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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4.11.28 [15:02]
“100주년기념교회는 개혁주의교회”
정금출 전 고신언론사장, ‘양화진과 100주년기념교회 문제 해법’ 제시
 
김철영
전(前) 고신언론사 사장인 정금출 장로(부산 동일교회 원로)가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 총회가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양화진)과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100주년기념교회)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건의하는 글을 예장 고신 총회 기관지 기독교보 9월 11일자에 기고했다. 

다음은 정금출 장로가 기독교보에 기고한 글 전문이다. 


1. 본인은 2005년 4월 21일 정진경, 최창근, 강병훈, 김경래, 정광택 등 (재)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100주년협의회, 이사장 강병훈) 어른들과 함께 양화진 묘역 돌담 곁에 살고 있는 이재철 목사 댁을 방문, 100주년협의회가 결의해 설립키로 한 100주년기념교회 담임목사 수락을 강력히 권고한 일이 있습니다. 이재철 목사는 어릴 때 본인이 시무하는 부산 동일교회에 온 가족이 출석했으며, 주일학교 학생으로서 본인은 그의 교사였습니다.
 
2. 본인은 그 후 100주년기념교회가 연합사업체인 100주년협의회 산하의 독립교회로 존재하면서 양화진과 용인 순교자기념관의 운영관리를 맡아 물심양면으로 봉사하는 한편 한국 교회 200년을 내다보고 각종 사업과 행사를 진행해 옴을 지켜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흐뭇한 심정마저 갖게 됐습니다. 

특히 금년 7월 창립 5주년을 맞은 100주년기념교회가 2,30대가 3500여명, 4,50대가 2000여명, 6,70대는 불과 수백 명에 불과하며, 어린이와 청소년도 1000여명에 이른 통계를 보고 놀라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 

3. 그러니까 100주년기념교회는 미래가 밝은 좋은 개혁주의 교회라고 생각됩니다. 등록 교인 수와 예배 참석자 수(4부 예배)가 비슷한 것도 100주년기념교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런 교회를 두고 일부 지역교회 지도자들, 특히 서울서노회 소속 교회 목사들이 “교인들을 쓰레기 모으듯이 긁어모으고 있다”느니 “헌신적인 교인들을 빼앗아간다”는 등 시기심에 비롯된 느낌이 드는 모략중상을 일삼고 있는 현실을 접할 때 실망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총회장님, 목사님! 새로운 개척교회가 태동하는 과정에서 수평이동은 불가피한 현상이며, 천주교회와 달리 개혁교회는 예배당의 선택이 회중 개개인의 자유선택에 있지 않습니까?

100살이 되신 원로목사님께서는 “다들 배가 아파 그래”라는 한마디로 100주년기념교회와 양화진 문제를 논단하셨습니다.

만약 100주년교회가 창립 5년이 돼도 교인수가 100명도 되지 않았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아주 뼈아픈 분석입니다.

4. 총회장님과 목사님! 100주년기념교회가 마포구 합정동에 세워져 영혼구원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면 그곳에서 이단사이비 집단이나 퇴폐업소들이 솟아나 인간성을 좀먹고 세상을 추악하게 오염시키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더욱이 여러 지역과 여러 교파 교단에 속했던 분들, 그리고 처음 믿게 되는 청소년들이 많이 모인다면 그 교회 나름의 규범이나 질서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예장통합총회나 노회가 단지 담임목사 한 사람의 소속이 장로교 통합 측이니까 100주년기념교회를 통합 측 헌법 질서 안에 묶어 두려고 한다면 크고 작은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겠습니까? 장로, 권사 호칭제가 바로 그런 문제에서 기인했다고 봅니다.

서울서노회가 이재철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제명하려다가 스스로 포기한 사실을 아십니까? 

서울노회가 이단으로 규정하고 제명하려는 문제와 신학적인 문제는 평신도로서 생략합니다. 다만 이재철 목사는 노회의 압박을 견디기 힘들어 법적인 문제는 고려하지 않고 노회를 탈퇴함으로써 즉시 면직처분을 당했습니다. 왜 이렇게도 성급하게 처리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5. 총회장님과 목사님! 이제는 모든 것이 드러나 버렸습니다. 누가 무엇 때문에 100주년기념교회를 비방하고 어떤 계략으로 노회와 총회원들을 선동했는지 그 진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양화진 묘지 문제도 그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가려지고 있습니다. 선교사 후손 한 두 사람을 앞세워 묘지 전체를 차지하려는 세력이 누군지 밝혀지고 있습니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의 합법적 소유권자는 (재)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입니다. 고 한경직 목사님이 1980년 초에 설립하면서 눈물과 땀 흘려 가꾸어 놓으신 한국 교회 보수․진보 연합체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소천 하시기까지 15년간 재단 이사장직을 맡으셨습니다. 그 후 강원용, 정진경 목사님이 생존 시까지 이사장직을 감당해 오셨습니다. 예장통합총회나 노회가 교권을 행사할 대상이 아닙니다. 더욱이 100주년기념교회는 100주년협의회가 설립 모체이며, 그 교회의 합법적 후견 기관입니다.

예장통합총회가 아무리 거대한 기구조직과 1만개 교회 300만 명 신도를 포용하고 있다 해도 한경직 목사님의 신앙과 연합정신을 이어 내려오는 100주년협의회를 향해 경우에 어긋나거나 불법적인 처사를 할 수는 없습니다.

6. 총회장님과 목사님! 간곡히 건의합니다.

첫째, 이재철 목사는 통합 측 총회가 격려하고 아껴야 할 사람이지 ‘이재철 씨’로 매도하고 추방해야 할 사람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가 교단 어르신들의 권고를 수용해 교단에서 법적으로 해결돼 돌아오겠다고 희망한다면 교단에서 수용함이 은혜로운 처사인 줄로 압니다. (100주년협의회 대표와 100주년기념교회 및 100주년기념교회 담임목사의 의견은 한 번도 청취한 바가 없다고 합니다.)

둘째, 예장통합총회 주변의 선교사 후손들이 그들의 조상들이 전도해 성장시킨 한국 교회 지도자들을 걸어 민․형사 사건의 피고가 되게 한 패륜적 행위를 경책하시고 그들과 짝지어 지금도 양화진묘지 국유화 소송을 제기한 통합교단 소속 인사들을 즉각 철수시켜 주십시오.

세상에 어느 나라 선교 현장에서 이런 불상사가 일어납니까? 선교하러 온 선교사가 선교지의 교회 어른들을 세상 법정에 세우는 일이 자유독립국인 대한민국 안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총회장 목사님이 눈과 귀를 막고 계신다면 누가 총회장님과 목사님의 권위를 인정하겠습니까? 

셋째, 양화진에 있었던 유니온교회와 선교기념관을 예배처소로 함께 사용한 100주년기념교회는 2007년 7월 마포구청의 행정 지시에 따라 다 함께 철수했습니다.

애당초 묘역에 세워진 선교기념관은 종교행사가 불가능한 공원관리 건물로 건축허가 된 곳이며, 그 동안 당국이 묵인해 왔는데 문제가 생겨 민원이 접수되자 마포구청이 본래 허가된 관리사무소 용도로만 사용토록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유니온교회를 100주년기념교회가 쫓아냈느니, 예배를 방해했다는 등의 허위사실 유포는 모두 100주년기념교회의 아름다운 성장을 싫어하는 무리들이 지어낸 선동에 불과합니다. 

진정으로 유니온교회를 사랑한다면 총회나 노회 차원에서 합당한 예배처소 하나라도 마련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종교행사가 금지된 공원 안에 기어코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겠다고 국무총리실, 서울시, 국회, 구청 등을 찾아다니면서 호소하는 행위를 언제까지 계속 할 지 주목됩니다.

총회장님과 목사님! 본인의 솔직한 심정을 이해하시고 가능한 모든 길을 열어 귀한 열매 거두게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참고 또 참고 기다리고 기다리다 부득이 이 목사님과 의논도 하지 않고 글을 올리게 된 저의 충정을 헤아려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사입력: 2010/09/12 [15:27]  최종편집: ⓒ newspower
 
어른으로서 옳으신 말씀입니다. 에덴 10/09/13 [21:42] 수정 삭제
  그토록 정의를 외치는 통합교단이 왜 유니온교회 처소를 마련해줄 생각은 하지 않나요.
양화진이 이제 비로소 성지다워지니까 가로채려는 것으로 보인다면 무리일까요.
이제 교단과 노회의 시비가 많이 치졸해보입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solomon 10/09/14 [08:22] 수정 삭제
  너무 속 시원하신 말슴 입니다.
꿀 먹은 벙어리... 민심 10/09/18 [20:54] 수정 삭제
 
부디 자중하시라 자숙하시라 해도
안 가는 곳 없이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욕을 먹으면서도
자신의 말로 세상을 뒤집어 놓는 사람들이 요즘 부쩍 늘었는데

입은 입이로되 다물고 있는 입은 과연 어디에 써 먹을 것 인가?
냄새나는 입들이 너무 많아 독한 냄새가 역겨워 꾹 다물고 있는 것인가?

"100주년기념교회의 아름다운 성장을 싫어하는 무리들이 지어낸 선동에 불과" 함을
증언하지 않는가? 이 어디에 꾸밈이 있는가?
아니 이전부터 알고 있지 않았던가?


똥내 썩는 내 구취가 쌓이면 말할 때 악취가 풍기고
치 건강에도 안 좋을 터인데

받은 소명으로 안 할 수도 없고 또한 안 들을 수도 없으니
악취가 풍기지 아니하게 미리 미리 입을 여시기 바란다.

왜 죄 없는 사람을 이리 굴려보고 저리 굴려보고 그러는가?
바라보고만 있는 재미도 그리 쏠쏠한가?

마땅히 후속조치를 해 주어야 한다.


“다들 배가 아파 그래”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성령 충만했던 스데반 이상철 10/09/28 [10:56] 수정 삭제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쌔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11.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스데반의 은혜가 충만한 것은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렇듯 교회의 회복은 진정한 부흥을 통해서. 진정한 부흥은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하나님의 역사는 생명을 건 기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임. 담임목사를 위해 능력있게 기도하는 중보기도팀이 필요함. 주요 타켓. 담임목사가 영적으로 무력하면 교회도 그렇게 되기에. 담임목사가 영적으로 강력하면 교회도 그와 같이 되기에. 목사가 하는 기도. 중요함. 그렇게 하려고 함. 새벽에 늘이고. 금요기도회 이후에 늘이고. 10분씩 늘여가고 있음. 한탄. 산기도할 때만 못해서. 한 사람의 전도만으로는 부족. 전도회를 중심으로 하는 팀웍을 이룬 전도가 필요함. 그래서 전도팀이 교회안에서는 중요한 요소.




