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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8.03 [23:05]
유럽 목회자들, 루터 길 밟다
제23회 유럽 목회자 세미나 참석자들, 루터 유적지 탐방
 
김현배
베를린 장벽,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현장과 진젤돌프의 경건주의 발자취를 따라 제 23회 유럽 목회자 세미나를 마친 후 EMI 목회자, 사모 일행 42명은 63인승 대형 버스로 지난 6일부터 9일 까지 베를린 장벽,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 현장과 경건주의 땅을 향해 출발했다.

각 유적지에서 일어났던 상황에 대해서는 베를린 비전교회 김현배 목사가 설명을 했다.

 독일 국회 의사당(Reichstag)
비전교회를 출발한 EMI 목회자 일행은 먼저 통일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상징물인 국회의사당을 찾았다. 웅장하며 현대적인 유리 돔으로 되어 있는 의사당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건물 위에는 ‘국민의 것이다’는 글이 적혀져 있는데, 즉 국민을 위해서 정치를 투명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1933년 히틀러가 수상으로 취임했으며,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 의식이 거행되었다. 내부에는 독일 역사를 보여 주는 전시관이 있다. 목회자 일행은 아름다운 국회의사당 건물 앞에서 단체 촬영했다.

  *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

베를린 한복판에 개선문처럼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은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본 떠 만든 것이다. 문 위에 있는 승리의 여신상은 프로이센의 영광을 기원하고 있다. 지금 브란덴부르크 문은 독일 통일의 상징이 되고 있다.

* 홀로코스트 추모 기념비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목회자 일행이 도착했을 때 비가 많이 내렸다. 유대인들의 눈물이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독일 항복 60주년, 유대인 해방 60주년을 기념하여 2005년 홀로코스트 기념비가 완공되었다. 2711개의 석판이 나란히 만들어진 추모비는 상처의 그림자이다. 1998년 추모에 대한 법안이 통과되어 독일인들에 의해 희생당한 유대인들을 추모하여 만든 기념비이다. 유대인들에 대해 사죄하는 마음에서 세운 추모비는 독일인의 기독교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신앙에는 감동을 주는 삶이 있다. 독일을 알면 알수록 감동이 온다.

* 베를린 장벽(Berlin Wall)

독일 분단의 역사적인 체크 포린트 찰리(Checkpoint Charlie)와 냉전시대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을 찾았다. 1961년 동독은 155km에 달하는 가시철조망을 걷어 내고 벽돌로 장벽을 만들었다. 하지만 1989년 11월 9일에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지금은 장벽의 일부 흔적만 보존되어 있다. 독일 통일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실 조국 통일을 갈망했다. 통일의 그날은 전 세계인의 축제가 될 것이다. 목회자 일행은 루터 종교개혁의 진원지가 된 비텐베르크를 향해 떠났다. 90분 후 비텐베르크에 도착하여 먼저 루터 하우스를 찾았다. 

 * 종교개혁 박물관 =루터 하우스 (Lutherhalle)
루터는 이곳 다락의 수도사 방에서 살면서 교수생활을 했으며, 이곳 탑 실에서 회심을 경험하였다. 선제후 프리드리히는 1525년,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한 루터에게 이 수도원 건물을 선물했다. 오랫동안 루터 부부가 살았던 이 건물은 루터 탄생 400주년인 1883년부터 종교개혁사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이곳에는 루터의 생애별로 종교개혁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체 3층으로 된 루터 박물관에는 ‘면죄부 금고, 면죄부, 현자 프리드리히의 초상화, 그리스도의 십자가, 시 교회에 있던 루터의 설교단, 95개 조항 논제, 십계명 화판, 교황파문위협 칙서, 보름스에 루터가 입고 갔던 수도복, 루터의 방, 루터의 신약번역 성경(9월의 성경), 공동금고, 찬송가집, 루터의 저서, 농민전쟁 당시의 무기들, 제후들의 그림, 루터와 카타리나 폰 보라 초상화, 루터를 기념하는 메달, 동상, 동전과 기념비, 루터 저서들, 임종의 루터, 독일어 성경’과 지하실에는 카타리나의 일상을 생활을 주제로 한 시청각 전시가 되어 있다.

