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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1.16 [05:02]
용서해야 내 안의 모든 독(毒)이 빠진다
김석원의 기도의 신학(8)
 
김석원
NO 8 다섯째간구-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태복음6:12) 용서해야 내속에 있는 모든 독(毒)이 빠집니다. 성경:마6:14-15
 
1999년 7월 4일이었습니다. 그날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었습니다. 또한 주일날이기도 했습니다. 윤원준이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당시 인디애나 주립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던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평소와 같이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불루밍턴에 있는 한인 교회로 갔습니다. 교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교회로 들어가는 도중이었습니다. 그는 난데없이 날아온 총탄에 맞아서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었습니다. 벤자민 스미스라는 백인 우월주의자가 무차별로 난사한 총에 맞은 것입니다.
 
그로부터 몇 일 뒤 그의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는 당시 미국의 법무장관을 비롯해서 약 1500명의 조객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장례식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그의 사촌형이었던 박승호 목사님이 유족들을 대표해서 조객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때 그의 인사말을 들었던 어떤 사람은 이러한 표현을 했습니다.
 
저는 10년 전 그때의 일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 합니다 "저는 제 몸이 감전된 것처럼 온 몸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의 인사말은 이러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분명하고도 큰 소리로 말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는 벤자민 스미스를 용서하며, 미국을 용서하겠다는 그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 우리 가족을 대표해서 내 사촌 동생을 죽인 벤자민 스미스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합니다. 아울러 내 형제의 꿈을 빼앗아가고 그의 피를 흘리게 한 이 미국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 가족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벤자민 스미스와 미국을 용서합니다."
 
그의 인사말을 들은 조객들은 모두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어 눈시울을 붉히면서 흐느껴 울었습니다. 흔히들 우리 기독교를 가리켜서 사랑의 종교라고 부릅니다.
 
사랑의 뿌리가 무엇입니까? 용서입니다. 용서 없는 사랑은 결코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의롭다하신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나와 너와의 관계 속에서 용서하지 못해서 풀지 못하고 맺혀서 마음 아파하며 괴로워하는 것이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다 풀어버리고 마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기도를 가르쳐 주시고 난 뒤에, 오늘 본문에서 용서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기도에 관한 가르치심을 끝맺으셨습니다.
 
이미 우리가 살펴본 바대로 주기도문 안에는 모두 6개의 간구가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다섯 번째 간구가 무엇이었습니까?
 
12절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용서에 관한 간구 입니다. 6개의 간구 가운데서 예수님이 보충적으로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신 것은 다섯 번째 간구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용서가 우리에게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기도에 관한 가르치심을 용서에 대한 말씀으로 마무리 하셨겠습니까? 우리의 용서가 우리의 기도 생활에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체험적으로도 얼마든지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고, 우리의 마음에 미움의 쓴 뿌리를 계속해서 간직하고 있으면 우리의 마음이 결코 평안할 수 없습니다.   
 
전체 적인 신앙 생활도 기도 생활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제대로 기도생활을 못하는데,어떻게 기도의 응답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 받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기도 생활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도 용서하는 일이 먼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하면서, 용서하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왜 용서 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1. 서로 용서하면 용서받고,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14-15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예수님은 똑같은 내용을 14절에서는 긍정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15절에서는 부정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용서하면 용서받고,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옛날 어떤 나라의 왕궁에 사람들을 웃기면서 즐겁게 하는 어릿광대가 있었습니다. 그는 늘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행동으로 왕과 신하들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어릿광대가 공놀이를 하다가 그만 실수로 왕이 가장 아끼는 도자기를 깨뜨려버렸습니다. 왕은 그의 경솔한 행동에 너무나도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왕은 자기도 모르게 그 어릿광대를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잠시 후 왕은 마음에 진정을 찾고나자 자기의 명령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왕으로서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그 명령을 다시금 돌이키는 것은 왕의 권위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곰곰이 생각하던 나머지 그를 사형에 처하기는 하지만,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줌으로서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로 했습니다. 어릿광대는 왕 앞에 섰습니다. 왕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너의 마지막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 그러니 네가 죽을 방법을 스스로 선택해서 내게 말하도록 하라. 자, 지금 해가 중천에 떠 있다. 해가 서산에 질 때까지 잘 생각해서, 네가 죽을 방법을 내게 말하도록 하라. 알겠느냐?"
 
