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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9.16 [13:02]
위대한 애꾸눈 설교자 에반스
영국교회 부흥의 주역과 현장의 역사 (14)
 
김현배
에반스의 회심과 배움에 대한 열망
 
▲ 크리스마스 에반스     ©김현배 목사 제공

19세기 초의 웨일즈의 침례교 설교가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였던 크리스마스 에반스 (Christmas Evans, 1766-1838)는 1766년 12월 25일 웨일즈 중부에 있는 랑데설 (Llandysul) 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날이 성탄절이라 이름을 ‘크리스마스’ 라고 짓게 된다. 경건한 어머니였던 그녀는 에반스에게 항상 자신의 영혼에 깊은 관심을 가질 것을 권면하였다. 하지만 에반스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가정에 가난과 불행이 찾아오게 되어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에반스를 삼촌 집에 맡길 수 밖에 없었다. 매우 불경건하고 지독한 사람이었던 삼촌 밑에서 6년 동안 농장 일을 하면서 에반스는 사랑 없이 자라게 되었으며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여 글자도 잘 읽지 못하였다. 어린 시절이 에반스에게 매우 외롭고 어려운 시기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향한 특별한 계획을 갖고 계셨다.

에반스는 르윈도완 (Llwynrhydowan)에 있는 장로교회에 참석하게 되었으며, 특히 1783년, 에반스가 17살이 된 해 르윈도완 근방에 부흥이 일어나 에반스를 포함한 많은 젊은이들이 깨어났으며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이처럼 예수님과의 만남을 체험한 에반스는 불경건한 상태에서 죽는 것을 두려워 하면서 그 두려움 때문에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얻고자 갈망하고 찾게 되었다. 그리고 에반스는 그의 세상적인 친구들을 떠나 몇몇의 청년들과 함께 교회에 모여 촛불을 켜놓고 성경을 읽기 위해 글 읽는 것을 열심히 배워 한 달만에 웨일즈어로 된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으며 영어로 된 성경도 빌려 보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능숙한 수준까지 배우게 되었고 위대한 청교도인 존 번연 (John Bunyan)의 천로역정과 존 길 (John Gill)과 존 오웬 (John Owen) 의 신학 도서들을 읽으며 깊이 이해했다. 이처럼 그의 회심은 배움에 대한 필요성과 열망을 평생 갖게 해주었다. 에반스는 낮은 신분의 출신이며 교육 환경도 매우 안 좋았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 웨일즈에서 가장 능력있고 유창한 설교자 중 한 명으로 쓰임 받았다.

한 쪽 눈을 실명한 후 목회에 대한 소명을 받음 - “웨일즈의 애꾸눈 설교자”

에반스의 불경건한 친구들은 그의 갑작스러운 변화와 회심에 반감을 샀는데 어느날 친구 6명이 그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공격하였다. 그들은 에반스를 가차 없이 때렸으며 한 명이 막대기로 그의 눈을 때려 결국 한 눈을 실명하게 되었다. 눈을 실명하던 날 에반스는 심판의 날에 대한 생생한 꿈을 꾸게 되었는데, 이 꿈은 에바슨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그는 한 쪽 눈을 실명한 후 목회에 대한 소명을 받고서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나중에 '웨일즈의 애꾸눈 설교자'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1790년 23살 되었을 때 에반스는 북웨일즈 린(Llyn) 지방에 있는 침례교 교회에서 설교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는 자신의 설교 속에 무엇인가 빠졌다는 느낌을 항상 받고 있었다. 그런데 1790년 초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한번 강하게 만나주었고 절대적인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하였다. 그 체험 후 에반스는 곧 새로운 능력으로 설교를 하게 되었고 1년 사역 후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 중 50명이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 다음 해에는 80명의 회심자들이 교회에 등록하였다. 에반스는 린 지방에서 5개의 지역 교회들에서 설교하며 섬겼으며 그가 가는 곳곳마다 많은 회중들이 모여 그의 능력 있는 설교를 들었다.

에반스의 복음적인 설교 - “죄와 구원의 교리 강조”

에반스가 목회를 시작하면서 했던 첫 설교는 지금까지 다루었던 인물들과는 사뭇 다른 인상을 남긴다. 부흥의 현장에 쓰임 받은 설교자들은 첫 설교부터 매우 큰 은혜와 능력이 나타났다는 것이 공통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에반스의 첫 설교는 그런 특별한 일이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그 설교는 자기가 직접 작성한 설교가 아니라 베버리지 (Beverdige) 주교의 설교집에서 '빌린' 것이었다. 회중 중 그 설교집을 가지고 있었던 한 농부는 이 사실을 쉽게 발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농부는 에반스가 나중에는 위대한 설교자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 이유는 그의 기도만큼은 은혜가 넘쳤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에반스 가 외친 복음적인 설교에 은혜와 축복을 내려주셨다. '고리타분한' 죄와 구원의 교리만이 사람을 살리는 설교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의 주권 가운데 자신의 종들을 훈련시키며 세움을 배울 수 있다. 주의 종들은 다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훈련시키신다. 그들이 다 다르기에 그들을 따라 할려고 하면 안 된다. 많은 설교자들이 에반스의 설교 방식을 따라하다가 실패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에반스는 자신만의 특별한 설교를 하였으며 그의 설교에는 권위와 능력과 은혜가 흘렀다. 지금 에반스는 웨일즈의 위대한 설교자 중 한 사람으로 기억 되고 있다.