이렇게 하는 목적은 하나님. 초대교회처럼 강력한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것임.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이 시대를 깨우는 교회. 잃어버린 영혼들을 살리는 교회. 악한 영들의 세력을 무너뜨리는 교회. 참으로 그와 같은 교회가 될 것이다. 오늘은 스테반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교회에 그와 같은 일꾼들이 서기를 소망하며 기도하기를 원한다. 오늘 본문에서 스테반의 모습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서 설명될 수 있다. 그 세가지 내용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눌 때 성령께서 나와 여러분 가운데 큰 은혜 베푸시기를 원한다. 일꾼으로 부름받은 사람. 교회의 제반 업무를 감당하는 것이 할 일. 그럼으로써 사도들은 본업인 기도와 말씀에 전념할 수 있는 것임. 어느 다원성이 강한 기독교에서는 이를 죄의 댓가로 인식하는데 불교의 윤회설을 접목한 것이다.






스테반 집사님은 전도에 목숨을 걸었음. 전도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주신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명령임. "땅 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어라"고 말씀하심.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정말 천국을 믿고 지옥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옥에 가도록 방치하면서 편하게 있을 수는 없는 것임.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 것임. 2004년 이라크 선교활동 중 알카에다에 잡혀 참수된 김선일씨는 전도를 한 것이 아님.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알라신 만세를 외닌 것은 사실상 개종하러 간 것으로 볼 수 있음. 그것도 아니면 이 세상을 지상천국으로 생각하고 영생을 바라던 것이었음. 그러면 현재의 신자들은 지상천국이 아닌 천상천국의 존재를 믿으시는가? 그렇지 않으면 굳이 전도에 목숨걸 필요가 없다. 세계기독교교회협회가 생각하는 선교 무용론이 먹혀들것이기때문이다. 왜냐하면 천국이 따로 없으니까. 술,마약,파티,성적쾌락으로 물든 이 세상을 이상세계로 생각하고있지 않은가 생각해보라.



6살때부터 하루 20시간씩 혹사당하고도 경향교회 식권정도의 월급을 받는 백성이 있는 반면 부유층과 지도층은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이 로마카톨릭이 지배하던 중세유럽이나 미국, 지금의 인도가 그러한 사례이다. 따라서 그들만의 지상천국인 셈이다. 남전도회, 여전도회, 청년회, SFC, 주일학교 등이 전도에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혼들을 위해서라도 전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부모형제조차 전도하지 못함은 그만큼 영혼의 연약함이 존재하기 때문임. 최근 보도에 의하면 정신지체를 치료하는 약이 개발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예수님도 치유하지 못한 이것을 인류가 도전하려하는 것은 드디어 하나님과 대적하려는 목적이 한계를 넘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안방극장을 중심으로 전생신드롬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1996년 당시 우리사회에는 전생신드롬이 문화,사회 등 전분야에 걸쳐 열풍처럼 번진 바 있었다. 때문에 이듬해에 우상숭배에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사 IMF라는 경제대환란을 가져온 결과를 초래하였다. 알마 전 종영된 드라마 '천하무적 이평강'과 EBS의 '보니하니'를 비롯하여 문화방송의 무릅팍도사 또한 무속인 차림의 MC가 고정패널로 등장하는 15년 전의 신드롬을 재현한는 듯 하다. 다른점이 있다면 당시는 경제난 이전의 호황기였던 반면 지금은 글로벌 경제난속에서 이후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과연 종말을 앞두고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할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경제난으로 더욱 반기독교사상이 산발적으로 불고있음. 예수가 가난했기때문에 전 국민을 가난뱅이 만들려 한다며 투덜대는 안티기독교도들의 억지.



여순반란사건 때 손양원목사님의 두 아들 동인,동신은 같은 학교 급우였던 남로당 공산주의자 강철민을 전도하려자 총살함. 이에 손 목사는 그를 용서하고 양자로 영입. 그 시기는 대한민국이 갓 탄생하고 북쪽에는 인민공화국이 되어 분단되었던 해로 자칫 월남인사들조차도 의심받을 수 있던 때였기에 목숨을 걸어야 했음. 예상대로 손목사의 요청으로 강철민을 풀어주려던 나덕환목사는 최후의 수단으로 생존자인 손등희를 증인으로 세운다. 이에 감동한 방첩대는 강철민을 형 집행정지로 풀어주었고 그는 이후 회심하여 전도활동을 시작함. 그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말년을 보내다 1994년 암으로 소천한다.




손목사님께는 은혜와 성령이 충만했고 6.25때에도 북한군들에 목숨 건 전도를 하다 순교함. 마찬가지로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던 스테반은 전도에 목숨을 검. 은혜와 권능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 기도를 통해. 순종을 통해. 순종할 때 계속적인 기름부으심이 가능함. 주어지는 것. 기도할 때 은혜와 권능으로 충만. 나는 은혜와 권능을 받지 못해서인지 개인전도가 자신 없음. 그래서 신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교회개척이 아닌 동역자로써의 사명을 우선 감당코자 했음. 6대가 기독교집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이유가 있는데 가족을 전도하지 못했음. 아버지와 동생은 불교를 섬겼으며 지금은 성당에 출석하심. 어머니도 내와 같이 출석하던 교회를 여전히 그놈의 정때문에(!) 섬기시는데 다원성이 있어 명절때마다 제사를 지내는데 아버지와 갈등을 느낀일이 없음. 천주교를 모태로 생각하고 계심.



부모 이기는 자식 없음. 물론 맛있는거 많이 먹을 수 있어 좋지만 무언가 거시기한 느낌. 옥춘,유과,전병,밤,대추,사과,곶감,배,귤,포도,복어포,굴비,산적,동그랑땡,도라지나물,생선전,호박부침,동동주,동치미국,식혜,수정과 등등... 사실 요 몇 년간은 형편이 워낙 어려워 제삿상도 차리지 못했으나 최근에 복지수당이 나오고 어머니가 일을 나가시면서 재개함. 그것을 피하기 위해 지방이라도 내려가 신학을 하려는 생각도 없지 않았음. 그러나 기회는 좀처럼 오지않았고 아버지의 고압적인 자세때문에 매 년마다 십계명을 거역하는 행위를 할 수 밖에 없었음. 나머지 9계명은 철저히 지키고 있음에도 정작 제1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있음.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중. 이는 지혜가 부족한 탓이기도 함. 손양원 목사님의 부친이던 손종일 장로의 일화를 떠올렸지만 차마 아버지께 그럴 수 없음. 손종일 장로는 유교사상이 지배적이던 가문에서 자랐으나 러일전쟁이 끝나던 해에 예수를 만나게되면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조상묘소앞에 놓여진 차롓상을 엎어 제사음식들을 바닥에 쏟아지게 했던 일이었다. 더구나 울 아버지는 이계윤목사님의 동생보다 더 완강하신 분이기에 그러한 행동은 꿈도 꿰지 못한다. 마지못해 엉성하게 하는 척이라도 하면 똑바로 하지 못하느냐고 호통을 치시기에 제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계윤목사님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계윤목사님은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그분 역시 자신만이 예수님을 믿고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가족들은 대부분 기독교에 반감을 가졌는데 특히 동생이 심했다. 하지만 자신은 동생이 회개하고 예수님께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계윤목사님은 미혼으로 오지에서 장애인 사역을 하고 계신다. 결혼을 하지않으면 목사안수를 받지 못하다고 들었는데 아닌 것 같다. 가끔 어머니의 교회에서 구역예비를 드리는데 담당 교역자인 김명섭목사님은 몇해 전 안수를 받고 구역을 담당하시는데 지난해에 결혼을 하셨다. 이를 상기하면 홀로 사역하는 것은 더더욱 목숨을 걸어야 함을 느낌.





유대사회 당시에도 스테반을 반박하는 사람들이 꽤 여럿이었는데 회당을 중심으로. 회당에 대한 설명을 하고있을 때였다. 이것을 지혜와 성령으로 설명하며 제압함. 일곱 집사를 뽑을 때의 기준. 믿음 충만. 성령충만. 지혜 충만. 이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춘 스데반이었다. 예수님의 말씀. 할 말을 주신다고 하심. 심지어는 시험을 받을 때조차.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이상철처럼 지혜가 부족하거든.지혜가 있으면 시험을 당할 때 효과적으로 대처함. 사실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한 것은 싸워서 이기기 위함이 아님. 진리가 아닌 것들이 진리를 무색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임. 스데반이 자신을 돌로 치는 무리들을 향해서도 같은 태도를 보임. 천사와 같은 모습을 하면서 순교. 바울도 그 자리(스데반을 향해 돌을 던지는 군중들 사이)에 있었음. 그런 바울도 이미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었음.



나의 기도제목. 13년도까지 대출금을 갚아달라고 기도. 마치지 못한 신학을 재개하도록 함.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라고 함. 1993년부터 2008년도까지는 안정된 직업을 갖는것이 우선이었으나 이제는 그럴 수 없음. 애초에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었음. 성경인물들처럼 사도상철이 되고자 했음. 오늘날에는 웬만한 성직자들도 지상천국 건설을 목표로하는 이들로 인해 좀처럼 목숨거는 사람이 없음. 그래서 WCC와 같은 단체가 형성됨. 종말의 때인 만큼 기독인들의 깨어있는 인식이 필요할 때이다.
너는 특별하다 창1장 27~28 이상철 10/09/28 [10:59] 수정 삭제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지 마지막인 여섯 째 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성별로 구분하시며 창조하셨지요. 모두 개통된 일곱 째 날에 안식하심으로 이날을 안식일로 정하시게 됩니다. 주일이라고도 하여 성수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는 것은 물질적인 복이 아닙니다. 새와 땅에서 생육하는 동물을 창조하시어 이를 다스리라 하셨습니다. 땅을 정복하라는 것. 그것은 자신들이 살고있는 이 땅을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결코 남의 땅까지 정복하라는 게 아닙니다. 인류역사에 있어 많은 땅 정복이 있었습니다.발칸반도를 출발해 페르시아 전역과 인도에 이르는 마게도니아 제국을 건설하려했던 알렉산더,중앙아시아를 포함해 아랍 동부에 이르는 대장정을 펼치려던 당나라 출신의 고구려 유민 고선지,유럽과 아프리카에 이르는 정벌로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외쳤던 중세의 나폴레옹과 근대의 히틀러,중국대륙은 물론 태평양 열도 전체를 장악한 도조 히데끼,한반도에서 서유렵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광대하게 땅을 정복한 징기스칸과 그 자손들(쿠빌라이,오코타이,수베데이,차가타이)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당을 정복하라는 뜻은 내 나라와 내 땅을 위해 인류가 반드시 해야 할 임무가 있는 것입니다. 번성하라는 것. 땅이 번성하라고 한 게 아닙니다. 인류사회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번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창조질서에 위배된 것입니다. 과학기술에 발달이 그러한 케이스입니다. 정보화사회로 진보한 것입니다. 그 피조물인 세계적 아니,우주적인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무신론자의 득세. 버스 광고판에 "신이 없어도 인간은 열정적일 수 있다"고 별다른 광고 없는 광고를 부착한 것을 봅니다. 이를 보면 마치 무정부상태 같음을 봅니다. 영적 무정부상태입니다. 선교 금지법까지 제정하려 했던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좌우지간 번성하라는 뜻은 그러한 번성이 아닙니다. 인류가 번성하는 것. 태어나서 유년기를 거쳐 노년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번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에게 존재의 가치를 주셨습니다. 나는 가난하니 실패자야. 가난때문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어. 아니 받긴 받았는데 그럴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가난했기에 학교도 자퇴했어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도 있을 것입니다.



