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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12.05 [21:34]
노고단에 풍토병 피할 건물 마련 
유진벨 선교사 사위 윌리엄 리튼 선교사의 노력
 
강경구
청일전쟁후 지금의 센카쿠(조어도)가 일본에 넘어갔다.
▲ 1900년대 암울한 한반도     © 강경구
1900년, 그토록 갈망하던 새로운 세기의 꿈은 한반도에 열리지 않았다. 무지와 문맹, 제국주의와 전쟁이라는 글자들만이 덩그렇게 놓여있다. 아시아는 강대국들의 침략과 제국주의의 식민지 쟁탈전의 희생양이 되고 있었다. 무너지는 중국과 한몫 잡으려는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자리를 놓고 1894년부터 1895년까지 청일전쟁을 벌였다.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1894년 조선에서 발생한 갑오농민전쟁(甲午農民戰爭)이 전쟁의 빌미가 되었다. 조선정부의 청군개입 요청은 곧바로 일본에게는 한반도 침략 동기를 제공했고, 일본은 곧바로 전쟁을 시행에 옮겼다. 10월에 터진 전쟁은 7개월간의 걸쳐 이어졌지만 결과는 일본의 승리였다. 1895년 4월 미국이 중재하여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 되었고 중국은 더 이상 아시아의 맹주가 아니었다. 중국은 청일전쟁의 결과로 지금의 센카쿠(조어도)가 일본에 넘어가는 통한의 순간을 맞이했다. 1894년 7월 23일 궁중에 난입한 일본군이 무력으로 민씨정권을 축출하고 흥선 대원군을 재차 영입했으며, 김홍집(金弘集) 등 개화파 인사들로 내각이 구성됐다. 하지만 그마져도 12월 17일 청일전쟁 승리를 눈 앞에 두고는 대원군은 퇴위되고 일본에 망명중이던 박영효(朴泳孝) 등을 불러들여 김홍집-박영효 친일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정치적으로는 숨막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땅의 민초들은 무지와 문맹 속을 허우적거렸다. 가난과 계급, 질병과 수탈이라는 쉴새없이 쏟아지는 무거운 인생의 짐들을 이고 지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숨을 담보로 했던 한반도에서의 선교사역
▲ 무등산이나 지리산은 풍토병 예방을 위한 선교사들의 쉼터 역할을 했다.     ©강경구
 1915년까지 한반도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속에서도 정치적 위험이나 동학과 같은 토착종교와의 갈등보다는 위생과 질병이라는 버거운 적들과 힘겨운 싸움을 치러야만 했다. 당시 조선의 의학은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을 지은 동무 이제마 선생이 고종 30년인 1893년에 저술에 착수하여 고종 31년(1894)에 《동의수세보원》상·하 3권을 완성하여 사상의학설을 제창하였고, 광무 4년(1900년)에 다시 성명론부터 태음인론까지를 추보(追補)하였으나, 태양인 이하의 3편을 미쳐 끝내지 못한체 1900년에 사망하였다. 64세로 죽을 때까지 고향에서 보원국(保元局)이라는 한의국을 개설하여 환자들을 보살폈고, 사람마다 타고난 체질이 다르므로 같은 병이라도 그 치료가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던 우리나라 고유의학이 외롭게 민초들을 돌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전라도 지방의 유아사망률이 아프리카보다 더 높았다는 주장과 세균성 이질 장티푸스, 말라리아, 홍역과 같은 전염병들이 우글거렸다. 특히 외국인 선교사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런던 중 미 감리회 소속 의료 선교사로 평양 광성학교를 세웠던 홀(William James Hall)이 1894년 청일전쟁 직후 전염병이 창궐하던 평양에서 환자를 돌보던 중 1895년 환자에게서 발진티푸스가 옮아 순교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어 1895년엔 캐나다의 매켄지(W. J. McKenzie)가 열병에 걸려 희생됐다.