어릿광대는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것을 초조하게 지켜보면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드디어 해가 서산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어릿광대는 다시금 왕 앞에 섰습니다.
왕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 이제 죽을 각오가 되어 있겠지? 그래 어디 죽을 방법을 말해보아라." 그때 어릿광대는 만면에 미소를 띄면서 태연한 모습으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폐하,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저는 폐하의 은혜로 제가 죽을 가장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저는 늙어서 죽는 방법을 택하겠습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대답입니까? 물론 왕은 약속대로 그를 살려주었습니다. 그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만일 그 어릿광대가 왕에게 불평을 말했다든지, 원망을 했다든지, 또는 살겠다고 도망을 쳐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는 왕의 노여움을 사서 필시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릿광대는 자기를 살리고, 자기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오직 왕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이 시키는 대로, 왕의 말대로 해서 왕의 용서함을 받고 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왕의 왕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서로 용서하면 용서받을 수 있고, 용서하지 못하면 용서받지 못하리라."는 말씀입니다.
 
2. 용서하지 않으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닮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서로 닮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면서 사는 부부는 얼굴이 닮습니다. 싸우면서 살아도 서로 닮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용서 하지 않고 자나 깨나 용서 할 수 없다는 그 사람을 생각하고 미워하면 가장 싫어하는 그 사람의 얼굴을 닮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은 예쁘게 닮고 미워하는 사람은 못쓰게 닮습니다.
 
어느날 한 자매님 의 간증입니다.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 어린시절 저는 아들은 사랑하고 딸은 미워하는 풍토 속에서 자랐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제가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늘 저에게 욕을 하고 구박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저는 너무 싫고 미웠습니다.   
 
저는 그때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절대로 엄마와 같이 하지 않으리라'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보니 저도 제 어머니와 똑같이 아들은 예뻐하고 딸은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여자니까 때리더라도 아들을 때리고 딸은 예뻐해야 할텐데 거꾸로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미워하면 닮는다.'는 것을 제 친정 어머니를 미워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머니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로부터 딸만 낳는다고 구박을 당했기 때문에 그 한풀이로 나를 구박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어머니를 용서하게 되었고 내 마음의 상처도 치유받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은연중에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고 '내가 왜 이럴까' 라는 생각을 갖는다면 내 속에 용서하지 못한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은 곧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둘째: 어떻게 용서 할 수 있습니까?
 
1-1.용서를 매일 생활화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용서는 하나님의 명령이십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해 주신 것 같이 우리는 서로 인자하게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를 생활화해야 되는 것입니다. 용서를 생활화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의 방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예수님의 방식대로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예수님의 방식대로 용서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죄인된 우리의 힘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으로(주님이 내 삶의 주인) 성령 충만 하여야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고 살아야 됩니다. 지난 번에 말씀 드린 주기도문의 기도는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했습니다.
 
매일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한 다음, 곧바로 죄의 용서에 대해서 기도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매일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것 처럼 매일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매일 용서를 구하고 , 매일 용서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밥을 반복해서 먹듯이 우리는 ‘일용할 용서’를 해야 합니다. 여기서 날마다 매일 용서하는 죄는 본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본질적인 죄 문제는 이미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위해서 십자가를 지셔서 우리의 모든 죄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문제가 해결되어도 여전히 죄 문제는 우리의 일상의 문제입니다. 용서는 화해를 가져오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용서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남녀가 사랑해서 결혼하면 부부가 됩니다. 그런데 결혼 생활에서 갈등이 없으리라는 것은 착각입니다. 결혼 생활은 매일의 갈등을 극복하는 삶입니다. 사랑은 감정만이 아닙니다. 사랑은 감정 이상입니다. 감정이 식어도 결혼은 지속됩니다. 계속해서 갈등이 생긴다면 계속해서 용서하고 화해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남편이 또는 아내가 굉장해서 함께 사는 줄 아십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서로 참아주고, 인내하고, 용서해 주고, 이해해 주는 과정이 아닙니까?내 아내는 내가 완벽해서 나와 평화롭게 사는 것이 아니라, 참아주고, 인내하고, 용서해주고 이해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그날 분량의 양식을 먹어야 살듯이 그날 분량의 용서를 해주며 살아야 합니다. 일용할 용서는 일용할 화해, 일용할 평화의 조건입니다.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용서는 하루의 삶에 필요한 화해와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일용할 용서’에는 ‘매일 받아야 할 용서’와 ‘매일 베풀어야 할 용서’가 있습니다.
 
