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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1.17 [23:02]
"무스비문화 때문에 일본선교 잘 안돼”
하와이 퍼시픽대학교 일본어학과 최영신 교수 인터뷰
 
김철영
▲ 최영신 박사     © 뉴스파워
일본 선교의 벽은 높기만 하다. 한국보다 일찍 기독교 복음이 들어왔지만 8,000여 교회에 주일 출석 신자는 고작 25만여명에 불과한 일본 기독교계의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교회 성장이 부진한 탓에 돌파구를 찾지 못한 목회자와 사모들은 절망감과 재정적 어려움으로 병들어 목회를 그만두고 있다. 8,000교회 중 1000여 교회가 목회자가 없다. 200여 교단 신학교 중에는 신학생이 한 명도 없는 곳도 있다.

일본 선교의 장벽은 무엇일까.

미국 하와이 퍼시픽대 일본어과 교수로 28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최영신 교수는 일본 선교가 잘 되지 않는 것은 ‘무스비문화’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 교수의 남편은 하와이 설탕박물관장을 역임한 미국계 일본인 3세. 때문에 지식적으로 뿐만 아니라 삶을 통해 일본인의 습성을 잘 안다. 또한 한국인이기 때문에 일본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있다.

최 교수는 “무스비문화라는 것은 판에 박힌 문화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어떤 물건을 똑 같이 찍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어떤 틀을 만들어놓고 그 틀과 비슷하게 만들면 잘 만들었다고 평가를 합니다. 독창성을 무시하는 거지요.”

최 교수는 일본의 문화는 예문화(藝文化)라고 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창의적인 예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판에 박힌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그들은 예술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일본 가문 중에는 꽃꽂이나 분재를 다듬는 일로 4대, 5대를 이어오는 가문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일본 사람들에게 그것이 가능한 것은 꽃꽂이나 분재를 만들 때 각도나 모양을 미리 정해 놓고 거기에 근접하게 만들면 잘 만들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일본에 비해 한국은 정(情)문화이고, 미국은 논리(論理)문화”라고 분석한 최 박사는 “우리나라는 독창적인 우리 글자인 훈민정음으 만들었지만, 일본은 중국 한자를 간소화시킨 히라가나, 가타가나 글자를 만들었어요. 일본 사람들은 종교도 그들의 틀 속에 집어넣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일본 사람들은 그들이 섬겨온 수많은 신들 중 하나로 기독교를 보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일본 크리스천들은 성령의 충만한 역사와 체험을 경험하지 못하고 하나의 종교인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들에게 기독교는 생명력 있는 신앙이 아닌 생활의 일부인 겁니다.”

세계성시화운동본부 공동총재인 전용태 장로(법무법인 로고스)의 처제인 최영신 교수는 일본은 성시화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크리스천들에게는 무릎 꿇는 신앙이 필요해요. 성령 충만 받고 역동적인 신앙을 체험하면 일본 교회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전도운동과 중보기도운동이 필요합니다. 성시화운동이 일본에 필요한 이유입니다.”

최영신 교수의 삶의 이력은 독특하다. 초등학교 때 영어과외 선생을 통해 영어를 배웠고, 대학과 대학원에서도 영문학과 언어학을 전공했다.
 
최 교수는 대학원 1학년 재학 중에 하와이대학 동서문화센터 유학시험을 준비하던 중 3개월간 미국 평화봉사단 한국어 강사로 갔다가 선배의 조언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여권이 기간 만료로 돌아올 처지에 놓이게 됐다.

“어머니가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께 편지를 보냈어요. 딸이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여권연장이 될 수 있도록 요청을 드린 것입니다. 그 편지를 읽고 육 여사의 도움으로 여권 연장을 받고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육 여사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이라고 믿어요.”

최 교수는 언어학을 전공하면서 비교 언어를 주제로 논문을 썼다. 논문을 준비하면서 일본어를 공부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일어과 교수가 되었다. 28년 전 6명으로 시작한 퍼시픽대학교 일본어학과는 현재 200여명의 학생들이 수강하고 있다. 교수들을 뽑을 때는 최영신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일본인 지원자들을 인터뷰를 할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그리고 2003년에는 한국어과 설치를 이끌어냈다. “일본어과가 먼저 설치가 됐기 때문에 한국어과를 설치할 수 있었어요. 한국어과 설치 공로로 한국 정부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어요.”

최영신 교수는 대학생 때 언니 최호자 권사(서울대 약대 ccc 출신)의 소개로 ccc 활동을 했다. 하와이 퍼시픽대 교수가 된 후에는 한인 학생들을 보면서 ccc 사역을 위해 기도했다. 자신의 교수 연구실에서 1996년 9월부터 조카인 전흥수 군과 다른 한국인 학생을 모아놓고 예배를 드렸다. 하와이 퍼시픽대에 한국ccc는 이렇게 시작됐다. 예배 때 동료교수들이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불편함과 미안함이 있었지만 15명 정도가 꾸준히 모였다. 하와이 한국ccc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 후 한국ccc에서 김보라 간사를 파송하면서 사역은 본격화됐다. 최영신 교수는 언니 최호자 권사와 김준곤 목사의 후원으로 ccc 사랑방센터를 만들었다. 사랑방센터 이름은 ‘에스더하우스’. 기도의 일군 최호자 권사의 헌신을 기려 붙여진 이름이다.

“하와이에는 세계 60여개 나라에서 온 청년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와이에 와 있는 젊은이들을 선교하는 일은 무척 중요합니다. 저는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선교에 관심을 갖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호놀룰루에서 비행기로 30분 거리에 있는 '마우이'라는 섬에 살고 있는 최 박사는 한인순복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 구역장, 영어 동시통역 등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절하지 않고 맡아서 섬기고 있다.

올해로 41년째 미국 생활을 하고 있는 최영신 교수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고백한다.

최 교수는 은퇴 후 언니(최호자 권사,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중보기도팀장)를 도와 성시화운동에 힘을 쏟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 선교와 영어권 사역을 할 때는 자신이 통역 요원이 되어 언니가 인도하는 중보기도 사역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그를 붙잡고 여기까지 인도해 오신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삶도 인도하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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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6/05 [23:35]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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