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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2.17 [17:04]
종교개혁과 한국교회 개혁의 과제들
정일웅 교수(한복협중앙위원, 총신대학교 직전 총장) 발표문
 
정일웅










[서언]
이른 아침시간에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또한 초대해 주신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 감사드립니다.

1. 종교개혁의 역사적 의의는 무엇인가?
우리 모두 잘 아는 대로, 루터에 의하여 시작된 종교개혁은 성경에 근거하여 중세 로마가톨릭교회가 왜곡시켰던 구원의 진리를 비롯하여, 잘못된 신앙(구원)의 가르침을 바로 잡고, 올바른 신앙적 삶이 이루어지도록 교회개혁을 단행하였던 역사적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종교개혁의 역사적인 전통과 신앙정신을 따르는 프로테스탄트교회의 후예들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집니다. 되돌아보면, 종교개혁이 그 시대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루터의 탁월한 종교개혁의지와 지도력에 있기도 했지만, 성경에 근거한 깊은 신학적인 통찰이 더 중요했던 것으로 이해합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내 걸었던 95개 조항의 반박문과 그 모든 것을 뒷받침한 4가지 신학적인 명제(오직믿음, 오직성경, 오직은혜, 만인제사장)는 오늘우리가 다시 음미하고, 교훈을 받아야 할 종교개혁의 역사적 근거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경진리에 근거하여 왜곡된 기독교신앙의 가르침을 바로잡아 준 종교개혁은 그 당시 유럽사회로부터 불신 받던 그리스도의 교회를 다시 새롭게 할 수 있었고, 많은 추종자들을 얻어 오늘에 프로테스탄트교회 역사를 이어가게 된 것으로 이해합니다.

2. 그러면 오늘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개혁되어야 할 과제들은 과연 무엇이 어야 할까요? [현재 한국교회의 정황이해] 오늘에 이르러 왜 한국교회가 이전보다 복음전하기가 더 힘들어지고, 수적인 성장이 후퇴되고 있는지? 왜 안티기독교세력이 우리사회에 돌출하여 지금 한국기독교를 ‘개독교’라고까지 비난하며, 평지풍파를 일으키는지? 왜 한국교회와 지도자들이 우리사회로부터 이토록 강한 불신을 받게 되었는지? 지금도 한국교회 내에 약100만에 가까운 ‘가나안’성도들이 생겨날 뿐 아니라, 많은 개신교신자(약 200만 추정)가 가톨릭으로 개종한다는 소식이 들리게 되는지? 그 정황과 이유를 정확히 살펴야 할 것입니다. 지난 8월 프로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다녀간 후,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여전히 천주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교로 천주교신부들은 가장 신뢰와 존경받는 종교지도자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뉴스였습니다.
그러면 한국교회가 고쳐야 할 실제적인 개혁의 과제들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필자는 대체로 6가지를 제언해 조심스럽게 보려고 준비했습니다.

