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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7.22 [21:36]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 파워인터뷰
양화진, 유니온교회, 장로 호칭제, 순교자 기념관, 음부 강하 등 입장 밝혀
 
김철영
지난 2일 오전 양화진 홍보관 4층 사무실에서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를 만났다. 
 
이 목사는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양화진, 유니온교회, 용인 순교자기념관, 장로 권사 호칭제, 음부 강하론 등 논란이 됐던 사안들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 이재철 목사     ©뉴스파워
 
다음은 이재철 목사와의 인터뷰 전문

지금까지 목사님과 관련된 많은 논쟁들이 있었다. 그 중 100주년기념교회가 양화진의 관리자로 창립되었는데 소유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회와 나는 관리자의 선을 넘어선 적이 없다. 소유자처럼 행한다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분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타당한 근거를 제시한 적이 없다. 그분들이 근거라고 제시하는 것들은 이미 경찰, 지방검찰, 고등검찰에서 증거물로서 가치가 없다고 했고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됐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판정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앞으로도 누구든지 사유화한다고 말을 하면 언론에서 구체적으로 물어봐 달라. 4년 동안 우리가 한 것은 100주년기념교회가 창립되기 전에 양화진을 사유화했던 분들로부터 양화진을 한국 교회의 성지답게 법질서를 바로 잡은 것이다. 사유화라는 단어는 사유화를 통해 어떤 이득을 얻을 때 쓰는 말이다.

생각해보라, 누군가는 묘지를 팔고, 단체 참배객을 안내하여 수입을 얻고, 유명교회 목사님의 기념비를 세워주며 이득을 얻었지만, 교회와 나는 4년 동안 양화진을 이용해 단돈 1원도 사익을 챙긴 적이 없다. 단 1평이라도 묘지를 사사로이 팔았거나, 참배객들에게 돈을 받고 착복했다면 사유화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우리의 헌금과 수고와 노력으로 양화진을 성지로 지켜왔다. 나와 우리교회는 양화진을 이용하기 위함이 아니라, 양화진에 이용당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선교사 자녀들이 예배를 드리는 유니온교회를 쫓아내고 100주년기념교회가 예배를 드린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선교기념관에서 예배 드리던 유니온교회와 우리 교회가 함께 마포구청으로부터 행정조치를 받은 것이다. 선교기념관은 건축법상 묘지관리사무소로 허가된 건물이므로 허가된 용도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유니온교회는 우리가 자신들을 쫓아냈다는 소문을 퍼트리며 ‘업무방해죄’로 검찰에 형사고소와 항소, 고등법원에 재정신청까지 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이 과정에서 협의회 어른들과 나는 짧게는 3시간, 길게는 10시간까지 조사를 받았다. 100주년기념교회가 유니온교회를 쫓아내거나 업무를 방해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증된 것이다.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왜 100주년기념교회를 세웠겠는가. 만약 양화진이 잘 관리되고 있었으면 우리교회가 굳이 태동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협의회는 양화진묘원의 훼손을 막고 적절한 관리를 위해 영락교회, 새문안교회, 정동교회에 전담 관리를 부탁했다. 또 온누리교회에는 용인순교자기념관 관리를 부탁했다. 그러나 모두 사양했다. 그래서 100주년기념교회를 세운 것이다.

2005년 7월 10일 100주년기념교회가 세워지고 나서, 2005년 8월 4일과 11일에 협의회 집행부와 내가 유니온교회 측과 두 번 만났다. 그 자리에서 100주년기념교회가 새로운 관리자가 되었음을 유니온교회는 축하했고 여러 가지 건설적인 논의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8월말부터 음해가 시작됐다. 불과 3주 만에 유니온교회의 태도가 급변한 이유를 나는 알 수 없다.

여하튼 우린 위임받은 책임과 의무를 다 해야 했다. 묘원은 국내 장묘 및 장사법에 적용된 도시공원에 준한 관리에 들어갔다. 더 이상 불법매장은 금했고, 살아 있는 내국인이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세운 기념비도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제거했다. 그 와중에 아프리카 가나 출신인 유니온교회의 보아탱 목사님은 100주년기념교회가 양화진의 관리자임을 부정하고 나섰다.

