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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0.24 [11:01]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
루터의 신학, 종교개혁사 6
 
김의환
종교개혁은 르네상스의 한 측면으로 르네상스가 이룩했던 본문적, 철학적 위업의 혜택을 결정적으로 받았으며, 비판적이고 자유로운 정신을 담지(擔持)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르네상스와는 적어도 한 가지 중요한 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근본적 성격이 ‘신학적’이었으며, 전통적으로 답습했던 교리들을 ‘과연 이러한 교리들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가?’라는 원천의 문제와 관련하여 비판적인 재평가를 시도했던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루터의 방법론

많은 이들은 종교개혁을 흔히 과거 수백 년 동안이나 소홀히 취급받고 있던 성경을 재발견한 운동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종교개혁이란 어거스틴의 가르침들을 통하여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는 운동’이었다. 혹은 어거스틴의 은총론이 그의 교회론을 물리치고 승리한 운동이라고 묘사하는 것이 더 정확한지도 모른다.

종교개혁을 위한 지성적 토대는 1516∼19년 사이에 비텐베르크에서 놓였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이 중대한 시기에 비텐베르크에서 마련되었던 핵심적 신학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루터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사실 칼스타트(karlstadt)를 중심으로 하였던 집단적 노력의 결과였다.

어거스틴적 신학(augustinian theology)

루터는 그의 활동 초기부터 어거스틴을 탐독하였다. 처음에는 철학적으로 보기 쉬운 「하나님의 도성」, 혹은 「삼위일체론」 등을 읽었으며, 그 후 1506년 아메르바흐(amerbach)판을 손에 넣어 그 제 8권에 포함된 반(反)펠라기우스(anti-pelagian) 저술들을 읽게 되었다.

루터의 초기 저술들에는 이미 1509년부터 자기의 신학을 아리스토텔레스나 스콜라 신학자들이 아니라, 어거스틴에 기초하고자 하는 열망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1510년대에 어거스틴의 작품들을 손에 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1517년 정월에야 라이프치히에서 어거스틴의 작품집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읽은 후에야 그는 공개적으로 자신이 진정한 어거스틴의 신학이라고 확신하였던 점들을 변호하기 시작하였다.

그 해 10월, 그는 성채 교회의 정문에 151개 신조문을 게시하였다. 그는 어거스틴의 이름으로 스콜라 신학을 비판하였으며, 그 해 가을에는 어거스틴에 관한 뛰어난 일련의 강의를 행하였고, 그 가운데서 비텐베르크를 주도하게 되었던 새로운 신학의 원칙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동료 학생들이여, 이제 성스런 학문의 진리가 보다 더 밝게 우리 대학교에 비추게 되었음을 축하합니다. 이제 스콜라 신학자들이 아니라 교회의 박사(교회 교부)들로부터 직접 진정한 성경을 듣고, 배우고, 이해하게 되었음을 기뻐하십시오.”

이 간단한 진술 중에 새로운 비텐베르크 신학의 방법론적인 기초가 요약되어 있다. 즉, 교부들, 특히 어거스틴을 통해 해석된 성경이 바로 그것이었다.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

면죄부에 관한 논제를 붙인 1517년과 에크(eck)와 라이프치히 논쟁을 벌였던 1519년은 일반적으로 루터의 활동과 종교개혁의 역사에 있어서 결정적 중요성을 가진 시기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역사가들은 그 중간인 1518년을 두 개의 사건들 사이에 필요한 간격쯤으로만 생각하고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1518년은 루터에게 있어 자신의 신학을 발전시킨 중요한 해이다. 그 해 4월, 슈타우피츠의 초대로 루터는 하이델베르크의 성 어거스틴 수도회의 모임에서 전통적인 공개 논쟁의 사회를 맡게 된다. 그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새로운 개념인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이 기독교 세계의 어휘에 첨가되었다.

“십자가는 모든 것을 시험한다”(crux probat omnia). 루터에게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적 사고는 십자가 아래에서 갑자기 멈추게 된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바로 그 존재에 의해 기독교인들은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하는가? 아니면 십자가 자체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의 근거이자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는 루터의 표현을 그대로 빌려 보자면 기독교적 신앙의 기초가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을 적절히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열쇠가 된다.

루터에게 있어서 그 십자가는 우리에게 하나의 수수께끼로 보이는데, 그 수수께끼의 해답은 인간과 하나님에 관한 뚜렷한 기독교적 이해를 정의한다. 만약 하나님이 십자가에 드러난다면, 그때 그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숨겨진 존재의 하나님이다. 루터가 관찰했듯이 이사야 45장 15절을 인용해 보면,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버려진 장면에서 하나님의 숨어 계신 존재를 펼쳐 보이는 것이 루터가 오랫동안 찾기 위해 노력한 자비로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열쇠이다. 가난, 죽음 그리고 고난받는 예수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다른 모든 것들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자 꿈꾸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자신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 숨겨진 채로 그곳에 있다.

십자가 신학은 역사적인 관념 그 이상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인간에 관한 많은 기독교적 사상들의 깊이가 얕고 단순하다는 인식이 증가함에 따라 많은 이들은 이전에 루터가 밟아 왔던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십자가 아래에 무릎을 꿇고 고난 속에 숨겨진 하나님을 경배함으로써 루터와 함께하기 시작했다.

진정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십자가의 신학은 한국 교회의 교회성장지상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된 추수의 신학(theologica of harvest), 혹은 번영의 신학(theologica of prosperity)을 치유시킬 대안적 신학으로 부상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참된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삶으로 초대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은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길을 기꺼이 걸어가게 할 것이다.

루터의 외침이 아직도 우리의 귀에 생생하게 울리는 듯하다.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crux sola est nostra theolog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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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1/20 [18:3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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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개
간추린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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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 개혁을 추구한 청교도 경건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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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
V. 루터의 종교개혁, 그 업적과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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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핀 속죄권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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