* 루터 참나무 (Luthereiche)

1520년 12월 10일 루터가 교황청의 파문장과 로마교회 법학자들의 서적들 그리고 면죄부를 불태운 장소다. 박물관에서 나와 오른쪽에 있다. 이 역사적인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1830년 6월 25일 종교개혁 300주년을 기념하여 새로 참나무를 심은 것이다. 참나무 주위에는 1520년 루터의 ‘행함’을 기념하여 세워진 기념비와 우물이 있다.

* 필립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haus, 1497-1560)의 집

멜란히톤의 집은 프리드리히 백작이 선물했다. 루터의 집과 매우 가깝다. 루터를 루터 되게 한 종교개혁의 숨은 공로자가 멜란히톤이다. 멜란히톤은 루터의 개혁 뒤에서 그의 사상을 체계화하고 개신교 신앙고백문을 작성했다. 바로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이다. 또한 루터가 구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다. 

 * 로이코리아(Leucorea)
 옛 비텐베르크대학 건물 1502년에 설립된 비텐베르크대학교에서 마르틴 루터는 신학 교수로, 필리프 멜란히톤은 고전어 교수로 활동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중심지로서 명성을 얻은 이 대학은 1815년에 할레대학교에 흡수되었다. 통독이후 독일의 전통을 되살리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할레비텐베르크대학교의 분교 역할을 하고 있다. 

 *시청사 광장에 있는 루터동상 마르크트(시청사)

광장 중앙에 루터의 동상이 있다. 루터는 오른손에 성경을 들고 있다. 이 광장에는 종교개혁자 루터와 멜란히톤의 삶과 정신이 남아 있다. 이 루터 동상은 1817년 루터의 종교개혁 300주년을 기념하여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만스펠트 주민의 모금으로 세운 것이다. 마르크트 광장은 과거 공개 처형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목회자 일행은 루터 동상에 쓰여진 글을 보았다. 1면: 인간의 행사는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2면: 내 주는 강한 성이요 3면: 복음을 믿으라 4면: 만스펠트 주민의 모급으로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루터 상을 세우다. 목회자 일행은 다함께 루터 동상 앞에서 루터의 찬송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힘차게 불렀다.

* 시청사 광장에 있는 멜란히톤 동상 마르크트(시청사)

광장 왼편에 멜란히톤의 동상이 있다. 그의 손에는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문을 들고 있다. 멜란히톤의 동상은 그의 사후 3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다. 멜란히톤의 동상에 쓰여진 글이다. 1면: 근원의 샘으로 돌아가면 진리를 맛보기 시작한다(멜란히톤) 2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3) 3면: 또 왕들 앞에서 주의 교훈들을 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겠사오며(시 119:46) 4면: 독일 개혁교회의 선생, 빌헬름 왕이 이 상을 세우다. 1860년 4월 19일.


목회자 일행은 1534년 멜란히톤의 작시 곡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을 다 같이 불렀다. 이 찬송가 가사 속에서 멜란히톤의 생애의 목적은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광장에는 세계지도 모형에 비텐베르크를 표시했다. 그 안에는 1517년 10월 31일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대하면서 현재 남은 시간이 표시되어 있다. 

 * 루카스 크라나흐의(Lucas Cranach, 1472-1553) 집당대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던 크라나흐가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하던 집이다. 그는 1505년에 선제후의 궁정화가로 비텐베르크로 왔다. 약사, 출판업자, 시의원, 시장까지 지낸 크라나흐는 루터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그림으로 종교개혁 사상을 전하였다. 그의 그림은 글을 모르는 무지한 백성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또한 그는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에 들어간 그림들을 그렸으며, 특히 루터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그림으로 진리를 전하는 삶을 산 루카스 크라나흐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는 루터의 종교개혁에 중요한 동역자가 되었다. 

