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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6.18 [18:03]
다윗을 사랑했으나 그의 영성을 이해하지 못한 여인, 미갈
삼상 14:49; 18:20∼30; 19:11∼17; 25:44; 삼하 3:12∼16; 6:16, 20∼23
 
김윤희

아내를 많이 거느린 자 중에는 솔로몬을 따라 갈 자가 없지만(왕상 11:3) 그를 제외하면 아내가 적어도 여덟 명 이상이나 되는 다윗도 만만치 않게 아내가 많은 자 중에 속한다(삼하 3:2∼5; 5:13 참고). 밧세바라든가 아비가일 같은 유명한 여인들도 그 명단 속에 들어있다. 본문에서는 다윗의 아내들 중에서 그의 첫 번째 아내인 미갈이라는 여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미갈은 사무엘상·하에 걸쳐 여러 군데 등장한다.

미갈의 가족상황(삼상 14:49)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 왕의 가족상황이 소개된다. 그의 아들들의 이름이 나오고 그 다음에 그의 두 딸들의 이름이 소개되는데 “맏딸의 이름은 메랍이요 작은딸의 이름은 미갈”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두 딸들은 모두 사울이 다윗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다윗에게 아내로 차례로 제시되었으나 결국 미갈이 다윗의 아내가 된다(삼상 18:17∼27).
 
미갈이 다윗의 아내가 됨(삼상 18:20∼30)
 
사무엘상 18장의 본문은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이후에 다윗과 사울 두 사람 사이의 갈등과 대조의 시작 장이다.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신다’는 표현을 세 번씩 반복하여 기록함으로 다윗의 성공 비밀을 밝히고 있다(18:12, 14, 28). 또한 ‘다윗이 지혜롭게 행했다’는 표현도 세 번씩 반복하여 본문의 시작 부분과(5절), 중간 부분과(15절), 결론 부분에(30절) 기록하고 있다. 다윗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인물로 등장한다.

요나단(1, 3절)이 다윗을 사랑했고, 다윗의 신하들도 다윗을 합당이 여겼고(5절), 온 이스라엘과 유다도 다윗을 사랑했으며(16절), 사울의 딸 미갈도 다윗을 사랑했다(20, 28절).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사울은 점점 모든 사람에게서 소외되어가는 존재임을 보여 주는 반면에 다윗은 점점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존재로 부상된다. 본문에서는 그러한 다윗을 “그의 이름이 심히 귀중히 되니라”(30절)고 요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반면에 사울의 적개심은 여인들의 창화하는 소리에서 다윗에게 ‘만’을 돌리고 사울에게
‘천’을 돌렸다는 데 대한 분노함으로 시작하여(6∼9절), 다윗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고 한 사건(10∼11절),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겠다는 계획에 이르기까지(25절) 점점 난폭하고 육에 속한 인간으로 퇴락해 감을 볼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심을 보며 그것이 사울에게는 적지 않은 위협(8∼9절)과 두려움(12, 15, 27, 28절)으로 다가온다. 결국 본문은 ‘사울이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29절)는 말씀으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종결짓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다윗과 사울의 세 자녀들과의 관계가 18장에 소개된다. 요나단은 이미 언급된 대로 다윗을 사랑하고 두 사람 사이의 깊은 우정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1∼4절). 그 다음에 사울이 자기의 첫째 딸 메랍을 다윗의 아내로 제시하는데(17∼19절) 그 동기가 17절에 잘 나와 있다. 다윗을 사위 삼기 위한 목적보다는 그것을 빌미로 다윗이 블레셋과 더욱 용맹하게 싸우다가 전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위자리를 내어주려는 것이다.

사실 다윗이 사위가 되는 것은 이미 골리앗을 죽이는 대가로 약속된 것이었으나(17:25), 본문에서 사울이 그러한 약속을 지키려는 동기는 찾아볼 수 없다. 마치 다윗에게 호의를 베푸는 듯하지만 다른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윗은 이러한 제의에 대해 본인에게 이미 당연한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17:25) 겸손하게 그것을 거절한다. 본인의 집의 미천함으로 보아 왕의 사위가 되기에 합당치 않다는 그의 진실된 면모를 드러내며 더욱 사울의 악함과의 대조를 첨예화시킨다(18절).