협의회 2대 이사장 고 강원용 목사님께서 100주년기념교회가 양화진의 새로운 관리자임을 유니온교회에 문서로 재확인 시켰지만, 유니온교회는 오히려 강원용 목사님을 비난하는 편지를 한국교회에 돌렸다. 강원용 목사님의 소천 이후 3대 이사장이 된 정진경 목사님께서 유니온교회 측을 불러 마련한 대화의 자리에서는, 유니온교회 젊은 대표가 이야기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무례도 서슴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우리교회 교인들의 시집살이는 차마 공개할 수조차 없이 눈물겨웠다. 예를 들면 주일예배를 위한 선교기념관 안팎 청소는 우리 교인들만의 몫이었고, 유니온교회가 선교기념관의 부엌문을 열어주지 않아 한 겨울 내내 우리 교인들은 주일에 실외에서 찬물로 그릇을 씻어야함 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확인한 협의회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유니온교회로 하여금 예배시간을 변경토록 했다.

유니온교회는 한경직 목사님의 호의에 의해 20년 가까이 선교기념관을 사용하다보니 호의를 베푼 주인을 잊은 것이다. 1986년 어간의 유니온교회 구성원들과 현재의 유니온교회 구성원들은 전혀 다른 분들이시다. 현재 유니온교회에 선교사님의 후손은 없고, 자신의 사업이나 일을 위해 한국에 나와 있는 소수의 미국인들과 영어예배에 참석하기 원하는 한국인들로 구성된 몇 십 명의 구성원이 전부다. 그러니, 초기상황을 아는 분들이 계시지 않아 부정확한 정보에 의해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애초 문제를 제기했던 선교사님의 자손들 역시 유니온교회의 교인이 아닌 데다, 더욱이 초기상황을 알 수 없는 연령이지 않는가? 그러나 협의회의 어른들은 모두 그때부터의 증인들이시다.

협의회는 누가 주인이고 객인지를 정확히 함으로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해야 했다. 그래서 2007년 5월 말, 그 해 8월 5일부터 예배시간을 조정해 줄 것을 통보했다. 오전에는 100주년교회가, 오후에는 유니온교회가 드리라고 했다. 미국에 이민 간 한국인들이 미국교회를 빌려 예배를 드릴 때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의 예배시간을 피하여 오후에 드리지 않는가. 예배시간을 그렇게 조정함으로 주객의 관계를 분명히 해야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리라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 공문을 보낸 직후부터 유니온교회는 자신들을 쫓아내려 한다는 소문을 퍼트리며 한국교회에 유인물을 돌렸다.

목사님께서 언급하신 묘지 판매 등의 부정적 행위와 관련된 분들이 유니온교회와 연관된 분들인가?

묘원을 통해 사익을 추구하던 분들은 어떤 경우에도 유니온교회의 현장협조 없이는 그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100주년기념교회가 세워지면서 유니온교회의 현장협조 속에 사익을 추구하던 분들이 유니온교회의 주장에 공조하거나 적극적으로 개입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 분들 가운데 통합측 서울서노회 소속 장로님이 계셨는데 그분의 오도된 정보에 의해 서노회가 관련이 됐고, 몇몇 이해관계가 맞는 분들이 지금까지 지속되는 무익한 분쟁의 출발선에 있다고 본다. 그 장로님이 운영하는 선교회의 홈페이지에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의 100주년기념교회의 존재를 부정하는 논리가 게시 되어 있고, 유니온교회가 민형사상의 고소고발에 제시한 관련 서류 및 논리개발을 책으로 낸 것이 그 증거다. 책을 보면 현재의 주장들이 서로 모순 된 채 병렬형의 엇갈린 근거들이 수록되어 있다. “120년 전 고종이 하사한 외국인묘지는 국가은닉재산이므로 국가가 몰수해야 한다. 거기에 선교사 후손인 원일한 선교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의 사이에 명의신탁한 재산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법은 자신의 주장을 수용하라”는 내용이다. 명의신탁이란 부도덕한 사람들이 부도덕한 재산을 숨기기 위해 사용하는 수법이다. 한경직 목사님과 원일한 선교사님을 부도덕한 시중잡배처럼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아님은 이미 밝혀지지 않았는가?
▲ 이재철 목사 는 유니온교회를 쫓아낸 적이 없다고 밝혔다.    ©뉴스파워
유니온교회에 선교사 자녀들이 없다면 양화진에서 예배드릴 명분이 없다는 것인가?