‘일용할 용서’는 ‘내가 용서 받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용서해 주어야 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 합니다
 
에베소서 4:26-2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했습니다. 바울은 분노의 정도의 한계와 시간의 한계를 정했습니다.
 
매일 매일 분을 품고 잠자리에 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용서 하지 못하고 복수의 괴로움으로 밤의 잠자리를 뒤척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분노와 미움은 우리 영혼의 독입니다. 우리는 이 독을 품고 있지 말고 빨리 내어버려야 합니다. 독(毒)을 가지고 잠자리에 드는 사람은 그 독이 다 퍼져서 영혼을 삼켜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노를 다음 날로 넘기지 말고 그 날 해야 할 용서를 그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용할 용서”(하루 양식을 구하듯 하루의 존재에 필요한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2-2 어떻게 용서할 수 있습니까?
용서해야 될 사람을 항상 밉게 보지말고, 항상 곱게 보아주면 됩니다. 이것을 용서와 관용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가장 신실하게 사는 사람의 태도와 용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보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용서와 관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이 있는 사람, 은혜와 은총을 경험한 사람에게서 만이 나올 수 있는 태도가 "관용"입니다. 어떤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예배 때 마다 핸드폰 소리 때문에 항상 잔소리를 해 대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설교를 한창 열심히 하고 계시는데, 또... "삐리리 하고 핸드폰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울리는데 아무도 받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신자 모두는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도 열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핸드폰은 바로 목사님 주머니 속에서 울리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으신 것입니다.   
 
목사님의 그 다음 코멘트에 신자들은 모두가 뒤집어졌습니다. 핸드폰 폴더를 열고, 목사님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하나님이세요? 제가 지금 예배중이거든요.. 예배 끝나는 대로 바로 하늘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예배시간에 핸드폰이 울리지 않도록 충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한 사람을 정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똑같은 실수를 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이 동일합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는 보이고, 단지 나의 실수는 보지 못할 뿐입니다.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보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용서와 관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이 있는 사람, 은혜와 은총을 경험한 사람에게서 만이 나올 수 있는 태도가 "관용"을 통한 용서입니다.
 
영향력 있는 리더의 가장 큰 덕목 중에 하나는 바로 "관용"입니다. '죄'를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인간의 약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픔'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하는 사람을 품어 주는 것입니다.
 
요셉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형들에 의해서 애굽에 종으로 팔렸습니다.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결코 형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곱게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5:5 "당신들이 나를 애굽에 종으로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들 앞서 나를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생각하면서 형들을 기꺼이 관용으로 용서해 주었습니다. 형들을 밉게 보지않고 곱게 보아주었습니다.
 
여러분! 누가 우리에게 피해를 주었습니까? 그것 때문에 우리가 망했습니까?
오히려 어떻게 생각하면 그 사람 때문에 내가 더욱더 겸손해 지고,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더욱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우리를 겸손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정신을 차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계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그 사람을 밉게 보지말고 곱게 보아주어야 할 것입니다. 
   
