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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10 [21:01]
'섬김의 기쁨'(막10:45,눅22:27,롬12:11)
할렐루야교회 제직기도회 김명혁 목사 설교 2009-08-31
 
김명혁
오늘 저녁 할렐루야교회 제직기도회에 와서 “섬김의 기쁨”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인생의 최고의 목적 중의 하나가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부귀영화보다 성공보다 기쁨이 더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곳에서 기쁨을 예찬하고 고백하며 간구했습니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 다윗의 진솔한 고백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수고함으로 낙[기쁨]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줄을 또한 알았도다”(전3:12,13). 솔로몬의 진솔한 마지막 고백이었습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90:14). 모세의 진솔한 마지막 기도였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요15:11). 주님의 마지막 축복의 말씀들 중 한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빌4:10). 로마 옥에 갇혔던 사도 바울의 진솔한 고백이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살전5:16). 사도 바울의 권면과 명령의 말씀이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마25:21). 역사의 종말에 주님께서 하실 말씀입니다.

진정한 기쁨이 어디에서 옵니까? 솔로몬이 누렸던 부귀영화와 성공에서 옵니까? 아닙니다. 그것들은 다 헛되고 헛된 것들이라고 솔로몬이 고백했습니다. 모세가 경험했던 홍해의 이적과 광야의 이적에서 옵니까? 아닙니다. 모세는 마지막에 지극히 겸손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이렇게 고백하며 기도했습니다. "아침마다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주님의 인자하심으로 평생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게 하시옵소서." 사도 바울이 경험했던 치유와 이적에서 옵니까?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 안에서 그리고 성도들 안에서 기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주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빌4:10).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과 핍박을 당하는 것을 기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고후12:10).

진정한 기쁨이 어디에서 옵니까? 주님 앞에 있을 때 순수한 기쁨이 오고, 주님 안에 있을 때 진정한 기쁨이 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과 곤란을 당할 때 진정한 기쁨이 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을 섬길 때 진정한 기쁨이 옵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주님만을 섬길 때 그리고 주님께서 부탁하신 주님의 양들을 돌아보며 섬길 때 진정한 기쁨이 옵니다.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가장 잘 묘사하는 성경 구절이 하나 있다고 존 스토트 박사가 지적한 일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막10:45 말씀인데 그것은 한 마디로 "섬김의 삶"과 "섬김의 사역"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섬김의 삶과 섬김의 사역을 통해서 만족과 기쁨을 누렸다고 했습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사53:11). "예수께서 성령을 기뻐하사 가라사대"(눅10:20).

진정한 기쁨은 주님 섬김에서 옵니다. 주님을 섬기면서 능욕도 당하고 궁핍도 당하고 핍박도 당하고 곤란도 당할 때 세상이 알지 못하는 진정한 기쁨이 옵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서 인간이 섬김의 삶을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교만하고 명예추구적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사도 바울이 자신을 묘사한대로 만물의 찌끼 같은 즉 쓰레기 같은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고 만 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섬긴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쓰레기 같은 인간들 중에서 주님을 눈물과 사랑으로 섬기면서 기뻐하고 또 기뻐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저녁 “섬김의 기쁨”을 체험하면서 산 몇몇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분들은 저와 여러분들의 영원한 모델들이고 영원한 스승들입니다. 사실 제직들은 모두 섬기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장로와 권사와 집사들은 모두 양 무리들을 돌아보는 “섬기는 자들”이고, 목사와 전도사와 교역자들은 모두 양 무리들을 먹이고 치는 “섬기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섬김의 기쁨”을 누린 몇몇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첫째로, 막달라 마리아의 “섬김의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일곱 귀신 들렸던 여자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설교자 매클라렌은 막달라 마리아가 일곱 가지 죄악의 늪에 빠졌던 죄인중의 죄인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막달라 마리아가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죄인인 한 여자’였을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길거리의 창녀였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개신교회도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었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찬송을 부릅니다.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 받아서 향기론 산 제물 주님께 바치리”(346장).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세리와 창기와 같은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를 만나서 마태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푸셨고, 일곱 귀신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서 그녀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죄 사함과 구원의 은총을 받은 막달라 마리아는 너무 고맙고 너무 감사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싶고 주님을 섬기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jesus christ super star” 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드리는 않지만 그 내용에 일리가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서 어쩔 줄을 모르며 이렇게 노래합니다. i don't know how to love him. what to do. i've been changed, yes, really changed. i want him. i love him. 막달라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를 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i don't know how to serve him. what to do. i've been changed, yes, really changed. i want to serve him. i want to help him. i love him.