명분이 있었다고 본다. 이미 유니온교회는 협의회로부터 1986년에 이곳 양화진에서 예배를 드릴 호의를 받았고, 그 호의는 지속적으로 지켜졌으며 2007년 8월까지 예배를 드리지 않았는가. 그분들이 쫓겨났다는 식으로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변경된 예배시간에 예배드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들의 언론플레이로 유니온교회가 묘지관리실 용도의 선교기념관을 근 20년 동안 교회로 사용한 것을 결과적으로 방임한 마포구청이 곤란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마포구청이 법에 따라 선교기념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니온교회가 선교기념관을 사용하던 명분은 마포구청의 행정조치 이전까지이고 이제는 새로운 관계정립이 필요하다.

본래 선교기념관은 지하 한경직기념홀, 1층 협의회 사무실, 2층 예배실로 건축되었다. 한경직 목사님은 고정예배처소가 없던 유니온교회로 하여금 2층 예배실에서 예배드리면서 양화진을 관리하게 하셨다. 그러나 유니온교회가 1층을 교육관으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강원룡 목사님을 비롯한 이사들은 반대하였지만 한경직 목사님은 협의회가 선교기념관 1층으로 이사하려던 계획을 중단하고, 유니온교회가 선교기념관 전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잠정적으로 허락하셨다. 당시 한경직 목사님은 유니온교회가 한국에 있는 외국인을 대표하는 교회라는 데 큰 의미를 두셨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것처럼 소수의 미국인과 한국인으로 구성된 현재의 유니온교회는 더 이상 외국인을 대표하던 예전의 유니온교회가 아니다.

유니온교회가  지금은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다. 그간의 과정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2007년 5월 말 유니온교회에 8월 5일부터 예배시간을 변경함을 통보하였음은 이미 말씀드린 바다. 7월 중순 경 유니온교회에 출석하는 한국인 교인들로부터 우리 교회에 연락이 왔다. 보아탱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8월5일 새벽에 선교기념관 예배실의 강대상을 점령하라면서, 그날 kbs-tv에서 자신들의 입장에서 취재해 줄 것이므로 담대하게 행동하라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날 이런 불상사가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되니 우리 교회더리 미리 대비하라는 것이었다.

설마 그럴까 했는데 8월에 접어들자마자 마포경찰서 외사과 형사가 교회로 찾아왔다. 유니온교회 측에서 경찰서장에게 전화하여, 8월 5일 선교기념관에서 폭력사태가 날 테니 적어도 15명 정도의 경찰병력을 배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그 때, 유니온교회 교인들의 제보가 헛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꾸며지고 있는 지 짐작할 수 있었다. 8월5일 새벽에 유니온교회 교인들이 강대상을 점령하고, 그것을 뒤늦게 안 우리 교인들과 유니온교회 교인들 사이에서 몸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언론이 보도하게 함으로서 우리가 유니온교회를 쫓아낸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었다. 주일에 예배당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지 않는가? 그래서 금요일인 8월3일에 유니온교회에 통보하고 선교기념관의 열쇠를 변경하였다. 그리고 들어올 때는 사전에 연락하면 문을 열어주겠다고 했다.

토요일인 4일 밤에 우리 교인 20여 명이 자원하여 선교기념관에서 지하에서 잠을 잤다. 혹시나 했는데 주일 새벽에 유니온교회 교인들이 진짜 들이 닥쳤다. 새벽 여섯시 경 교인 20~30명이 왔고 방송카메라와 기자들도 나타났다. 유니온교회 교인들은 선교기념관으로 수  차례 진입을 시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분들은 선교기념관 앞에서 시위와 예배, 그리고 호소문을 돌렸다. 유니온교회의 요청으로 취재 나온 cnn은 유니온교회가 쫓겨난다는 제보내용과 사실이 다르다며 그냥 철수해 버렸고, kbs는 소유권이 아니라 사용권 다툼으로 보도했다. 그 날 kbs 인터뷰를 통해 선교사 후손들은 한국의 법을 무시하면서라도 신규매장을 원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외국에 나가 있는 한인선교사가 대체 어느 나라에서 그 나라의 법을 무시하면서까지 이런 초법적 요구를 할 수 있겠는가? 그 과정에서 유니온교회 관리집사님이 인터네셔널 헤럴드 트리뷴 기자에게 선교기념관은 묘지관리실 용도임을 밝혔고, 그 말을 들은 기자가 마포구청에 그 사실을 확인함으로서 마포구청이 선교기념관을 허가용도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행정처분을 내린 것이다