앵글시 섬에 일어났던 놀라운 부흥

1792년 쯤 에반스는 앵글시 (Anglesey) 섬으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 섬에는 약 10개의 침례교 지방 교회들이 있었다. 그 교회들은 모두 매우 약한 상태 속에 있었고, 분열되어져 있었으며 영적으로도 불경건한 상태였다. 에반스는 하루 동안 금식과 기도를 선포하면서 앵글시의 교회들을 위하여 여러 시간 동안 중보기도 하였다. 그 후 에반스는 설교를 시작하였고 하나님은 그의 사역 가운데 큰 은혜를 부어 주어 주셨다. 놀랍게도 앵글시 섬에 새로운 기도의 영이 신자들에게 부어졌고 2년 동안에 600명이 교회에 등록하였으며, 10개의 지방교회들은 20개가 되었다. 이처럼 앵글시 섬에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 부흥 이후 남 웨일즈에 있는 카필리 (Caerphilly) 로 사역지를 옮긴 에반스는 이곳에서 2년 동안 놀라운 사역을 하게 된다. 이 작은 마을에서 뛰어난 에반스의 설교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140명이 교회에 등록하기도 하였다. 그의 최고의 설교들 가운데 대부분 이 부흥의 시기에 행해졌다. 후에 에반스는 다시 카디프 (Cardiff)로 이동하여 4년 동안 그곳에서 사역을 하였으며 1838년 그의 마지막 목회지인 카나번 (Caernarvon) 으로 이동하였다.

신앙생활 중 만난 내적 갈등 - “잘못된 샌디먼파의 엄청난 영향력”

어느 크리스찬과 마찬가지로 에반스도 사역과 신앙생활 속에서 여러 내적 갈등들을 겪었다. 그 중 가장 힘겨웠던 것은 앵글시 섬에서 사역하면서 샌디먼파 (Sandemanian) 교리를 받아들인 일이다. 스코트랜드 로버트 샌디먼 (Robert Sandeman) 으로 부터 발생된 이 교리들은 믿음이 단순히 지식적인(intellectual) 것이라는 잘못된 교리를 가르쳤다. 그들은 감정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보수적인 교리들을 지식적으로 인정하고 믿는 것만이 믿음의 전부라고 가르쳤다. 사실 샌디먼주의의 가르침은 어떤 면에서 로마 가톨릭의 가르침으로 되돌아가는 것인데 우리 신앙생활의 무서운 적이다. 샌디먼파의 교리가 위대한 설교자인 에반스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는데 그는 몇 해 동안 산데만니즘 (Sandemanism) 교훈을 받아들인 결과로 메마르고 냉랭한 영혼의 상태에 빠져 있었다. 에반스는 나중에 그 무서운 효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샌디먼파 교리들은 나에게 너무나 큰 영향을 주어 내 안에 있던 기도의 영을 죽이고, 성령의 불을 잃어 버렸다. 한동안 내 마음을 뜨겁게 사로잡고 있었던 열정, 확신, 자신감, 진지함 그리고 갈망함은 나의 설교 강단에서 사라졌다. 내 가슴 속에 있던 거룩한 양심의 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는 것을 안 내 영혼은 그것을 상실했다고 나를 정죄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기도와 설교의 영을 크게 강탈 당했다. 내가 경험하고 있었던 뜨거움과 감정을 빼앗아 갔다. 이것은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15년 사역을 통해 일으켰던 앵글시 섬 사역을 스스로 무너지게 할 뻔 했다." 에반스는 한동안 뜨거운 기도에 열중하였지만 잘못된 샌디먼파의 영향력으로 인해 영적침체에 빠지게 되었고 그의 불을 잃어 버리게 되었다.

에반스의 성령 체험과 영적 회복

에반스는 성령을 체험하였으며, 그의 능력이 회복 되었다. 샌디먼파의 영향으로 인해 영적침체에 빠진 에반스를 다시 만나준 하나님의 역사 또한 놀랍다. 이 사건 또한 에반스가 훗날에 간증을 하게 된다:

“15년 전에 앵글시 섬에 왔을 때는 주님과 엠마오로 향하고 있던 제자들 처럼 불타는 뜨거운 가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주님을 향해 차가워진 내 마음에 지쳐있었다. 강단과 나의 개인 서재 그리고 은밀한 시간 가운데 늘 차가운 나의 마음이 지긋지긋하였다. 어느 날 나는 둘게리 (Dolgelley) 에서 매틴레쓰 (Machynlleth) 까지 혼자서 가고 있었다. 그때 내 마음이 아무리 차갑고 굳어 있었어도 나는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시작하자 나는 나의 마음이 점점 열리고 부드러워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더욱 더 성령님의 임재를 갈망하고 간구하였다. 오! 나의 마음이 사슬에서 풀리고 굳은 것이 녹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나는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더 강한 임재를 위해 기도를 하였다. 나는 다시 나의 전 인격과 삶을 주님 앞에 내어드리게 되었고 하나님은 은혜롭게 내게 찾아 오셔서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셨다. 나는 감격하여 울면서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매달리며 한 기도는 약 3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그 길은 산길이고 사람도 없어서 방해 없이 오직 하나님과 씨름할 수 있었다. 곧 나의 기도의 불은 내가 사역하고 있는 앵글시 섬 교회들에게 향하였다. 그들을 위해 다시 뜨겁게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주님은 나와 앵글시의 사람들을 산데만주의의 홍수에 떠내려가는 데에서 건지셨다."