이러한 과정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미갈이다(10∼29절). 특히 20∼26절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보여 준다(영블러드 [youngblood] 학자의 분석을 따른 것임).

a 미갈의 다윗에 대한 사랑을 사울이 좋게 여기다(20절)
b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의 손에 죽게 되기를 바라다(21절)
c 사울이 다윗에게 신하들을 보내다(22∼23a)
c' 다윗이 사울에게 신하들을 보내다(23b∼24)
b'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의 손에 죽게 되기를 바라다(25절)
a' 다윗이 왕의 사위되기를 좋게 여기다(26a)
 
다윗이 사울의 사위가 될 두 번째 계기가 마련되는데 그것은 사울의 딸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다’는 말이 사울의 귀에 흘러 들어가면서이다. 첫째 딸을 통한 혼인이 실패하자 사울은 둘째 딸을 통한 혼인을 성사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 동기는 21절에 잘 나타나 있다.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한 가지는 자신의 딸이 다윗에게 올무가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올무라는 단어는 모세오경 속에서 세 번 사용되었는데 모두가 우상숭배의 위험과 연결되어 있다(출 23:33; 34:12; 신 7:16). 미갈의 우상숭배 경향을 통해 다윗의 영적인 면을 공격하는 데에 목표를 둔 것 같다.

두 번째 동기는 블레셋을 통해 그를 죽게 하려는 것이다. 신하들을 통해 사울의 뜻을 전달하고 다시 신하들을 통해 다윗의 뜻이 전달된다(cc'). 사울의 흑심과 다윗의 선심과의 대조가 잘 나타나 있다. 다시 한번 다윗은 자신의 가난하고 천한 신분을 들어 사위되기를 거절한다(c' 23절). 그러자 다윗을 사위로 삼으려는 세 번째 시도가 이루어진다.

사울은 다시 다윗에게 신하를 보내어 왕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왕의 원수된 블레셋 사람의 양피 일백이지 다른 어떤 신부를 데려오기 위한 결혼 선물(폐백)이 아님을 밝힌다. 사울의 이번 제안은 다윗이 거절하기 힘든 것이다. 왕에게 충성을 해야 하는 의무도 들어 있고 나라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인 동시에 다윗이 정당하고 떳떳하게 사위의 자격을 얻는 결과도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는 이 세 번째의 사위 삼는 전략이 성공을 거두고 ‘다윗이 사위 되는 것을 좋게 여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울이 진정 원한 것은 전쟁 중에 다윗이 전사하는 것이었다.

다윗은 사울의 기대와 달리 정한 기간 내에 블레셋 사람의 양피 이백(사울이 요구한 양의 두 배)을 왕께 드리고 사울의 사위가 된다. 이 결과로 다윗은 왕위에 정당하게 오를 수 있는 자로 부상된다. 사울의 계획이 완전 역효과를 거둔 것이다. 본문에서는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하심과 또한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다는 사실이 사울을 두렵게 하고 다윗의 평생의 대적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 준다(29∼30절).
 
미갈이 다윗의 생명을 구해 줌(삼상 19:11∼17)

사무엘상 19장은 사울의 다윗에 대한 적개심이 적극적인 살인계획으로 심화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는 시도가 세 번 나오는데 세 번 다 무산된다. 첫 번째는 요나단이 사울의 분노를 가라앉힘으로 위기를 모면시킨다(1∼7절). 두 번째는 사울의 딸인 미갈의 활약을 통하여 다윗의 생명을 구함으로 위기를 넘긴다(8∼17절). 세 번째는 사무엘에게로 도피해 있는 사울을 죽이려는 시도를 ‘하나님의 신’이 예언을 하게 함으로 좌절시키시고 다윗을 보호하신다(18∼24절). 두 번은 사울 자신의 가족에 의해 계획이 무산되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신이 가세하여 다윗을 지킨다. 이 중에서 두 번째의 사건이 우리의 관심사이다.

두 번째 사건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면 본문은(8∼17절) 다윗이 사울을 ‘피했다’는 두 표현 사이에(10, 18절) 미갈이 다윗을 구해 주는 사건(11∼17절)이 들어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본문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단어는 ‘보냈다’라는 동사이다(11, 14∼15, 17절).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사자를 보내고(11, 14∼15절) 미갈은 다윗을 살리기 위해 다윗을 보낸다(17절, ‘대적을 놓아’할 때 ‘놓아’가 원어로 ‘보냈다’는 동사이다). 그리고 다윗이 ‘보내달라고’(놓아 가게하라) 협박했다는 거짓말 속에도 ‘보냈다’는 동사가 들어있다. 사건의 내용은 이러하다.

