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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9.25 [06:02]
“무당기가 발동하면 자율성 사라진다
김지철 목사(소망교회), 주일설교에서 영적인 속임수 경계
 
김철영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소망교회 김지철 담임목사가 지난 달 30일 종교개혁 499주년기념주일예배 설교에서 영적 속임수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지철 목사(소망교회)   ©뉴스파워 범영수

 

김 목사는 출애굽기 11522절을 본문으로 진정한 용기란? -모세 이야기2”라는 설교를 서두를 이에 대해 밝혔다.

 

김 목사는 지난주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부끄럽고 참담했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무속적인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면서 정신적 견고함과 영적 분별력이 결여된 지도자가 어떤 위험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최순실게이트를 언급했다. 이어 이것은 보수와 진보의 논쟁이 아니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측면의 문제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무속적이라는 것은 영적으로 거짓된 것으로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면서 무당기가 발동되면 우리는 삶에서 중요한 네 가지를 상실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첫 번째, 분별력이 사라진다.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판단력이 결여되기 시작하는 것이라며 그러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추구하는 탐욕적인 이기주의로 변질된다. 만약 지도자라면, 진정한 지도력을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또 무당기가 발동하면 죄책감이 사라진다.”면서 윤리와 도덕에 대한 개념을 상실하게 된다. 스스로 선한 자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도 나에게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게 되고, 정치적으로는 독재를 하게 된다.”는 김 목사는 만약 이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적대자로 삼거나 심지어 원수로 여기게 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세번째로 자유와 자율성이 사라진다.”면서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들을 통해서 사람을 위협하고 조정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것이 바로 무속인들이 자기에게 영적으로 종속되는 사람들을 만들 수 있는 이유라고 지적하고 한번 영적으로 매이게 되면 종이나 노예처럼 무속인에게 조종당하게 된다. 어떤 거부나 거절도 할 수 없는, 마치 주인과 종의 관계로 묶이는 것이라면서 사이비종교의 예를 들었다.

 

김 목사는 교주가 말하는 것은 곧 진리로 받아들인다. 교주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사람에게 가차 없이 징계를 가하는 것이 무속적인 사이비 종교의 특성 중 하나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마지막으로 개방성이 사라진다.”면서 비밀주의와 신비주의를 조장한다. 아무도 거기에 끼어들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비선이 공식적인 절차나 관계보다 더 우선하는 구조를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목사는 대한민국의 국정지표가 사이비 종교처럼 무속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여졌다는 사실 앞에서 온 국민이 아파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이런 무속성은 권력기관뿐만 아니라 기업, 과학계, 종교계, 심지어는 교회 안에도 남아 있어서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참회기도에서도 우리는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서 무당기가 있는 무속적 신앙, 거짓의 영에 붙잡힐 때도 많았다.”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거리면서도, 신앙의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살 때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다음은 참회기도문 전문.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교회 개혁과 사회 변화의 깃발을 든지 499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우리에게 용기 있는 신앙의 선배들, 지혜로운 믿음의 선각자들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신앙의 기초임을 선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을 진정으로 두려워함으로 세상의 모든 작은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하라고 선언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를 통한 변화와 성숙의 자리였습니다.

 

인자가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는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서 무당끼가 있는 무속적 신앙, 거짓의 영에 붙잡힐 때도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거리면서도, 신앙의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살 때도 있었습니다.

 

신앙의 분별력을 상실하니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구별하지 못하니, 잘못을 해도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아니했습니다.

죄책감이 사라지니 회개할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회개할 마음이 없어진 내 이익과 이기적인 탐욕만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서서히 우리 삶의 중심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지금 나라의 터전이 마구 흔들리고 있습니다.

우리 영혼이 그렇게 썩어지고 문드러져도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 줄 잘 몰랐습니다.

권력자도 그러했고, 돈을 가진 재력가도, 지식을 가진 지성인들도 그러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의 지도자들까지도 영적인 미몽에서 헤맸습니다.

거짓, 불의, 몽매함, 무지함, 부끄러움이 우리 자신을 참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령님이시여,

우리의 부끄러움과 죄악들을 용서하시옵소서.

이제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함으로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첫 번째 가치 기준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다음은 설교문 전문.

제목 : 진정한 용기란? -모세 이야기2

본문 : 출애굽기 11522

 

[영적 속임수에 빠지면 소중한 것들을 상실하게 됩니다.]

 

지난주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부끄럽고 참담했습니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무속적인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습니다. 정신적 견고함과 영적 분별력이 결여된 지도자가 어떤 위험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보수와 진보의 논쟁이 아닙니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측면의 문제입니다.

 

무속적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영적으로 거짓된 것으로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무당기가 발동되면 우리는 삶에서 중요한 네 가지를 상실하게 됩니다.