저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눅7장에 나오는 죄인인 한 여자가 막달라 마리아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어느 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초청을 받아 식사를 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시몬의 집으로 달려 갔습니다. 초청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초청을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무조건 달려가서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눈물을 쏟으면서 자기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셨습니다. 자기의 머리 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자기가 가져온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눅7:37,38). 이와 같은 행동을 바리새인 시몬은 너무너무 못 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의 눈물과 사랑의 섬김을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눅7:44-48). 막달라 마리아는 너무 놀라고 너무 기뻐서 아마 기절할 뻔 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나 같은 쓰레기 같은 인간이 보인 보잘것없는 작은 섬김을 주님께서 그렇게도 귀하게 보시면서 기뻐하시고 칭찬하실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막달라 마리아는 너무 놀라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을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눈 앞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하늘도 구름도 달도 별들도 나무도 꽃들도 모두 자기를 축하해주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저는 주님 “섬김의 기쁨”의 극치를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발견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울면서 기뻐했고 예수님은 웃으시면서 기뻐하셨고 시몬은 못 마땅하게 여기면서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만약 막달라 마리아의 눈물과 사랑의 섬김이 누가복음 7장에서 그쳤다면, 오늘 날 감성의 흥분에 사로잡혀서 울고 불고 떠들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상당 수의 한국교회 신자들의 낮은 수준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의 섬김은 감성에 머물지 않았고 실제적인 섬김과 봉사의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눅8장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자기의 소유로 다른 여인들과 함께 주님과 그의 제자들을 사랑으로 섬겼다고 했습니다.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 쌔 열 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눅8:1-3).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앞장을 섰습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 항상 예수님 곁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걸어가실 때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고 슬피 울며 따라가는 여자들 중에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고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시는 예수님의 곁에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눅23:27). "갈리리에서 부터 좇아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마27:55,56). 슬피 우는 여인들 가운데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옵니다. 그만큼 예수님에 대한 막달라 마리아의 사랑과 섬김이 지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의 섬김” 그것이 막달라 마리아의 삶의 전부였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요19:25). 성모 마리아와 요한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막달라 마리아는 계속해서 십자가 아래 남아 있다가 예수님의 시체를 넣은 무덤에까지 따라갔습니다.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마27:59-61). 예수님을 향한 막달라 마리아의 사랑과 섬김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인식 후 첫날 이른 새벽 예수님의 무덤을 제일 먼저 찾아 간 사람도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요20: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11). 진정한 섬김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곁에 있는 것인데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곁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일 먼저 자기를 나타내 보이신 사람은 베드로도 요한도 아닌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사랑은 사랑과 통하고 섬김은 섬김과 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슬퍼서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의 주님께서 나타나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마리아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마리아야!" 마리아는 온 몸에 전율을 느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가슴이 뛰다가 멎는듯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순간 마리아의 몸과 마음에는 천지에도 채울 수 없는 충만한 기쁨과 환희가 넘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항상 쓰던 히브리 방언으로 "선생님!"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왈칵 예수님의 몸을 붙잡았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빼앗길 수 없다는 단호한 태도였습니다. 예수님 없이는 이제는 혼자서 살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였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육신의 세계가 아닌 영의 세계를 보여주셨고 땅의 세계가 아닌 하늘의 세계를 보여주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초 시간적 초 공간적 세계를 보여주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나를 만질 필요가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나는 곧 하늘로 아버지께로 올라가지만 언제나 마리아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가서 이 사실을 전파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제자들과 온 세상에 전파하라고 분부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으로부터 엄청난 소명을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뛰어가서 이 사실을 제일 먼저 열 한 제자들에게 전했습니다.