사울에게 악신이 접하여 수금을 타고 있는 다윗에게 단창을 던지는 발작이 다시 일어난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자신의 집으로 피신한다. 사울이 다윗의 집에 사자들을 보내어 아침에 집에서 죽이려는 흉계를 꾸민다(시편 59편 참고). 이를 눈치 챈 미갈이 밤중에 다윗을 창문으로 달아내려 도망하게 한다. 이제 다윗은 장인에게서 도망하여 아내에게도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미갈이 우상을 취하여 침상에 뉘고 염소 털로 엮은 것을 그 머리에 씌우고 의복으로 그것을 덮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우상’은 드라빔으로 가정 수호신을 의미한다. 미갈의 영적 상태를 암시해 주는 대목이다. 미갈은 이 우상을 침대에 놓고 사자들에게 다윗이 병들었다고 둘러댄다. 이럴 때는 우상도 다윗을 살리는 데에, 또한 궁극적으로 메시아의 가계를 지키는 데에 한몫을 담당하는 희극적(?) 상황이 벌어진다.

사울이 사자들을 시켜 다윗을 죽이기 위해 침상 채 들고 오라고 명하는 바람에 침상의 우상이 들통나 버린다. 이에 대하여 사울은 미갈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처럼 나를 속여 내 대적을 놓아 피하게 하였느냐”고 묻는다. 자신의 딸에게 자신의 사위를 ‘대적’이라고 칭하는 장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미갈의 대답은 “그가 내게 이르기를 나를 놓아 가게 하라 어찌하여 나로 너를 죽이게 하겠느냐 하더이다”라고 본인이 협박당했다고 변호한다. 미갈의 이 말은 흥미롭게도 자신이 다윗에게 11절에서 한 말 즉, ‘가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표현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자신의 아비를 속여야 하는 미갈의 입장도 안타깝지만 결국 이러한 모든 것을 자초한 자는 사울이다.

본문을 통하여 저자는 두 가지 의도를 보여 준다. 하나는 ‘여인에 의해 구원받은 영웅’의 주제를 부각시킴으로 다윗을 모세오경에 나오는 영웅들의 대열에 들게 한다. 야곱도 드라빔을 가진 여인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창 31:33∼35).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과정에서 라헬도 자신의 아비를 속인다. 모세도 여인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출 2:5∼10). 두 번째, 다윗의 구원에 사울의 자녀들인 요나단과 미갈 모두가 가세했다는 것은 결국 다윗이 사울의 왕권을 쟁탈한 자가 아님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후에 다윗이 왕으로 등극하는 것의 정당성과 그의 정의로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갈이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됨(삼상 25:44)

사무엘상 25장 거의 끝 부분에 보면 다윗이 아비가일과 아히노암을 아내로 취하는 기록이 나오는데(40∼43절) 마지막으로 미갈의 신상에 대해서도 언급한다(44절). 본문에 보면 미갈을 ‘사울의 딸 다윗의 아내’라고 함으로 미갈의 원래 신분을 분명히 한다. 엄연히 다윗의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그녀를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아내로 주어 출가시켜 버린다.

이것을 통한 사울의 의도는 다윗을 이미 죽은 자로 취급하고, 살아 있더라도 왕가와의 인연을 끊음으로 그가 더 이상 왕위에 접근하는 것을 근절시키려는 것이다. 25장은 사무엘의 죽음으로 시작하는데, 이제 다윗에게는 의지할 사무엘도 없고 자신을 죽은 자로 간주하고 실제 그것을 현실화하려고 계속 추격하는 사울이라는 죽음의 그림자가 계속 따라다니는 참담한 현실만이 그의 앞에 놓여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 미갈을 다시 찾음(삼하 3:12∼16)

