을 배척했을까? 이유는 단순한 것인데, 석가는 신의 존재를 인정할 없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문제는 인간이 해결해야 한다는 신념이 분명했던 것이다. 석가의 무신론적인 사고에 대해서 월폴라 라훌라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렇다면 삶의 시작점이 있었는가 없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일어날 것이다. 부처의 가르침에 의하면 삶이란 흐름의 근원은 불가사의한 것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는 사람은 이러한 대답에 당혹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부처에게 신은 어떻게 생겨났습니까?라고 물었다면, 부처는 서슴없이 신은 생겨난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부처는 자신의 대답에 결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2]

 

석가는 자칫 왜곡되거나 악용되기 쉬운 신의 존재는 부정하였다. 석가의 대표적인 가르침의 하나인 십이연기의 법칙에 의해서 하나님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부정된다. 연기의 법칙은 세상에는 아무것도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을 말한. 만물은 변하고 무상하며, 서로 인과관계로 조건지워지고 상호 의존적이기에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석가는 연기의 법칙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것이 있을저것이 있으며,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을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한다.여기서 이것이란 하나의 실체로서의 사물이나 대상을 말한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원인과 결과 인과적으로 얽혀있는 사건을 말한다고 있다. <연기맵이면누구나깨닫는다>저자, 백창우 선생은 연기법을 과일 중의 하나인 사과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쉽게 설명한다,

 

연기법은 개체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사과가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살펴보자.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생겨나긴 하지만, 사과나무만으로는 사과가 생겨날 없다.

태양과 공기와 땅과 영양분과 농부와 사계절과 낮과 밤과 적절한 기온과 기압 등등이 함께 해야 한다. 그러한 것들은 지구가 있어야 하고, 지구는 태양계가 있어야 하고, 태양계는 은하계가 있어야 하고, 은하계는 우주가 있어야 한다.

결국 우주의 모든 것들이 함께 참여하여 만들어 것이 사과이다.

사과나무만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우주의 많은 것들이 원인과 조건으로 참여하여 생겨난 것이다. 사과 속에는 우주의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

사과는 다른 것들과 모양으로 구분되지만 다른 것들과 내용으로 구분할 수가 없게 된다. 사과 아닌 것들이 모여서 사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겨난 사과를 무엇이라고 해야할까? 기존에 알고 있던 사과와는 전혀 다른 사과이다. 사과는 사과일 수 밖에 없다는 실체로서의 관념이 허물어지고 우주의 모든 것들이 모여서 지금 순간에 임시로 나타난 모습이 사과이다.

사과가 무엇일까?라고 찾아보면, 우주의 수많은 원인과 조건들로 환원된다.

우주의 수많은 원인과 조건들이 모여서 사과모양으로 나타난것이다………

이렇게 생겨난 사과이기에 사과라고 것이 딱히 없다. 사과는 수많은 원인과 조건들로 형성된 것이니, 굳이 사과가 무엇이냐고 찾아보면 수많은 원인과 조건들이다.

그리고 수많은 원인과 조건들도 역시 수많은 원인과 조건들로 생겨난 것이다.

그렇게 거듭거듭 원인과 조건들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사라지는 현상이 우주이다.[3]

 

그러므로 연기법은 우리의 삶의 생성과 지속 그리고 소멸의 과정 속에서 모든 사건들이 서로 원인과 결과적으로 연관되어서 상호 의존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연기법의 이러한 사실을 윤호진 스님은 이렇게 해설한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라는 내용으로 존재의 발생을,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라는 내용으로 존재의 소멸을 설명한다. 모든 존재는 상호관계에 의해서 존재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모든 존재는 상호관계에 의해서 존재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연기법은 존재의 상의성의 법칙이다. 연기법에 의하면 어떠한 존재도 우연히생겨났거나 혼자서 존재할 없다. 모든 존재는 여러가지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 생겨나게 된다. 역시 원인과 조건이 변할존재 역시 변하거나 사라지게 된다. 고정불변하고 실제적인 것은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전적으로 상대적이고 의존적이다.[4]

