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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0.19 [23:05]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
 
노세영

 

성경: 왕상 12:25-33

▲ 서울신학대학교 노세영 총장     ©뉴스파워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대로 독일의 통일에는 교회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그 중에서도 라이프지히 성 니콜라이 교회의 월요 기도회는 지금도 우리에게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 니콜라이 교회의 기도회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과 통일을 위한 기도는 실제로 교회의 잘못을 인정하는 회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매주 월요일 이곳 명성교회에서 드려지는 통일을 위한 월요 기도회는 라이프지히 성 니콜라이 교회의 월요기도회를 닮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분단을 설명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분단을 말할 때 솔로몬 왕의 잘못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으며 솔로몬이 죽자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으로 등극하기 위해 세겜에 갔을 때 여로보암이 반역하여 남과 북이 나뉘게 되었다는 점을 이야기 합니다. 물론 르호보암이 북 이스라엘 사람들의 요구에 대하여 잘못 반응하여 북쪽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킨 점도 그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남과 북이 갈라지게 된 표면적인 이유 뿐만 아니라 그 분단이 오래 동안 고착화된 점에 더 관심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이 그 점을 좀 더 자세하게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로보암이 르호보암으로부터 독립하여 북 이스라엘을 건국하자 그가 가장 먼저 한 행위는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있는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행위를 못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바로 북쪽에 위치한 벧엘과 북 이스라엘의 최 북단에 위치한 단에 신전을 짓고 그 신전 안에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북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 선포하였습니다. “앞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지 말고 벧엘과 단에 세운 신전에 가서 그 안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겨라. 너희들이 섬기게 될 금송아지는 너희들을 애굽 땅에서 구원하여 낸 하나님이다.” 여로보암이 이런 행위를 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리다 보면 남 유다의 다윗왕조의 신앙에 영향을 받아 자기를 배신하고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갈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라고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의 왕조를 굳건하게 세우기 위해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쪽에 있는 다윗 왕조의 시온주의 신앙에 영향을 받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왕조 이데올로기를 세워야만 했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지켜주겠다는 다윗왕조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고 출애굽의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당시의 가나안 종교의 만신전의 최고신이었던 엘신이 바로 출애굽의 하나님이라고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무지했던 당시의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가나안의 엘신을 섬기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자신의 왕조 이데올로기를 세우고 백성들이 그 이데올로기를 따르게 함으로써 북 이스라엘을 다윗의 왕조로부터 완벽하게 분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러한 여로보암의 행위가 북 이스라엘의 범죄의 근원이 되고 있음을 반복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여로보암이 왕이 된 후 두 번째로 한 행위는 레위인들만이 그 중에서도 아론의 후손 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일반 백성들 중에서 제사장을 세웠다는 점입니다. 아론의 후손들과 레위인들은 철저하게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아론의 후손과 레위인들이 벧엘과 단에 있는 신전에서 일하게 됨으로써 다윗 왕조의 신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을 두려워하였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레위인과 아론의 제사장들이 벧엘과 단에서 제사를 집례하게 될 때 그들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제사를 드리게 될 것이며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에 대하여 문제를 삼을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세 번째 행위는 그들의 달력 체계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남 유다의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던 티쉬리월을 1년의 시작으로 한 체계를 니산월을 1년의 시작으로 하는 체계를 받아들여 백성들로 하여금 사용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달력체계는 출애굽의 시점을 니산월로 받아들이게 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남유다에서는 일곱째 달에 절기를 지키던 전통을 버리고 여덟 번 째 달에 절기를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남 유다가 가지고 있던 달력체계를 버리고 새로운 달력체계를 사용하며 절기를 나타내는 종교력 조차도 새롭게 만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 유다의 종교적 영향에서도 그리고 일반적인 교류조차도 하지 못하도록 달력체계를 바꾸어 아주 다른 생활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철저하게 남 유다의 종교적 입장을 배척하여 북 이스라엘을 위한 새로운 종교를 만들고자 하였으며 철저하게 북 이스라엘이 남 유다와 분리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였다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여로보암의 이런 정책은 즉 새로운 북 왕조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남 유다와의 차별을 만들 뿐만 아니라 북 이스라엘의 왕조를 견고하게 세우고자 하는 것이었 으며 그의 정책은 상당 부분 성공하였습니다. 비록 많은 왕조들이 바뀌며 북 이스라엘의 정치적 혼란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북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주전 922년부터 722년까지 200여년 동안 지탱해오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왕조 이데올로기는 북 이스라엘의 왕들이 범죄하게 하는데 기반을 제공하였으며 결국에는 북 이스라엘 멸망의 단초를 제공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여로보암이 만들어낸 왕조 이데올로기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지금의 북한이라는 나라를 연상해 봅니다. 김일성이 처음 시작한 김씨 일가의 통치 이데올로기는 공산주의 입니다. 이러한 공산주의는 3대를 이어오게 하였고 남북이 분단된 지 벌써 72년째를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 1995년에는 분단 이후 첫 희년이 왔을때 통일을 이야기 했고 2년 전 2015년에는 이스라엘이 70년 만에 바빌론으로부터 해방을 맞이 하였기에 분단 70년이 된 그 해에 우리에게도 새로운 통일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는 분단을 경험하고 있고 정말로 우리에게 통일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염려를 갖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과거 여로보암의 왕조 이데올로기로 인해 200년이라는 긴 시간의 분단을 낳게 하였듯이 북한의 공산주의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분단을 더 고착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하기도 합니다. 지금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북한의 공산주의로 인한 차이점이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독일과는 달리 남과 북이 전쟁을 치루며 더 많은 상처를 갖게 되었으며 보다 더 심각한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싸움을 해 왔기 때문에 정말로 통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평화통일의 희망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상황을 살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마침내 호세아라는 왕을 마지막으로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잘못과 범죄는 극에 달했습니다. 예언자 아모스와 호세아는 북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그려놓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바알을 중심으로 하는 가나안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도 불의를 저질렀으며 가난한 자들과 과부들과 고아들을 압제하며 온갖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앗시리아를 일으켜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의 죄악이 극에 달했을 때 그들은 마침내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레위기 18장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 주고 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의 죄가 극에 달했을 때 땅이 그들을 토해 내쳐 그 땅에서 쫓아낸다는 말씀 말입니다. 이 말씀의 원칙대로 북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했으며 남 유다도 주전 586년 바빌론에 의해 멸망을 당한 것은 너무도 잘 아는 역사입니다.