요나단과 사울 왕의 죽음으로 시작된 사무엘하의 첫 부분을 보면 다윗이 유다지파 위에 즉위하고 헤브론에서 왕권을 확립하면서 그 세력을 이스라엘 전체로 확립해 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 과정이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은 3장의 시작 부분에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라는 표현으로 쉽게 알 수 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추대하여 보좌하고, 세력을 잡은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은 이스보셋과의 마찰이 빚어지자(7∼10절) 그를 배반하고 다윗과 화친을 맺고 다윗을 돕고자 결심한다. 본문의 이 부분은 그러한 배경 속에서 아브넬이 다윗에게 사자들을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브넬은 사자들을 통해 자신과 언약을 맺으면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돌아가게 하겠다는 거래를 한다. 구체적으로 거래의 대가가 무엇인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윗은 언약의 조건으로 미갈을 데리고 오라고 요청한다. 그렇지 않으면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그만큼 이 조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윗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미갈을 돌려보내라고 요청한다. 다윗은 아브넬에게 미갈을 지칭할 때 ‘사울의 딸’로 언급하고 이스보셋에게는 ‘내 처’라고 함으로 그에게 사울이 잘못한 부분을 되돌려야 하는 의무를 되새긴다. 그리고 미갈은 다윗 자신이 사울이 요청한 양피 일백의 대가를 정당하게 치르고 얻은 아내임을 상기시킨다. 결국 다윗은 미갈과 이혼한 적이 없이 사울의 부당한 행동에 의해 아내를 빼앗긴 경우이므로 다시 자기의 아내를 찾아야 하는 정당성의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아브넬이 중간에서 중재 역할을 하고 이미 권력을 많이 상실한 이스보셋은 미갈을 그 남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서 취하여 다윗에게 돌려보낸다(사무엘상 25장 44절에서는 미갈의 새로운 남편 이름인 발디로 나와 있고 여기에서는 발디엘로 나와있는데 차이점은 ‘엘’이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의 뜻은 ‘하나님’이라는 의미로 발디는 발디엘이 축약된 같은 이름이다). 미갈의 남편이 함께 오며 울며 바후림까지 따라왔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미갈에 대한 애정이 많이 있음을 보여 준다. 사울의 잘못으로 인해 또 한 가정의 파괴가 이루어지고 한 남자에게 상처를 남긴 것을 볼 수 있다. 어쨌든 아브넬이 미갈을 수행하며 그 남편에게 돌아가라고 하자 그가 돌아갔다는 표현 속에서 아브넬의 권력의 힘과 한번 항의해 보지도 못하는 발디엘의 무력함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아브넬은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해 다윗에게 미갈을 돌려 주었고 다윗 또한 미갈을 다시 찾음으로 사울 왕가의 한 사람으로 다시 이스라엘에 왕의 자격이 있는 정통성을 지닌 자로 정치적인 입지를 확고히 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이렇게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희생된 여인이 사울의 딸 미갈이다.
 
미갈의 실추(삼하 6:16, 20∼23)

사무엘하 6장은 하나님의 궤를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것이 주제이다. 본문 구성은 다음과 같이 간단히 살펴볼 수 있다.

a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데 실패함(6:1∼11)
b 웃사에 대한 심판(6:6∼8)
c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데 성공함(6:12∼19)
d 미갈에 대한 심판(6:20∼23)

구성에서 나타나듯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데 있어서 첫 번째 실패는 모세오경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그 방법과 절차를 따라(출 25∼31장 참고) 옮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시에 대한 사소한 부분의 불순종이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불행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교훈을 배울 수 있다(6:1∼11). 두 번째 시도에서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데에 성공한 이유는 율법의 말씀을 잘 순종하여 좇았음을 반증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다윗이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 모습을 통해 그것이 그의 기쁨과 감사와 예배와 찬양의 진실된 표현임을 보여 주고 있다. 본문은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15절)라고 기록하며 온통 축제 분위기임을 보여 준다.

그 와중에서 16절은 잠깐 미갈에게 초점을 맞춘다.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려다 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전에 창으로 다윗을 내려 구해 준 적이 있는 미갈이 이번에는 창으로 다윗을 내려보다가 그를 업신여긴다. 저자는 ‘사울의 딸’이라는 말음 붙임으로 그녀의 행동이 사울가의 모습임을 강조하고 있다. ‘업신여긴다’는 단어는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이 여겼다’(창 25:34)와 같은 단어로서 부정적인 결과를 암시하고 있다.

여호와의 궤가 다윗이 친 장막에 안치되고 백성들을 축복하고 떡과 고기를 주어 백성들을 해산시킨 후 그날의 모든 축제와 예배를 마치고 자기 가족에게 축복하러 집으로 돌아온 다윗에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뜻밖에도 미갈의 불경한 비판의 목소리였다. 그 장면이 20~23절에 잘 나타나 있다.