 

사실 연기법은 석가가 만든 것도 아니고 누구가도 만든 것이 아니다. 연기법은 스스로 존재하는 세상의 법칙인 것이다. 단지 이러한 법칙을 석가가 일찍이 깨달아 사람들에게 가르칠 뿐이라는 것이다.[5] 물론 연기법은 이러한 만물의 변화무쌍한 변화가 어떻게 작동(인과적으로 그리고 상호의존적으로)하는지를 밝힌다는 면에서 주역이 말하는 우주의 원리보다 구체적이라고 있겠다. 아무튼 스스로 존재하는 세상의 법칙으로서의 연기법에 대해 <잡아함경> 12 299경은 이렇게 밝힌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법은 여래가 세상에 나오거나 세상에 나오지 않거나 항상 법계에 머무른다. 여래는 법을 스스로 깨달아 동정각을 이룬 뒤에 모든 중생을 위하여 분별 해설하고 드러내 보인다. ,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 무명을 연하여 결합()있고,......아주 커다란 괴로움의 무더기가 집기하며, 무명이 멸하기 때문에 결합이 멸하고,......아주 커다란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한다.라고. 

 

그러므로 연기법은 모든 존재의 보편적인 원리이고, 그와 동시에 불교의 모든 교리와 실천을 위한 사상적, 이론적 바탕인 것이다. 이에 대해 윤호진 스님은 이렇게 주장한다,

 

연기법은 불교의 모든 교리와 실천을 위한 사상적,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붓다의 가르침은 설명이나 형태가 어떠하든 모두 연기법을 근거로 하고 있다. 모든 교리는 연기의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응용이론이고 실천원리이다. 그것들은 연기라는 하나의 근원에서 흘러나온 크고 작은 물줄기와 같은 것이다. 존재는 무상하고 무아이고 공인가. 그것은 연기적이기 때문이다.[6]

한국의 학승, 김사업 스님도 연기가 진리일 뿐만 아니라 불교교리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교리라고 주장한다. 그는 말한다,

 

무엇이 진리인가? 연기가 진리이다. 불교교리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하나만 말하라고 한다면 서슴없이 제시할 있는 것이 연기. 연기는 불교교리를 전체를 꿰는 실이요. 정수라 있다.[7]

 

정세근 교수도 연기법이 최상 위의 원리로서 모든 불교의 이론들의 근거요 바탕이라고 주장한다. 무신론(신은존재하지않는다)무아론(인간에게영혼은없다)모두 연기법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붓다의 깨달음은 모든 것이 연기라는 제법의 실상을 것이었다. 따라서 원리의 구체적 적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무아설조차 연기에 기초한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다. 나는 내가 고정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인연에 의해 생겨나고 사라진다. 따라서 나라는 실체는 없다. 그래서 무아설이다. 그런 점에서 이론적 층차에서 최고의 상위에 연기설이 있다. 불교의 많은 이론은 연기설로부터 파생되거나, 바탕에 연기설을 두고 있다. 업의 실체성이 부정되는 것도 연기 때문이다. 연기에 따르면 영원한 영혼도 없다. 연기설은 모든 고정불변하는 실체성을 부정한다.[8]  

 