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요20:18). 진정한 섬김은 사랑으로 나타나고 순종으로 나타나는데 막달라 마리아는 사랑과 순종으로 그의 섬김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섬김의 사역은 평생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 후 귀신 들린 사람들에게도 달려갔고, 부도덕한 사람들에게도 달려갔고, 일곱 가지 죄악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도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죄 사함과 구원의 주님을 전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을 진정한 사랑으로 섬길 수가 있습니까? 의인인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이, 주님을 진정한 사랑으로 섬길 수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죄인이었던 사람이, 아니 지금도 죄인인 사람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주님을 진정한 사랑으로 섬길 수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로부터 멸시와 천대와 정죄를 받는 사람들도, 오래 믿은 교인들로부터 멸시와 천대와 정죄를 받는 사람들도, 주님을 진정한 사랑으로 섬길 수가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되고 죄 사함과 구원의 은총을 받기만 하면 됩니다. 기독교는 역설적인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모순된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이해하기 힘든 종교입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발견합니다.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섬김의 기쁨”의 극치를 발견합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버림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지만 주님을 섬길 수가 있고 주님 “섬김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의 “섬김의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도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4:13에서 자기를 묘사하면서 “만물의 찌끼”라고 했습니다. 그는 교만과 위선과 증오와 정죄의 극치로 달리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이 세상의 가장 큰 죄는 살인과 간음 죄보다는 교만과 위선과 증오와 정죄의 죄인데 사울은 가장 무서운 죄악의 늪에 깊이 빠져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을 죄인으로 정죄하여 돌로 쳐 죽인 사람이었습니다. 교회를 불법 단체로 간주하여 박해했고 예수를 사이비 종교의 교주로 간주하며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막달라 마리아보다도 더 비참하고 더 불행한 인간이었습니다. 지옥 밑 바닥으로 떨어져야 마땅한 인간 쓰레기요 인간 마귀였습니다. 그런데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마태와 막달라 마리아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사울까지 부르셨습니다. 사울을 만나주셨고 사울의 이름까지 부르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너무 놀라고 너무 두려워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울을 몽둥이로 때려 지옥으로 내려 보내시는 대신 사울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사울은 너무 놀라고 너무 기가 막혀서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 같음을 느꼈을 것입니다. 사울의 인생이 바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없이 높아졌던 사울이 한 없이 낮아지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랑과는 상관이 없었고 섬김과는 상관이 없었던 사울이 주님을 사랑하고 싶고 주님을 섬기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은바 됨이니“(롬5: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5:14). 결국 사도 바울은 주님 사랑과 주님 섬김의 삶을 살기로 작정하고 그 길로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롬1:9). 우선 자기를 부르는 말이 바뀌어졌습니다. 그가 자기를 부르면서 사용한 말이 바로 ‘종’이란 말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롬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빌1:1). 종은 자기를 섬기면서 사는 사람이 아니고 주인을 섬기면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종은 자기의 의지나 계획이나 기질이나 취미에 따라서 살지 않고 주인의 의지와 계획과 기질과 취미에 따라서 사는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을 살펴보면 자기의 의지나 계획에 따라서 움직인 적은 거의 한 번도 없었습니다. 주님의 의지와 계획과 지시에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철저하게 주님만을 섬기는 충성된 종으로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마게도냐로 가라고 하면 마게도냐로 갔고 로마로 가라고 라면 로마로 갔습니다. 기근을 당하고 있는 예루살렘에 가서 구제 헌금을 전달하며 저들을 섬기라고 하면 예루살렘에 가서 구제 헌금을 전달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롬15:25). 이방인 교회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라고 하면 이방인 교회를 위해서 고난을 당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이방의 교회들을 위해서 매를 맞으라고 하면 매를 맞았고 풍랑의 위험을 당하라고 하면 풍랑의 위험을 당했고 순교의 죽음을 죽으라고 하면 순교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섬기면 섬길수록, 주님과 교회를 섬기면 섬길수록, 원망과 불평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 생기고 기쁨이 또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2:17).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사도 바울은 결국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이 땅에 흩어져 있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자기의 몸을 사랑과 희생의 제물로 드리는 섬김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섬김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그러면서 기뻐하고 또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에게서 또 하나의 “섬김의 기쁨”의 극치를 발견합니다.