첫째로, ‘이신칭의’의 올바른 이해와 부정적인 사회적가치관에 사로잡혀 행동하는 우리의 모습을 개혁해야 할 것입니다. 부정적인 가치관은 경쟁하는 삶의 방식과 실적위주로 사람을 평가하는 가치관(방식)입니다. 그 때문에 목적성취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모습이 지금 한국교회와 우리 지도자들의 모습으로 비난받고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 한국교회와 지도자들의 이기적인 인간성이 문제입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교회정치권력잡기에 미쳐 있는 소위 한국교회교권주의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정치방법보다도 더 부패해 있는 모습이 바로 교회정치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삶의 태도가 지금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서 심각하게 표출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속화된 한국교회의 모습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것이 개혁되어야 할 첫 번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러한 부정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힌 신앙태도를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참 복음적인 가치, 즉 정직하고, 청렴하고, 양보하고, 섬기는 인간성으로 재무장된 기독인의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신칭의의 왜곡된 가르침을 보완수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원래 루터의 ‘이신칭의는 가톨릭교회가 인간의 선행을 구원의 전제조건으로 내 세우는 그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 강조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구원이 전제조건이지, 선행이 아님을 ’이신칭의‘로 대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이신칭의만 강조하고, 믿음의 열매로서 동반해야 할 선행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국교회는 믿음 좋은 것만 강조하고, 실제로 이웃과 사회를 향하여 섬기고 봉사해야 하는 선행을 강조하지 않아, 값싼 은혜만을 전파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신칭의는 믿음의 열매로써 선행이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행동하는 믿음(마7:20-23/25:31-46)임을 새롭게 깨우치고 바로 잡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교회의 수적성장을 위한 목회관은 솔직히 포기되어야 할 두 번째 개혁의 과제입니다. 생각하면 복음전파는 교회에 부여된 최대의 사명이요, 과제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수적성장을 목표하는 목회관은 목회자개인적인 비전이지,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60년대부터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가 추진되는 동안에 한국교회는 복음전도에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80년대 말초까지, 놀라운 성수적장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목회자들은 수적성장에 현혹되어 교회끼리, 교단끼리, 같은 교단 내에서도 지역 교회들이 서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대형교회들은 교회버스를 동원하여 소형교회 앞을 매주일 휩쓸고 지나가지 않습니까? 생각하면 이런 수적성장론에 불을 부친인물들이 소위 교회성장학의 대가로 불리는 미국의 맥가브란과 와그너교수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들의 성장론이 모두 자본주의적인 가치관과 경영마인드와 결탁된 이론으로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도전략과 목회전략기술론으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들 이론의 적용으로 한국교회는 전 세계기독교에 자랑할 만한 대형교회들을 만들게 되었고, 수적성장에 몰입하는 목회사역을 합리화시켰던 것입니다. 문제는 언제까지 한국교회가 이러한 수적성장론에 빠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적 목회를 해야 하는 지가 질문입니다. 그 대답이 90년대 후반부터 전도하기가 이전처럼 쉽지 않다는 목회자들의 고백에 나타났으며, 2005년에 이르러 정부통계청발표에서 성장후퇴(마이너스 성장)의 증거가 제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80년대 초반기에 구원은 개인의 영적이며 질적인 인간성변화에 있음을 깨닫고, ‘평신도를 깨운다’는 슬로건과 함께 제자훈련프로그램이 한 목회자에 의하여 제시되어, 목회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교회자체도 세계적인 대형교회로 발전하였고, 오늘날엔 많은 문제에 휩싸여 있지 않습니까? 깊이 들여다보면, 수적성장을 지향하는 교회성장론은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 물량주의적인 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가치관에서 생겨난 산물입니다. 이러한 가치관에 대한 비판적인 통찰력을 신학적으로 상실한 한국교회 지도자와 우리는 실적위주로 인간을 평가하는 가치관에 사로잡혔고, 성공적인 목회로 인정받으려는 갈등의 목회철학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의 한국교회와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사회로부터 공신력은 상실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개혁의 두 번째 과제는 모든 목회자들이 성장제일주의 목회관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변화된 질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목회관으로 방향전환을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목회자들은 지나친 소유욕에서 해방되어, 교회의 공공성과 공동체성을 회복시켜야 하는 과제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입니다. 그런 면에서 평신도와 성직자는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요, 몸이며, 성도들은 그 몸에 속한 지체의 관계로 구성된 유기적 생명체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성령의 은혜아래서 교제를 나누는 은혜공동체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이며, 그러한 삼위일체하나님만을 섬기고 경배하는 예배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도의 교회는 친목단체가 아니며, 개인의 유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조직된 주식회사와 같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교회공동체성과 공공성이 한국교회에서는 지금 무너져 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한국교회는 설립자, 또는 재정을 많이 출자한 사람에 의하여 좌지우지되는 사적소유물로 전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시 후임목회자 선출에서도 목회직을 청빙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선출하지 않고, 야합하고 결탁하여 목회자의 친인척 자녀에게로 넘기는 잘못된 경향에 빠져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목회자들이 지나친 소유욕 때문에 생겨나는 부작용이며, 다분히 교회의 공동체성과 공공성을 상실한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 때문에 많은 성도들은 지도자의 그 행동에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게 되며, 결국 한국교회의 복음전도는 한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자본주의적인 소유욕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이 주인임을 인정하고 그분만을 겸손히 섬기는 주님의 교회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만인제사장원리와 성직자의 축복권의 남용이 극복되어야 합니다. 