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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07 [22:01]
상업주의 기독교를 넘어서
 
김상재

▲     © 김상재/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권위를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에 있다. 
 
 
70~80% 이상의 교회가 미자립교회인 한국 교회의 실제적인 존립구조를 생각한다면 교회에서 과월된 상업주의를 추출 분리, 극복한다는 것은 사실상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절대다수의 목회자가 기초 생존의 문제에 걸려 장기적이고 만성적인 결핍에 처해 있는 이 현실 앞에서 과연 생존에 대한 어떤 수단으로서의 목양을 극복할 것을 촉구하는 거창한 윤리적 훈수나 최근 적극적으로 개진되고 있는 목회자의 세금납부 운운하는 잔인한(?)논리는 그러므로 이 저층의 무저갱(?)과 얼마나 어울리는 담론들인가? 

만인에게 들려져야 할 복음의 긴장감 깊은 파토스는 항구적으로 코스모폴리탄적인 지평과 그 내용을 확보하는 어떤 힘에의 지향으로 심화되어야 하지만 그 선교에의 열정도 한국교회와 같은 이런 열악한 생존의 사적 문제와 교차점에서 만나면 그 열정은 쉽게 순수 선교의 내적 경계를 훌쩍 넘겨 버린다. 살아남기의 오기로 촉발된 열정과 성취에의 치열한 다이내믹 파토스, 이 활화산 같은 긴장들과 불기둥 신앙이 우리의 경우처럼 이 지반위에서 충돌해 만나면 (유한한 인간의) 교회의 신앙도 어디로 어떤 정서적 형태로 발전되고 굴절될지 예견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표면위의 현상을 작동하게 하는 수면하의 구조적 사태를 현실적으로 헤아린다면 그러므로 우리는 또 쉽게 교회나 보편목회자들을 향해 돌을 던질 마음을 경험하지는 못한다. 