셋째로, 루디아의 “섬김의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루디아는 평범한 여자였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옷감 장사를 하던 평범한 여자였습니다. 남편이 살아 있었을 수도 있었고 죽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본래 고향은 두아디라였는데 옷감 장사를 더 잘 하기 위해서 두아디라를 떠나 마게도냐의 한 도시인 빌립보에 와서 살면서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루디아는 고향을 떠나 외국에 와서 자주색 옷감 장사를 하면서도 신앙생활과 기도 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16:13에 보면 루디아가 빌립보에 와서 살면서도 안식일에 몇몇 여자들과 함께 빌립보 강변에 모여서 기도를 했다고 했습니다. 행16:14은 루디아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물론 사도행전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또는 ‘경외’하는 사람이란 말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고 믿음의 길로 절반쯤 들어 온 사람을 가리킵니다. 가이사랴의 고넬료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믿음의 길로 절반쯤 들어 온 루디아를 귀하게 보시고 빌립보와 마게도냐와 유럽 복음화의 선구자가 될 사람으로 지목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로 하여금 마게도냐의 빌립보로 가게 하셨습니다. 거기서 루디아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섬세하고 오묘하고 아름답습니다. 결국 루디아는 사도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빌립보 강변에서 온 가족이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빌립보 강변을 두 번 방문했는데 방문할 때마다 루디아를 생각하고 사도 바울을 생각하면서 깊은 감동을 받곤 했습니다. 사실 강변교회를 시작할 때 빌립보 교회와 빌립보 강변을 생각하면서 강변교회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루디아는 결국 섬김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루디아는 하나님을 섬기고 사도 바울을 섬기고 가족을 섬기고 빌립보 사람들을 섬기고 빌립보 교회를 섬기는 섬김의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섬김의 첫 단계는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인데, 루디아는 사도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을 열어 청종했습니다. 섬김의 둘째 단계는 자기와 자기 집이 모두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는 일인데, 루디아는 자기와 자기 집이 모두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섬김의 셋째 단계는 손을 열고 집을 열어서 주님의 종들을 영접하는 일인데, 루디아는 손을 열고 집을 열어서 바울과 실라와 누가를 영접했습니다.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행16:15). 섬김의 넷째 단계는 자기 집을 열어 교회로 삼는 일인데, 루디아는 자기의 집을 열어 교회를 삼았습니다. “두 사람이 옥에서 나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가니라”(행16:40). 결국 루디아는 섬기는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었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빌립보서의 두드러진 아름다운 주제가 ‘교제’와 ‘기쁨’인데 ‘교제’와 ‘기쁨’은 루디아의 섬김에게서 비롯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성경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1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을 때 루디아를 생각하면서 기술했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1:3-8). 섬김의 여인 루디아는 마지막까지 기쁨이 충만한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강변교회에서 “여러분들은 모두 루디아와 같은 권사님들이 되십시오” 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우리는 루디아의 삶에서 또 하나의 “섬김의 기쁨”의 본을 봅니다.