1892년 내한한 미국 선교사 새뮤얼 무어(Samuel F. Moore)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차별 없는 복음을 증거 했지만 1906년 장티푸스에 걸려서 46세로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무어 선교사는 현재의 을지로 1가, 곤당골에 터를 잡고 백정과 천민을 복음으로 변화시켰다. 하지만 그 역시 장티푸스에 희생 된 것이다. 이화학당 3대 학장 조세핀 페인(Paine, Josephine Ophelia)은 1905년 을사조약으로 나라가 외교권을 잃자 매일 오후 3시에 전교생을 모아 주권 회복을 위해 기도회를 열었던 인물이다. 하루 수백리를 걸으며 전도하던 전도의 철인마져 1909년 해주에서 콜레라에 걸려 희생됐다. 경신학교 교장이었던 기포드(Daniel Lyman Gifford)는 이질로, 숭실대 설립자 베어드는 장티푸스로 숨졌다. 그녀의 아내 '메리 헤이든 기포드(Mary Hayden Gifford) 선교사 역시 경기지역 일대에서 복음의 열정을 쏟다가 43세의 나이로 결국 전염병인 이질로 세상을 떠났다. 헤론의 미망인 해티 깁슨은 1908년 결핵으로, 1909년 4월 오웬은 급성 폐렴으로, 1913년 코이트 선교사(Robert Thornwell Coit, 고나복) 는 어린 두 자녀 딸 로버타와 아들 토마스를 풍토병인 이질로 하늘나라에 보내야 했다. 당시 한반도는 전염병을 막기위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나 지방의 관리들마져 이렇다할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나마 남장로교의 선교 기지국까지 철수해야 한다는 선교 위기론이 팽배해 있었다. 1910년부터 1920년 사이 호남에서 전도활동을 하던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가운데 67명이 말라리아를 비롯한 풍토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결국 미국 남장로교 본부는 선교사들에게 귀환 명령을 내렸지만 문제는 선교사들이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21년 윌리엄 린튼과 유진벨의 딸인 샬렛 선교사 부부의 헌신
▲ 윌리엄 린튼(William Linton)
1920년 초반 지리산 노고단에 선교사들의 풍토병을 피할 건물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바로 1912년부터 활동한 윌리엄 린튼과 1920년 결혼한 유진벨의 딸인 샬렛 선교사였다. 선교사들이 풍토병을 피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던 중 지리산 노고단과 왕시루봉 일대를 최적지로 선정하였다. 1921년 미국 남장로회 한국 선교부가 지리산 노고단 인근에 지었던 수양관 50여채가 선교사들의 질병을 피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상했다. 그동안 6·25 전쟁과 태풍 등 상당부분이 훼손됐지만 현재 왕시루봉에는 수양관과 채플실, 창고 등 12개 시설이 남아 있다. 최초로 명명됐던 이름은 “그래햄 리트릿 센터” 였고, 이후 남장로교 소속의 선교들을 위한 쉼터로, 리트릿 장소로 선교전초기지로 활용되었다. 특히, 전염병이 번지는 6월에서 9월까지는 해발 1,000미터 깊은 산속으로 피해 성경을 번역하며 선교 일정을 나누는 등 건강을 회복하는 단초를 마련하였다. 1940년대까지 56채에 이르렀지만 현재 예배당 과 몇 개의 건물을 제외하고 벽체 일부만 남아있다.
왕시루봉 수양관 주택들은 선교사들의 소속국가별 건축양식을 접목할 수 있는 은 사료가 된다는 보고도 있다. 1950년대 북미식 오두막 건축양식인 ‘샤롯데 벨 린튼 가옥’과 억새를 이용해 지붕을 이은 영국 농촌주택 양식인 ‘배도선 가옥’, 일본 농촌주택 기술을 활용한 ‘인휴 목사 가옥’, 노르웨이 건축양식인 ‘도성래 가옥’ 등 보존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뉴스파워 광주 주재기자/ 전)전남도민일보 기자/ 전)전남매일신문 도시재생 칼럼니스트/ 의학박사(수료), 대체의학석사, 경영학석사/시인(광주문협/문학춘추)/ 현)조선간호대학교 겸임교수/ 전)조선대학교 초빙교수/ 현)광주복지재단 강사/ 2013 농촌봉사대상 개인 국무총리상/ 2017 자원봉사부분 단체 대통령상/ 2018 농촌봉사 단체 농축산식품부장관상 / 2013, 2014, 2015 전라남도 도지사 표창 /2014,2017 담양군 표창/ 2014 광주 동구 표창/ 2015 화순군 표창/ 2016 장흥군 표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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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4/29 [15:59]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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