키만 멀대같이 컸을 뿐 나는 아무 가치가 없는 존재야. 나는 장애인이니 인생의 낙오자야. 이것은 단지 내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뿐입니다. 이렇듯 나는 한동안 영적침체를 겪었을 때 그러한 생각을 하곤 했었습니다. 나에게는 인간이 갖춘 모든 최악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고 생각했기때문입니다. 장남에다 장애인에다 병약한데다 머리도 그리 비상하지 못하고(정신지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삐적 마른 체구에 가정형편도 어렸을때부터 곤궁한 환경이 아니어서 그렇게 익숙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환경이었던 것입니다. 나의 할머니는 조선 후기 인삼무역상이던 거상 임상옥의 4대손 이시고 할아버지께서는 약재상을 하신 지주였습니다. 그분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나 예수신앙을 가진 것처럼 재산을 이웃에 분배하고 정작 자신은 초가삼간에서 책을 쓰며 여생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이후 3대조깨서 남은 인심을 가지고 내려와 약을 제조하면서 경영하게 된 것입니다. 할아버지께서 과로로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할머니와 서울로 오시고 정착하였씁니다.



외조부께서 자유당 국회의원을 지내셨고 외가는 인천의 남동염전을 소유하고 교회를 세 곳이나 세웠을 만큼의 자산가로 6대째 기독교신앙을 이어 온 명문가 집안이었습니다. 6.25때 돌아가셨기에 얼굴을 모르지만 어머니의 아버지였던 만큼 그것을 기리곤 합니다. 공교롭게도 외할아버지와 친할아버지 모두 30살도 채 안되어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의 친정에는 포천과 혜화동에 땅을 소유하고 있었씁니다. 외삼촌이 현재 안수집사고 어머니도 같은 직분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개항이후 예수님을 만났으나 시대를 잘못만난 탓으로 돌리곤 합니다. 그런데 이에대해서는 생각이 다름을 봅니다. 가족들 중에도 "우리세대가 재수없어서"라고 말하는 전례가 있었으나 이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졌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불신자들은 '사이비종교에 빠진 결과'라는 비아냥 대기도 하지만 은과 금은 녹이 슬었음(약5장3)을 느낍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고난을 주셨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말씀이 귀에 거슬리기도 했지만 겸허히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을 주십니다.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니다. 가진것이라고는 땀밖에 없는 나이지만 인간에게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가진 셈인 것입니다. 땅 한평도 없는 쥐뿔도 없는 인생으로 생각되지만 인류에게있어 가장 소중한 한 가지를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실때 그 어떤 존재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오직 인간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그 자체로 존귀한 영혼입니다. 인류는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소중한 생명들입니다. 고로 태초의 인류는 동산에서 영생하는 존재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시작된 타락. 이후로 모든 인류는 그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남성은 땅을 일궈야 맛있는거 먹을 수 있게 되고 여성은 잉태를 하는 고통이 주어졌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맨몸으로 추방 된 것입니다. 요즘처럼 트랙터나 콤바인도 없었고 가축을 이용하는 방법도 없이 직접 땅을 개간하려니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농기구들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다양한 꾀를 내기 시작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사회는 발달하여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청동기에서 철기시대로 이어져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는 바벨탑을 세우던 시점으로 그 원조격이기도 합니다. 세월이 흘러 점차 인류는 하나님의 계시를 거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불순종의 댓가로 하나님은 또하나의 불순종의 댓가로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현대시회의 인류는 이것도 인류의 잣대로 훼손하고 있음을 봅니다. 진보한 의학기술은 이를 반영해주고 있습니다. 2045년이면 인류가 죽지않고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약품이 개발된다고 미국의 한 의학계가 전망하였습니다. 천상천국의 존재를 부정하고 지상천국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빈부격차가 해소되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벌어지는 추세입니다. 그만큼 인류는 더욱 큰 죄를 범할것이 우려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죄를 짓는 사람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 죄악된 세상에서 마음대로 사는 것을 누리려는 사람들이 인류역사를 이끌어 왔씁니다.



지금 사는 이 세상은 진정한 평화도 안식도 없는데 잠시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을 위해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순간쾌락을 위해서라면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는 하루살이 인생같은 목적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에는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받은 하나님의 계시를 거역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남성들은 땀을 흘리지 않으려하고 여성들은 출산을 하지않으려고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하튼간 하나님의 백성은 특별한 존재임을 돌이켜야 합니다. 나 역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병약하고 쓸모없는 청년이 아니었습니다. 재물과 권세가 있는 집안에서 밑바닥까지 내려 온 별 볼일 없는 가문의 자손이 아니었습니다. 나만이 아닌 주님을 만나고 따르는 모든 사람이 그토록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믿
위기 속에 드린 기도 욥7장 12~21 이상철 10/09/28 [11:02] 수정 삭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위기를 만날 때가 있다. 성경 속의 인물들도 그랬고 그러한 위기 속에서 영적인 충만을 받는다. 작금의 우리네 인생은 각종 위기에 포위되어 있다. 정신적인 위기. 우울함. 육체적인 위기. 전쟁위기, 경제위기, 에너지위기, 금융위기, 식량위기 등등...



무엇보다도 기독신자들이 가장 도전받는 것은 영적인 위기다. 분명히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자이시다. 그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헤아리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고난을 받아야 하는가? 왜 시련을 겪어야 하는가? 이것은 일찍이 하나님을 잘 섬기던 사람들의 입에서도 터져 나오던 탄식이었다. 나 역시 그러한 생각을 했고 영적 침체를 경험하기도 했다. 영적 침체는 영적 공황으로 이어졌다. 이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 배교를 하거나 안티가 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경우 이방인에 비해 더욱 심각하게 교회를 저주함. 그것이 아니라도 기독교의 역사를 조목조목 파악하여 비방함. 덩달아 한국교회의 총체적 위기임.



'개독'또은 '괴덱'이라는 표현으로 교회를 공격하는 안티크리스토들 중에는 이슬람 세력의 등장으로 더욱 가속도가 붙음. 기독교가 파괴의 종교이고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는 안티기독교인들의 반박은 그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면 전혀 근거없는 것도 아님. 기독교인이라는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으로 700만 명에 달하는 동족을 학살하고 그 이전에 북한땅이 공산화되어 무수히 많은 양민이 학살된 것까지 합하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임. 그가 주일학교때부터 사후 고난의 행군에 이르기까지의 행각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알카에다가 일으킨 테러만 못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김일성은 기껏해야 100년이 되었고 이슬람의 역사는 천 년이 되는데 그 100년동안 천 년의 세월을 잡아먹었다는 입장. 물론 이는 우리가 회개해야 할 부분임.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지 못한 선조들의 과오가 기복주의신앙을 초래함. 그래도 그렇지 그에 비하면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카는 것은 신빙성이 없음. 통일교의 문선명도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로 생각함. 어찌되었든간에 본문내용은 고난 속에서 영적 방황을 하던 가운데있던 욥에 관한 설명이다.






“12 내가 바다니이까 용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13 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때에 14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래시고 이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15 이러므로 내 마음에 숨이 막히기를 원하오니 뼈보다도 죽는 것이 나으니이다 16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항상 살기를 원치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것이니이다 17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18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19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20 사람을 감찰하시는 자여 내가 범죄하였은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로 과녁을 삼으셔서 스스로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21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하여 버리지 아니 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부지런히 찾으실찌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욥 7장12~21).



재산과 아들 모두를 잃은 욥. 하나님을 원망하여 자신이 바다의 용이냐고 따지듯이 부르짖음. 이 모든 게 꿈이라 생각하고 하나님이 욥에게 꿈을 통해서 역사케 하려는 것으로 생각함. 그러나 정작 자신은 두려움이 해일처럼 몰려옴. 결코 꿈이 아니었음. 현실을 인정한 욥은 숨이 막힐 지경으로 죽고싶은 심정까지 듬. 그것은 살고픈 마음이 추후도 없어짐.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 시시각각 권징받고 시험받는 것 같아 자신에 환멸을 느낌. 자신을 놓아달라캄. 하나님을 감찰자로 봄. 자신이 범죄를 저지른 것이 하나님께서 해가 되느냐고 외침. 어찌하여 자신을 표적삼아 짐을 지우게 하시냐 함. 스스로 흙으로 돌아가려고 한 욥.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 나이 마흔. 20세 때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부름받지 않았음을 깨달음. 가정형편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개강을 했음에도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수 밖에 없었음. 당시 어머니와 함께 학교와 가까운 교회를 섬겼으나 다원주의 성향이 강함. 그 교회를 13년 간 출석하였음. 따라서 복학에서 편입하기로 생각을 바꿈. 독학하기에는 한계를 느낌. 아직 젊은 패기로 배움에대한 목마름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현재의 상황을 말씀 안에서 이해.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음.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음.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있는 것임. 세상의 연합. 헤롯과 빌라도가 하나 되어 그리스도를 박해. 둘은 원수 사이. 그런데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에는 하나가 됨.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임. 세상과 이방종교가 연합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함. 이슬람과 공산주의가 연합하여 기독교인들을 탄압함. 사실 이슬람과 공산주의는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이 물과 기름 사이. 즉 구소련의 침략을 받은 바 있는 아프가니스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이 반소성향의 나라들이었음. 구소련 몰락의 원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이 공조하여 석유가격 떨어뜨림. 석유수출로 먹고사는 소련경제는 공황상태에 빠짐. 그런데 지금은 이 나라들이 공산주의국가들과 친함. 이란,북한,이라크,베네수엘라가 대표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 지도층을 보더라도 여야가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라도 세비인상 같은 밥그릇 챙기는데 한목소리 냄. 예나 지금이나 기독교의 수난은 있기마련.