그렇다. 석가가 가르치는 연기는 어떠한 고정불변의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떠한 인연이나 조건이 갖추어졌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는 조건이 유지되는 동안만 존재할 뿐임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는 우주의 모든 것은 서로 밀접한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상호의존적이기에 독립적인 존재는 하나도 없음을 말한다.  이에 대해 김사업 스님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몸에서 심장이 없는 위장, 위장없는 심장은 상상할 없다. 여기서 위장이란 소화기관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둘은 서로가 서로에 의존해야 비로소 존재할 있는 연기적 관계다. 위장이 음식물을 소화해서 영양분을 흡수하면 심장은 영양분을 피에 실어 몸에 보낸다. 심장도 영양분이 없으면 유지될 없고, 위장도 피를 공급받지 못하면 존속이 불가능하다. 위장이 있기 때문에 심장이 있고, 위장이 없으면 심장도 없다. 역도 동일하다. 몸의 장기는 모두 이와 같은 관계가 있기때문에 몸이다.  위장에 암이 생기면 결국 심장도 아파진다. 우주의 만물도 몸인 관계이다. 서로가 서로 의존해야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연기의 세계인 것이다.[9]

 

십이연기는 생명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살다가 죽는가의 실상을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통해 분석한 것이다. 그러기에 만약 십이연기의 과정을 거꾸로 살펴본다면, 모든 것들을 원점으로 돌려서 결과적으로 존재가 태어나지 않는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질병과 늙음으로 인한 죽음 그리고 태어나서 겪게 되는 모든 괴로움은 자동으로 사라지게 된다. 쉽게 말해 무명, 무지가 사라지면 의도적인 행위나 업이 사라지는 것이고 그로 인해서 태어나고 죽는 인생의 고통이 더불어 사라지게 된다. 이로써 무지의 문제만을 해결한다면 궁극적으로 모든 괴로움과 고통이 사라진다는 논리가 성립이 되는 것이다.

 

이를 쉽게 설명하자면, 연기법에 따라 당신이 인생무상을 깨닫게 된다면 당신은 당신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과 탐욕을 벗어나게 되고 그로 인해 감각적 쾌락의 대상들(성적인 욕망, 집과 자동차와 같은 소유물)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고통스러운 세상에 성적인 접촉으로 인한 새로운 생명은 탄생하지 않을 것이고, 당신은 이상 감각적 쾌락의 대상들로 인한 번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당신은 삶과 죽음의 두려움을 벗어나서 초연하게 죽음을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이는 경지에 도달하게 것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 백창우 선생은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나를 포함한 일체의 존재들이 ()같은 무아적인 존재임을 깨닫는다면 자유로워진다. 태어남도 죽음도 꿈이다. 천당도 지옥도 꿈이다. 오고 감도 꿈이다. 윤회도 꿈이다. 얼마나 자유로운가? 본래부터 자유로운 존재였건만 연기법을 모르는 무명으로 괜히 가슴을 졸이며 살았던 것이다.[10]

 

윤호진 스님은 연기법에 따라 괴로움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인간의 욕망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괴로움에서 해탈하는 올바른 방법은 괴로움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인간의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다. 감각적 쾌락의 대상들에 대한 인간의 탐욕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마음의 고통, 번뇌에서 자유하게 되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연기법에 의하면 괴로움은 우연히 생긴 것도 아니고 역시 우연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괴로움은 그것을 일으키는 원인 때문에 생기게 되고 원인을 제거 해버리면사라지게된다. 괴로움을 발생시키는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운데 가장 분명하고 직접적인것은 인간의 욕망이다.[11]

 

또한 연기의 법칙은 모든사물이나 사건이 서로 고리로 연결 되어있기에 어떠한사물이나 사건, 혹은 존재도 홀로 독립적으로 존재 할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연기의 법칙은 어떠한 존재도 홀로 독립적 으로 존재 할 없기에 세상에 절대적인 존재는 있을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는 같은 존재 라는것이다. 이에대해 백창우 선생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를 포함한 삼라만상은 본래부터 존재 하는것이 아니다.

원인과 조건들에 의해서 생겨 났다가 사라 졌다가 하는 환영 같은 존재 이다.

원인과 조건들도 다른 원인과 조건들로 생겨나기에, 끊임없이 변하는 환영 같은존재이다. 존재하는같은데 원인과 조건들의 총합으로 것이니, 존재는 원인과조건으로해체된다. 원인과 조건들도 다른 원인과 조건으로 해체 된다.