루터가 천명했던 만인제사장의 원리는 계급적으로 이해하는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의 직분왜곡을 바로 잡아 준 것입니다. 특히 제사장으로서 성직자신분의 계급화와 특권화를 반대한 것입니다. 루터의 의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떤 중보자도 없으며, 모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직접 기도하며, 예배할 수 있음을 천명한 것입니다(벧2:9). 그런데 한국교회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가 여전히 계급적인 관계로 오해될 만큼 남용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목회자들의 리더십이 여전히 명령하며, 군림하는 세상의 권세자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사와 평신도 (장로)사이가 화목하지 못하며 많은 갈등으로 공동체의 화목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직자의 축복권이 남용되는 것을 봅니다. 물론 목사는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고, 성례거 행의 직무가 부여되었고, 성도들의 영적인 삶을 돌보고, 그들의 안녕을 위하여 축복할 권리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축복사역에 감사하여 목사를 기꺼이 대접할 수 있으나, 축복을 빙자하여 물질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며, 길흉화복을 점쳐주고 대가를 요 구하는 그 축복행위는 무속자의 행위로 간주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직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집니다. 물론 교회 내의 직분은 각자 믿음의 분량에 따라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세우신 것이기에 성직자와 평신도의 직분은 구분됩니다. 하지만 직분의 대의(大義)는 교회 안에 여러 직분을 주신 것은 오직 살아계신 한분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이지, 결코 교회내의 그 어떤 상위 직분을 섬기기 위하여 다양한 직분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직자나, 평신도나, 하나님의 백성이란 관점에서는 동등하며, 직분의 관계에서만 구분되는 것임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직분이해와 축복권사용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한국교회는 예배와 예전의 개혁을 단행해야 합니다. 원래 루터는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되고, 올바른 성례가 시행되도록 예배와 예전의 개혁을 실천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올바른 복음의 설교와 성례가 함께 이루어지게 한 개혁이 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종교개혁자들은 통일성을 견지하지 못한 채, 서로 다른 예전의 전통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의 예배와 예전은 종교개혁의 역사적인 전통에서 너무 멀어진 모습 같습니다. 그래도 설교의 전통은 지켜지는 것 같아 다행이기는 하지만, 설교도 내용의 빈약성으로 위기에 처한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회중의 감성자극과 감동에 집중된 한국교회의 예배는 하나님 중심의 예배모습보다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쇼 공연 같은 인간중심의 예배 모습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멀티미디어와 음악적 도구사용과 찬송 부르기는 참여한 청중의 감성을 자극하고, 많은 감동을 예배분위기로 느끼도록 조장하는 사람중심의 예배로 전락된 모습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새로운 세대를 붙들기 위한 현대교회의 불가피한 선교전략과 방법론으로 주장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교회의 수적성장론의 꿈 실현과 무관하지 않으며, 회중을 지나치게 감성에 도취되게 하는 매카니즘적인 예배스타일은 말씀의 묵상으로 인한 진리분별력과 행동 결단력 배려로 극복되어야 할 개혁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예전신학의 문제는 성찬의 나눔에서 경험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의 영적임재에 대한 신비로운 은혜체험을 음악을 통한 악기연주와 찬송 많이 부르기를 통하여 대체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찬송리더가 회중의 찬송행위에서 주님임재를 느끼도록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성찬의 의의와 의미를 망각한 심각한 왜곡이며,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예전개혁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여섯째로, 한국교회는 진보와 보수가 연대(연합)하여, 기독교신앙의 가르침의 표준과 통일성을 새롭게 창출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혼란은 여러 분열된 다양한 교파로 인하여, 성경이해와 기독교신앙의 가르침이 다양해져, 신앙적인 가르침의 표준을 잃어버리고 통일성을 견지하지 못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리의 다양성과 다원주의로 고착화되면, 이단적 가르침과 사이비적인 가르침의 횡포를 막지 못하고, 한국교회는 더욱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이러한 혼란의 극복은 한국교회가 서로 연대해서 해결해야 할 긴급한 과제입니다. 연합은 하나의 체제에로 통합이 아니라, 다체제 안에서 복음사역의 더 큰 일을 위한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연합은 사회적 역할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대사회, 대정부, 대북한선교, 대 국제 관계에서 한국교회의 통일된 표준적인 가르침의 입장을 통하여 사회적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러한 역할은 국론의 분열을 극복하고, 안정된 사회를 견지하는 일에 요구되는 소위 종교의 사회적 역할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설립된 기존의 연합기구들(한기총, 한교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은 한국교회와 사회로부터 공신력을 잃고 있으며, 올바른 역할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이제 새 로운 연합기구로 탄생하던지, 기존기구를 개혁하던지? 어쨌든 한국교회는 가르침의 통일성과 표준을 만들어 사회적 역할감당은 물론 다시금 신뢰받는 한국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결어]
한국교회는 지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음이 분명합니다. 참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수명을 다한 종교집단으로 전락될지도 모릅니다. 진리를 왜곡하고, 신적권위를 실추시키며, 거룩성을 상실하게 한, 우리 지도자들에게서 크게 실망한 한국교회 성도들이, 어떤 이들은 가톨릭으로, 어떤 이들은 안티기독교의 모습으로, 어떤 이들은 가나안 성도의 모습으로,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인지하고, 하루빨리 세속화된 한국교회가 왜곡에서 돌이킬 뿐 아니라, 비 신앙적인 모습과 태도에서 돌이켜, 복음의 진리에로, 성경말씀과 주님께로 돌아오는 회개의 역사가 있어나도록 개혁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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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10/13 [06:49]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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