이것이 사건의 대략이다. 유니온교회는 선교기념관을 예배처소로 사용할 수 없는 결과를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우리가 유니온교회를 쫓아내었다고 알고 있는 외부인들에게는 유니온교회가 현재 이곳에서 예배드리지 않는 결과만 보이겠지만, 그 결과의 책임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우리는 그동안 참는 것 이외의 다른 방도를 생각하지 않았다.

유니온교회의 모습을 관용하고 예배를 드리도록 할 용의는 없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4년 동안 점층되는 공박을 받으면서도 이 건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 하나는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밝혀진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기록으로 남겨지고 있으므로 우리가 말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역사의 질문을 받게 될 것이고, 또 반드시 규명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가 중요한 이유인데, 결국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 같이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공박에 일일이 대응해 이긴다한들 억울함은 풀리겠지만 주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겠는가. 선교사님의 후손들은 양화진에 추가매장이 안 되는 이유가 우리 때문이 아니라, 대한민국 장묘에 관한 법이 금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우리가 유니온교회에 예배시간을 변경해달라고 했지 쫓아 낸 적이 없으므로 유니온교회가 원한다면, 마포구청이 금한 선교기념관이 아닌 우리 교회 공간을 예배시간이 겹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유니온교회에 제공할 수 있다. 이것은 오랜 전부터 밝혀온 바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니온교회가 한국 교회 앞에 밝혀야할 것이 있다. 첫째 100주년교회가 쫓아내었다고 한 것에 대한 사과이고, 둘째는 양화진과 선교기념관에 대한 소유권을 잘못 알고 한국 교회에 물의를 일으킨데 대한 사과다. 이것은 조건이 아니다. 없는 사실로 누군가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었으면 사과는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덕목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웃으며 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미 이런 뜻이 전달되었으므로 그분들이 결정할 것이다.
 
용인순교자기념관 관리도 100주년기념교회가 하고 있다. 순교자 선정까지도 목사님과 100주년기념교회가 선정하려고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해 달라.

어떻게 100주년기념교회가 감히 임의로 순교자를 선정하려 하겠는가. 한 번 더 확인하는 공적인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성자로 추대하는데 최소한 몇 십 년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순교와 순직의 개념도 확실하지 않다.

만약 지금이라도 통일이 된다면 북한에서 순교자가 쏟아져 나올 텐데, 그때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 그러므로 먼저 순교의 개념정리부터 확실하게 하고, 명실 공히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순교자 추서 요청이 있을 경우 마지막 확인과정을 거쳐 진심으로 존경하고 기리자는 것이다. 100주년기념교회는 단지 그 심부름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주일에 100주년기념교회 성도들 외의 타 교회 교인들은 양화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불만이 있다. 어떻게 된 것인가?

그것 역시 와전된 이야기다. 다만 돈을 받는 상업선교회의 단체 관람은 금한다. 주일에는 묘역을 이용하여 장사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본 요코하마의 외국인묘지는 일주일에 하루만 개방한다. 비교하자는 것은 아니나, 양화진은 매일 문이 열려있다. 꽃을 놓고 가시는 분은 있어도 시든 꽃을 버려 주시는 분은 없다. 순례객들이 많은 동하절기 휴가기간은 봉사자들이 휴가도 반납한다. 매 주마다 연 5백 여 명의 우리 교인들이 자원으로 땀 흘리고, 헌금하며 양화진을 한국 교회의 성지로 지켜왔다. 이제 만 4년이 지났다. 앞으로도 할 일이 태산이다.
▲ 이재철 목사는  장로 권사 호칭제는  10년 후면 새로운 무브먼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뉴스파워
장로권사 호칭제에 대한 논란이 있다. 심정적으로 도입을 바라는 분도 있지만 한국 교회의 전통적 측면에서 볼 때 아직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또 10년 후에는 보편화될 것이라고 발언하셨다고 하던데….

