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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13 [20:01]
성령의 역사아래 (행13:1-12)
새문안교회 이수영 목사 설교, 2009-05-24
 
이수영
오늘 본문은 빌립과 베드로와 안디옥교회에 의해 길이 닦기기 시작한 이방민족에 대한 전도가 바울에 의해 “땅끝까지”의 본격적인 이방전도로 나아가기 시작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과 그때로부터 시작된 박해 때문에 사방으로 흩어진 신자들에 의해 안디옥에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고 그의 수고로 큰 무리가 주님께 나아왔습니다(행11:19-24). 동역자가 필요하다고 여긴 바나바는 바울의 고향인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로 가서 그를 찾아 안디옥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두 사람이 일 년간 전도하며 목회한 결과로 안디옥 교회는 튼튼히 섰으며 거기서 비로소 주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대한 박해는 오히려 교회의 확산과 성장을 가져왔지만 그렇다고 박해가 중단된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헤롯 1세의 손자이며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조카인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인 것입니다(행12:1-2). 유대인들이 야고보의 죽음을 기뻐하는 것을 본 헤롯은 또 베드로를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행12:3-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기적과 같은 놀라운 방법으로 파수꾼들의 엄중한 감시를 무력하게 만드시며 안전히 탈옥시켜 주셨습니다(행12:4-10).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에 손을 댄 헤롯에게 하나님께서 손을 대셨습니다. 헤롯을 벌레에게 먹혀 죽게 하신 것입니다(행12:23). 세상권력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과 주의 몸 된 교회를 억누르고 파괴하려 해도 그 권력이 무너지고 말 뿐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주의 몸 된 교회는 더욱 왕성해져 감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기자는 헤롯의 죽음을 기록하고(행12:23) 이어서 보란 듯이 곧바로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행12:24)고 썼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흥왕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안디옥 교회로부터 땅 끝을 향해 퍼져 나아가기 시작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세계선교의 전초기지로 쓰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미리 뛰어난 사역자들을 준비하셨습니다. 본문 1절에 다섯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 사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한 것은 다섯 사람 중 몇 사람은 선지자이고 다른 몇 사람은 교사였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가르치는 교사들이었는데 그들의 가르침이 성령에 이끌림을 받은 것이었다는 의미로 그들을 모두 선지자라고도 부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섯 사람 중에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 있습니다. 그는 그 이름으로 보아 아마도 북아프리카에서 온 흑인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또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도 다섯 사람 중에 들어있습니다. “분봉 왕 헤롯”은 헤롯 1세의 아들이고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인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삼촌인 헤롯 안디바를 가리킵니다. 마나엔이 그의 “젖동생”이었다는 것은 그가 간난아이 때부터 헤롯 안디바와 함께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뜻입니다. 그가 왕과 함께 궁중에서 살던 대단히 지체가 높은 가정 출신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세계선교의 전초기지요 요람이 된 안디옥 교회를 이끌어가는 다섯 선지자 교사들의 출신지역과 신분이 다양했음에 의미를 두고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며 복음이 능력 있게 더 퍼져나가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없이 가리키는 것입니다. 끼리끼리 모여 배타적으로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복음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본문 2-3절을 보면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그들의 도시 안에서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와 복음을 증언한 첫 번째 개교회입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또한 자기들을 넘어 보다 넓은 세계로 복음이 전파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그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사람들을 파송하기 시작한 첫 번째 교회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주를 섬겨 금식할 때”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를 섬겼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안디옥 교회 온 회중이 모여 금식하며 예배드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안디옥 교회 온 회중이 뭔가 중요한 뜻을 품고 결단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성령을 통한 그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드디어 성령께서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말씀하심을 확신한 안디옥 교회는 역시 금식하는 가운데 그 뜻을 받들기로 다짐하는 기도를 드린 후 바나바와 바울 두 사람을 안수하고 선교사로 파송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의 한 중요한 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 교회가 세계로 확산되고 더욱 성장하는 일대 전환기를 맞았음을 증언하는 기록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첫 공식 선교사가 된 두 사람은 실루기아로 내려갔습니다. 실루기아는 안디옥으로 통하는 주된 항구로서 안디옥에서 서쪽으로 26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지중해 연안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배를 타고 구브로로 향한 것(본문 4절)이 사도 바울의 소위 첫 번째 선교여행의 출발이었습니다. 구브로는 실루기아에서 근 100킬로미터 떨어진 지중해의 한 섬입니다. 구브로는 로마 원로원이 관할하는 영지로서 총독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바나바 자신이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입니다(행4:36). 바나바는 먼저 자기 고향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좋은 전도의 방법일 것입니다. 우리도 가까운 사람들부터 주님께로 이끌어 나올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배로 도착한 곳은 살라미였습니다. 살라미는 구브로 섬의 동쪽에 있는 항구도시로서 실루기아로부터 가장 가까운 쪽에 있었고 구브로 섬의 동쪽 절반을 다스리는 중심지였습니다.

