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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8.14 [15:04]
박용규 "한국교회, 왜 개혁대상 됐나"
1960년 이후부터 한국교회 통사 다룬『한국기독교회사Ⅲ』출판
 
김철영

총신대 신대원 박용규 교수가 1960년 이후부터 한국 기독교회사 통사(通史)를 다룬 한국기독교회사Ⅲ』를 출판했다.

 

1284쪽 분량의 역작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책은 1784년부터 1910년까지 한국 교회사를 다룬 제1권과 1910년에서부터 1960년까지 다룬 제2권에 이어 1960년 이후부터 최근 총신대 사태까지 다루고 있다. 

▲ 박용규 교수(총신대)     ©뉴스파워 범영수

 박용규 교수가 펴낸 한국기독교회사는 한국교회사를 복음주의적이고 개혁주의적인 관점에서 기술했으며, 한국에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들과 그 신앙을 물려받은 한국교회의 신앙적 신학적 전통을 소중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1903년의 원산부흥운동과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그리고 1909100만인 구령운동 등 한국교회 부흥운동을 비교적 소상하게 다루고 있다.

 

박 교수는 제3권에서 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사의 흐름을 남미에서 일어난 해방신학, WCC의 타종교와의 대화, 아시아의 토착화운동의 영향으로 신학적으로 새롭게 등장한 성()의 신학, 상생신학, 민중신학, 종교다원주의를 비롯한 토착화신학이 어느 때보다 한국교회 안에 활발하게 일어났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장감성(장로교, 감리교, 성결교)이 주도하고 있던 한국교회에 침례교가 급부상했고, 도시화 현상과 경제적 성장이 강하게 진행되면서 조용기 목사의 여의도순복음교회로 대표되는 기복신앙과 번영신학에 기초한 오순절운동이 한국 교회 안에 발흥하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박 교수는 1970년대는 산업화시대, 새로운 갱신운동이 한국교회 안에 일어났으며, 이 움직임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와 1974년 엑스플로 ‘74대회, 1977년 민족복음화대성회, 1980년 세계복음화대성회, 1984년 대중전도운동과 복음주의운동의 발흥으로 집약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같은 대중전도운동과 복음주의 발흥으로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교회는 전례 없는 성장기를 맞았다. 박 교수는 그러나 놀라운 교회성장은 순기능의 역할도 했지만 적지 않은 역기능을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수많은 무인가 신학교의 난립, 교회의 양극화, 교회의 물량주의와 세속화는 그 전형적인 사례들이라는 것이다.

 

특히 복음주의 진영과 에큐메니컬 진영이, 복음화와 인간화, 영혼구원과 사회구원 등의 신학적 담론을 중심으로만 아니라, 국가 권력에 대한 태도에서도 양분되어 있었다며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주장을 펼쳐가고 있다.

 

박 교수는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차별화된 복음주의 정체성을 표방하는 신흥 교회들이 여럿 등장했다며, 대표적인 교회로 옥한흠 목사의 사랑의교회, 홍정길 목사의 남서울교회, 이동원 목사의 지구촌교회, 하용조 목사의 온누리교회 등을 꼽았다. 이들 목회자는 1970년대 초교파선교단체와 대중전도운동의 영향을 받은 젊은 목회자들이라는 특징이 있다.

 

박 교수는 1990년대 한국 교회 특징 중 하나로는 연변과학기술대학 설립, 남북나눔운동, 코스타 설립, 국제OM, 그리고 오픈도어와 모퉁이돌 선교회로 대변되는 북방선교는 새로운 해외선교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1990년대 한국교회는 전례 없이 다양한 도전을 맞기 시작하면서 한국 교회는 침체를 맞기 시작하고, 천주교는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역사상 가장 놀라운 성장시대를 구가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성령론과 종말론 논쟁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강하게 일어나고, 변선환의 종교다원주의가 기폭제가 되어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한국 감리교 안에 활발하게 일어난 시대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박 교수는 2000년대 들어선 한국 교회는 그동안 분열의 분열을 거듭하던 한국교회 안에 연합과 일치운동이 일고 있는 것을 희망적 현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2013WCC 부산총회를 놓고 이를 지지하는 교회들과 반대하는 교회들 사이에 심각한 대립으로 다시 양분되면서 위기를 만났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한기총은 이단해제와 금권선거문제, 그리고 대표회장 인준절차문제 등으로 한국교회 대표기관으로서의 신뢰를 잃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2007년 분당 샘물교회의 아프가니스탄 단기선교사건을 기점으로 반기독교운동이 일어나 기독교 공격이 그치지 않고 있고, 한겨레, 오마이뉴스, 뉴스앤조이 등 비판적 언론들을 중심으로 대형교회에 대한 비판이 전에 없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반 대형교회 정서가 한국교회 안에 강하게 일기 시작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 총신대 신대원 박용규 교수가 1960년 이후부터 한국 기독교회사 통사(通史)를 다룬 『한국기독교회사Ⅲ』를 출판했다.     © 뉴스파워

 

 

이와 함께 통일논의와 북한 지원이 교계 화두로 등장했다고 밝히고 있다. 박 교수는 일부 지도자들이 통일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기고, 남북 나눔을 실천하고 통일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통일문제에 있어서 아직까지 한국교회의 진보와 보수의 합의점이 도출되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박 교수는 교파와 교단을 초월한 논의와 준비, 통일 후 어떻게 북한의 복음화와 선교를 위한 책무를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하면서 10WCC 부산총회 유치로 한국교회가 다시 양분되면서 정작 중요한 통일문제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한때 한국교회에 유행하던 북한선교도 이제는 옛 구호가 되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박 교수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한국교회는 심각한 침체와 세속화 속에서 나갈 방향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찾아야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 왜 한국교회가 1970년대와 1980년대 놀라운 성장을 구가하다 이렇게 급속하게 침체의 길로 접어들었는가를 냉정하게 자문해야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박 교수는 이어 한국교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 복음의 순수성을 상실하고, 급속하게 세속화의 길을 걸었고, 복음전파의 사명과 열정도 상실했으며, 대사회적 책임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사회와 민족을 선도하며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할 교회가 자정능력을 상실하고 급기야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 교수는 한국교회의 분열, 금권주의와 세속화, 복음의 본질 상실, 신앙과 삶, 신학과 삶의 괴리, 윤리실종과 실천적 삶의 부재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하면서 복음의 능력을 상실한 교회가 교회의 생명력을 유지한 시대는 단 한번도 없다. 한국교회는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 복음의 느력을 온전히 회복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한국교회가 사는 길라는 말로 글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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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22 [14:15]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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