에반스의 마지막 설교와 죽음 - “나는 한번도 주님의 보혈을 의지 하지 않고 사역을 한 적이 없다”

1838년 7월 16일, 에반스는 스완지에서 마지막 설교를 하였다. 그의 목소리는 약하였지만 그의 특유의 드라마틱한 복음주의 설교였다. "주님 예루살렘에서요? 그곳에는 주님을 못 박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파하라고요? '그래'. 하지만 주님을 못 박고 허리에 창을 뚫은 사람을 만나면요? 주님의 얼굴에 침을 뱉은 사람을 만나면요?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라. 내가 구세주임을 그들에게 알려주라."

에반스는 그 주 금요일 하늘 나라로 갔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이렇다. "나는 너희를 떠난다. 나는 주의 종으로 55년을 수고하였다. 나는 한번도 주님의 보혈을 의지 하지 않고 사역을 한 적이 없다. 형제들이여! 주님을 전파하여라. 나를 보아라. 나는 무너져 가지만 주님 안에서는 구원을 누리며 천국에 있단다. 안녕! 계속 전지하여라! (Goodbye! Drive on!).
어떤 사람들은 에반스를 찰스 스펄전 보다도 재능있는 사람으로 간주하였으며, 마틴 로이드 존스는 “크리스마스 에반스는 영국 침례교회 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자”라고 극찬하였으며, 다.

잊혀지고 있는 크리스마스 에반스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빛나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그의 왕국을 위해서 위대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서 우리의 재능과 힘을 항상 다하여 사용해야 한다. 에반스는 절대로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또한 여러 실수와 허물들이 있었고 살펴본 대로 그 또한 영적인 침체를 겪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주님은 늘 그의 삶에 찾아와 그를 녹이시며 그의 마음 가운데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부어주셨다. 이러한 사람을 통해서도 놀라운 부흥의 역사들이 일어남을 우리는 다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부족한 사람을 통하여서도 그 능한 역사를 교회 속에 보내고 계신다.

둘째는, 잘못된 샌디먼파 교리들에 대한 경계를 하는 것이다.

에반스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웠던 적인 샌디먼파 교리들에 대해서도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 자신을 살피고 깨어 경계를 해야 한다. 에반스의 경험은 샌디만파 때문에 강당에 감동이 없을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차가워지고 열정이 없는 마음. 이것은 과거의 현상이나 문제가 아닌 오늘날 현대 크리스챤들의 핵심 문제이다. 즉 설교자들은 “우리에게 기도의 영이 있느냐 설교의 영이 있느냐”하는 문제이며, “뜨거운 감정과 불타는 열정이 다시 살아나야” 하는 문제이다.

영적 메마름에 대한 문제 해결은 말씀과 성령을 함께 강조해야 한다. 지적인 말씀만 강조하다보면 지성주의로 흐르게 되면서 죽은 정통이 될 수 있으며, 반면에 감정인 성령만 강조하다보면 말씀을 소홀히 하게 되고 그 결과 17세기 퀘이커교도들처럼 신비주의로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만 강조해서는 절대 안되고 말씀과 성령이 함께 강조되어야 한다. 부흥은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말씀과 성령의 생기로 살아나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던 것 처럼 말씀과 성령의 균형이 우리들에게 필요하다.

셋째는, 복음의 놀라운 진리들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뜨겁게 한 적이 언제였는가?

어제, 지난 주, 한 달 전, 아니 1년 전, 10년 전, 20년 전인가? 이것은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을 갈망하며 약하게 붙은 불이라도 다시 붙기를 간구하여야 할 것이다. 더 뜨거운 오순절의 불이 붙어서 사역에 열정이 넘치고 더 나아가 조국교회와 유럽 그리고 열방에 큰 불을 일으켜야 한다. "주여, 나의 차갑고 굳어진 마음을 용서하시고 모든 차가움을 제하여 주소서. 성령의 뜨거움, 기도의 뜨거움, 강단과 설교의 뜨거움을 다시 허락하소서!" 우리들의 기도가 살아나고 말씀이 살아나고 심령이 살아날 때 부흥을 체험 할 수 있을 것이다.
▲ 김현배 목사     ©뉴스파워


*김현배 목사/독일 함부르크 한인선교교회 담임목사. 유럽성시화운동본부 상임회장 겸 독일 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뉴스파워 유럽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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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4/24 [10:17]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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