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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06 [10:08]
"양화진은 선교사 묘지 아닌 외국인 묘지"
경성구미인묘지회장 피터 언더우드 인터뷰 "100주년기념교회 인정 못해"
 
김철영
"양화진은 외국인이라면 크리스천 뿐만 아니라 불신자도 묻힐 수 있다."

▲ 피터 언더우드     ©뉴스파워
경성구미인묘지회 회장 피터 언더우드(한국명 원한석)는 양화진에는 "선교사는 5분의1 정도 묻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한국 교회가 기독교 성지로 여기고 있는 양화진이 단순한 외국인 묘지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갖게하는 발언이다.
 
피터 언더우드는 또 양화진의 토지 등기를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에서 경성구미인묘지회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터 언더우드의 증조 할아버지는 1885년 4월 5일 제물포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한 최초의 선교사이다.
 
고조 할아버지인 원한경 박사는 연세대 총장을 지냈고, 아버지 원일한 박사는 연세대 이사로 오랫동안 재직하다 2004년 2월 15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소천했다. 

피터 언더우드는 미국에서 출생한 지 3개월만에 한국에 왔다. 대학과 대학원을 미국에서 공부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살았다. 지금도 연세대학교 총장 공관 옆 공관에서 살고 있다. 언더우드 가(家)가 대대로 살고 있는 곳이다. 

피터 언더우드는 외국인 기업 투자유치 사업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외국 기업이 한국에 편하게 들어와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피터 언더우드는 4촌이 미국 대사관에 파견 나와 있다고 했다. 

피터 언더우드와의 인터뷰는 14일 오전 9시 30분 연세대 알렌관에서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됐다.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 인터뷰 내용 중 양화진 관리 문제와 유니온교회 문제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 반론 차원에서 인터뷰를 했음을 밝힌다.

다음은 피터 언더우드 씨와 인터뷰 전문,

 한국이 특별하게 느껴질 것 같다.

고향인데 느끼는 것이 있겠나. 한국 문화를 잘 알고, 한국 사업 스타일도 잘 알고, 유럽기업도 잘 알기 때문에 양측 문화를 이해하고 중간 역할하기 쉽다.

유니온교회 출석은 언제부터 했나?

어렸을 땐 매주 갔다. 지금은 가끔 나간다. 유니온교회가 양화진에서 나온 후 지금은 연세대 내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출석수는 보통 120여 명 선이다. 보아탱 목사님(아프리카 가나 출신)이 설교한다. 오래 전에는 2~3년마다 담임목사가 바뀌었다. 담임목사는 공모를 한다.

유니온교회가 양화진에서 나오게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잘못됐고, 가슴이 아프다. 교회 내에서 이런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창피스럽다. 100주년기념교회는 양화진에 들어갈 권한이 없다. 그동안 백주년기념사업협의회와 대화를 많이 했다.

양화진은 어떤 곳인가? 그리고 유니온교회는 언제 생겼나?

1890년 양화진에 외국인 묘지가 생겼다. 당시 명칭은 경성구미인묘지였다. 외국인묘지로 지금으로 말하면 외교부에 해당하는 정부 기관에서 관리했다. 그리고  1910년 식민지 시대가 시작되면서부터 제2차세계대전까지는 5개국 영사관에서 관리했다. 영국, 독일, 미국, 프랑스, 러시아가 교대하면서 관리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관리자가 있었어야 하는데, 어디에서 관리했나?

6.25 끝나고는 유니온교회에 관리를 맡겼다. 유니온교회는 1886년에 생겼다. 초대 담임목사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2년간 맡았고,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2대 담임목사를 했다.

유니온교회가 언제까지 그렇게 했나?
 
2005년도까지 그렇게 해왔다. 그런데 유니온교회는 역사는 오래됐지만 예배당은 없었다. 그래서 미국 영사관, 연희동 외국인 학교, 감리교 정동학교 등에서 예배를 드렸다. 1956년부터 1976년까지는 삼성화재 뒤편 태화복지관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그 건물이 1976년 철거 후 새로 지었다. 그 때부터 유니온교회를 짓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양화진 묘지가 제대로 등기가 안 되어 있었다. 박정희 시대인 1968년도에 외국인 토지법이 생겼다. 모든 토지는 재등기 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양화진의 재등기를 누구도 안했다. 아니 등기를 안했다는 것을 누구도 몰랐다. 건물을 지으려고 하다가 등기가 안 되어 있어서 짓지 못한 것이다. 그때부터 매년 등기를 하려고 했으나 안됐다. 그래서 재단을 만들려 가능할 줄 알고 원일한 박사님이 전두환 대통령을 만나는 등 재단 설립을 시도했지만 그것도 안됐다.