미갈의 말 속에는 신랄한 빈정거림과 날카로움이 배어 있다. 그녀는 세 번씩이나 다윗이 ‘자기의 몸을 드러냈다’는 것을 언급한다(본문에는 두 번이지만 원어에는 세 번이 나옴). ‘오늘날’이라는 단어도 두 번씩 사용함으로 다윗의 이때까지의 삶 속에서 가장 성스럽고 은혜스럽고 감격스러운 날인 그날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미갈의 요지는 왕이 영화롭다는 정도가 고작해야 방탕한 자가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계집종들 앞에서 몸이나 드러내는 것이냐는 비난이다. 미갈의 불만은 다윗이 왕의 체통과 품위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 것에 대한 분통이었다. 그녀에겐 ‘하나님의 궤’는 안중에 없는 듯하다.

이러한 미갈에 대한 다윗의 대답이 본문의 초점이다.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라는 것이 다윗의 대답이다. 이 표현이 21절에 두 번씩 나와 있다. 이것이 미갈과 다윗이 다른 점이다. 다윗이 이렇게 여호와 앞에서 기뻐한 이유는 여호와께서 미갈의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다윗을 택하여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그러한 여호와 앞에서 다윗은 얼마든지 더 기뻐할 수 있음을 밝힌다. 미갈을 향하여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여호와께서 버리셨다’는 표현은 좀 잔혹하게 들릴 수 있으나 다윗은 그녀의 비판에 맞서서 답을 하고 있다. 미갈이 ‘영화,’ ‘계집종,’ ‘몸을 드러내다’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다윗도 ‘높임을 받는다’(영화와 동일한 단어), ‘계집종,’ 그리고 ‘천하게 보인다’는 3요소를 포함하여 응수한다. 즉, 다윗은 미갈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으며 여호와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더 자신이 천해질 의도가 있음을 나타낸다. 그럴지라도 여호와께서 본인을 높일 줄을 다윗은 믿었다.

미갈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본문은 간단하지만 냉정하게 그녀에 대한 심판으로 마친다.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니라.” 이것으로 사울의 집안과 이스라엘의 왕권의 인연은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다윗의 삶 속에서 그토록 우여곡절도 많았던 미갈은 결국 사울왕가의 사람으로 자신의 아버지처럼 영적인 일에 대한 인식이 둔감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다윗을 인간적으로 사랑했었을지언정 다윗의 영성을 이해하지 못한 여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첫째, 스스로를 높게 생각하는 자의 위험함을 보아야 한다. 사울 집안의 딸인 미갈은 결국 ‘다윗의 아내’가 아닌 ‘사울의 딸’로(삼하 6:23) 막을 내린다. 다윗과 많은 것을 함께 겪었으나 그녀는 다윗의 영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울이 명예욕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을 패망시켰듯이 미갈도 명예욕의 덫에 결려 넘어지고 말았다. 높은 창가의 위치에서 자기 스스로를 높게 생각하고 다윗을 천하게 평가했던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무자함의 수치이다. 그러나 다윗은 반대로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높임을 받는 자로 부상한다. 이것이 바로 신약에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11; 18:14; 마 23:12)는 말씀의 진리가 아니겠는가!

둘째, 하나님 앞에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미갈이 다윗에게 이슈로 삼은 것은 ‘인간적인 영화’의 중요성이다. 품위유지를 하고 권위를 지키는커녕 계집종들에게조차 부끄러운 행동을 해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미갈이 의식하고 있는 대상은 인간의 평가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그녀의 관심사였다. 그녀의 그러한 기대치가 무너졌을 때 그녀는 남편에 대해서도 여지없이 ‘업신여길 수 있는’ 자였다. 그러나 다윗의 기준은 달랐다.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사는 자’이다. 그에게는 여호와의 평가와 여호와의 기준이 가장 소중한 삶의 척도인 것이다. 본문 속에서 우리는 왜 여호와께서 다윗을 세우셨는지를 철저히 깨닫게 된다. 우리의 삶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여호와 앞에서 사는 자’와 ‘사람들 앞에서 사는 자’는 다윗과 사울이 다른 것처럼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셋째, 환난 날에 주를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시편 59편은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킨 때엷 쓰여진 사무엘상 19장을 배경으로 한 시이다. 다윗이 그 많은 환난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시이다. 특히 16절에 보면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避難處)심이니이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가 어려울 때 달려가고 의존했던 곳은 바로 여호와의 품이었으며 그가 의존했던 유일한 분도 여호와이심이 잘 나와 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다윗과 같이 하지 않으면 결코 승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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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2/04 [16:26]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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