 * 비텐베르크 시교회 (Stadtkirche) : 루터가 사역한 교회 성 마리엔 (Marien)교회라고도 불리는 시교회는 루터가 30년 동안 설교한 교회이다. 이 교회에서 독일어로 첫 개신교 예배를 드렸다. 1535년에는 최초로 개신교 목사의 성직 수여식이 이루어졌다. 종교개혁의 모태와 같은 곳이다. 특히 크라나흐 부자가 교회 정면에 그린 종교개혁 제단화는 매우 유명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루터가 설교하는 모습을 표현했는데, 이것은 가톨릭과는 완전히 다른 개신교 예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비텐베르크 성교회 (Schlosskirche)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95개 반박문을 내 걸었던 비텐베르크 성교회에 도착했다. 그 반박문의 핵심은 ‘면죄부 판매, 고해성사, 교황무오설, 화체설’ 등이다. 그 역사적인 장소이며, 종교개혁이 시작된 교회이다. 교회의 문은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핀 역사적인 문이 되었다. 문 위 아치 중앙에는 십자가의 예수님의 그림이 있으며, 왼쪽에는 성경을 들고 있는 루터와 오른쪽에는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 즉 신조를 들고 있는 멜란히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교회 내부에는 종교개혁의 흔적들이 보존되어 있다.

오른쪽 설교단 밑에는 루터의 무덤, 왼쪽 에는 멜란히톤의 무덤, 제단 밑에는 프리드리히의 무덤이 있다. 2017년에는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내부 수리중이어서 교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서 아쉬움이 많았다. 종교개혁의 불을 지핀 루터의 영성이 우리들에게 리바이벌 될 수 없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종교개혁자로 살아온 마르틴 루터의 생애와 삶이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과 도전을 던져 주었다. 

  이제 비텐베르크를 출발하여 경건주의 도시 할레에 도착한 EMI 목회자 일행은 석식 후 호텔 휴식을 취했다. 7일 아침 일찍 루터의 생가와 사가가 있는 아이슬레벤을 향해 힘차게 출발했다.

* 루터 생가(Luther Geburtshaus)
▲ 루터 생가 앞에서     ©뉴스파워 김현배
 
세상을 바꾼 위대한 종교개혁자 루터가 태어난 곳이 아이슬레벤(Eisleben)이다. 1483년 11월 10일, 루터가 태어난 생가는 현재 루터 박물관으로 사용되어 지고 있다. 이곳에는 독일성경, 종교개혁자들의 그림, 루터가 자필로 쓴 편지와 원고,, 루터를 표현하는 백조의 상, 여러 화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 성 베드로- 바울교회(St, Petri-Pauli Kirche)마르틴 루터는 그 시대의 관습에 따라 출생 다음날인 11월 11일 성 베드로- 바울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이 교회에는 루터가 유아세례를 받은 세례대가 원형으로 보존되어 있다.

* 성 안드레아스 교회 (St. Andreaskirche)

루터가 임종을 앞두고 2주전 마지막으로 4편의 설교를 했던 성 안드레아스 교회이다. 루터는 이 교회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 11:28)는 말씀을 전하던 중에 힘들어서 중단하고 내려왔다. 이 교회에서 발인예배가 있었다. 

 *루터 사가(Luther Sterbehaus)

성 안드레아스 교회 건너편에 루터 사가가 있다. 문 입구에는 “1546년 이곳에서 마르틴 루터가 서거하였다”고 적혀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1546년 2월 18일 새벽 2시경 63세의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쳤다. 결국 루터의 불꽃같은 삶이 멈추고 말았다. 더 이상 그의 뜨거웠던 심장은 뛰지 않았다. 루터는 주님의 품에 안기었다.

* 스토테른하임(Stotternheim)
▲ 벼락사건으로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한 루터 기념비     ⓒ뉴스파워 김현배
 

1505년 7월 2일 폭우가 쏟아지는 날, 마르틴 루터는 친구와 함께 스토테른하임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천둥 번개 속에서 루터 친구가 벼락에 맞아 즉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순간 두려움에 빠진 루터는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을 했다. 그 이후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으로 들어가 신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 위대한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1917년 높이 2m의 비석이 이곳에 세워졌다. “루터의 서원 기념비”에 새겨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Geweihte Erde (거룩한 땅)Wendepunkt der Reformation (종교개혁의 전환점)In einem Blitz vom Himmel wurde der junge Luther hier der Weg gewiesen (하늘에서 이곳에 떨어진 번개가 젊은 루터에게 그 길을 보여주었다)2. Juli. 1505 (1505년 7월 2일)Hilfe, Du Sankt Anna, ich will ein Monch werden(도우소서, 성 안나여, 내가 수도사가 되겠나이다)Ex Thuringia lux (튀링겐에서 빛이 발하다)

* 어거스틴 수도원 (Augustinerkloster)
스토테른하임에서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한 루터는 2주 지난 7월 17일에 성 어거스틴 수도원으로 들어왔다. 이 수도원은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아우구스티누스라고도 불리우는 성 어거스틴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세워졌다.