2-3 어떻게 용서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통하여 용서하는 삶을 훈련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의 비결은 “하,하,하,하나님 탱큐”을 고백하고 그 표징을 체험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기쁨, 기도, 감사 이 세가지 원칙은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용서의 복음”을 위해 전 일생을 걸 수 있었던 삶의 비밀이었습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뜻이고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 하라” 라고 가르쳐 주신 기도이면서도 너희는 “이렇게 살아라”라고 가르치신 기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마태복음 6:14-15)
 
“용서의 복음”을 실천 할 수 있는 세가지 비결 기쁨, 기도, 감사를 통해 용서하는 삶을 훈련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 항상 기뻐하라 말씀 처럼 용서 할때 기쁨으로 용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죄인을 용서하시는 것은 창조주의 기쁨이 십니다. 죄인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때 기쁨의 성령충만한 열매를 얻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7 쉬지말고 기도하라 말씀 했습니다. 이말씀 처럼 용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용서를 위한 최대의 무기입니다. 회개의 기도는 죄 용서를 받습니다.서로 죄 용서를 위해 하는 기도가 필요 합니다..(그러나 은밀한 죄는 하나님께만 용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 범사에 감사 하라 말씀 했습니다. 감사는 죄 용서 받은 후에 가지는 인생 최고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죄 용서 후에 병자를 고치셨고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실천 하셨다.
 
천국 하나님의 나라에서 최대의 감사는 예수님을 통하여 죄 용서 받은자 로서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될 것을 믿습니다. 하하하 하나님 탱큐.
 
어떻게 용서를 구해야 합니까?

2-4 용서를 구할때 우리의 언어의 빛 가운데서 숨김 없는 정직함으로 해야 합니다.용서를 구할 때 우리는 언어 까지도 성령님께서 주장 하시도록 그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용서를 구할 때 “어쩌면 제게 잘못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제게 잘못이 있다면.... ” 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못합니다.
이런 것은 넉두리를 늘어 놓는 것과 같습니다.(성령님이 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가령 “아 그래요 뭐 별거 아닌것 가지고 그러십니까? 혹은 “저도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되었네요” 뭐 그렇다면 안됐습니다.혹은 “그런것 가지고 별 걱정 다 하십니다.
너무 염려 마십시오. 제가 다 알아서 처리 하겠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고백으로 죄를 가볍게 하거나 상대방을 무색하게하고 황당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있어요. 우리들의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요,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꼭 그런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잘못한건 사실이지만요 당신도(이런, 저런) 잘못을 조금 한 것은 아닙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말입니다.”
 
그래서 진짜 잘못은 다 인정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도 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알게 하려고 합니다.
 
또 있어요. 제가 왜 그렇게 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당신도 저와 같은 입장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저와 같은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별로 큰 잘못을 범하지 않은 것이 다행입니다. 그냥 신경쓰지 마세요. 이런 태도는 상대방이 그 일에 마음에 두고 있는지 아니든지 상관없다는 말투인 것입니다.
 
성령님께 의지해서 정직한 태도로 우리의 언어를 사용 했을때 용서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가시 돋인 용서도 있는데 그것도 용서가 아닙니다. 가령 예를 들면 아무개가 권하니까 일단 용서는 하지만 당신은 나에게 준 상처는 결코 잊지 못할 꺼야? 라는 식의 용서입니다.  
 
꼬리만 남겨두는 용서도 용서가 아닙니다. 과거에는 미친개는 끌어다가 산채로 땅에 묻었다고 합니다. 버림받고 ,제 구실을 못 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개를 묻을 바에는 완전히 묻어 버려야지 땅위에 꼬리만 남겨둘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타인의 죄를 용서 한후 완전히 잊어 버려야지 일부분 꼬리만 남겨두듯이 해서는 안 됩니다.
 
잊어버리지 않는 용서의 꼬리들이 이곳 저곳에서 흉한 모습을 그러내는 현장은 사라져야 합니다. 
셋째: 용서하면 축복이 있습니다. 많은 축복이 있습니다.(한가지)
 
1. 용서할 때 내 속에 있는 모든 독이 완전히 빠지게 됩니다.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마음이 평화로워지므로 내 육체가 건강해지고 삶 전체가 활력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용서하면 건강해집니다. 모든 건강은 상처의 치유로 이루어집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병이 깊어집니다.
 