 

지금의 북한을 보면 그들이 점점 더 악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한 주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있으며 핵무기를 개발하여 이제는 고도화 단계에 이르렀으며 수 많은 무고한 생명을 담보로 전쟁의 유희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북한 어린이들은 기아에 허덕이며 죽음에 이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은과 북한 지도자들은 사치와 부패에 빠져 있고 수 많은 주민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북한 땅을 탈출하기에 이르렀고 지금도 남한에는 3만명의 새터민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들의 생각이 악할 뿐이라는 노아 홍수 이전의 상황을 보는 듯 합니다. 그들의 죄악이 그들 스스로를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성경의 역사도 그렇게 말하고 있고 다른 세속의 역사 속에서도 죄악이 극에 달했을 때 그 사회는 멸망을 자초하였다는 것을 너무도 잘 말해 주고 있다는 점이 우리로 하여금 북한의 마지막이 가까이 온 것 같은 생각을 갖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북한이 멸망하지 않고 아름다운 평화 통일로 가기를 기대하지만 어쩌면 그들이 스스로 멸망의 길을 자초하여 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듯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미래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갑작스럽게 통일이 찾아 왔을 때를 대비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또 다른 고통과 어려움이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올해 우리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많은 행사들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독일에서는 올해 왜 한국인들이 이렇게 독일을 찾고 있는가에 대하여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만 진정한 개혁의 소리를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주전 722년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면서 200여년 동안 분단되어 있던 나라는 자연스럽게 남북이 통일이 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당시 앗시리아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았던 남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통일을 준비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악을 발견하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성전을 깨끗하게 하며 우상을 제거하고 오직 하나님 만을 섬기도록 하였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로 하여금 예배를 회복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감사와 찬양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백성을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하였습니다.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에 대하여는 역대하 30-31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북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인해 남 유다로 온 북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같이 그들의 잘못을 회개하게 하였으며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히스기야의 회개운동을 통한 종교개혁이 있은 지 약 300여년이 지난 후 바빌론 포로에서부터 돌아온 유대인들은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통해 또 다른 회개와 종교개혁을 일으켜 진정한 해방과 유대 땅에 남아 있던 자들과 포로로부터 돌아온 자들 사이의 갈등에서부터 하나님의 율법 안에서 하나되는 경험을 한 것을 잘 압니다. 이제 우리가 진정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것은 우리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를 살펴보고 우리의 잘못은 없었는지를 확인하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회가 하나되고 하나님 앞에서 건강하게 될 때에야 진정으로 우리는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도 하나가 되지 못하면서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힘과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남북이 하나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는 다만 기우에 그치는 것일까요? 우리 스스로도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여 듣지 못하면서 개혁을 말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교회 안에서도 서로 다른 신학적 사상을 갖고 말하면서 다른 이들의 사상과 생각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대립 각을 세운다면 우리가 어떻게 통일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비록 정치적 통일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복음이 남북을 통일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기 위해서라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하게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우리는 어제 성령강림절을 지냈습니다. 오순절의 성령의 강림의 역사는 우리가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하나될 수 있는 방법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던 주님의 제자들은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방언은 다른 이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기도를 알아듣게 하는 방언이었습니다. 이 일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을 기억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면서 다른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으며 그들도 우리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서로가 같은 성령의 언어로 이해하고 들을 수 있으면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복음이 북한에 들어가 복음으로 통일을 이루는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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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07 [14:5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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