* 에르푸르트 대학 (Erfurt Universitat)
루터는 1501년에 에르푸르트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을 공부했으며, 수도사로 서원 후에는 신학을 공부해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392년에 문을 연 명문 인문대학교로서 독일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이 대학의 가장 유명한 학생은 마르틴 루터다.

* 에르푸르트 대성당/성 마리엔 돔(Marien Dom)
 이곳에서 수도사 과정을 마친 루터가 1507년 4월 4일 가톨릭 신부로 서품을 받았다. 루터는 사제 서품을 받은 후 5월 2일에 어거스틴 수도회 소속 교회에서 첫 미사를 집전하였다. 에르푸르트 돔이라 불리어지는 성 마리엔 돔(Marien Dom)은 1278년부터 1400년까지 120여년에 걸쳐 지어졌다. 대성당은 위엄있게 에르푸르트의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있는 뾰쪽한 첨탑을 자랑하는 독일 고딕 양식의 걸작품으로 에르푸르트의 랜드마크다. 

  * 바르트부르크 성의 루터 스투베(방)
목회자 일행은 에르푸르트 출발하여 곧 아이제나흐 바르크부르크 성에 도착했다. 1521년 보름스 제국의회에서 파문당한 루터는 신변의 위협이 많았지만 곧 선제후의 도움으로 바르트부르크 성 (Wartburg Schloss)에 10개월간 숨어 살게 되었다. 기사로 변장해 머리와 턱수염을 기른 루터는 헬라어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그 이후 루터의 성경 번역은 국가적으로나 영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루터가 성경을 번역할 때 마귀가 나타나자 잉크병을 던졌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지금 그 벽에서 잉크 자국을 볼 수는 없지만 잉크 자국이 묻은 벽을 뜯어간 흔적은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

EMI 목회자 일행은 아이제나흐 출발하여 저녁 늦게 드레스덴에 도착하여 석식 후 호텔에서 휴식을 취했다. 4월 8일(금) 오전 8시 30분, 경건주의 땅 헤룬후트를 향해 출발했다. 모라비안 형제들의 신앙과 삶의 흔적으로 가득한 헤룬후트(Herrunhut)는 경건주의 부흥이 일어난 곳이다. 목회다 탐방팀은 제일 먼저 모라비안 교회를 찾았다. 

 * 모라비안 교회 (Moravian Church)
진젠돌프와 모라비안 교도 후예들이 현재에도 예배드리는 곳이다. 이 교회는 소박하고 검소하다. 진젠돌프 후예들답다. 교회 밖에는 진젠돌프의 흉상이 있다. 이 교회 2층에는 진젠돌프와 모라비안 교도들과 관련된 전시물이 진열되어 있다. 진젠돌프 부부 사진과 그가 사용했던 물품들, 당시의 손때가 묻은 문서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당시 18세기 영국 부흥의 주역 존 웨슬리가 이곳을 방문했는데 진젠돌프와 존 웨슬리의 흉상을 볼 수 있다. 웨슬리는 모라비안들의 신앙에 많은 감동을 받았으며 회심에 이르는 계기가 되었다.

*모라비안 묘지 (Gottesacker)

‘하나님의 동산’이라는 뜻을 가진 이 묘지는 과거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곳에 정착했다가 죽은 모라비안 교도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묘지 입구 위에는 “예수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오른쪽에는 “형제 교회의 묘지, 1730년에 세워지다. 묘석에 기록된 약 6,000여개의 출생지들이 형제 교회의 확산을 잘 보여준다”고 쓰여졌다. 중앙 길가에는 높은 무덤들을 볼 수 있는데 진젠돌프와 아내 및 가족의 무덤이 있다. 후기 경건주의를 리드했던 진젠돌프는 외할머니의 경건주의적인 삶과 할레에서의 프랑케 목사의 영향을 받았다.

