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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1.12 [19:02]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자유의지 논쟁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길을 따라(14)
 
김현배

 

당시 유럽을 사로잡은 두 인물, 에라스무스와 루터와의 만남

▲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성경     ©뉴스파워 김현배

 

 

종교개혁의 물결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면서 종교개혁은 점차 굳건해져 가고 있었다. 이처럼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이 전파되어 가는 데 큰 공헌 중의 하나는 인문주의자들이었다. 인문주의자들의 다수가 루터를 지지하고 협력하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에라스무스가 종교개혁의 알을 낳고 루터가 부화시켰다고 말했다. 하지만 루터는 자기를 돕는 것처럼 보였던 인문주의자들로부터 차츰 반대를 받게 되었다. 이 반대자 중에 한 사람이 에라스무스였다. 기독교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가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사건의 배후에 있었다.

▲ 에라스무스     ©뉴스파워 김현배

 

 

당시 유럽을 사로잡은 두 인물은 로테르담의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와 독일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였다. 에라스무스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16세기 유럽 전역의 학자들로부터 가장 존경을 받는 지도자였다. 그는 매우 신중하고 예리한 기지를 겸비한 보수적인 학자이다. 천부적인 총명함과 살아 있는 상상력, 그리고 문필적 재능이 탁월하다. 또한 그는 성경과 고전문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인문주의의 위대한 등불이요, 인문주의자들의 왕자로 명성을 떨쳤다.

 

반면에 루터는 독일의 종교개혁자이다. 루터는 1517년 비텐베르크 성 교회에 95개조의 반박문을 통해 종교개혁의 불을 지폈다. 그 이후 타오르는 종교개혁의 불길은 꺼지지 않고 독일 전역을 넘어 유럽으로 계속 확산되고 있었다. 루터의 엄청난 영향력이다. 그는 기독교의 역사를 바꾼 영적거인이다. 이처럼 종교개혁 시대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두 거장, 에라스무스와 루터가 만났다. 처음에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좋았으며 서로 잦은 교류가 있었다.

 

에라스무스는 루터에게 매우 동정적이었다. 그는 루터가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한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했을 때 많은 부분에서 루터의 개혁사상에 동의를 표하였다. 루터도 에라스무스가 뛰어난 고전 실력을 바탕으로 1516년에 헬라어 신약성경을 출판하게 되자 좋은 반응을 보였다. 또한 루터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얼마나 거짓되고 오류에 빠졌는지를 깨닫고 분노하며 로마교회의 잘못을 공격하였던 에라스무스의 태도에 많은 호감을 가졌다. 이처럼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해 개혁을 부르짖는 에라스무스와 루터와의 교제는 계속 이어졌다.

 

또한 두 사람 모두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의 수도사 출신으로서 로마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나섰다. 하지만 이 개혁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놓고 두 사람이 생각하는 내용은 아주 달랐다. 그들은 서로 기독교 이해가 다르기에 생긴 차이도 매우 컸다. 에라스무스는 루터의 설교나 저술들이 너무 호전적이고 거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루터가 15214월 보름스 제국의회에서 심문을 받고 파문을 당하면서 관계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루터는 에라스무스가 언어 연구의 능력과 웅변술을 충분히 지녔고 언어학자로서는 휼륭하다. 하지만 그는 신학자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자가 될 자질과 용기는 갖추지 못했다고 평했다. 이처럼 양자 간의 의견대립은 상당히 컸었다.

 

에라스무스는 당시 가톨릭교회가 분열하는데 있어서 위기감을 느꼈고 교회의 일치성과 연합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루터의 여러 주장에는 동의를 하였지만 교회가 분열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신학적인 교리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복음을 회복하고자 하는 루터의 열정에 공감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결국 그는 루터를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이슈를 자유 의지로 선택했다. 이것은 마침내 종교개혁에서 표출되었다. 이것이 1524년과 1525년에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와 종교개혁자 루터 사이에서 일어난 자유의지에 관한 논쟁 사건이다.

 

자유의지에 대한 에라스무스의 견해

 

에라스무스는 인간의 선함과 존엄성을 주장하면서 자유의지 또는 자유선택은 인간이 갖는 의지의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는 별도로 인간 스스로 자유로운 능력이나 자유의지를 가지고 구원받는 길을 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에라스무스는 구원에서 자유의지가 차지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자유의지를 통해 인간이 영원한 구원으로 인도되기도 하고, 구원에서 벗어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처음에 에라스무스는 루터에게 호의적이었지만, 나중에는 루터를 비판하는 책을 쓰고자 작심했다.

 

15249, 에라스무스는 자유의지론”(de libero arbitrio)을 바젤에서 출판하였다. 루터도 이 책을 읽었다. 자유 의지에 관해서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을 따랐다, 즉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타락하였고 사람의 의지 또한 죄에 매여 버렸다고 가르쳤다. 에라스무스는 이 책에서 루터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신칭의 교리와 루터의 예정론에 대한 가르침을 비판하였다.