솔직히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님. 2020년 이슬람이 국교가 될 것이라는 설. 기독교를 박해하는 언론의 연합. 좋은 건수라도 되는 듯이. 그 예로 문형진의 통일교,이만희의 신천지,이재록의 만민공동회,안상홍의 안증회,박윤명의 천부교,지국호(통신명:사천왕)의 반기련,이드의 종추련 등 이단과 안티기독교의 기독교 파괴세력의 결집이다. 신천지는 기성교회의 추수꾼 활동으로 신천지화된 교회가 있음. 통일교는 최근 기존의 10만명에서 20만명으로 증가 추세임. 문선명의 자서전 영향으로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 서평을 단 한 누리꾼은 "이렇게 훌륭한 분을 왜 비난하느냐"며 기독교인들을 성토하는 분위기. 한국교회는 내가 신학생 시절인 90년대 초반에 1300만명의 교인 수를 자랑했으나 지금은 600만 명 안팎으로 그 수가 급격히 줄고 있음.




그 원인이 IMF라는 희대의 경제난으로 인한 고환율도 선교사 파송이 중단되고 많은 교회들이 제정난으로 문을 닫았기때문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전세를 전전하던 경향교회는 한파가 몰아치던 98년에 새 성전을 건축함. 이는 하나님의 은혜임. 예수님도 미리 말씀하심. 세상이 미워하는 이유.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에.

세상에 속했다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심. 그러나 요즘은 많은 교회들이 세속화 된 느낌. 위기 속에서 지키시고 도우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는 것임.






우리를 보우하사라는 기도가 필요. 우리를 지켜봐달라는 기도. 내게도 이 기도가 얼마나 간절한지 모름. 하나님이 지켜봐주시지 않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음. 사단의 역사를 차단할 수도 없음. 경제위기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나태한 우리는 벌써부터 흥청대고 있음. 그 결과 신종플루라는 재난을 초래함. 유럽발 금융위기로 코스피 지수 1560선으로 추락함. 새해들어 1700선을 회복하였으나 엎치락 뒤치락 불안요인 곳곳에서 징후가 보임. 무역수지 적자로 돌아섬. 소비자 물가 4%대에 재진입. 국제유가, 다시 베럴당 80달러대에 근접. 환율도 급등하여 리먼 부라더스의 파산 전후의 상황이 우려되고 있다. 여론이나 지표마다 경기가 회복되었다고 으스대는 입장인데 국가채무 400조에 예산은 290조원이므로 경기가 회복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반대로 국가예산이 400조원이 되고 부채가 290조원이면 경기가 회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보면 경기회복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기복신앙일 수 있다.



오늘날에 비해 조선시대의 행복지수가 월등히 높았음. 세계적으로도 소득 10만달러의 아일랜드,덴마크,두바이,사우디아라비아보다 100달러 미만의 방글라데시,파키스탄이 행복지수가 높다. 태초의 인류는 농사일만이 주어졌으나 점차 그 가치가 시라지고 편하고 쾌락을 즐기려는 인류가 등장함. 기독교의 모태였던 유럽의 교회들은 대부분 이슬람 사원 내지 나이트 클럽으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현실은 경제위기라기보다 윤리적위기,영적위기라고 봄. 그렇다고 경기불황이 지속되어 고환율로 선교비 지급이 끊기거나 개척교회 목사가 자살하는 일이 발생하게 할 수는 없다. 5년 전인가 30대 개척교회 목사가 생활고를 비관해 사모와 두 아이를 데리고 동반자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으로 인해 반 기독교 정서가 확산되기도 했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일수록 행복지수가 높은 통계가 나온 이상 경제적인 동향은 하나님의 뜻임을 인정해야 한다. 아담과 하와가 활동하던 시대는 시대상으로 구석기시대였다.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은 직후 점차 행복지수가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직접 손으로 땅을 일구는 것이 고되자 도구를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신석기 문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끝없이 시도되고있는 바벨탑들의 허상.



에덴동산이 있던 에티오피아는 세계 최빈국으로 가장 많은 원조를 받는 나라가 되었으나 행복지수는 세계 최고임. 대게 원조로만 연명하는 나라들은 훗날 세계 최대의 고채무국이 됨. 그야말로 악순환의 연속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언젠가 잘 살 수 있다는 기대감때문도 아니고 나라 전체가 가난하기때문에 계층간의 위화감이 없기때문도 아니다. 그런 나라들 중에는 빈부격차가 선진국들보다 높다. 원시생활수준도 못한 삶을 사는 빈민층이 있는 반면 지도층들은 기차인지 자동차인지 구분되지않는 리무진을 타고 양 옆에 고급 위스키들을 진열한 아방궁에 살며 환각이나 주색잡기에 여념없는 삶을 사는 것이 공존하는 나라이다.




이상철 형제. 속히 안정된 직업을 갖도록 해 주소서. 이것이 기도 제목임. 우리 모두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함. 지인들의 오판, 알바나 취업으로 수입이 들어오면 복지수당지급이 끊어지기에 구직을 하지 않으려고 알고 있음. 통장을 두 개 소유하고 있어 복지수당이 나오는 통장이 아닌 다른 통장을 이용하면 됨. 농협과 국민은행 것을 따로 사용하고 있음. 장애인이라고 받아주지 않는 것인데 말임. 또 한가지는 13년도까지 대출금 상환. 이는 직업을 갖게 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통틀어서 기도제목은 이 한가지뿐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전도에 목숨을 거는데 하나님이 나머지 부분들을 책임져 주심. 욥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대꾸함.





욥은 부자였기때문에 그의 처지를 알고 후원이 들어온 것이라고. 성경에 없는 말. 단지 추측에 의해 생각하는 것. 자신의 생일까지도 저주했던 욥. 하지만 말년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 흙으로 돌아가려 했던 욥. 만일 욥이 그것을 실천했더라면 욥의 말년은 실패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물론 영적 침체를 겪은 상황에 있었음. 140년을 살고 영원한 안식처로 감. 이처럼 영적 침체를 겪던 욥은 회심하는 자세로 기도를 중단하지 아니함.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는 아내의 부추김에도 신앙의 자세를 잃지 않음. 위기속에서 드린 기도는 무엇보다 뜨거움. 아울러 어떠한 유혹과 핍박이 몰려와도 주님만을 바라보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 눅18장 1~8 이상철 10/09/28 [11:06] 수정 삭제
  “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장1~8절).




사울을 피해 도망다니던 다윗은 동굴 속에서도 생활하였으나 곧 사울의 병사들이 수색을 해오자 다른 곳으로 피신한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산골에서조차 정착하여 산다는 것이 보장되지 못한 그의 삶이었다. 당시 다윗을 따르는 병사들은 하나같이 힘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다윗 때문에 그의 부모 형제들도 함께 고생하고있는 처지였다. 때문에 다윗은 이스라엘 땅에서 살 수 없다고 판단한 뒤 블레셋으로 떠남. 그러나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나라였는데 그렇다고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나라로는 피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사울왕이 다윗의 인도를 요청할 경우 기꺼이 응할 것을 우려해서이다. 반면에 블레셋과는 적대적인 관계였기에 사울왕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다윗이 피신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래서 블레셋왕이 다윗을 알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장수였던 골리앗을 물멧돌을 이용해 물리친 일도 있었다. 그러니 블레셋 입장에서는 다윗이 달가울 리 없었다. 그런데 또 다시 피신한 곳이 골리앗을 물리친 그곳이었음.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블레셋왕은 다윗을 받아들이고 시글락에 있는 성으로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왠일인지 다윗을 신뢰한 블레셋왕 아기스는 다윗에게 이스라엘과 사울왕을 공격하자고 제안함. 이에 응한 다윗은 그만큼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블레셋의 방백들이 다윗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감정이 복받친다고 다윗을 향해 돌을 들고 있던 상태임. 그렇게 다윗은 고국에서나 타국에서나 제대로 인정을 못 받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 신세가 되었는데다. 머물 집들은 불 타버렸고. 아내와 자식들은 포로로 끌려갔고 자신이 사랑으로 보살펴준 사람들은 돌로 치려하고 하니 그야말로. 다윗은 정신이 나가든지, 절망에 빠지든지, 두려워하든지, 자포자기를 하든지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보고 있으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었고 그럴수록 기도를 드렸다. 다윗은 최악의 상황에서 도우실 수 있는 분이 오직 하나님 뿐임을 알고 기도한 것이다.




문득 나의 외할머니의 사연을 상기해 본다. 6.25동란을 겪은 뒤 교회를 떠난 이유는 오늘날처럼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거나 성경교리를 부정했기때문이 아닌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남편과 부모와 남매들을 비론한 친인척들이 모두 공산당의 사냥감이 되었으니 말이다. 기도는 중단했고 집에 남아있던(물론 그때 이미 다른사람들이 들어와 살고있었다고 함) 성경도구를 소각해버렸다. 인천에 교회를 건축할때 가장 많은 작정을 하셨는데 그러한 오해는 없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이후 외할머니는 통금이나 훈련싸이렌소리를 공습경보로 착각하기도 했으며 야경꾼들의 복장조차도 인민군으로 생각하기 일쑤였다. 당시의 인천에서는 드물게 요트를 소유하던 부호였던 집안의 5남2녀 중 맏이였던 외할머니는 세 자녀와 함께 성장해야만 했다. 아마도 외할머니께서 하나님께 의지하여 절망과 두려움을 극복했으면 나는 신학교를 자퇴하지 않았을 것이며 보다 안정된 가정환경속에서 공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쳐서,혹은 응답이 없다고 기도하는 일도 거부하고 싶을 때 오히려 더 기도해야 한다. 그것이 승리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드리는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아마도 사서 고생할 나이에 풍족한 환경속에서 펜만 굴리며 살았기에 세상살이의 한 단면을 경험하라는 뜻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던 내 자신을 회개하기도 했으나 마귀는 교묘히 은신하고 있었다. 초등학교다닐 나이에 새벽3시면 일어나 고된 농사일을 감당했던 정주영도 훗날 한국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중학교때부터 집을 줄여가기 시작했어도 고등학교 과정은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신학교 재학중이던 90년대 초 집안사정은 더이상 내려갈 곳도 없을 만큼 어려워진 상황이 되었다. 결국 학교를 자퇴할 수 밖에 없었고 복학의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편입할 생각으로 바뀌었다. 30대가 되었어도 나의 소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자리를 색출한 결과 활동한 곳이 인형극이었다. 그런데 수입은 지금의 복지수당수준도 되지않았고 부업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결과 인터넷신문 시민기자였다. 그래도 이에 미치지 못하였는데 그때는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복지카드와 수당이 지급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마저도 순탄치 않았고 불과 1년 새 두 가지 직업을 모두 잃고 말았다. 모두 경제불황이 원인이었다. 내가 복지카드와 수당을 지급받기 시작한 것이 2006년도 부터였으니까 그것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 무렵은 내 생애있어 최악의 순간이었으나 그나마 지탱하던 수입원마저 사라졌으니 더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감히 시도하지 못한 것은 자살이 죄라는 것을 생각해서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신다. 만일 어떻게 주시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이 믿음없는 사람일 것이느니라.