* 후트버그 기도탑
▲ 모라비안교도들과 경건주의자들이 100년간 기도했던 후크버그 기도탑     ⓒ뉴스파워 김현배
 
무덤 위에 둥근 탑이 보인다. 진젠돌프와 모라비안 교도들은 둥근 탑에 올라 그 땅들을 놓고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했다. 오늘날 체코에 해당하는 모라비아 지방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곳으로 온 모라비안들은 조국에서 핍박받는 자들을 위해서, 독일인들은 생명력을 잃어가는 독일 교회를 위해 기도했다.

문서에 따르면 둥근 탑과 교회 등 여러 곳에서 모라비안 교도들은 세계 선교를 위해 릴레이 중보기도를 무려 100년간이나 했다. 그들은 기도에 열심이었다. 이런 믿음의 선진들의 발자취를 더듬을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우리 목회자 일행은 모라비안 교회 안에서 경건주의 영성이 우리들에게도 회복될 수 있도록 다함께 기도했다. 그 후 후트버그 기도 탑에 올랐을 때 둥근 탑 주위로 흩어져서 한국과 미국, 유럽 여러 나라들을 위해 통성기도 했다. 그 후에 단체사진 촬영했다.

* 진젠돌프의 성 (Schloss Zinzendorf)
진젠돌프 백작이 거하던 성이요, 18세기 모라비안 교도들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던 부흥의 현장이다. 현관 중앙에는 1721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데, 이는 진젠돌프가 회심하고 이 성을 구입하여 모라비안 모임을 조직한 그 해라고 할 수 있다. 진젠돌프 성 안에 채플이 있는데, 이곳은 세미나와 기도회를 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가난하고 연약한 모라비안 교도들과 기도회와 말씀을 나누다가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진젠돌프 성 현관 좌 우 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씌어 있다. (왼쪽) Hier ubernachten wir als Gaste, drum ist dies Haus nicht schon und feste. 이 집은 좋지도 견고하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나그네로 밤을 보내었다(슥 9:12)(오른쪽) So recht, wir haben noch ein Haus im Himmel, das sieht anders aus. 실제로 우리는 하늘에 있는 진정한 집이 있으니, 어찌 이것과 비교할 수 있으랴(고후 5:1-2)

루터의 종교개혁과 진젤돌프의 경건주의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

16세기 루터와 종교개혁은 교리의 재발견이었다. 루터의 손에는 항상 성경이 있었고, 멜란히톤의 손에는 항상 교리, 신조가 있었다. 그들은 말씀과 교리를 붙잡았으며 신앙고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18세기의 이성주의와 합리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생명력을 잃어가게 되었다. 이때 실천적인 삶과 성령의 체험을 강조한 경건주의자들이 등장하게 된다. 그들로 인해 정통교리에서 정통실천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경건주의자들은 진리를 삶으로 실천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생명력과 뜨거움, 삶의 실천이 있었다. 끊임없이 열정적으로 기도하면서 세계선교에도 힘썼다. 모라비안 교도들이나 경건주의자들이 없었더라면 현대 교회사는 크게 변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경건주의 삶과 영성은 희미해져 가고 있다. 이유는 말씀과 교리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교회사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우리들이 말씀과 교리만 강조하다보면 지성주의 혹은 죽은 정통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성령과 경험과 실천적인 경건의 삶만 강조하다보면 신비적 영성주의로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은 반드시 ‘말씀과 성령’, ‘교리와 삶’을 함께 붙잡아야 한다. 교회사는 둘 다 중요함을 교훈하고 있다.

우리들은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해야 하며 신학적 균형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2013년도에는 칼빈과 위그노의 현장을, 2014년도에는 중세 왈도파들의 영성 현장을, 2015년에는 사도바울의 선교여행 지역을 탐방하면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

2016년에는 베를린 통일 현장과 종교개혁자 루터의 유적지와 진젤돌프의 경건주의 땅을 탐방하면서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다. 금년에도 5박 6일 동안 귀한 강사님들의 주옥같은 말씀 선포와 교회사 유적지 탐방을 통하여 큰 은혜와 도전을 받았다.

 2017년  몰타에서 또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면서 서로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목회자 일행은 9일(토) 오전에 베를린 공항에서 각자의 사역지로 떠났다.


정리 : 김현배 목사 (베를린 비전교회, 뉴스파워 유럽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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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4/15 [19:24]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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