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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14 [11:01]
애정적 영성을 공급한 청교도
청교도 영성 4
 
원종천

청교도가 태동한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가 1603년에 막을 내리고 제임스 1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 청교도는 영국의 미래에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이미 앞에서 본대로 엘리자베스 통치하에서 청교도의 장로교운동이 실패하고 청교도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으나, 제임스는 어려서부터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에서 교육을 받은 자였다. 청교도들은 그들의 염원이었던 장로교회 설립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러나 그 기대도 무너지고 말았다. 1604년 청교도 대표들이 제임스 1세와 회의(hampton court conference)를 가졌으나 결국 청교도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임스는 왕권 신성을 선포했으며 영국 교회는 왕정하의 기존 감독제도를 고수했고, 청교도들로 하여금 감독제도에 순응할 것을 강경하게 요구했다.

지난 호에서 본 대로 제임스 1세의 통치 시대에 분리파 청교도들은 영국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화란으로, 결국은 미 신대륙으로 이주했다. 청교도들의 고통을 잘 보여 주는 대목이었다.

탄압받는 청교도 목회

1625년 제임스의 아들 찰스 1세가 등극했고 그도 역시 왕권신성을 주장했고 “감독 없이는 참 교회가 있을 수 없다”고 선언했으며 강력한 감독제도를 고수했다. 나아가서 찰스는 청교도들을 더욱 탄압하기 위하여 윌리암 로드(william laud)를 청교도 활동이 가장 왕성한 지역에 감독으로 세워 강한 탄압을 시작했다.

당시 청교도는 목회 활동과 대학 강의를 통하여 청교도의 이념과 성경적 가르침을 공급하고 있었다. 청교도들은 일반 성도들을 대상으로 목회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 지도자들과 의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전심으로 가르쳤다. 이것은 영국국교회의 기득권 세력인 성공회에 큰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찰스 왕과 성공회측은 청교도 목회 활동을 감시했고 청교도 설교를 색출하여 성직을 직위해제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청교도 강의와 설교를 돕기 위한 비밀 후원 단체들이 색출되고 청교도 목회는 탄압을 받았다. 찰스는 청교도 말살 정책을 펼쳐갔던 것이다.

찰스의 실정은 청교도 탄압으로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찰스의 정치 행각은 국가를 혼란에 떨어뜨리고 국민과 사회에 큰 어려움을 초래했다. 지나친 세금으로 국민들의 재정을 궁핍하게 했으며 의회와의 불화는 정칟사회적 혼란을 야기시켰다.

17세기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영국은 심각한 혼란 상태에 돌입하게 되었다. 1618년 유럽 대륙은 30년 전쟁이 시작되었고 국민들의 불안 정서는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당시 정신과 의사들과 시인들은 많은 영국 국민들의 심각한 심리적 불안정과 심적 고통을 진단하고 글로 표현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1640년대에 영국이 전쟁으로 돌입하는 상황을 맞이하는 분위기에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애정적 교제

17세기 전반 영국의 이러한 어려운 상황 가운데 청교도 지도자들은 성도들과 국민들을 향하여 새로운 영성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애정적 영성이었다.

청교도 애정적 영성은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 위로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애정적 교제를 통한 깊은 영성이었다. 청교도 지도자들은 복음서를 통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취하고 오신 것을 상기시키며, 우리 주님과 우리 사이의 동질성을 강조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들이시고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동시에 인간의 연약함을 취하고 오셔서 죄인들을 위하여 죗값을 담당하셨을 뿐만이 아니고,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과 깊은 교제를 가능케 하도록 하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너무도 동일하셨다. 배가 고프실 때에 배가 고프셨다. 피곤하실 때 곯아 떨어지셨다. 슬플 때 눈물을 흘리셨다. 죄는 짓지 않으셨지만, 우리처럼 시험까지도 받으셨다. 육체의 고통을 당하실 때 괴로움을 표현하셨다. 십자가에서 못 박히실 때에 육적 고통은 극치에 달하는 것이었고,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으실 때에는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비명을 지르셨다. 우리를 위하여 이렇게 하신 것이다.