1980년 초반부터는 양화진 관리를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맡아서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100주년기념사업의회는 1982년에 생겼다. 한경직 목사님과 원일한 박사님이 서로 잘 아는 사이여서 만나서 대화를 하면서 양화진을 등기화하기 위해 법인화를 한 것이다. 

1985년 초에 경성구미인묘지회 이름으로 등기를 했다가, 당일 날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로 등기를 한 것이다. 등기를 한 이유는 유니온교회를 짓기 위해서였다. 당시 한경직 목사님은 등기를 하면서, 등기 뿐만 아니라 기금을 모아 건물도 지어준다고 말씀하셨다. 한마디로 유니온교회의 건물 짓기 위하여 등기한 것이다.

그런데 결국 유니온교회를 짓지 못했다. 

교회 지으려고 했는데, 그 땅에 교회에 시설을 지을 수 없다고 해서 기념관을 지은 것이다. 초기단계부터 목적은 유니온교회를 짓기 위한 것이었다. 설계 도면에 보면 서울 유니온교회라고 명시돼 있다. 그리고 건립할 때 유니온교회가 감독했다.

의자, 스테인드글라스 등 내부 시설도 유니온교회가 설치했다. 당시 신문에 보면 유니온교회가 100년 됐는데 이제 집이 생겼다는 기사들이 있다. 또한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안내판을 만들면서 유니온교회를 위해 지었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2005년도에 그 안내판을 뜯어버렸다. 누가 뜯었는지 모른다. 나는 안 봤으니까 모른다.

100주년기념교회가 유니온교회를 쫓아냈다고 보는가?

확실하다. 2005년도에 100주년교회가 유니온교회에 찾아와서 어디에 짓는지 모르지만“우리는 건물 짓고 있으니까, 임시로 유니온교회 예배드리는 것 허락해다오” 라고 했다. 유니온교회는 우리는 그럴 필요 없다. 12시 30분이면 끝나니까. 그 이후는 본당 써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100주년기념교회가 들어왔다.

그런데 몇 달 후 건축허가가 안 나왔다, 그러니까 계속 사용하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유니온교회와 100주년교회와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 피터 언더우드 씨는 양화진은 선교사 묘지가 아닌 외국인 묘지라고 주장했다. 또 불신자도 묻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뉴스파워
100주년기념교회는 100주년기념사업회가 양화진 관리를 위해 맡겼는데….

유니온교회가 50년간 양화진을 관리해 왔다.

유니온교회가 양화진 관리를 할 때 불법 묘지 판매 등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양화진에 묘지를 만들려고 하면 관리비를 내야 한다. 그것은 1890년 묘지가 생기면서부터 여기에 묻히는 사람은 관리비를 냈다. 외국인 묘지는 서양식이다. 한국식으로 관리한다고 하니 문제가 된다. 

묘지 관리비 장부가 있나?

양화진의 관리인 봉급과 청소부 봉급도 유니온교회가 지급했다. 자료가 다 있다.

양화진에는 외국인이면 다 묻힐 수 있나?

선교사 묘지는 전체의 5분의1 이고, 나머지는 외국인묘지이다.

양화진에 크리스천이든, 아니든 묻힐 수 있나?

크리스천이라는 조건은 없다.

한국인이 묻힌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예를 들어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인 사모님 등 몇 명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양화진의 최초 한국인 관리자 한 명이 묻혀 있다.

그렇지 않은 한국인도 묻혀 있다고 하던데 그것은 불법 아닌가?

관계가 있으니까 묻혔을 것이다. 나는 (불법이라는 주장을) 인정 못한다.
 
양화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안내해 주겠다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우리는 모른다. 어떻게 일일이 다 알 수 있겠는가.

1968년에 등기를 안했고, 1977년도까지 등기가 안 됐다는 것을 누구도 몰랐다고 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법적으로는 양화진이 유니온교회의 소유라는 증거가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양화진은 국가 땅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얘기해야 한다. 

지금은 양화진이 누구 앞으로 등기가 돼 있나?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이름으로 돼 있다. 이제는 경성구미인묘지회 앞으로 등기를 이전해야 한다.