그런데 그것으로 끝난것이 아니었다. 부천으로 이사오면서도 여러 번의 이사를 해야만 했다. 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던 즈음에 이모님의 아들이 마누라가 별거중이라는 것이었다. 아들이 셋이나 있는데 장남은 유학중이고 차남은 군대가고 삼남은 지방대학에 재학중이라 기숙사생활을 하고있었다. 그래서 방이 남아있다는 말에 부모님은 그의 집에서 세를 살기로 하고 이삿짐을 꾸렸다. 그런데 이삿날 전야에 연락이 왔는데 마누라가 재결합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삿날 당일 부모님은 발이 부르트도록 전국을 다니며 집을 알아보았다. 마침 집을 비워야 할 시간을 앞두고 소사동에 빈 집을 구한 것이다. 당시 우리집은 12월에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에 당첨되어 입주할 예정이었는데 3월에 기존에 살던 집이 만기가 된 셈이다. 그러나 임시로 거처한 집에서도 나머지 계약금을 마려하느라 골몰했는데 결국 대출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현재 살고있는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다. 20평 정도 되는데 그것으로 모두 이룬 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1400만원 가량을 대출받았는데 도져히 갚지 못해 4년을 더 연기하였다. 때문에 어머니는 계속 일을 나가시고 복지수당으로 어느정도 충당하고 있으나 여전히 제자리다. 만약에 끝내 갚지 못할 경우에는 판자촌에라도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해결되었다 싶으면 또다른 문제가 닥치니 그야말로 마귀의 집요한 방해공작이 아닐 수 없었다. 아직 기도의 응답이 없지만 하나님은 마귀를 물리치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머니께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때문에 고난을 주신거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물론 하나님은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을 주신다고 했다. 우리의 고난이 예수님이 받으셨던 고난에 비할까 싶지만 말이다.



이런 이유로 나 역시 영적침체를 경험했는데 그러한 기간이 다소 길었던 것 같았다. 그러한 생각은 성경을 보면서 안정을 찾곤 했는데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그러면 보고 또 보고 마음이 안정될 수 있을때까지 본다. 나름대로 안정을 되찾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기도 하는데 그것이 엿장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실제로 하나님을 만나고 생활의 안정을 이룬 기독교인물의 예를 들어 본다. 김형직-강반석 부부가 대표적인 사례로 강반석의 선친인 강돈욱은 창덕학교 건축에 가담하면서 초대 교장으로 부임한다. 창덕학교 교장의 딸로 어느정도의 위치에 이른 강반석은 마찬가지로 같은 지역의 농노출신이던 김형직과 만나게 된다. 성인이 되어서 고등교육을 받은 강반석은 김형직과 결혼하였고 집사임직을 받는다. 그즈음 김형직도 시무장로가 되었는데 그가 32살에 소천했으니 20대의 나이로 장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시무장로는 말 그대로 봉급을 받으며 봉직하는 것이다. 당시 송산교회는 평양에서 가장 크고 교인수도 많았다. 그래서 제법 많은 사례비를 받으며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나 이들 부부는 나라를 빼앗겼는데 교회안에서 편하게 신앙생활만 할 수 없다며 독립운동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김형직은 독립운동을 하느라 두 차례나 옥고를 치르고 가석방된 지 얼마되지 않은 해에 공산주의자의 손에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리고 7년 후, 강반석도 뒤따라 갔는데 우연히도 장남인 김철주도 모친이 소천하고 3년 후에 그마저 소천하였다. 이들은 모두 고난주간마다 40일간 금식기도를 하기도 했는데 예수님께서도 40일간 광야에서 금식기도를 했기때문에 자신들도 그의 못미치는 금식기도를 할 순 없다는 취지에서였다고 한다. 그래서 배고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적응력이 강하다고 했는지 나의 외증조부님은 10일밖에 금식을 못했다고 하니 이 부분에서는 그분들이 한 수 위였다고 볼 수 있었다.



이는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 기회였던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기를 낸 다윗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믿었던 것이다. 예수비전교회는 내가 잠시 외도했던 교회의 목사님은 목회활동 외에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계셨다. 안희환목사님인데 인터넷신문 기자로도 활동하셨고 역시 시민기자활동을 통해 알게 되었다. 목사님은 어린시절 판자촌에서 살았는데 충남 서천출생으로 7살 때 경기도 광명읍(당시 행정구역1)으로 이사왔으니까 초등학교때부터 판자촌에서 30살이 될때까지 살았다고 함. 나를 약간 닮은 듯 한 목사님인데 나와 두 살 터울인 안 목사님은 초등학교시절 판자촌에서 살때 나는 아파트(35평)에서 살았으니 그야말로 천지차이였던 셈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 초등학교때의 안 목사님은 지금의 내 처지가 되고 안 목사님은 나의 초등학교때의 상황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주눅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중학교때 천막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이후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 교회(성민교회) 전도사가 되었고 부교역자로 있다 예수비전교회(초기에는 신서교회라는 이름으로 하다 개명)를 개척 함. 쥐가 부흥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으나 다양한 활동으로 지금은 지교회를 세우고 성전을 짓는 등 중형급 교회로 성장함. 여기까지 오기까지 부업을 하거나 기고활동을 통해 수입을 얻은 결과이기도 하지만 꾸준히 기도하고 믿음으로 맺은 열매였다.



다시 본문으로 넘어간다. 모든 것은 잃은 것 같은 상황에 놓인 다윗은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하기 시작한다. 그 때문에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야만 했다. 타국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괄세받는 신세였으나 그것이 결과적으로 다윗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게 된다. 다윗은 후에 7년 간 유대의 왕이 되었고 그 후에 다시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된다. 만약 다윗이 블레셋왕 아기스를 따라 전쟁터에 나갔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싸웠더라면 다윗은 절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임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블레셋 방백들의 불신임을 당한 것이 후에 다윗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글락은 블레셋왕 아기스가 다윗에게 준 성읍에서 기반을 잡았을 수 있었다. 이제 편안하게 먹고 살 수 있는 정도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나 실상 다윗은 그곳에 눌러앉아 있어서는 안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기때문이다. 그가 일할 곳은 시글락이 아니고 헤브론과 예루살렘이었다. 시글락에 머물러 있던 중 시글락이 불 타 버림으로 그곳을 떠나야 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덕분에 자신이 있어야할 이스라엘 땅을 다시 회복하게 된다. 시글락이 불타버린 덕에 어쩔 수 없이 이동해야 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복이 될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느뇨!




이러한 상황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막막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한 줄기 빛으로 갈 길을 비춰주시는 것인줄로 아뢰오. 그렇게 하나님은 우연인 것처럼 다윗으로 하여금 아말렉을 뒤쫓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다윗은 그 기회를 붙잡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우연인 것처럼 기회를 주신다. 우리는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께 매달려야 한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아말렉이 시글락을 불태우고 처자식들을 붙잡아가지 않았다면 다윗은 아말렉을 공격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처자식이 그곳으로 잡혀갔으니 눈물을 머금고 쳐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말렉 전투의 승리를 통해 왕이 된 다윗은 이후 많은 재물을 얻게 하시고 그 재물로 지지기반을 견고하게 하는데 쓰도록 하시게 했다. 최악의 상황은 곧 영적으로 훈련되게 하심을 생각토록 하시는 것이시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약2장 1~9 이상철 10/09/28 [11:10] 수정 삭제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 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저희는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하지 아니하느냐 8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약 2장)



야곱이 기록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제. 그리스도앞에서는 만민이 평등하다. 회당은 예배장소를 가리킴. 초대교회에 출석하는 신도들 중에는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차람은 한 사람과 누추한 차림으로 출석하는 사람들이 있었음. 이를 보고 차별하는 사람들. 지도층의 위치에 서 있는 자들이 이것으로 구분하는 것은 악한 생각으로 여기심. 가난한 사람들을 택하신 예수님. 농사꾼이던 바울,어부였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부름받음. 모두 약속한 나라로 유업을 받음. 순교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음.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외모로 보고 판단하지 않으심.



외모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떤 조건을 말하는 것임. 세상에서는 이런 조건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돈 많으면 대접받고 살기 좋은 세상 즉, 지상천국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느니라. 학력이라고 하는 조건. 학력이 좋으면 아무래도 더 인정을 받을 것으로 암. 모델,국회의원,언론인,의사집안이라거나 연대 나왔다카고(14연대 나왔음). 이처럼 세인들의 주목을 받으려는 생각. 인물도 조건이 됨. 잘 생기거나 예쁜 경우 그것만으로도 인정을 더 받을 수 있음. 1990년대 신세대보고-어른들은 몰라요라는 청소년드라마에서 스응질 드러버도 얼굴이 예쁜 여자가 좋다던 고딩 탈렌트의 대사가 현실을 반영해주고 있는 셈이다. 남자들의 신부감 제1순위는 외모라고 한다. 반면 신랑감 제1순위는 유머감각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하고 싶어도 내성적인 성격때문에 잘 안 되기도 함. 그런데 그것은 몇 십년 전의 조사결과다. 지금은 돈 많고 명 짧은 남자를 선호하는 것 같음.



이 말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조건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의미임. 조건에 따라 더 잘해주거나 반대로 무시하지 말라는 것임. 진정으로 구원받았기에 행위 혹은 열매가 맺히고 자라는 것이지 행위를 통해 구원받는 것이 아님. 오직 믿음이 구원의 길임.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할 때 여기에는 세상의 어떤 조건들이 들어가지 않음. 오늘 본문의 표현에 의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외모를 보시고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임.




돈이 구원의 조건이라면? 구원받을 사람 없음. 이런 것으로 차별하지 않으시니라. 이렇게 차별없이 구원을 받은 우리이기에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람을 외모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사에있어 돈으로 면죄부나 구원의 목적으로 한 전례가 있었다. 중세 유럽의 교회들이었는데 당시 로마 카톨릭이라는 이름은 국가를 좌우할 만큼의 권위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지난 1000년간 가난한 유럽인들을 바보 병신취급했던 교황청이 위기에 몰렸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였다. 루터를 중심으로 한 종교개혁의 횃불을 든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 한끼조차도 걱정하던 백성들이었다.