넷째로, 윤함애 사모님의 “섬김의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윤함애 사모님은 제주도 복음화의 선구자였던 이기풍 목사님의 사모님이었는데 이기풍 목사님의 복음 사역 뒤에는 윤함애 사모님의 섬김의 사역이 너무너무 주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사실 선교는 유창한 설교나 심오한 신학강의나 놀라운 이적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봉사로 이루어지는데 운함애 사모님은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봉사로 제주도 복음화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윤함에 사모님은 제주도로 떠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복한 하나님 섬김의 여인이었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이 제주도에 선교사로 가기로 자원하고 나섰지만 선교사로 떠나기로 준비하는 동안 그는 마음이 약해져서 제주도 가기를 주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윤함애 사모님은 남편을 격려했습니다. “우리가 안 가면 누가 불쌍한 영혼을 구하겠어요. 주저 말고 속히 떠납시다.” 13년 동안의 제주도 사역은 수 많은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그러나 윤함에 사모님의 눈물의 기도와 사랑의 섬김이 이기풍 목사님을 도와서 제주도 복음화를 이루어내고 말았습니다. 어떤 때는 이기풍 목사님과 윤함애 사모님이 금식하고 기도하므로 미치광이를 고친 일도 있었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의 성공적인 제주도 사역 뒤에는 윤함애 사모님의 눈물의 기도와 사랑의 수고와 사랑의 섬김이 있었던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기도의 여인이었고 사랑과 섬김과 봉사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항상 머리맡에 약 상자와 성경책을 두고 자다가도 부르면 벌떡 일어나 제주도민들을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교인들 중 누가 운명하면 항상 달려가서 시체를 목욕시키고 얼굴에 화장을 해 준 다음 손수 만든 수의를 입히고 밤새 유가족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또한 그늘진 곳에서 울고 있는 영혼들을 사랑으로 돌보았다고 합니다. 그의 집은 항상 아침에는 거지 떼들로 낮에는 나병 환자들로 가득 찼다고 합니다. 손이 떨어진 나환자에게는 손수 밥을 떠서 먹여주었다고 합니다. 나환자들이 돌아간 뒤에도 그녀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윤함에 사모님은 틀림 없이 섬김의 삶을 살아오는 동안 주님께서 사모님의 가슴에 채워주시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순수한 기쁨과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기풍 목사님과 윤함애 사모님의 막내 딸인 이사례 권사님과 여러 해 동안 교제를 나누면서 어쩌면 그렇게도 겸손하고 소박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운지 많은 감동을 받곤 했습니다. 우리는 윤함애 사모님에게서 또 하나의 “섬김의 기쁨”을 발견합니다.

다섯째로, 정양순 사모님의 “섬김의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정양순 사모님은 손양원 목사님의 사모님이었는데 정양순 사모님의 하나님 섬김과 남편 섬김과 나환자들 섬김은 너무너무 귀하고 아름다운 섬김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하나님을 향한 순교적 신앙을 가지게 된 데는 정양순 사모님의 기도와 격려와 섬김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여수 경찰서에 수감된 지 10개월 후 손양원 전도사는 광주 형무소로 이송되었는데 이송되던 날 정양순 사모님은 자녀들을 데리고 여수 경찰서 앞에서 잠시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 짧은 만남의 순간 정양순 사모님은 남편의 신앙을 격려하는 단 한 마디의 말을 전했을 뿐이었습니다. 그의 딸 손동희 권사는 그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 '어디로 가십니까?' '광주로 ...' 채 대답을 다 듣지도 않고 어머니는 숨겨 가지고 온 성경책을 펼쳤다. 반갑다고 인사나 나누고 안부나 물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어머니의 마음은 조급하기만 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성경 한 구절을 손으로 가리키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보! 여기 이말 아시지요? 신사참배에 응하면 내 남편 될 자격 없습니다. 영혼 구원도 못 받습니다.' '염려 마오. 걱정 말고 기도나 해 주구려.' 형사가 걸어와 아버지를 데리고 갔다. 잠간 동안의 상면, 그리고 또 다시 긴 이별 .... 아버지는 광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그때 어머니가 펼쳐 보인 말씀은 요한계시록 2장 10절이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그때는 내 나이 어리고 생각이 짧아 그 상황의 의미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없었지만, 어른이 되어 그때 일을 찬찬히 되짚어 볼 때마다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들곤 한다." 손양원 목사님도 후에 그 사실을 자녀들에게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네 어머니 신앙이 오늘날 나를 있게 했단다. 감옥에 있을 때도 네 어머니가 신앙의 보조를 맞춰 주었기에 이기고 돌아 올 수 있었던 거야. 신앙도 손발이 맞고 호흡이 맞아야 함께 정진할 수 있는 거지. 혼자서는 어렵단다. 아무렴, 대학 열 군데 나오면 뭐해. 믿음이 중요하지." 정양순 사모님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섬긴 분이었고 남편을 섬긴 분이었고 그리고 나환자들을 섬긴 분이었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이 아닌 신앙적인 관점에서 하나님과 남편과 나환자들을 사랑하고 섬긴 분이었습니다. 