 유니온교회 성도들 중 선교사 후손들이 있는가?

선교사 자녀들은 거의 없다. 유니온교회는 선교사가 관리한 교회다. 그러나 외국인교회였다.

사실 2007년도에도 유니온교회는 양화진에서 아침 9시에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100주년기념교회가 “2007년 8월 5일부터 우리가 오전 예배드릴 테니 유니온교회는 오후에 예배를 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8월 첫째 주일에 유니온교회 성도들을 막은 것이다.

마포구청에서 유니온교회에 양화진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하는 공문을 받은 적이 있는가?

2007년 8월 21일 쯤에 마포구청에서 교회가 아니니까 양측 모두 예배를 드리면 안 된다는 공문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100주년기념교회는 유니온교회가 양화진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할 수 있다고 한다. 단, 두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한다. 100주년기념교회가 유니온교회를 좇아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유니온교회에 가서 물어보라.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100주년기념교회에 위임해서 양화진 관리를 하는 것인데….

우리는 양쪽 희망이 같다. 묘지를 잘 관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눈으로 볼 때 관리가 잘 안되고 있는 것 같다. 외국인 묘지에서 외국인 선교사 묘지로 이름을 바꿨는데 그것은 변질이다. 다시 이름을 (원래대로 외국인 묘지로) 바꿔야 한다.

선교사는 20퍼센트 밖에 안 된다. 비석도 치웠는데, 그것도 회복해야 한다. 안내판도 뜯어버렸는데 그것도 회복해야 한다. 묘지 사이사이에 주차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유니온교회 예배와 경성구미인묘지회가 관계가 있는가?

유니온교회 안에 경성구미인묘지회가 있다.
▲ 피터 언더우드 씨는 양화진은 경성구미인묘지회로 등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스파워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가 명예훼손으로 100만 벌금을 낼 것을 유니온교회가 소송을 취하해서 마무리 됐다고 주장하는데, 사실인가?

2007년 9월 7일 100주년기념교회 2주년 기념예배 설교에서 틀린 발언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재철 목사가 “양화진 묘지 땅의 등기는 원한경에서 원일한으로 넘겼다”고 했다.
 
그래서 명예훼손으로 걸었다. 2차에 벌금 100만원이 나왔는데 예장통합에서 2007년 11월 29일 경성구미인묘지회 앞으로 공문을 보내서 “법에 걸려 있는 것 모두 취하시키면 예장통합과 마포구가 속한 서울 서노회가 양화진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했다.그래서 12월 4일 취하한 것이다.

당시 100주년기념교회는 유니온교회로부터 업무 방해죄로 고소당했으나 기각 당했다. 

유니온교회 담임목사 사무실이 기념관 내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법을 잘 모르지만, 잘못이 없었다기 보다는 소송 절차가 틀려서 기각됐다는 말을 들는 것 같다.

양화진 문제의 해결책은 뭐라고 생각하나?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와 만나서 방법 찾아야 한다. 만족한 결과를 찾아야 한다. 권한이 있는 선교사 후손이나 유니온교회와 합의해서 관리자를 선정해야 한다.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이사들을 찾아가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몇 사람이 100주년기념교회에 관리를 맡겼다고 들었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특별하게 덧붙일 말씀이 있는가

우리 친척이 양화진에 7명이 묻혀 있다. 습관적으로 기념일에 꽃 갖다 놨는데, 근처에만 가도 마음이 아프다. 애 엄마(피터 언더우드 부인)도 묻혀 있는데, 이것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관리도 제대로 해야 한다. 

지금 가서 보면 묘지 사이사이에 주차를 하는 등 엉망이다. 허락 없이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 할아버지, 할머니 묘 앞에 있는 안내판이 2005년 이후 뜯겨버렸다. 인요한 박사(신촌세브란스 병원,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후손)의 할머니 묘지 앞에 있는 안내판도 누군가 뜯어버렸다. 그래서 2007년 12월에 김경래 장로님에게 물어 보았다. 장로님이 “더 좋게 하려고 그런 것 같다.”고 말씀했다.

양화진 관리의 장기적인 해결책은 신뢰성 있는 기관한테 맡기는 것이다.

100주년기념교회를 인정하지 않는가?
 
 저는 그렇다.

100주년사업협의회를 결정을 인정하지 않는 것 아닌가?

몇몇 이사들이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방향을 제대로 잡으면 해결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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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9/15 [15:4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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