정신과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절반 정도는 그들이 진정으로 용서하고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면 퇴원할 수 있는 환자들이라는 임상보고가 나왔습니다. 절반 정도의 정신병 환자들이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또 용서받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용서를 받고 그 용서 속에서 자기의 잘못조차 용서하게 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기독교 잡지에 기록된 상담기사입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한 미국인 자매가 암 선고를 받고나서, 자기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가서 상담한 내용입니다. 이 자매는 암이라는 질병보다 자기에게 더 커다란 두려움을 주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가슴이 답답하다는 사실을 목사님께 털어놓았습니다. 그 자매는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답답증을 느끼면서 그때까지 지내왔던 것입니다. 목사님은 이 자매와 상담을 하는 가운데 그녀가 지난 20여 년 동안 울어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는 중에 목사님은, 그녀가 어렸을 때 양부에 의해 성적인 학대를 받으며 자라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양부에 대한 증오를 품고 냉소적인 자세로 삶을 살아 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이 자매와 자백의 중요성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일서1장 9절에 나타난 자백의 치유 능력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이 자매는 목사님과 함께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자매는 생애 처음으로 자기의 마음 깊은곳에 묻혀 있었던 쓴 뿌리(양부를 향한 원망과 증오의 감정)의 독을 하나님앞에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순간 20년 만에 처음으로 이 자매는 소리를 내어 엉엉 울어대기 시작 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자매가 이렇게 기도를 마친 후로 그녀의 육체를 괴롭히고 있었던 암 세포가 깨끗하게 제거되었다는 것입니다.
 
암이 치유된 것에 대한 의학적인 설명을 할 능력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독버섯 같은 용서하지 못한 쓴 뿌리는 우리의 정서적인 영역뿐 아니라 육체적인 영역에까지도 큰 손실을 입힐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용서할 때 내 속에 있는 모든 독이 완전히 빠지게 됩니다. 건강의 기적을 체험하려면 용서를 실천 합시다. 결론: 스펄젼 목사는 "만약 주기도를 고백하고도 죄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마치 그때마다 사형 판결문을 다시 낭독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계속 이런 기도를 드린다면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 것 같이 나도 용서받지 못하고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기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이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주기도를 할 때 이 부분을 빼고 넘어가야 합니다. 땅에서 용서 할 수 없는자를 위해 십자가상에서 용서를 구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아 하나님의 뜻인 용서의 삶을 훈련합시다.
 
이 자리에 계신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구주로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죽으면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을 믿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 다면 나도 용서받지 못하고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용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죄 용서가 필요한 땅에서 하나님나라 백성의 천국의 삶을 누릴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하여 날마다 용서를 구하고 실천 할 수 있는 삶을 통해 눈감고 기도 하는 기도도 중요하지만 주기도문의 삶이 실천 되어 날마다 기적을 이루는 삶이 되시길 원합니다.  
 
▲ 김석원 목사가 쓴 <주기도문은 내 삶의 축복이다>     ⓒ뉴스파워
 
*김석원 목사는 부산 고신대와 총신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충현교회 전도사, 강도사, 부목사(1981년까지)를 역임하였다. 1981년 도미하여 Heritage College(교육학 석사 및 박사)와 Luther Rice Seminary(목회학 박사)를 졸업하고, Westminster Seminary(목회학 박사과정)을 이수하였다. 현재는 T.O.I(CCC 국제본부 신학대학원) 교수 및 한국부 책임자(Director of Korean Program)로 일하면서 올랜도 충현장로교회 담임목사를 맡아 사역하고 있으며, 또한 김치(KIMCHE) 선교회와  국제기도공동체를 설립하여 디렉터로 사역하고 있다. 저서로는 '기도의 신학'(주기도문 강해)과 번역서로 '부부위기관리'(CCC 창설자 빌 브라잇 박사), '전도를 위한 조직'(레리 루이스 SBC 총재), '1달러의 기적 플러스, 플러스', '주기도문은 내 삶의 축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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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10/02 [09:0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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