 

그는 인간의 의지가 노예상태에 있다는 것과 구원을 받는데 있어 인간의 전적 타락과 무능력을 주장하는 루터의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에라스무스는 루터가 말한 대로 구원과 의롭다 함을 주는 하나님의 전능을 일단 받아들이고 나면 인간의 자유가 설 자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루터가 구원을 받으리라는 확신의 근거를 오로지 그리스도에게만 두고 인간 자신의 행위에는 전혀 두지 않은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에라스무스는 자유의지와 인간의 공로를 부정하는 루터의 주장에 모욕감을 느끼면서 행위 없는 믿음과 인간이 스스로 선해지려고 하는 노력이 없는 루터의 신앙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만일 사람이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없다면 성경의 약속들은 무가치한 것이 될 것이다.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행위에 아무런 몫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루터가 자유의지를 없애버렸다고 비판했다.

 

또한 에라스무스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타락으로 말미암아 약해진 것이지 전혀 소멸된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인간의 의지는 타락했지만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으며 선과 악을 선택하지 못할 정도로 전적으로 못쓰게 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구원은 인간 의지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므로 의지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이라는 말씀을 강조했다(33;11, 딤전 2:4, 벧후 3:9).

 

그러므로 에라스무스는 구원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를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최대한 발휘한 의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즉 그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은혜가 동시에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하나님과 인간의 협동설을 주장했다. 이러한 에라스무스의 견해는 본질상 반펠라기우스(Semi-Pelagianism)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에라스무스는 반펠라기우스 학파의 인간론에 공감했는데 신앙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많았다. 결국 그는 루터의 적대자가 되었다.

▲ 마르틴 루터     ©뉴스파워 김현배

 

 

자유의지에 대한 루터의 견해

 

에라스무스가 자유의지론책을 내어 루터의 입장을 비판하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과 대학들은 루터의 반응을 간절히 기다렸다. 루터의 반격은 정말 맹렬했다. 152512, 루터는 노예의지론”(De servo arbitrio)으로 그 시대의 최고의 학자인 에라스무스의 비판에 반박하였다. 분명한 답을 주었던 노예의지론은 루터가 남긴 가장 열정적이고도 심오한 저서 중의 하나이다.

 

루터는 먼저 구원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는 에라스무스의 견해를 비판했다. 그는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해석하면서 인간의 구원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적극 강조하였다. 인간에게는 구원을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없다고 말한다. 또한 루터는 하나님의 예정을 말하면서 에라스무스의 글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으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에라스무스가 인간의 자유의지가 마치 신적이고 영적인 일들에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루터는 사도바울과 아우구스티누스의 글을 통하여 사람이 구원을 받고 못 받고는 100% 하나님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인간들은 스스로의 이성이나 능력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다. 루터는 아담의 죄로 인해 인류 전체가 배교하고 정죄를 당하였기 때문에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하여 아무런 공헌도 할 수 없으며, 인간의 노력 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을 주장했다. 모든 종교개혁자들도 부패한 인간이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한다.

 

루터는 인간 본성의 철저한 부패와 전적 타락, 죄의 치명성이 인간의 모든 행위들을 타락케 하는 요인이며, 의롭게 됨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가르친다. 또한 루터는 자유의지는 구원과 관련하여 말씀을 통한 성령의 사역이 없이는 노예의지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고 노예의지만 있다고 했다. 루터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나님 앞에서 회심하고 의롭다 함을 받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며, 사람의 회심과 칭의는 오직 성령의 역사로 일어남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루터는 인간의 이성의 문제를 중요시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실제적인 경험에서 확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루터는 자신의 의를 통하여 구원을 얻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루터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17) 말씀을 깨달았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하여 인간의 행위로 구원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절실히 깨닫게 된 것이다.

▲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론     ©뉴스파워 김현배

 

 

결국 이 체험으로 인해 루터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인간의 이성이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이신칭의 교리를 붙잡았다. 이후 루터는 인간의 의지는 자유롭지 않기에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루터는 우리가 자유의지로 행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본성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쪽을 결코 택하지 않으므로 우리의 구원은 철저히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지 우리가 이루는 것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에라스무스는 루터의 주장이 지나치게 교리적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루터는 종교개혁의 핵심은 복음과 복음이 성령을 통하여 일으키는 구원인데, 이것들은 모두 교리적이라고 주장한다. 루터는 성경의 신앙을 맛보지 못하고 이성의 신앙만을 맛본 인본주의자 에라스무스를 비판하면서 인간의 이성적인 능력을 거부했다. 이처럼 자유의지에 대한 두 사람의 신앙은 사뭇 달랐다.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서로 다른 점

 