결국, 있다고 것이 몽땅 해체 되어 버린다. 이것을 존재() 이라고한다.

존재 하는것이지만 사실은 존재 한다고 것이없는 환영 같은 존재 인것이다!

 

……순간도 찰나도 고정된 모습이 아니다. 순간순간 찰나찰나 변하는 존재 이니 존재 한다고 수가없다. 이런것이 존재 한다고 규정 짓는 순간, 이미 다른 모습의 존재로 변하기 때문 이다. 한순간도 고정 되어있지 않는것을 존재 한다고 없다.

이러한 존재를 () 같은존재 라고 부른다. 존재 하는같은데 존재 한다고 없는 존재 이다. 존재 한다고 수도 없고, 존재 하지 않는다고 수도 없다.

있다고 수도 없고, 없다고 수도 없다. (생각)표현 할없는 존재 이다……

이것을 연기적 존재 라 한다. 무아, , , 무생등으로 이름 한다.[12]

 

궁극적으로는 연기법은 세상 에서 최초의 원인이나 변하지 않는 존재는 있을 없다는  주장을 하는것이다. 그러므로 연기에 따라 최초의 원인으로 간주 되어지는창조자 하나님을 부정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결과를 낳게 되는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적 입장에서 하나님은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만물을 변하게만드는 원리로 이해될 있다. 즉 만물은 변한다는 연기의 법칙을 가능케 하는 숨겨진 실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유일한 법칙, 즉 모든 만물은 변한다는 연기법근원이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피조물인 인간에게 신의 존재는 미스터리인 것이다.

그렇다. 신은 물질적인 존재의 한계를 넘어선 비물질적인 존재이다. 그러기에 석가가 말하는 연기의 법칙, 즉 변화의 법칙에 따라 제한되는 존재의 유한성을 넘어 선 비존재가 바로 신이다. 이런 면에서 신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우연성과 같은 가변적인  자연의 법칙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신론적 철학자, 카알야스퍼스는 유한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심연에 다다르게 때에 비로소 신을 체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13]  이에 대해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전도서 817)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리라. (전도서 115)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전도서 1213-14)

 

 

 



[1]붓다의 가르침 과 팔 정도, 45쪽 에서 재 인용.

[2]붓다의 가르침 과 팔 정도, 63.

[3]백창우, 연기맵 이면 누구나 깨닫는다 (파주: 김영사, 2016), 82-84.

[4]무아, 윤회문제의 연구, 109.

[5]가지 놀라운 사실은 중국의 우주론적 철학인 <주역>말하는 자연현상의 원리가 석가가 말하는 연기법과 매우 유사 하다는것이다. <주역>말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는 무엇 일까? 그것은 만물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법칙만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유일한 법칙 이라는 것이다.

[6]무아, 윤회문제의 연구, 110.

[7]김사업, 인문학을 좋아하는사람들을 위한 불교 수업 (서울: 불광출판사, 2017), 23.

[8]윤회와반윤회, 51. <불교사상의이해>연기법이 불교 의모든 교리들의 이론적 근거라는 사실을 다음과같이밝힌다, 불교의 모든 교리들은 연기의 원리를 바탕 으로해서 만들어진 응용이론 들이다. 그것들은 연기 라는하나의 샘에서 흘러나온 크고 작은 물줄기와 같은것 이다. 모든 존재는 무아인가, 세계는 무상하며 공인가, 그것은연기적이기때문에무아이고무상이고공인것이다.

(불교사상의이해, 83)

[9]인문학을 좋아하는사람들을 위한 불교 수업, 52-53.

[10]연기맵 이면 누구나 깨닫는다, 85.

[11]무아, 윤회문제의연구, 112.

[12]연기맵 이면 누구나 깨닫는다, 45, 62.

[13]카알야스퍼스, 철학적 신앙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79),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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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04 [23:15]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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