그러나 부자들은 이러한 운동에 동참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골적으로 정부와 교회편을

들어 종교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을 탄압하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개혁은 성공적이었고 개신교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비록 그 과정에서 1만 명에 가까운 신자들이 희생되었으나 만약 이보다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왔거나 루터의 힘이 한계에 부딪혔더라면 개혁은 실패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피땀흘러 모은 재산을 날렸을 것이다. 이처럼 힘없는 사람도 힘을 합치면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준 것이다. 가난때문에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던 루터가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일을 성사시킬 수 잇었던 것은 하나님을 확고하게 믿었기 때문이다. 독학을 통해 성경을 제대로 판단하여 당시의 교리가 잘못되었음을 인식했기에 교황에 반기를 들 수 있던 용기를 낸 셈이다. 비록 1000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쳤으나 성사시킬 수 있었다.




부자의 겉모습. 나이에 비해 어려보임. 압구정동에 사는 43세 여성은 외모,목소리,피부,정신이 17살 정도로 보인다고 함. 미혼으로 그러한 조건이면 남성들이 따를텐데 여성의 입장으로는 그러한 조건이면 아쉬운 것 없기때문에 결혼하지 않는다고 한다. 에쿠스를 몰고다니고 직접 운전을 하는데 워낙 검소하여 기사를 채용하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은 아니다. 등을 덮은 긴 생머리에 쌍커풀 진 두눈과 초컬릿 복근(화이트 초컬릿)등의 조건을 지닌 40대 미혼여성이 압구정에 거주하고 있다. 대략 172cm의 신장과 55kg정도의 체중이라고 함. 이에대해서 이상형이 아니냐고 할 수 있으나 실제로 그런 여성이 산다고만 알고 있음.



농경군주시대에 계급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지와 복장을 비롯한 차림새에서 볼 수 있었다. 양반이라고도 불리는데 주로 갓을 쓰고 비단옷을 입고 고무신을 신으며 뒷짐을 지고 걷는다. 반면 천민계층은 너덜너덜한 고쟁이 차림에 두건을 두르며 짚신을 신은 모습인데 주로 농민들이나 머슴들이 그러한 복장을 했다. 오늘날에는 어느정도 평등화되어 빈부의 복장이 그렇게 차이나지 않음을 느낀다. 물론 요즘도 복장에따라 차이를 보곤 한다. 우선 노동자와 사장 또는 셀러리맨의 복장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머리에는 석유(?)를 바르고 낙타이를 멘 정장차람은 주로 셀러리맨의 차림이고 노동자들의 복장은 대충 입은 듯 한 인민복 비스무레한 차림이다. 그와 걸맞게 이미지 역시도 판별하는 풍토이다.



부자에 대한 대우. 회당에서 생기는 일. 회당은 유대인이 예배드리는 장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돌아보아.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초.중.고교때는 물론 신학교때도 맨 앞자리에 앉았다. 사실 초등학교때부터 안경을
가난한 즉 친구가 없다 잠14장 20 이상철 10/09/28 [11:14] 수정 삭제
  "가난한 자에게는 이웃의 미움을 받으나, 부요한 자에게는 친구가 많으니"(잠14:20)



많은 신하와 후궁을 거느리고 지인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왕족들의 삶입니다. 솔로몬은 잠언서를 통해 당시의 부자들의 삶과 인맥을 기록하었습니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이스라엘도 빈부의 차이가 만연했음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부자들에게는 무시당할 일도 인정받음을 봅니다. 북한체제가 저모양다리임에도 여전히 우리나라사람들 가운데서나 단체에서는 북한이 여전히 지상천국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북한공산정권을 세운 김일성의 말을 신봉하기때문입니다. 이미 죽어서 흙이 된 아니,금수산 궁전에 신주단지모시듯이 안치되어있으니 썩지는 않았을런지도 모릅니다. 여하튼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의 수십년 전의 달콤한 말을 오늘날까지 곧이 곧대로 믿고 있는 추종자들이 존재하는 셈입니다. 왜이렇게까지 역사속으로 사라진 사람의 말을 신봉하고 믿는 이유는 김일성이 부자였기때문입니다. 반면 그를 키워낸 독립유공자 겸 한국교회의 스승 김형직-강반석부부는 그의 그늘에 가리워져 있는 상태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진심으로 김형직 부부의 신앙심을 존경했으면 과학기술대 교정에 김일성 영생탑이 아닌 그분들의 신앙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어야 했습니다. 젊은세대들은 6.25와 월남전을 통해 공산당의 만행을 자료나 증언을 통해 알게 되었음에도 '어른들은 거짓말쟁이'라며 참전용사들을 불신하고 있는 세태입니다. 반면 국군과 미군의 오해로 인해 발생한 노근리,월남 고자이마을 양민학살사건은 쪽집게처럼 파헤치면서 말입니다.



가난했던 시절 당시 풀죽조차 제대로 먹지못해 자원입대한 사람들이 많았으니 당시의 장병들 중에는 대부분이 궁핍한 삶을 살았던 때였을 것입니다. 그것이 참전용사,귀순용사들에 의해 낱낱히 밝혀지고 있음에도 현 세대들은 그들의 말을 곧이 듣지않거나 무시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여전히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하고 있는 세력들은 그보다 더한 사실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저들은 '수구꼴통들의 조작'으로 치부해버리기 일쑤입니다. 가진것이 돈 밖에 없다는 통일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 목사였던 박준철 목사와 문선명 며느리였던 홍난숙씨의 증언으로 그 실체가 들어났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후로 통일교신자가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신자가 늘고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통용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두고 반영하는 듯 합니다. 그의 저서<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는 2009년도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5위까지 오르던 서적입니다. 물론 기성신자들 가운데에도 여전히 통일교에 적을 두고 문선명을 따르는 이들도 많은데 통일교를 섬기는 사람들 중에는 하루 한끼조차 걱정하는 빈민층들도 많다는 점입니다.



강부자교회로만 알고있는 소망교회 교인들 중에도 구룡마을 판자촌에 사는 사람도 있는것처럼 말입니다. 문선명이 합동결혼과 영혼구원이라는 명목으로 1억씩 거뒤들인다는 소문이 있는데 부자들이야 1억 정도는 껌값으로 여기지만 하루 한끼도 걱정해야하는 사람들은 단군때부터 대를이어 모아도 구경도 할 수 없는 거금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통일교의 얄팍한 교리에 넘어가 빚을 내어서라도 그만큼의 금액을 바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합동결혼식을 치른 가정들은 이후로 파탄난 가정이 속출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사연을 접한 불신자들은 '거짓 증언'으로 몰아세우고 있음을 봅니다.



특히 웃기는 사실은 문선명이 영어를 할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는 슬하에 외국인 자녀도 두었는데 전혀 대화가 없었다고 홍씨는 회고하였습니다. 기본적인 영어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다양한 언어를 구사해야하는 세계 각국을 다니며 사람들을 접할 수 있냐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동시통역사를 두었기때문에 정작 자신은 영어가 필요없었을 것이기도 합니다. 이를 본 안티기독교는 사기꾼은 문선명이 아니라 박준철과 홍난숙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물론 불신자들 가운데에도 통일교를 기성 기독교보다 다 혐오하고 암적존재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 모두 기독교에 의해 나눠진 하나의 종파라고 우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통일교라는 이름이 들어선 것은 1954년으로 이때는 장로교가 여러측으로 나뉘어진지 얼마 안된 시기여서 그러한 오해를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문씨가 월남하여 세운 것이 청파교회였고 원래는 장로교단이었습니다. 그의 선친은 장로교신자였습니다. 문선명은 일제의 횡포가 절정에 달하던 1920년 지금은 북한땅인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자서전을 보면 그의 어린시절은 자연을 벗삼아 평화로운 삶을 유지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민초들의 삶은 그야말로 전쟁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총칼로 싸우는 전쟁보다 더 처절했던 싸움이 가난과의 싸움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시대에 평화운운한 것을 보면 문선명의 집안이 당시에도 자산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자서전에도 당시 독립운동가들이나 그 자손들에 의해서 문씨 일가로부터 욱립운동이나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증언이 없었습니다. 동포들이 뒈지든 말던 즈이 식구들과 자손들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것입니다. 문선명이 그랬고 김일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봉건왕조 이후의 공화국체제인 대만도 아들 장징궈에게 총통직을 위임한 장개석도 명문가 출신이었습니다.



통일교회를 이끌 후계자에 그의 아들 문형진씨가 이어받았는데 대게 천성에 부자였던 사람이 권력이나 재산을 물려받는 경우를 봅니다. 현대사회에도 많은 재벌기업의 총수가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줍니다. 문형진씨는 매일 새벽2시에 일어나 하루일과를 시작하는데 부지런하다는 것이 그나마 인정받는 듯 합니다. 북한의 김정일도 새벽3시에 후방 군부대를 불시에 방문한다고 합니다. 좌우지간 문선명씨는 '세계평화통일신령협회'라는 간판을 달고 통일교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문선명이 영어를 못함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영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돈의 힘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북한의 김성주도 중학교 학력뿐이었으나 외교술은 그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탁월함을 보였던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중학교 과정조차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중도하차 했습니다.



중2때 부친 김형직이 조선공산당원에게 암살을 당하면서 모친과 함께 만주로 줄행랑을 쳤기때문입니다. 그나마 중도하차한 중등교육은 역시도 그가 관심밖이던 기독교교육(그가 재학했던 중학교는 미션학교인 숭실학교였음)이었기에 더욱 그랬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문선명은 일제 말과 해방 후 공산정권이 들어서 두 차례의 옥고를 치른 바 있는데 그 혐의는 혼음행위였씁니다. 그러다 6.25때 북진하던 UN군에 의해 출소한 그는 임진강을 건너 자유대한으로 넘어 온 그는 월남한지 얼마 안된 시기에 청파동에서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남한에 정착한 뒤 17살의 여고생이던 딸 뻘되는 한학자와 나이 41살로 결혼에 골인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문선명은 정통교단에서 성장하였지만 이미 그는 김백문이라는 또다른 이단교주 밑에서 수도를 받은 전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동료 원생들 가운데에는 나운몽과 박태선도 있었는데 그들도 훗날 각자의 교단을 세워 이단으로 규정되면서도 그들만의 길을 걸었습니다. 박태선은 문선명보다 더한 케이스였다고 볼 수 있는데 그는 초창기만 해도 에수님을 신앙하는 듯 하다 교세가 성장하면서 1980년 정월 초에 한 집회에서 예수님은 마귀,하나님도 마귀라며 돌출발언을 하면서 신자들이 그를 떠나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신도들이 천부교를 떠났다고 천부교가 몰락한것도 아니었습니다. 현재는 그의 아들인 박윤명이 교회를 세습하여 이끌어가고있으며 여전히 많은 신자들이 박태선을 추앙하고 하나님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그는 1970년대 부산 기장에 섬유공장을 차려 무급봉사로 신도들을 혹사시키고 있을때 아들은 수영만에서 요트를 타며 윈드서핑을 즐겼다고 합니다.



