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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14 [10:01]
<설교> 참된 행복 (로마서 4:3~8)
새문안교회 이수영 목사 설교, 2009-10-04
 
이수영
지난 주일 “고향 가는 길, 행복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행복에 관하여 잠깐 언급을 했습니다. 오늘은 조금 더 이 행복에 관해서 생각을 나누어 볼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일부러 불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행복이며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그 생각과 대답이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행복한 것 같은 사람이 그 자신은 매우 불행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자기 스스로는 행복해하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참으로 불행하게 여겨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행, 불행의 잣대가 의외로 많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참된 행복의 기준이란 없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사람들이 각자 알아서 스스로 행복하다 여기며 살게 내버려두시는 그런 하나님이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에는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가에 관하여 수없이 많은 언급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본문 6-8절 말씀을 다시 봅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사람마다 제 나름대로의 행복관을 갖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아주 특이한 행복관도 많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돈, 권력, 명예, 건강, 가족 같은 것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있어야 행복하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참 “메니 메니(many many)”입니다. 그거 부인하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정말 돈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전도서에도 보면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전10:19) 했습니다. 그야말로 돈은 거의 모든 일에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돈에 대한 욕심 없이 사는 사람조차도 돈이 있으면 그래도 뭔가 든든하고 여유가 있으며 돈이 너무 없으면 어딘가 불안하고 우울해지는 법입니다. 그러나 돈이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결정적 요인인가 묻는다면 결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얼마든지 있으며 돈은 그 자체가 궁극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돈의 참 주인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 그것을 각 사람에게 맡기신 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궁극적인 데로 나아가지 않고 중간적인 데, 수단적인 데 머무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아무리 사랑해도 좋기만 하지만 돈은 너무 사랑하다가는 큰일 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돈을 사랑하는 것은 반드시 파멸로 이르는 길임을 성경은 엄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 디모데 전서 6장 7-12절에서 사도 바울이 한 말을 들어봅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이 말씀을 우리는 두고두고 음미하며 가슴에 새겨두어야 합니다. 우선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라.”(딤전6:7) 한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재물을 많이 쌓고 죽기까지 움켜쥐고 있어봐야 하늘나라에는 단 하나의 보화도 쌓이지 않습니다. 어느 것 하나 가져갈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있는 대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거나 선한 일에 쓰면 그것이 하늘의 보화로 쌓이게 된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막10:21, 눅18:22). 우리는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할 터인데 세상에 쌓아둔 보화는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의 행복에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어서 한 말이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8)입니다. 그저 먹고 입는 데 부족함이 없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그 이상 욕심을 부리다가 당하기 쉬운 불행을 그는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9-10)

사도 바울이 계속해서 한 말도 되새겨 볼만한 말씀입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느니라.”(딤전6:9-11-12)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 아니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 영생을 취하라.” 했습니다. 그저 부하려 하고 무작정 돈을 사랑하기를 피해야 영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생은 그저 끊어지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지극히 행복한 삶을 영원히 누리는 것이 영생입니다. 그것은 돈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돈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보다 권력 잡기를 더 추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천문학적인 돈을 써가면서 국회 같은 데 진출하려고 합니다. 국회의원이 되어서 권력 부리는 맛을 한 번 본 사람은 대부분 그것을 포기하지 못해서 일생 번 돈 다 탕진하고 집까지 팔아가며 정치를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권력이 결코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권력도 궁극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역대상 29장 11-12절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했습니다. 또 신약성경 로마서 3장 1절에 보면 사도 바울도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권력의 주이신 하나님을 제쳐놓고 권력을 추구하는 것처럼 어리석고 위험한 일은 없으며 그렇게 해서 결코 행복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한 것입니다.

돈이나 권력에는 별 관심이 없이 명예를 쌓고 지켜가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행복이 더 고상해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명예에 대한 욕심도 지나치면 패가망신할 수 있습니다. 돈이나 권력 가지고 유혹해서는 넘어지지 않던 사람들이 명예욕 때문에 실족하여 오랜 세월의 삶을 불명예로 더럽히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모든 사람의 이름을 높이고 낮추는 일도 결국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인데 모든 영광의 궁극적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의 뜻에 반하여 명예를 탐하는 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일일 뿐입니다.

“아무리 돈이 있고 권력을 쥐고 있으며 명예를 누리고 있으면 뭐하느냐? 건강해야지.” 하며 건강을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관리에 최우선의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운동할 때가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도 있으니 열심히 운동하여 건강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을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건강 자체가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건강하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인지 운동을 하기 위해서 건강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살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인지 운동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우리는 모든 생명과 건강도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불치의 병을 고치기도 하시고 생명을 거두어가기도 하시는 하나님에게서 행복은 오는 것이지 운동과 건강 자체에서 행복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을 행복의 열쇄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정의 행복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사람들입니다. 돈도 권력도 명예도 건강도 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추구하며 가정의 행복이라는 지고지선의 가치 앞에서는 모든 것을 다 하위개념으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칭송할만한 가치관, 행복관으로 평가하고 존중할만합니다. 그러나 가정을 만드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가정을 행복하게 하시고 번영하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잊는다면 가정의 행복은 지속적으로 보장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그 주인이신 가정만이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다 모여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세상의 고난을 이기게 하는 데 있어서 가족끼리의 사랑보다 더 큰 어떤 인간적 힘은 없을지 몰라도 가족끼리 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가족의 행복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는 모든 가정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께로 우리의 마음과 기도의 손을 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유와 모든 인간의 창조주이십니다. 따라서 그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행복한 삶의 원리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을 일찍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구약성경 신10:12-13을 봅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이 행복하기를 원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행복을 위해서 인간이 지킬 명령과 규례를 주셨습니다. 그대로 행하면 행복은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모두가 죄인이 되었습니다. 죄와 죽음의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놀라운 일을 감행하셨습니다. 대사면의 은총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그가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우리의 죄 값을 다 치루시고 그를 믿기만 하면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구원하시는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기 위해 우리 자신은 한 일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은총을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형수 또는 무기수로서 감옥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살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무조건 사면과 석방이라는 사실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돈이며 권력이며 명예며 건강이며 가족이라 할지라도 참된 행복을 안겨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죄가 없다고 공포되고 의인으로 인정받아 출옥하여 자유롭게 될 때 비로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에게 그런 행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주어져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다시 봅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로또> 해서 수억 원이나 수십억 원을 타게 되면 대박 터졌다고 합니다. 일확천금하는 것입니다. 단 번에 수억 원이나 수십억 원을 받을 만한 수고를 하거나 공을 세운 일이 없는 데 그런 돈을 타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박 중의 대박, 대박의 원조는 바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경건한 사람이다, 의로운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불법과 죄를 용서받을 만한 대단한 공적을 세운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믿기만 하면(본문 5절) 우리를 의인으로 여기시고 우리의 불법을 사해주시며 죄를 가려주시고 그 죄를 죄라 인정하지 아니하시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를 받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이보다 더 큰 대박은 없습니다. 대박이고 대복입니다.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없는 것은 그것이 수억 원, 수십억 원 주고도 살 수 없는 내 생명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또> 해서 수십억 원의 상금을 타게 되었는데 그것을 내팽개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와 영원히 복된 삶을 외면하는 사람은 미쳐서 죽기로 작정한 사람일 수밖에 아닙니다. 이 행복, 이 놀라운 은혜의 선물을 감사함으로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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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0/05 [09:0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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