정양순 사모님의 하나님 섬김과 남편 섬김은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졌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1950년 9월 13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2주일간 온갖 수모를 다 당하고 9월 28일 밤 11시쯤 미평 과수원에서 총살당하여 48세에 순교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남편의 순교 소식을 접한 정양순 사모님은 남편의 시신 앞에서 지난 밤에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서 비통해 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오! 당신 소원대로 됐군요. 평소 주기철 목사님을 그렇게도 부러워했는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평생 동안 주의 일을 하게 하시고, 손양원 목사가 소원하던 순교를 허락해 주신 은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정양순 사모님은 마지막까지 나환자들의 친구로 살다가 1977년 11월 26일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들이 있는 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그가 운명하기 전 가슴에 꼬깃꼬깃 간직했던 돈을 꺼내어 딸에게 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돈을 밀양교회에 전해 주어라.” 밀양교회는 건축 중에 있던 나환자 교회였습니다. 그의 시신은 남편의 무덤과 합장되었습니다. 정양순 사모님은 슬픔과 아픔과 고통의 골짜기를 걸어가면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키면서 하나님 섬김과 남편 섬김과 나환자 섬김의 기쁨을 누리면서 산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들의 딸인 손동희 권사님과 여러 해 동안 교제를 나누면서 이사례 권사님과 비슷한 겸손함과 소박함과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 깊은 감동을 받곤 합니다. 우리는 정양순 사모님의 삶에서 또 하나의 “섬김의 기쁨”의 삶을 발견합니다.

여섯째로, 장기려 박사님의 “섬김의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주님 섬김과 이웃 섬김으로 한 평생을 제물로 바친 장기려 박사님은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 날 새벽 1시45분 경 85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때 한국의 언론들은 그 분을 가리켜 "한국의 슈바이쳐" 또는 "살아있는 작은 예수" 라고 불렀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일평생 무소유로 가난하게 사신 분이었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따뜻하게 사신 분이었고, 예수님을 섬기며 충성스럽게 사신 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말 보다는 감동적인 설교 보다는 실천적인 삶이 필요한 시대인데 장기려 박사님은 사랑과 섬김의 삶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신 분이었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첫째 개인은 물론 교회가 물질적 부요를 탐하는 것을 죄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교회가 건물을 크게 짓는다던가 외형적 확장에 우선적인 관심을 쓰는 것은 신앙의 본질일 수가 없다고 보았고 이런 경향을 자본주의적 맘몬이즘으로 물신주의로 이해했습니다. 한국사회가 잘 살아보자고 외치고 한국교회가 외적 성장에 골몰하고 있던 때인 1975년에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밀톤의 실낙원을 읽어보면 맘몬은 고층 건물을 잘 짓고, 물질 세계의 발전을 잘 일으키는 재능이 있는 마귀로 묘사되었다. 이것을 읽은 뒤부터는 고층건물을 보면 맘몬의 힘을 연상하게 된다. 하늘을 찌를 듯한 고딕건물 예배당도 나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느껴지지 아니하고 사람의 예술품은 될지언정 맘몬의 재주인 듯한 느낌이 든다. 또 우리는 세상에서 권세와 지위와 명예 그리고 사업의 번영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축하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여 살던 사람들에게 내려주시는 선물이었던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맘몬과 타협해서 산 결과로 된 것이 아니었던가?” 그는 가난하고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둘째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따뜻하게 사셨습니다. 월남 후인 1951년 5월부터 부산에서 창고를 빌려 간이 병원을 설립하고 피난민들과 전상자들을 무료로 돕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복음병원의 시작이었고 나중에는 고신의료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1969년부터 8천 여명의 간질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했다고 합니다. 그는 치료비가 없어 고민하는 환자들을 몰래 밤에 병원 뒷문을 열어주면서 집으로 돌려보내기 일쑤였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의 삶의 철학은 사랑 실천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은 지고선이다. 사랑은 도덕의 도덕이요 생명의 생명이다. 사랑의 철학은 생명철학의 일대 혁명이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 사랑은 영원한 것, 사랑은 생명 자체이다.” 장기려 박사님은 "사랑의 통일론"을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사랑 앞에는 어떤 이념도 한낱 쓰레기일 뿐 우리는 무력도, 경제력도 아닌 오직 사랑으로 통일을 성취해야 한다."