   살라미에 상륙한 바나바와 바울은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그때 거기서 마가라고도 하는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습니다(본문 5절). 여기서 수행원이란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돕는 도우미를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그들은 살라미에서 출발해서 살라미와 정반대쪽으로 150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있는 구브로 섬의 다른 항구 바보로 갔습니다. 본문 6절에 보면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그것은 구브로 섬의 동북쪽 끝에 있는 살라미 항에서부터 섬을 횡단해서 남서쪽 끝에 있는 바보 항까지 갔다는 말입니다. 이 항구도시의 이름은 바보였지만 바보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바보는 행정관청 소재지로서 로마 총독이 주재하고 있는 신도시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총독은 서기오 바울이란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바보에서 총독 서기오 바울 앞에 서게 됩니다.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으로서 바나바와 바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던 것입니다(본문 7절). 그런데 그 총독 서기오 곁에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이고 마술사인 바예수라 하는 자(본문 6절)가 있었습니다. 이 마술사는 엘루마라고도 불렸는데 그 이름 자체가 마술사라고 번역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는 바나바와 바울을 대적하며 총독으로 하여금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도 믿지도 못하게 힘썼습니다(본문 8절). 마술사 바예수는 총독의 수하에서 상당한 부귀를 누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일 총독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자신이 일평생 쌓은 성과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릴 것이 자명해지자 그는 기를 쓰고 총독의 귀를 막으려 한 것 같습니다. 복음의 방해자가 또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 바예수를 주목하고는 말하기를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본문 9-11절) 했습니다. 바예수란 “구원자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바울은 그가 구원자의 아들이기는커녕 그 반대로 “마귀의 자식”이라고 폭로한 것입니다. 바울의 그 말이 떨어지자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 자를 덮었고 그는 앞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장애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다시 확인합니다. 그것을 본 총독 서기오 바울은 믿게 되었고 놀람 가운데 주의 가르치심을 받았습니다(본문 12절). 구브로를 첫 선교지로 삼은 바나바와 바울은 그 섬의 최고 권력자를 믿음 안에 얻는 성과를 거둔 것입니다. 총독 서기오는 오랜 기간 로마제국 전역에 많은 고위관리를 배출한 명문 가문 출신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명문가의 총독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구브로 주민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큰 영향을 주었을 것임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의미 있는 변화 두 가지를 보게 됩니다. 그 하나는 바울의 호칭의 변화입니다. 오늘 본문의 1절, 2절, 7절까지만 해도 사울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9절에 와서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라고 쓴 후 본문의 끝 절 다음 절인 13절에서부터는 바울이라고 기록하기 시작해서 끝까지 그렇게 부릅니다. 사울이 히브리식 이름이라면 바울은 헬라식 이름입니다. 이것은 이제 본격적으로 이방세계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바울을 이방인들에게 보다 친숙한 이름으로 내세우기 위함일 것입니다.

   또 하나의 변화는 바나바와 바울의 이름을 언급하는 순서의 변화입니다. 바나바와 사울의 이름이 처음으로 함께 거론된 것은 행11:30에서입니다. 글라우디오 황제 때 큰 흉년이 들자 안디옥 교회의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냈다.”(행11:29-30)는 기록입니다. 행12:25에서도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도 다섯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제일 먼저 바나바를 쓰고 제일 끝에 사울을 썼습니다. 본문 2절과 7절에서도 “바나바와 사울”이라는 순서는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데 9절에서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라고 부른 이후 바울이라고 이름을 바꿔 기록하기 시작한 13절에서는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바울과 바나바”라고 호칭순서가 고정되어 나타납니다(행13:43, 46). 이제 바야흐로 바울의 시대가 열렸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 모교회의 탄생으로부터 이방선교의 요람이 된 안디옥 교회의 출현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사도행전의 1-12장까지는 예수님의 직제자들인 열두 사도가 주역이었다면 13장부터는 바울이 단연 주역으로 등장합니다. 사도행전을 전편과 후편으로 나눈다면 전편은 12장에서 끝납니다. 13장부터는 후편이 시작됩니다. 그 후편을 가리켜 바울행전이라 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울의 호칭이 바울로 바뀌고 그 이름이 다른 모든 사도나 전도자들의 이름을 앞지르기 시작한 것은 유대인들이 자국민 혹은 동족에게만 복음이 전해지던 시대에서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라.”(마28:19) 하시고 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언어와 문화가 다른 민족에게로 널리 복음이 선포되는 시대에로의 변화를 알리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은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의 노력으로 많은 이방 사람이 믿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피부색갈도 초월했고 사회계층도 초월해서 퍼져나갔습니다. 흑인도 믿게 되었고 지역의 최고통치자도 믿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복음의 전진과 확산을 가로막는 방해가 끊임없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방해를 다 물리치셨습니다. 장애물들을 제거하셨습니다. 모든 전도와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기자는 이 모든 복음의 놀라운 진전이 다 성령의 역사 아래 이루어졌음을 밝히고자 합니다. 본문 2-3절을 보면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합니다. 안디옥 교회가 두 사람의 선교사를 세워 땅 끝까지 이르는 복음전도를 시작하게 하신 이가 성령이심을 밝히는 것입니다. 4절을 보면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갔다.”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어디서부터 선교를 시작할지를 지시하신 이도 성령이시라는 것입니다. 8-12절을 보면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바울과 바나바를 대적하던 마술사 바예수를 바울이 그 자리에서 눈을 어둡게 하여 물리치고 총독으로 하여금 믿게 한 것도 “성령이 충만하여”(본문 9절)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나 선교는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모든 방해자와 장애요소들을 물리치시며 제거하여주십니다. 이 성령의 역사 아래 이루어지는 일에 어떤 모양으로든 조금이라도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모두 이 위대한 사역의 동참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친히 역사하시는 성령의 도구들이 되어야 합니다. [새문안 새 생명 운동], 이것은 우리 교회를 사랑하시고 크게 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새문안 새 생명 운동] 안에서 행해지는 전도훈련, 태신자 전도운동, 멘토 교육 등에 기도와 참여로 최대한의 힘을 모으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모든 소프트웨어를 효과적으로 수용하고 실행시킬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일 즉 새 성전 건축에도 아낌없이 헌신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크고 놀라운 복과 은혜를 베푸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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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5/26 [15:1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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