 

첫 번째, 분별력이 사라집니다.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판단력이 결여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추구하는 탐욕적인 이기주의로 변질됩니다. 만약 지도자라면, 진정한 지도력을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죄책감이 사라집니다. 윤리와 도덕에 대한 개념을 상실하게 됩니다. 스스로 선한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나에게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게 되고, 정치적으로는 독재를 하게 됩니다. 만약 이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적대자로 삼거나 심지어 원수로 여기게 됩니다.

 

세 번째, 자유와 자율성이 사라집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들을 통해서 사람을 위협하고 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속인들이 자기에게 영적으로 종속되는 사람들을 만들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한번 영적으로 매이게 되면 종이나 노예처럼 무속인에게 조종당하게 됩니다. 어떤 거부나 거절도 할 수 없는, 마치 주인과 종의 관계로 묶이는 것입니다. 사이비 종교가 이러하지 않습니까? 교주가 말하는 것은 곧 진리로 받아들입니다. 교주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사람에게 가차 없이 징계를 가하는 것이 무속적인 사이비 종교의 특성 중 하나입니다.

 

네 번째, 개방성이 사라집니다. 비밀주의와 신비주의를 조장합니다. 아무도 거기에 끼어들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비선이 공식적인 절차나 관계보다 더 우선하는 구조를 만들어 내게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국정지표가 사이비 종교처럼 무속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여졌다는 사실 앞에서 온 국민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무속성은 권력기관뿐만 아니라 기업, 과학계, 종교계, 심지어는 교회 안에도 남아 있어서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두 가지 기준으로 권력을 바라봐야 합니다.]

 

권력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질서의 하나님은 가정의 질서를 위해 가장을 세우고,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 장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나라의 질서를 위해 대통령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셨기에 우리는 그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모든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사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공의와 정의를 세우고 사랑과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것이 국가 권력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권력을 대하는 국민의 자세는 어때야 할까요?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권력을 지켜봐야 합니다. 순종할 것은 순종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며, 필요하면 저항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두 가지 기준은 이것입니다. 먼저 권력을 가진 자가 악을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는가입니다. 그런 권력이라면 존중하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베드로전서 2:14)"

 

여기에서는 위정자들이 선하고 옳다는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더 큰 기준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권력이 사용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베드로전서 2:13) "

 

제도에 순종하되 제한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는 권력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종과 복종의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정의로운가? 하나님의 자비를 갖고 약자를 배려하는가? 인간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고 있는가? 아니면 인권을 억누르고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파괴하고 있는가? 이것을 잘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 안에서 순종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참된 두려움이 사소한 두려움들을 이깁니다.]

 

오늘 본문에는 잘못된 권력에 저항하는 여인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모세의 등장은 곧 저항의 표지입니다. 애굽이라는 거대한 세력, 바로라는 큰 권력자에게 저항하며 해방 운동을 일으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은 이것을 단순한 해방 사건으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목표는 이스라엘 백성의 자유와 해방이었습니다. 거짓된 우상을 섬기며 악한 바로에게 종노릇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며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드리는 자유로운 백성이 되라는 것이 출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라사의 광인 한 사람도 소중히 여기신,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셨던 예수님이 권력자 헤롯 왕을 향해서는 저 여우”(누가복음 13:32)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례 요한을 거침없이 죽이고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없는 성전을 짓고 가이사랴라는 도시를 만들어 로마 황제에게 아첨하려고 했던 그를 예수님은 사람을 속이는 여우와 같은존재로 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권력자에게 복종하지 않고 저항한 여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이 땅에 나타났다는 놀라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산파, 십브라와 부아는 연약한 여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권력을 지니지 않았던 이 여인들을 통해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셨습니다. 역사의 전환을 이들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이들의 태도를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출애굽기 1:17)"

 

산파들이 주어입니다. 주어가 된 이 여인들에 대해서 17절은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인생의 첫 번째 가치로 삼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자 그들에게는 세상의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진정한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둘째, 애굽 왕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왕의 명령이었지만 따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남자아이들을 살렸습니다.

 

국가의 권력과 하나님의 말씀이 충돌되는 현장에 이 여인들이 서 있습니다. 강력한 권력자의 명령에는 누구나 복종합니다. 복종해야 살길을 얻고 불복종은 형벌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김정은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그를 악한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기를 비판하거나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벌을 내리고, 심지어 죽음으로 몰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만큼 권력은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위기 속에서 여인들이 취한 행동을 아주 단순하고 담백하게 서술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했기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지혜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선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먼저 해야 할 일을 알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세상의 작은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 것입니다.