이처럼 국가나 개인,단체를 막론하고 빈부의 차이는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불안정하여 긴축을 하고있음을 봅니다. 그런데 중국은 긴축정책을 한다면서 정작 북한에는 대규모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붕괴되려고 발악을 해도 붕괴되지 않는 이유는 곳곳에 숨은 후원자들이 있기때문입니다. 20세기 말 북한은 거의 붕괴직전까지 도달했으나 혈맹인 중국의 부상과 우리나라의 대북 유화정책이 시작되면서 가까스로 회생하게 됩니다. 이는 망나니들이 대오각성하고 스스로 변화되기를 바란 차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김일성-김정일보다 더 근본적인 수령일인주의자라는 김정운이 개혁개방을 할런지도 의문입니다.



세계적으로 이슬람이 대세로 무슬림 인구가 기독교 인구를 추월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유럽과 미국의 교회들은 대부분 이슬람사원이나 나이트클럽으로 변신한지 오래라고 합니다. 영국인 선교사에 의해 우리나라가 근대문명으로 개화된 것은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나라가 그나라들을 다시 깨워야 할 차례인 것입니다. 이슬람은 돈이 많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브라함이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물려주었는데 이들 중 일부가 변절하여 자신들만의 종교를 결성했던 것입니다. 이슬람은 후세에 지지층이 떼거지처럼 모이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그만큼 이슬람 세력은 강대해지고 기독교는 쇠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물론 한국교회도 돈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교회들은 대게 이단과 사이비로 변질되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은 하루 한끼도 걱정할 정도로 궁핍하게 사역하고 있답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500명에 불과한 반면 바리새인들의 수는 6000명에 달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섭리대로 움직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동안에 상처준 사람이 있었다면 향후 상처가 없는 천국에서 보화를 얻고 영생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열 친구가 부럽지 않

습니다. 솔로몬이 많은 신하와 후궁을 거느리고 지인을 두었어도 하나님을 더 가깝게 만나기 위해 지혜를 구한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인들은 잠시 살아갈 이 땅에서의 친구가 아닌 영생하는 천국에서의 친구를 많이 사귀어야 할 것입니다
가난한 즉 친구가 없다 잠19장 4 이상철 10/09/28 [11:16] 수정 삭제
  (잠19:4)"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솔로몬은 무엇때문에 이러한 구절을 기록했을까! 왕궁에서 많은 신하와 후궁을 두고 백성들이 따랐던 그가 마친 사연인 양 개재한 이유가 있었기때문이다. 어느 날 솔로몬은 민생탐방에 나섰다. 같은 곳에서 또래인 듯한 아이들이 놀고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마치 빠숑쇼를 연상케하는 화려한 복장이었고 한 꽤죄죄한 복장의 아이가 골목에서 홀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솔로몬이 다가가 뭐하는 아이냐고 묻자 아이는 그대로 골목안으로 쫓기듯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솔로몬은 신하들에게 아이의 신변을 알아보도록 하였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그 아이는 고아라는 말을 듣게되었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재물과 권세가 많으면, 유치원 동창부터 대학교 동창(유학까지 다녀온 경우 외국인 친구도 많음)까지, 그리고 사돈의 팔촌까지도 연락이 오고 찾아온다. 뿐만아니라 TV와 언론매체등에도 소개되어 생판 모르는 사람도 펜이라며 찾아오게 된다. 더 나아가 외신에도 소개될 경우 세계 곳곳의 친국들까지 사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어떻게 하다가 세상이 바뀌거나(조선에서 일제로,일제에서 대한민국으로 바뀌었듯이 언젠가 대한민국 정치체제가 바뀌게 될 경우, 좀 더 구체적으로 김정운이나 탈레반에 의해 대한민국 국호가 바껴삘 경우) 전쟁 등 인재지변(人災地變)으로 사업이 망하거나 재물과 권세가 사라져 버리면, 주위의 아는 사람들의 발 길이 멀어지고 찾아가도 피하는 것이 세상만사인 것이다. 혼자인 사람이 처지를 생각해서 동정심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같은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친분관계를 맺으려 한다. 지나치면 극단적인 이기주의자가 되지만현실은 정반대의 상황으로 전개되는 기도 안 차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오프라 원프리가 그랬듯이 빈민으로 태어난 그는 친척들은 물론(사촌오빠에게는 아예 성폭행을 당했다고 함)이고 심지어부모님 등 가족들한테까지 멸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높은 지위를 얻어 돈방석에 앉게되니까 월드스타가 되었다. 핏줄에게까지도 핍박을 받던 그녀가 세계인이 알아줄 만큼 성장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돈의 힘이었음을 부정할 수도 없다. 그렇게해서든지 부자에게는 어제의 적이 동지가 될 수 있고 가난한 자에게는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다.

내가 지난해 3년만에 장애인 복지재단을 찾았을때의 일이었다. 2주 정도 숙식을 하며 직업훈련을 받았던 곳이기에 그만큼 안면이 있었을터임에도 나는 간사에게 인사를 건넸는데 간사는 무덤덤하게 눈만 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대충하였을 것이라 생각하고 재단을나섰는데도 간사와 마주쳤을때에도 그냥 무심코 지나가는 것이었다. 만일 내가 사회적으로 지위를 얻은 뒤 재단을 방문했을 경우 간사의 태도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하는 생각이다. 화려하다는 연예계를 보더라도 모든 이들이 그런것은 결코 아니다. 대조적인 연예인 입문기로 유명한 김혜수와 장자연을 예로 들어 본다. 20년 가까운 나이차이기때문에 예전의 연예계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연예인 접대행위는 오랜기간 이어 온 악습이었다. 자유당 시절에도 그와 같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김혜수씨의 집안은 대대로 귀빈가문이었고 때문에 순탄했던 신인시절을 보냈다. 반면 장자연씨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에 부모님을 여의고 홀로 생활해왔다. 장씨는 연기자 지망생으로 입문할때 소속사측에서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우라며 행사때마다 장씨를 동원하여 시녀로 이용한 것이다. 인형극단 시절 동료단원이 연기자 지망생이었는데 그와 같은 이유로 연예계를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세상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90년대 초반 미스코리아를 통해 연예계에 입문했던서정민을 기억한다. 당시 같은대회로 동기인 고현정씨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인기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5년 만에 돈으로 청탁한 사실이 들어나면서 연예계는 물론 방송가 전체에서 매장되었다. 그러지 않았어도 충분히 가능했을 외모와 실력을 겸비했으나 부모의 빗나간 돈자랑으로 인해 한젊은이의 인생을 곤두박질 시킨 것이다. 이후로는 그녀의 존재를 아무도 모른다. 결혼하여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고있다는 추측도 무성하지 않다. 그래서 아무리 억만장자일지라도 도가 지나치면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박한상 사건이 일어났을 때 온 나라가 경악한 일이 있었다. 기어이 사단도 생각하지 못한 죄악을 인류가 저지른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도 옛날 이야기가 되었는지 최근 그때의 사건보다 더 한 강호순 사건이 여론에 알려졌을때 그를 인권이니 뭐니 하면서 그의 펜카페가 생겼고 회원도 천여명에 달한 일이 있었다. 그렇듯 돈이 많으면 어떠한 흉악패륜범죄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세상이니까 말세라인을 넘어섰다고 하는 것이다.

이같은 사건은 이제 흔한 일이되어 보험금을 노려 어머니를 사고사로 위장해 살해하려하고 도박에 빠진 아들에게 유산을 물려주려던 어머니께 뽀롱나자 사회환원하겠다는 선언에 앙심을 품고 청부살해한 사건이 최근에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생활이 궁핍했던 가정이 아닌 백억원대의자산가들이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하였다. 멸시와 천대받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이신 예수님이 기독교인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세리란 요술공주 세리와 같은 사람 이름이 아닌 세무 관리의 준말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이들은 산 송장이나 다름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반면 저력있고 재산이 빵빵한 집안에서 자란 이들은 살아생전이나 죽어 흙으로 돌아간 뒤로나 변함없는 스포트 라이트를 받고 있다.

김일성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생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사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앙하고 있다. 심지어 그와 대적하던 한국의 목사들 조차도 그의 동상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꽃다발을 바치는 쇼를 보이기까지 했으니 말해 무엇하랴. 이렇게 지위가 높거나 재물이 많으면 대중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역사속에 기록 될 것이다. 이들은 죽어서도 국장을 방불케 할 정도의 장례절차를 밟는다. 많은 사람들이 애도하고 조문하는 등 호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반면 지구상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이자 직업인 농부의 세계를 보도록 한다. 농민 한 명이 죽었다고 국장을 치르거나 모든 언론사가 대서특필하지 않는다. 이렇듯 가장 거룩한 직업인 농부가 가장 천하고 무의미한 직업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나 별로 안 성경적인 직업인 영화배우 최진실씨와 두 전직대통령들의 장례식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요즘의 농사꾼들은 자녀들이도시로 이주하거나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가난한 자녀들이야 뵐 면목이 없어서 그런다지만 지위를 얻은 자녀들은 더욱 고향을 등지고 도시에 정착해삔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의 임종과 장례를 무심코 지나간다. 이렇게 가진것없는 나그네는 죽을때까지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필리핀의 도시 토박이들은 나라환경이 완전히 바뀌자 적응을 못하고 해외로 나갔다. 쌀을 수입해야 할 만큼 필리핀 경제는 산업화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백해성 목사님을 통하여 세운 농촌 미자립 교회 중에서, [당돌백 교회]가 핍박.테러,조롱,비방,멸시,비난을 많이당하고 재정은 고사하고 교인들이라곤 달랑 사모와 두 아들 뿐이었으며 생활도 궁핍하여 매우 어려웠지만,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라고 말씀하였다. 당돌백 교회가 교회 건물은 말 할것도 없었고 사역지도 초라하고 교인들이 오지않아 세상에서는 가난한 교회였지만, 예수님께서 영적인 신앙 상태를 볼 때 하늘에 많은 것을 쌓아놓은 부요한 교회라는 것이다. 백 목사는 2004년 과로와 영양실조로 인한 뇌출혈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었으나 입원비가 과도하게 체납되어 강제 퇴원당한 뒤 식구들이 직접 수발을 들고 있다. 세상에서는 교회도 초라하고 성도들도 가난하여 어렵지만 영적인 신앙을 잘하여, 하늘에 많은 것을 쌓아놓은 믿음에 부요한 교회와 성도들이 있는 반면에, 교회도 크고 교인들도 권력자와 부자들이 많아서 세상의 재물은 아주 많지만, 예수님께서 보실 때 하늘에 쌓아놓은 것이 없는 껍데기뿐인 교회 즉 믿음에 가난한 교회와 교인들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그렇지않은 교회도 있었긴 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교회를 랭킹하면 영락교회나 순복음교회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초창기의 대형교회는평양에 있었다. 1907년 평양대부흥회를 전후하여 성장한 평양 송산교회는 교인 수가 가장 많았고전대미문의 악인 김일성이 자란 교회이기도 하다. 1910년대 당시 인구비율로 볼때 조선인의 약 4분의 1이 평양교회 교인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세상에서는 지극히 낮은 자세로 임하였고 하나님 나라에는 아낌없이 바쳤던 것이다. 그의 선친이던 김형직-강반석도 교회에서 직분을 맡기 전까지는 빈농으로 외톨이였다. 물론 당시에도 본인들과 그의 친인척(김형직 외가와 친가, 강반석의 친가 모두 독실한 신자였다)들이 모두 교회를 섬겼지만 교회가 성장하기 전까지는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먹고 사는 일에 바빠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많지않았기 때문이다.그런 이들을 친정식구처럼 한자리에 모이게 한 곳이 평양교회였다. 그러나 해방 후 공산화되면서 교역자를 포함한 교인들이 어린이건 노인이건 가릴것 없이 몰살되었다.