10년 후면 새로운 무브먼트(movement)로 자리 잡기 시작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1988년 한남동 조그만 지하실에서 주님의교회를 시작했을 때 지역노회에 가입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했다. ‘주님의교회’라는 이름이 불순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너희만 주님의 교회냐는 것이었다. 영락교회라고 해서 그 교회에만 영원한 낙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설득했지만 거부됐다.

결국은 평양노회에 신청했고 이의는 있었지만 받아주었다. 그 당시 주님의교회라는 이름에 거부감을 가진 분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몇 년 후부터 국내외에 주님의교회란 이름의 교회가 얼마나 많이 생겼는가. 

주님의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처음 장로 임직을 할 때 그분들과 앉아서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 분란이 생기면 어디에서 나겠는가. 우리 사이에서 나지 않겠는가. 장로는 권력직이 아니라 봉사직이니까 우리 스스로 임기를 정하자고 했다. 내 임기를 10년으로 할 테니 장로님들의 임기는 안식년을 포함하여 13년으로 하자고 했다. 그래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주님의교회는 목사나 장로의 교회가 아니라 변함없이 주님의 교회로 지속되게 하자고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당시에 외부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교단 헌법에 70세 정년이 명시가 돼 있는데 왜 너희가 임의로 임기를 정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70세가 넘어서도 하겠다는 것이 문제이지 그보다 먼저 그만 두겠다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설득했다. 그러나 지금 새로 창립되는 교회 중에 목사, 특히 장로 임기에 대해 생각하는 교회가 얼마나 많은가. 기존 교회 역사 목사와 장로 신임제 등을 도입하는 교회도 많지 않는가. 이처럼 장로권사 호칭제 역시 10년 후에는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장로권사 호칭제 문제는 100주년기념교회의 특수성을 인식해야 한다. 이 교회가 특정 교단 소속의 교회였다면 그런 생각을 안했을 것이다. 이 교회는 태동될 때부터 초교파적인 연합교회로 독자적인 정관을 갖고 운영되는 독립교회로 세워졌다. 이것은 이미 협의회에서 틀을 잡아놓은 것이고 난, 그 교회에 초대 목사로 청빙을 받았다. 난 그 틀에서 교인들과 함께 고민을 했다. 어떤 교단과도 소통해야하는 동시에 어떤 교단에도 구속받지 않아야 하므로 정관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우리 교회의 정관이 한국교회의 연합정신에 시금석이 되어야겠다는 각오였다. 연합은 모여서 힘이 세어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작은 소리 적은 소리와도 함께 가자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당회 구성 자체가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니 어느 교단만의 헌법을 따라서 직제와 호칭을 따르면 문제가 될 것이 자명했다.

2005년 7월 교회가 처음 세워지고 12월에 정관이 확정될 때까지 나머지 내용은 교인 간에 쉽게 합의가 됐다. 부서원들이 추천하는 각 봉사팀장들로 구성된 상임위원회가 교회를 운영하고, 구역원들이 추천하는 구역장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상임위원 추인과 목사의 청빙 및 해임 그리고 정관개정을 담당토록 했다. 그러나 교인을 어떻게 호칭할지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엇갈렸다. 각자 출신 교단배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의 장로권사 직분제가 한국 교회 부흥에 절대적인 기여를 했지만 항상 절대적인 것은 예기치 않은 문제를 야기하기 마련이다. 계급화 되고 서열화 된 장로권사제는 한국 밖에 없다. 그것은 가톨릭의 계급제도와 다를 바가 없다. 만인제사장직을 구현하는 것이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회의 핵심사상이지 않는가. 그래서 돈과 학력을 떠나 누구든지 일정한 조건만 충족되면 장로와 권사로 호칭될 수 있는 보편적인 교회를 만들기로 했다. 그 결과 50세 이상의 여자와 60세 이상의 남자 가운데 우리 교회에 등록한지 2년 이상, 집사 된 지 5년 이상의 여자와 남자를 각각 권사와 장로로 호칭하여 존중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호징제에 대한 비판 가운데 우리가 경청해야 내용이 있었다. 일정 기간만 지난다고 일률적으로 장로 권사로 호칭하면 알콜중독자도 장로 권사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정 기간이 아니라,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 지킬 수 있는 내용으로 조건을 강화하였다.