장기려 박사님은 셋째 주님만을 섬기며 충성스럽게 사셨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1947년 김일성 대학 의과대학 교수 겸 부속병원 외과 과장으로 부임할 때 주일에는 일할 수 없다는 조건으로 부임했고, 그 학교와 병원에서 일할 때 주일을 지키면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는 1948년 8월 주기철 목사님이 시무 하시던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장로로 장립 받은 후 평생 주님과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겼습니다. 그분의 삶의 모토가 "예수를 본 받고 섬기자" 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칭송을 받거나 섬김을 받기를 싫어했고 오직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섬기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기 무덤에 "오직 주를 섬기고 간 사람" 이란 비문을 써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분은 "주님만을 섬기고 간 사람" 이었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한 평생 사모님과 자녀들을 평양에 남겨 두고 온 슬픔과 아픔을 가슴에 간직하고 슬프게 살았지만 주님만을 충성스럽게 섬기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사랑으로 섬기면서 그리고 천구을 바라보면서 기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우리는 장기려 박사님의 슬픔과 아픔의 삶에서 또 하나의 순수한 “섬김의 기쁨”을 발견합니다.

일곱째로, 조춘국 집사와 박달안 권사의 “섬김의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조춘국 집사와 박달안 권사는 강변교회 초기에 제가 발견한 보석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조춘국씨는 50평생 남 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환경에서 살아온 불교 신자였습니다. 단정하고 빈틈없는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녀가 갑자기 견디기 어려운 가정의 불행을 겪으면서 미움과 저주에 사무쳐 눈물과 한숨으로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유방암에 걸려 유방을 제거하는 수술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소개로 재가 인도하던 성경 공부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강변교회가 시작하기 바로 전이었습니다. 그녀는 성경 공부를 하면서 신앙의 눈이 뜨이기 시작했습니다. 수 개월이 지나면서 그녀의 사고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미움의 감정이 사라지고 용서와 사랑의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잠 못 이루던 밤이 사라지고 마음에 평안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이고 싶던 불행의 장본인을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그의 두 손을 붙잡고 이제는 미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토해낼 수가 있었습니다. 자기도 놀랐고 주위에 둘러섰던 친구들도 놀랐습니다. 그러나 수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암이 재발했습니다. 이번에는 척추암이었습니다. 뼈를 깎는듯한 아픔이 척추에 쏟아지곤 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소망이 없음을 알면서도 조춘국씨는 어린 아이처럼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주님께 맡겼습니다. 중환자 실에서 사경을 헤매던 때도 있었습니다. 온 교회가 함께 기도했습니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고요히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날 밤 그녀의 몸 속에서 돌 같이 굳는 검은 것들이 26개나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기쁨에 못 이겨 여기 저기 뛰어다니면서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춘국씨는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과 구원의 기쁨을 체험하고 그리고 집사가 되어 주님과 교회를 정성껏 섬겼습니다. 3년 동안 뛰어 다니면서 자기 친구들 20여명을 주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암에 걸려 고통하던 보사부 차관을 지낸 분도 그녀와 나의 전도로 주님을 영접했고 평안을 누렸고 후에는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물론 그녀는 척추암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 때문에 때로 자리에 드러눕곤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녀를 방문하고 그녀를 위하여 기도하면 그렇게도 극심하게 그녀를 괴롭히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목사님이 기도해 주시면 아픈 것이 다 없어져요.”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걸어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그저 신기하다고만 했습니다. 조춘국 집사는 섬김과 전도의 사명을 다한 후 수년 후 가족들과 몇몇 성도들이 찬송을 부르는 가운데 주님 품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녀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해 준 담임 목사가 그녀를 위해서 기도한 후 그녀의 눈을 감겨 주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복된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조춘국 집사를 생각하면 마음에 아련한 슬픔과 함께 순수한 기쁨을 느끼곤 합니다. 조춘국 집사는 보배로운 성도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 섬김과 친구들 섬김의 기쁨을 체험하고 주님 품으로 옮겨진 아름다운 분입니다. 천국에서 반갑고 기쁘게 만나게 될 것입니다.