에라스무스는 학문에 매진한 학자로서 차분하고 치밀하며 낙관주의적 인문주의자였다. 그는 지식에 접근했고 세상적 지혜의 공식들을 따랐다. 소크라테스와 기케로, 제롬의 영향을 받은 에라스무스는 교육과 이성에 신뢰를 두는 인문주의 정신을 잘 보여주었고, 목표를 계몽에 두었고 사상의 자유를 위해 힘썼다. 또한 그는 종교개혁을 지지했지만 로마 가톨릭교회를 떠나지 않고 교회 질서 안에서 머무르기를 원했다. 그는 종교개혁의 진영에 가담하지 않고, 로마와 종교개혁 사이에서 절묘한 중간자 위치에 있으려 했다. 가톨릭교회의 견해를 견지한 에라스무스는 교회 기강의 개혁을 원했고, 평화를 더 사랑했다.

 

반면에 루터는 종교개혁자로서 신앙적 원리들과 확신을 따랐다. 그는 양심의 자유를 위해 노력했고 민중의 정서를 건드렸다. 그는 신앙개혁에 열정을 쏟아 부으면서 종교개혁에 적극 가담했다. 루터는 철저한 개혁을 추구했고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느 때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에라스무스처럼 로마가톨릭의 시스템을 청소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모조리 불사르고 다른 것을 세우기를 원했다. 더 나은 교황이 아니라 교황 자체를 없애는 것이었다. 사도 바울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을 받은 루터는 말씀과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에 신뢰를 두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

 

에라스무스는 기독교가 본질상 도덕이며, 교리적 진술이 살짝 덧붙여진 것이라고 했지만, 루터는 기독교를 무엇보다 교리 문제로 보았다. 에라스무스는 교리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지만 루터는 기독교를 교리의 종교로 보았다. 하나님의 은혜에 온전히 의지하지 않았던 에라스무스를 루터는 하나님의 은혜와 거리가 먼 사람임이 틀림없다고 결론지었다.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그리스도의 철학보다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더 좋아했다. 이것은 사도바울의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루터는 그리스도의 철학이 아니라 십자가 철학이다. 루터는 세속 지혜와의 교류를 불신하면서 십자가의 신비와 세속 지혜를 분명하게 나누었다. 루터는 십자가를 더 사랑했다. 루터 신학의 핵심은 십자가 신학이다.

▲ 루터의 노예의지론     ©뉴스파워 김현배

 

 

 에라스무스와 루터와의 최종 결별

 

결국 두 사람은 자유의지 논쟁으로 인해 갈등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에라스무스와 루터와의 논쟁은 교회사에서 보기 드문 수준 높은 설전으로서 참으로 거인들의 결전이라 할 만하였다. 그들의 논쟁은 결국 인신공격으로 비화되었다. 에라스무스가 루터를 민족주의의 독이 든 열매를 맺은 나무라고 했고, 루터의 예정론 견해를 숙명적이고 부도덕한 결론으로 몰아 붙였다. 또한 종교개혁이 예술과 학문을 파괴하고 교회를 무정부상태에 빠뜨린 사회적 재앙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그는 종교개혁을 비극이라고 말했다.

 

루터 역시 에라스무스를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존재, 신자인척 하는 불신자, 교만한 회의주의자라고 비난했다. 그는 중용과 타협의 길을 걷는 에라스무스를 그는 뱀장어처럼 미끈미끈하고 달걀들 위를 걸으며 어느 것도 깨어지지 않기를 원한다.’라고 폄하했다. 루터는 이미 15173월에 에라스무스는 하나님보다도 인간들에게 보다 더 큰 흥미가 있다라고 말하면서, 그는 성경을 이성의 통제 하에 두려 하고 성경에 대하여 회의적으로 보게 만드는 사람이었다고 혹평했다.

 

에라스무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왜 세상에 오셨는지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복음의 핵심을 부인한 인문주의자였다. 루터가 에라스무스를 싫어하는 것은 복음 보다는 문화적인 허영심에 빠진 세속 정신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성경이 종교개혁에 끼친 영향력은 매우 컸다. 또한 인문주의의 왕자 에라스무스에게 빚을 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25, 에라스무스와 루터는 결별했다. 대논쟁이 결국 인문주의자들과 종교개혁자들을 결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이해하기를 원해도 도저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던,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논쟁의 끝은 서로 제 길을 가게 했다. 루터는 에라스무스를 포기했다. 에라스무스 역시 루터를 포기했다. 그 후 에라스무스는 멜란히톤과 유나투스 요나스와도 소원해졌고, 츠빙글리와도 편지 교환을 중단했다. 종교개혁과도 결별했다. 루터도 인문주의자들의 지지를 잃게 되었다. 에라스무스와 루터 사이의 거대한 논쟁은 오늘날도 끝없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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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2/03 [03:26]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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