우리 교회에 등록한 지 1년이 지나면 집사가 되고, 집사가 된지 7년이 지난 남녀 60세 이상, 우리교회에서 봉사 3년 이상, 구역장과 교구 교역자의 추천, 디도서 2장 2-3절에 합당, 새신자반 10주 사명자반 10주 성숙자반 10주 총 30주간의 훈련을 받은 자를 장로와 권사로 호칭한다고 규정했다.

100주년기념교회가 개정한 기준에 따라 장로 권사로 호칭되는 것은 일반 교회에서 장로 권사로 선출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어떤 분들은 장로권사 호칭제를 통해 교인들을 쓸어 모은다고 비판하는데 그것은 사리에 닿지 않는 말이다. 우리 교회 5천 명 교인 가운데 49세 이하가 약 80퍼센트이고, 매주일 등록교인의 60%가 20~30대이기 때문이다.

올해가 칼뱅 탄생 500주년인데 칼뱅의 정신은 단 한마디다. 인간에 의해 우상화된 모든 것을 타파하라는 것이다. 한국 교회의 장로권사제도가 우상화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동안 이 제도가 좋은 제도였던 만큼 보다 더 새롭고 건강하게 개선되려는 시도는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크리스천들 가운데는 유명한 목회자를 스타 연예인처럼 우상화 하는 경향이 있다. 목사님도 그렇게 비쳐지지 않나?

우상화는 외부로부터 오지 않는다. 매일 매순간 나를 부인하지 않고는 서 있다 할 수 없다.그래서 항상 나를 깨는 설교를 한다. 설교를 통해 내 추하고 수치스러운 부분까지도 다 내어 놓는다. 사람들이 달을 보지 않고 내 손가락을 볼까봐 항상 조심스럽다.

100주년기념교회 교인이 교회학교 학생을 포함하여 5천명에 이르러 수용하기가 어려워졌다. 대형교회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대형 교회가 되어가고 있는데 대안을 준비 중에 있는가.

시간을 두고 구체적으로 실천해가야 할 일이다. 개신교회는 목회자가 자신의 삶을 투명하게 보여주며 성도와 부대끼며 살아가야 말씀이 육신이 되는 접점이 생기는데, 성도의 수가 많으면 나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는 것이 가장 큰 결함이다. 지금까지 4년 여 동안 끊임없이 계속되는 외부로부터의 공박에 매일의 일과를 치러 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주님께서 이러한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 나를 부르신 이유를 살피면서 미래에 대한 준비에 착수하였다.

우선 창립 4주년을 기점으로 담임목사로서 모든 행정적 역할을 내려놓았다. 운영위원회와 상임위원회를 교인들 스스로 이끌어 가보도록 했다. 올해 내 나이 환갑이고 강골이 아니기 때문에 교인들 스스로 교회를 지키고, 교인들 스스로 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자생력을 키우려는 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한국 교회의 개혁의 방향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한국 교회라는 큰 틀을 언급하는 것은 내 분수를 넘어선 것 같다. 하지만 목회자들이 각기 부르신바 그 본질에 충실하는 것이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개혁하지 않고서야 내게 맡기신 성도 한사람도 개혁의 대열에 끼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개혁의 대상은 항상 나 자신이고 사랑해야할 대상은 남이다. 하물며 나를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사람과도 궁극적으로는 함께 가려는 것이 한국교회의 개혁방향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주님의교회를 10년 목회하고 스스로 떠난 것을 절대적인 것처럼 평가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70세까지 목회를 하시고 원로목사님이 되셔서도 훌륭히 역할을 감당하시는 분이 많다. 그런데 주님의교회를 10년 만에 떠난 나에게만 초점을 두는 것은 그분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다.

주님의교회에서의 소명은 무소유의 목회였는데, 100주년기념교회에서의 소명은 양화진을 지키는 것이다. 극과 극이다. 주님을 위해 극에서 극으로 전환 할 때 자신이 스스로 개혁되어야하는 필연적인 과정을 겪는다. 정진경 목사님께서 가장 왜소한 모습으로 찾아오셔서 양화진을 맡아 달라며 이슬 맺힌 눈으로 당부하실 때, 교회목회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나의 개인적인 신념을 버리고서야 양화진묘지기의 소명을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었다.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위해 매일 나를 뒤집어엎는 것 그것이 개혁이다.

장로권사 호칭제도 마찬가지다. 100주년기념교회에서 시작한 호칭제가 10년 후면 새로운 무브먼트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그러나 이 호칭제 역시 언젠가 시대와 사람이 변하면 개혁과 개선의 대상이 될 것이다.