우리 주님은 불쌍한 자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아니하시고 민망히 여기사 그들을 돌보아 주셨다. 우리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는 분이셨다. 우리는 인간의 모든 연약함을 잘 아시는 이런 주님과 얼마든지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주님께 얼마든지 다가가서 심오한 영적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청교도들은 복음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며 주님과의 교제의 가능성과 필연성 그리고 그 유익을 표출했다.

우리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히 4:14∼16)을 통하여 잘 설명되었다. 우리는 이미 하늘로 가신 주님에 대하여 무수한 질문을 할 수 있다. 주님은 승천하셔서 하늘나라에 계셔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 우리와 동떨어지셔서 우리의 형편과 어려움을 알고는 계시는가. 이미 지상에서의 사역은 끝나셨고, 이제는 우리와 무슨 관계를 가지고 계시는가. 그러나 답은 분명했다. 주님은 하늘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함께 다 체휼하고 계시다.

비록 우리는 이 고통스러운 죄악의 세상에 남아 있고 주님께서는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우리의 대제사장은 천상에서 제사장직을 수행하시며 우리의 고통과 질고를 함께 겪고 계신 것이다. 주님의 제사장직은 십자가에서 종료된 것이 아니고,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신 것이다(롬 8:34). 그러므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오라는 것이다.

청교도들은 성도들이 우리 주님의 지극한 애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길을 보여 주며, 하늘을 향하여 문을 열고 주님의 사랑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통로를 열어 준 것이다.

성도들에게 필요한 영성을 공급한 청교도

청교도들이 사용한 성경의 또 한 부분은 구약의 아가서였다. 남녀간의 육신적 사랑을 다루는 것으로 보이는 구약 성경의 이 부분을 청교도들은 영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했다. 이 사랑을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되는 성도들 간의 영적 애정 관계로 본 것이다. 그 애정은 이루 설명할 수 없는 진한 연인 사이의 관계로, 신랑과 신부가 가장 은밀한 곳에서 깊은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우리는 주님과 가장 깊은 차원의 영적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청교도들은 우리의 진정한 위로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적 교제를 통하여 얻는 것이며, 그 진하고 깊은 애정에 충만하여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임을 선포했다. 이와 같은 목회 차원에서 우러나오는 영적 내용은 많은 성도들을 사로잡았고 건전한 신학 위에 달콤하며 깊은 애정적 영성을 창출해내었다.

교리적으로는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이 이미 잘 정리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과 교제라는 구원론적 신학적 틀 위에 세워졌다. 영성적으로는 중세 수도원 영성의 거장인 성 버나드가 가르친 그리스도의 인성과 그분과의 애정적 관계를 건전하게 잘 적용했다. 종교개혁의 후예로서 신학적으로 분명하게 서 있으면서, 동시에 과감하게 중세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건전하고 깊이 있는 영성의 내용을 잘 활용한 대목이었다.

청교도 지도자들은 설교를 통하여 필요한 영성을 공급했다. 그들은 설교로 청교도 개혁에 사활을 건 것이다. 성도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공급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진단했다. 그리고 그 부분을 치유하고 채워 주기 위하여 어떤 내용을 공급하며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했다.

청교도 지도자들은 스스로 체험하며 진리의 힘과 위력을 알고 그것을 전달했다. 성경의 진리이기에 힘이 있었고 필요한 부분에 적용되었기에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므로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청교도운동과 청교도개혁을 위하여 필요한 부분에 영적 공급을 해 주었던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우리에게 얼마나 영성이 필요한가. 필요한 영성이 말씀의 진리로부터 적절하게 공급되고 우리의 삶과 심령에 적절하게 적용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는가. 청교도운동은 윤리적 성격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풍부한 애정적 영성이 있었다. 그 영성 안에는 이와 같은 애틋하고 정적이며 감성적인 내용이 풍부하게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원종천·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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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2/21 [16:06]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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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개
간추린 교회사
연재이미지1
사회참여로 이어진 청교도 영성
애정적 영성을 공급한 청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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