그는 건국초기 수백만의 평양주민들을 학살했지만 그럼에도 그를 따르는 벗들이 많았기 때문에 두루 요직에 기용하고 국가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특정단체나 사람들에게만큼은 추앙받고 있는 김일성(김성주)가 아닐까? 자수성가한 선친덕에 각별한 애정을 받고 성장한 그는 두뇌가 명석하고도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성경에 대한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고 한다. 단지 어렸을때부터 너무나도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기때문에 더욱 새로운 이상을 찾고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였고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비록 천인공노할 죄악을 너무나도 많이 저질렀으나 자산가이자 권력자였기 때문에 죽어서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있고 추앙하는 것이다. 따라서 왜 빛이 되려는 사람은 고통받고 살아가고 악인은 승승장구하며 살아가냐고 징징거리는 경우를 본다. 하지만 그러한 자들은 사후에 큰 고난을 예비해두셨기때문에 이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많은 재물과 권세를 누리며 평안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어드렇게 보면 대형교회에서 자란 성도들의 믿음이 그모양다리라고 매도당할 수 있다. 평양교회 목사가 억만장자도 아니었고 순전히 타 지역 성도들의 헌신으로 성장한 교회였다. 사도 바울이 성경을 전하여 세운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도 예루살렘판 [당돌백]교회인 [서머나]교회가 있었다면 [순복음]교회급이던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었듯이 [서머나]교회는 교회가 작고 물질적으로 부족한 교회였다면 [라오디교회]는 교회가 웅장하고 교인 수도 많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서머나]교회가 영적으로 부요한 교회였던 반면 [라오디게아]교회는 영적상태가 그지 나
가2 이상철 10/09/28 [11:20] 수정 삭제
  그지 나
사2 이상철 10/09/28 [11:22] 수정 삭제
 
선의의 거짓말 악의의 거짓말 출1장 15~19 이상철 10/09/28 [11:24] 수정 삭제
  "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자와 부아라 하는 자에게 일러 16 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18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 이같이 하여 남자를 살렸느냐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출1장15~19)


출애굽시대에는 남아선호사상이 아닌 여아선호사상이 있었는 듯 하다. 애굽 왕이 히브리 민족의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에게 명령하여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남자와 여자를 구분해 조산토록했으며 남자거들랑 낙태를 시키고 여자아이면 그냥두라고 함. 그러나 히브리 산파들은 하나님 말씀을 우선시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남자 아이들을 살렸음. 이에 스응질이 난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들을 불러서 호통을 침. 곧바로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라고 말함. 이는 애굽 왕에게 당장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일. 그러나 산파들에게는 애굽 왕보다 더 두려운 존재가 있었으니 이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산파들은 사람인 애굽 왕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음을 봄. 낙태란 살인에 해당하는 것임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던 것이었드랬다. 그러면 성경속에서의 악의의 거짓말은 무얼까? 로마의 박해시대. 빌라도 총독앞에 선물려 온 예수님. 열 두 제자 가운데 묻는 총독. 이에대해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한 것. 자신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였음. 결국 예수님만 십자가에서 처형되셨음.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도 하나님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보다 악의의 거짓말을 많이하는 현실. 환율급등으로 인해 선교사들이 자살한 일이 있던 지난해. 물론 자살한 것이 옳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얼마나 극심하게 배를 곯았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에대해서 교회측에서는 환율때문에 선교비지금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거짓말이었음. 그때 상당수의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봉수교회를 지원했음이 밝혀짐. 같은시기 탈북한 당원출신의 증언. 심지어 김정운조차 남조선 예수쟁이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족속들이라고하는 말을 들었다고 함. 그럼에도 금년5월 또다시 그곳에서 평화기도회를 개최하려는 목회자들. 어찌되었든 작금의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하는 거짓말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 아니라, [가난한 신도들의 돈을 뜯어 자신들의 교세를 확장하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이라는 것이 자명하다. 반면 북한의 지하교회 교인들의 행보를 인용해 본다. 어떤 기독교인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발각되어, 북한의 보위부에 끌려갔다.

북한의 어느 지하교회 여성도가 보위부원에게 체포되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의 이름을말해주면 너를 풀어주겠다.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의 이름을 말해 봐라.”라고 했지만, “나는 알고 있는 기독교인이 한 사람도 없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이것은 선의의 거짓말이다. 결국 그 교인은 거꾸로 천정에 매달린채 발가벗겨 300도에 달하는 화롯불로 달군 채찍을 맞고도 기독교인 명단을 발설하지 않았다는 것. 악의의 거짓말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필자의 사연. 무려 10년을 방황하고 구한 직업. 장애인이라고 번번히 퇴짜맞던 아픈 기억임. 이것은 기독교계통의 직장도 마찬가지였음. 그런데 그동안에는 솔직함은 인정했음. 그런데 교회집사님이 운영하는 인형극 단원 모집을 보면서 신청하고 팀장이라는 사람과 면접을 보러 갔었다. 환경이 열악하다느니 단원들도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는 등 하여 망연자실한 채 돌아갔음.

나중에 알고보니 수상경력도 있고 방송에도 나온 경력이 있는 지명도있는 극단이었음. 결국 그 팀장이 나를 받아주지않으려고 거짓말한 사실이 뽀롱나서 몹시 언짢았음. 믿는 사람이 그러니 세상사람들의 거짓말은 어느정도이겠는가! 대중가요속의 거짓말. 거짓말은 김추자,DJ DOC,GOD,티아라 등이 불렀음. 한때 '거짓말'이라는 제목과 가사로 인해 금지곡이 된 일도 있음. 이렇듯 세상 아라에서도 거짓말을 인정하지않는데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짓말은 남에게 하는 피해를 주는 일. 그러므로 거짓말은 나쁜 것. 그런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나라가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있음. 그런 감언이설에 넘어가는 사람들은 주로 가난한 서민임. 지금은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음. 무속인의 거짓말. 오늘의 운세같은 것. 점술 내지 성명학 포함. 무속신앙에 빠졌다 기독교인이 된 사람의 이야기. 운세의 약 95%는 뻥이라고 함. 그래도 나마지 5%는 맞추는 게 아니냐는 사람들. 그것은 아주 사소한 경우임. 어~잡귀야 물러가라. 이를 일컬어 무당이라고 부름. 무당은 설탕이 없다는 뜻. 불교의 윤회설도 마찬가지임.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기억력이 낮기때문이라는 것. 그렇게 말하는것은 모든 중생들이 머리가 똘이라서 기억을 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음. 정치인들의 공약 중에 지켜지지 않은 것. 그것은 거짓말이었다고 보기에는 시각차가 있음.

이명박 대통령의 747공약. 거짓말인가?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속단하는 것이라고 봄. 아직 3년이 남았응께롱. 물론 이대통령의 후보시절은 그러한 공약이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었음.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세계11위로 10위권 문턱까지 도달해있었으며 수출 4000억불,1인당 소득 2만불,코스피지수 2000선,외환보유액 2500억불을 달성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문제는 국민들의 냄비근성.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어느정도 회복세를 보이고있다고 무분별하게 해외영행을 하면서 외화를 낭비하고있는 작태를 보이면서 경제적 쇠락을 정부탓으로만 돌리는 현실. 사회의 거짓말 사례 중 필자가 경험한 구직에 관한 거짓말을 보충하면 인형극을 찾았을때 청담동에 있는 제과점에서 면접이라기보다 우선적으로 팀장과 상담을 해보았음. 앞서 개재한대로 크리스천이었던 팀장. 그래서 스응질이 난 것이다. 그전에 알아보았던 교회처럼 차라리 솔직하기라도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기까지했음. 그 이유는 내가 장애인이기때문. 선의의 거짓말보다 악의의 거짓말이 많아진 세상. 그런데 이제는 믿음을 가진 이들조차도 거짓말을 버젓이 하는 현상임. 세상에는 선의의 거짓말과 악의의 거짓말이 있다. 따라서 정치인의 공약은 시대상황에 의거하여 수정 할 수 있고 재검토할 수 있음을 본다.세상속의 거짓말들.

학교장-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스켄들 연예인-우린 그냥 친구사이느니라

빠숑드자이너-딱 어울려요

성형외과-(수술 마친 환자에게)얼굴 황신혜에 몸매 김혜수올시다

끼니걱정을 하는 가난한 어머니-난 먼저 먹었다

부동산-전철역에서 5분거리(자동차로 5분거리임)


이단들의 거짓말. 만모교회의 모재록. 바닷물을 아픈곳에 바르면 낫는다고 했음. 낫긴 개뿔이 남.통일교 문선명. 자서전을 통해 기록한 내용. 집 한채 없다고 씀. 430억짜리 헬기가 집이었던 모양. 그 외에도 베뢰아의 귀신론,신천지와 같은 스스로를 재림주라카는 것. 예수님이 돌아가셨다 부활한 게 아니라 기절했다 정신을 차렸다는 자유주의 신학자들. 그런데 이러한 행위가 정통이라불리는 교단에서도 비슷하게 행하여지고 있음.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 여하튼간 히브리 산파와 북한의 지하교회 교인처럼 [하나님을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 파송 선교사와 탈북자를 외면한채 북한의 어용교회를 지원하는 한국 대형교회 목회자들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거짓말]을 하거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는 모든 거짓말 하는 기독교인들은, 회개하여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믿음으로 맞이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은 안티기독교 교주 김정일-김정운에게, 영혼을 파는 목회자들한테 미혹당하지 않기를 바라노라. 여하튼간 우리 기독교인들은 히브리 산파처럼 세상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십자가군병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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