죽은 불신자의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느냐가 논란이 됐다. 신학적 배경이 없는 분들에게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지 않은가.

기도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슨 기도를 하느냐의 문제다. 믿지 않고 죽은 자를 구원해달라고 기도한다면 그것은 문제다. 그러나 교인의 가족 중에 믿지 않고 돌아가신 분의 장례식장에서 그 영혼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는 것에는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어느 젊은이가 중죄를 저질렀다고 하자. 판사는 법에 따라 판결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의 어머니가 판사 집 앞에서 ‘내 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라고 말할 수는 있지 않는가. 만약 그 어머니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범법행위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그것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이다. 하나님께 죽은 자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분에게 자신이 하나님이시냐고 묻고 싶다.
▲  이재철 목사는  죽은 자의 영혼을 긍휼히 여겨 달라는 기도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뉴스파워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굳이 기도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하나?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통합측 서울서노회가 문제 삼은 <성숙자반>을 읽어 보셨는가? 우리교회 홈페이지에 해당내용을 올려두었으니 참조할 수 있다. 그것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서술한 내용이 아니다. 세계 교회 중에 유독 우리나라 개신교회에서만 빠져 있는 사도신경의 ‘음부에 내려가시고’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목양차원에서 장례식에서의 기도와 연결한 것이다. 이 영혼이 믿지 않고 죽었는데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이고, 또 유족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대신하여 기도하므로 유족들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건과 관련하여 며칠 전 뉴스파워에 실린 이정석 교수님의 코멘트를 읽었다. 이정석 교수님은 이번에 양화진 선임연구원이 이 교수님께서 사도신경과 관련하여 미국에서 쓰신 글을 소개해 주어 교수님을 알게 되었다. 이정석 교수님은 사도신경에서 ‘음부에 내려가시고’라는 부분이 빠져 있는 것은 한국 교회의 잘못이고 오류임을 정확히 지적하셨다. 또 이것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복원되어야 함을 밝히셨다. ‘음부에 내려가시고’라는 구절에 대해 해석상의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그 구절이 반드시 복원되어야함을 소신 있게 밝히신 교수님의 글에 20년 동안 동일한 주장을 해온 나로서는 큰 감명을 받았다.

이정석 교수님께서는 뉴스파워의 기사에서, 믿지 않고 죽은 자를 위해 소극적이고 단순한 기원은 되지만 적극적인 간구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적극적인 간구는 죽은 자를 구원해달라는 기도를 의미할 것이고, 소극적이고 단순한 기원은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일 것이다.

교회가 이 세상의 문화 속에서 어느 정도까지 수용을 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을 많이 고민을 한다. 고민하는 청년 대학생이 한국 기독교 초기에 묶어 두었던 음주흡연문화를 풀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질문한다면?

세상의 문화는 수용의 대상이 아니라 활용의 도구다. 그것은 복음의 도구이고, 선교의 도구이고, 소통의 도구이다. 선교의 도구가 세상 사람을 교회의 문턱에까지 이르게 하는 도구라면, 복음의 도구는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의 핵심과 가치를 알게 하는 도구라는 의미다. 소통의 도구는 말할 것도 없이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의 문화를 활용의 도구로 사용하려하지 않고, 도리어 기독교문화와 세상문화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려고만 한다면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계속 배척당할 것이다. 2천 년 전 사도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당시 세상의 용어인 ‘로고스’로 표현하였다. 로마의 국교가 된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건축양식으로 예배당을 건축하고, 당시의 악기로 찬양을 연주했다. 기독교가 세상문화를 활용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 역시 세상문화, 특히 한국문화를 활용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세상이 교회에 친근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음주흡연은 다른 차원의 문화다. 그것은 건강한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문화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은 건강한 문화에 국한 된 것이다. 음주흡연은 건강에 해로울뿐더러 영성에도 해롭다. 힌두교의 채식주의자들이 어디에서든 자신이 채식주의자임을 떳떳이 밝히고서도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것처럼, 한국의 크리스천 역시 음주흡연을 하지 않고서도 직장이나 세상에서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지혜를 길러야 한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린다.

*대담 진행: 김철영 목사, 녹취 및 정리: 이인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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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9/09 [00:0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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