또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강변교회를 개척했을 때 처음으로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여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려대학을 졸업한 분으로 생각과 주견이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얼마 후 신앙을 고백하고 예수를 믿어 학습과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그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는데 그 어머니는 평생 불교를 독실히 믿어온 보살이었습니다. 보통 보살도 아니고 회장 보살이었습니다. 그 회장 보살은 자기 딸이 예수를 믿은 지 6개월 정도밖에 안되었는데도 진리를 깨닫는 정도가 자기보다도 빠른 것을 감지하고 기독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회장 보살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분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교를 믿으면 지옥 간다는 말은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경의를 표하는 말을 했습니다. “보살님, 보살님은 참 훌륭하십니다. 보통 사람들은 돈이나 명예를 위해서 한 평생을 사는데, 보살님은 진리를 위해서 한 평생을 사셨습니다. 보살님은 참 훌륭하십니다.” 그런데 불교에도 진리가 있기는 하지만, 기독교의 진리는 불교의 진리보다 더 크고 더 완전하다고 말했습니다. 불교의 진리를 촛불에 비하면 기독교의 진리는 태양에 비할 수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그 진리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우리에게 참 평안과 기쁨을 주는 진리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분은 나의 말을 경청하며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 딸이 단 시일 안에 터득한 진리가 자기가 평생 터득한 진리와 맞먹는 것 같아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부연했습니다. 저는 그분과 이와 같은 대화를 거의 육 개월간 계속했습니다. 한번은 그분이 길을 걷다가 넘어져 다리를 삐었습니다. 그 일로 저는 그분을 자주 찾아가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결국 그분은 육 개월 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여러 사찰에 연락하여 자기의 이름을 제해 달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학습을 받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그분의 삶이 완전히 바뀌어졌습니다. 언제나 감사를 지니고 살게 되었고 수 많은 친구들과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많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후에 집사가 되어 교회를 충실히 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명예 권사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람이 이렇게 완전하게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산 간증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분을 보면서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놀랍고 큰 것인가를 새롭게 경험했습니다. 그 분이 돌아가실 때 제가 장례를 해 드렸습니다. 얼마나 귀하고 보람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박달안 권사는 보배로운 성도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 섬김과 친구들 섬김의 기쁨을 체험하고 주님 품으로 옮겨진 아름다운 분입니다. 천국에서 반갑고 기쁘게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너무 긴 이야기를 했습니다. 김상복 목사님이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라고 해서 좀 긴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값지고 가장 귀중한 것은 부귀영화나 성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채워주시는 기쁨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 하나이다”(시4:7). 그런데 그런 기쁨은 주님 섬김과 성도 섬김과 이웃 섬김과 모든 사람 섬김에서 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부어주셔서 저와 여러분들도 섬김의 삶을 살게 하시고 섬김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섬김의 삶을 살려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부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낮아져야 하고 겸손해져야 할 것입니다. 따뜻해 져야 하고 부드러워져야 할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손을 열고 집을 열고 자기 자신을 내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눈물을 지니고 함께 울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섬김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섬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셔야 할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께서 성령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셔서 섬김의 삶을 살게 하시고 섬김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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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8/31 [10:31]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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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교> 순종으로 여는 축복의 길 (신 30:8-29) 김동호 2009/06/29/
[설교] 소돔을 닮아가는 예루살렘 김동호 2009/06/10/
[설교] 성령의 역사아래 (행13:1-12) 이수영 2009/05/26/
[설교] 성전을 건축하며 함께 준비할 것 (역대상 23:27~32) 이수영 2009/05/18/
[설교]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 (역대상 29:1~9) 이수영 200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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