 

어린 시절, 친구와 싸웠던 기억이 있습니까? 특별히 남자들은 어릴 때 친구들과 주먹다짐한 기억이 꽤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싸움을 할 때 나보다 키가 크고 덩치가 좋거나 본래 주먹을 잘 쓰는 친구를 상대하게 되면 겁이 납니다. 만약 이때 겁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옆에 아버지나 어머니가 계시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산파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고 그분이 내 편이면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오?’라는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신앙인이 가져야 할 삶의 기본자세입니다.

 

[분별력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성경은 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을까요? 가장 두려워할 분을 두려워하면 나머지 두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산파들에게는 이러한 지혜가 있었기 때문에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산파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엄마 배에서 나오는 아기를 맞는 일입니다. 그들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했습니다. 갈림길에 섰을 때 주저하지 않고 생명의 파괴자에 맞서 생명의 수호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두려움이 있습니까?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내가 무엇이 될까? 어떤 학교를 택하고 어떤 전공을 택해야 할까?’ 하는 것이 두려움이자 고민입니다. 청년이 되어서는 직장과 배우자의 문제가 다가옵니다. 이것들은 불확실성을 갖고 있기에 우리에게 걱정과 두려움을 안겨 줍니다. 그러나 그 모든 두려움을 이겨내는 힘이 있습니다. 바로 분별력과 지혜입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께 분별력과 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이루어지게 만드셨습니다. 물론 권력자는 추궁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그때 산파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출애굽기 1:19)"

 

애굽 여인은 산파가 옆에서 도와주어야 아이를 낳지만 히브리 여인은 건강하여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아이를 낳았다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자 권력자는 그렇다면, 태어난 아이가 남자면 나일 강에 버리고 여자면 살려라라는 매우 몰상식하고 비인간적인 악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히브리 여인들에게 있었던 용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용기였습니다. 그리고 이 용기는 분별하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분별력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와 흑암 속에서 질서의 세계를 만드셨습니다. 그 창조의 비결은 구분이었습니다. 하늘과 땅을 구별하고, 첫째 날과 둘째 날을 구별하며, 식물과 동물, 그리고 인간을 구별하셨습니다. 또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구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중 하나가 분별력입니다. 지혜로운 용기도 분별력을 가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분별력이 있을 때, 잘못된 것은 저항하고, 옳은 것은 받아들이는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분별력이 없으면 무질서 속에 빠지게 됩니다.

 

지혜와 용기, 분별력을 지닌 여인들을 통해서 유대인의 아들들이 살아났습니다. 그중에 하나님이 쓰실 만한 인물, 모세가 등장했고,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하셨습니다. 종살이 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자유로운 백성이 되었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복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수동적이고 억압에 놓여 있던 백성이 능동적이고 해방된 삶을 살아가는 백성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거짓되고 악한 우상에게 얽매여 두려움에 떨던 이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의 기쁨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참된 두려움과 분별력을 가지고 주의 일에 참여합시다.]

 

15171031일은 마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에 95개 조항을 붙였던 날입니다. 그리고 오늘이 그 개혁의 499주년을 맞는 주일입니다. 95개 조항 중 첫 번째 조항이 무엇일까요? 바로 변화입니다. “우리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태복음 4:17)고 말씀하셨다. 이는 성도의 삶 전체가 회개하는 삶이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신부에게 죄를 고백하거나 헌금을 하는 것으로 죄가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새롭게 되고 거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루터와 칼뱅 등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인간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자기 권력과 자기 탐욕을 누리는 것을 그치고, 무속적인 신앙으로 사람들을 조종하며 속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대 로마 가톨릭에 대한 경고 메시지였습니다. 둘째, 신앙의 기본,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가라. 다시 우리 신앙의 원천인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읽고 그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를 깨닫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복음의 핵심을 알라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세계에서만 이런 어려움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한국 교회도 이 위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은 점점 약화되고 영적 지도자들이 무속적 방법을 동원하여 교인들을 조정하고 사유화하는 현상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속적 분위기를 없애야 교회가 정결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분별력을 잃어버립니다. 도덕적 죄책감이 안개처럼 증발해 버립니다. 자유로운 자가 되지 못하고 다시 억눌린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목회자는 성도를 돕는 사람일 뿐입니다. 목회자는 성도의 선택을 좌지우지하고 축복을 주었다가 뺏었다가 하는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목회자는 그저 성도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속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오신 분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과 진리가 있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하나님의 복음의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여 더욱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한국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 우리를 매수하고 사유화시키고 종노릇하게 만드는 거짓 영이 제거되어야 정신적인 자유와 해방의 역사가 이 땅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펴 읽으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축복이 얼마나 큰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역사가 얼마나 고마운지를 새롭게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때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를 다시 세우시고 이 나라와 이 백성을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이 귀한 일에 함께 기도함으로 참여하며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걸어가는 귀한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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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1/01 [23:4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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