흔히 사람들은 신앙이라고 하면 너무 비현실적 이상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신앙이라는 범주도 결과적으로는 사람이 경험하는 내용물중의 하나라고 이해한다면 항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성속의 울타리를 넘어 현실 안에서 우리 모두, 보편인간의 문제로도 안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성경 특히 모세오경은 먼저 성직계급의 신분과 생존여건을 매우 구체적으로 하나의 사회시스템으로 명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성경도 이러한 문제들을 막연한 감상으로 목회자 개개인의 윤리나 가치관에 무작정 맡겨 두지는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직자들에게 물리적인 수입원이 치명적으로 결핍하다면 당연히 그들도 생존을 위해 다른 직업을 병행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말씀과 계시의 담지자들의 영역기능에 영적인 전문성의 빈틈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자연 역기능의 악순환으로 일반인들도 혼탁해진 영성의 지도를 받게 되어 결국은 성직자계급의 흐릿해진 혼합영성이 전사회적으로 공유되기에 이른다.(물론 오늘날 평신도 신학이 새로운 가능성과 기능성으로 대두되는 것에 대해서는 필자도 공감하지만 필자의 오늘 논지이외의 다른 차원이므로 이 부분에서는 다음에 다룬다) 그래서 이런 악순환을 성경은 처음부터 알고 성직자들에게도 최소한의 토지를 부여하고 전체 십일조제도를 통해 이 부분을 명확하게 보장해 주고 있는 것이다. 히스기야의 사역내용과 같이 만일 이 십일조제도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성직 전문성에 시스템적인 문제가 발생되는 상황이면 그것은 개혁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십일조 제도는 물질과 소득, 경제의 주권자가 창조주 하나님임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이자 동시에 이처럼 선이 분명한 영성을 건강하게 선순환으로 유통되게 하는 전체 신앙공동체의 사회문화적 주요 구조적 장치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편, 오늘 과연 이 십일조제도가 구약시대와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이며 교회가 현대에 이르러서도 시간적으로 고대의 것을 문자적으로 반복을 강요(?)하는 것도 어떤 은밀한 강단 권력적 이데올로기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신뢰할만한 교회행정문화를 안착시키고 있는 기독교 선진국의 경우에서처럼 단순히 십일조 제도는 눈에 보이는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 사안의 핵심은 구체적인 삶으로의 신앙과 성직자들의 생계를 어떤 방식으로든 보장해 주는 장치의 확보문제로 읽혀져야 함을 필자는 먼저 강조하고 싶다. (십일조 제도가 아니면 유럽처럼 종교세로나 그것도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이 문제는 장기적인 교회의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성서시대나 유럽의 경우처럼 성직자의 생계문제가 기본적으로 이렇게 보장되는 사회적 시스템의 지반위에 서있는 건강한 문화라면 오늘날 한국교회처럼 교회가 어떤 상업적 무한경쟁의 정글로 이렇게 쉽게 달아오를 수 있을까? 곧 과잉 생산되는 한국교회의 상업주의는 바로 이 생존의 문제와 밀착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인식으로 그 어떤 개혁에 대한 사안보다도 사실 건강한 해법을 위해서 이 문제부터 기본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구조적으로 연관된 것으로 현재의 교회가 개척되는 방식에도 상당부분 책임을 물어 되짚어 보아야만 한다. 개척방식에 좀 더 객관적이고 공적인 절차와 출발을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의 개척은 거의 대부분 목회자 개인의 힘이나 동기에 의하고 있는데 이 사적 절차가 상업주의의 문제를 증폭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목회자의 개인재산과 개인적인 권위 안에서 마련한 절대헌신의 내용으로 시작된 교회가 과연 주님의 교회로 성화(?)될 수 있을까? 특별한 인격자들은 그럼에도 그 모든 과정을 주님께 깨끗이 드리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명목상으로는 주님의 교회로 시작하지만 그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기도 하지만 나의 모든 것이 투사된 나의 교회이기도 하다는 자의식의 불순물은 그 불균형의 결핍적 과잉에서 그러므로 쉽게 통제되지 않고 교회운영과 목양방식에 스며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후로는 나의 공동체이기도 한 것으로 결국 내가 은퇴하고도 남에게 주지 못하는 징그러운 집착과 애매한 변칙들은 이 소유권의 회색지대에서 뿌리를 내리고 번성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시 정리하지만 개척에 어떤 공적인 방식의 절차를 통하지 않으면 온갖 헌신의 영웅적 수사를 동원하고 치장해도 결국 그 교회는 대중적으로는 특정인의 교회로 귀결될 가능성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는 분란의 dna를 함께 내장하고 간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신뢰할만한 장치나 시스템을 반복할 수 있는 대안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교회는 상업주의의 이미지의 범주를 벗어나기는 힘든 것으로 보인다.(지금까지의 사적인 방식의 관행은 더 덧붙여 추적해 보면 이렇게 교회를 사유화시키는 집착을 발전시키기도 하지만 한편, 세상 사람들에게는 바로 이것이 교회는 곧 공간을 하나를 빌려 기독교 가게를 하나 시작하는 상업의 이미지로 전달될 수 있다는 우려도 현실화 시킬 뿐만 아니라 곧 그렇게 시작된 교회는 향후 강력한 상업주의의 확장논리와 의지로 전체 교회를 시장 원리적 역동성으로 가동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해 주의가 요구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존립 전반에 사적인 절차와 여지를 줄이고 교회의 재생산은 교회와 총회와 같은 공적인 기관을 통해서 극복되어야 한다. 어떤 교회가 자립의 수준을 넘어 중형교회 이상으로 성장했다면 그 과월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분립을 하되 분립된 교회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형식과 같은 방식으로 통하는 것이 무엇보다 최선의 이상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앞으로는 대형교회가 점점 선호도에서 후순위로 밀려 날 것으로 예상되므로 저마다 대형이라고 하는 물량적 가치관을 버리고 그렇게 자연스러운 분가의 방식으로 교회의 사적 자의식을 차단, 문자 그대로 거룩한 공교회적 비전이 편하게 어떤 문화로 공유되게 한다면 불필요하게 과잉으로 증폭되는 상업주의는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다. 

이외에도 이에 관련해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로 성직자의 생계 보장 장치인 십일조의 효율적 분배와 선용, 건강한 교회행정 관행 확립 등 현실적인 현안들이 쌓여 있지만 다음 기회에 기술해 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줄인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들고 개혁을 강요하기 전에 한국교회는 사실 그 속을 뜯어보면 이렇게 스스로 자정할 능력을 기대하기 힘들 정도로 무한경쟁의 정글들을 스스로 심화시켜 왔던 만큼 먼저 그 결핍의 근원들을 현실적으로 이해해 보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어쨌든 우리 교회가 작동시키고 있는 지금의 하위 시스템으로는 장기적으로 이기는 게임을 수행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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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4/14 [13:47]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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