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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7.17 [01:02]
어느 종교가 진짜일까?
정성민 교수의 <현대인을 위한 기독교변증>
 
정성민

현대인들이 믿는 종교는 매우 다양합니다. 열렬하게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믿고 있는 특정 종교가 참된 종교이며 진리라고 주장합니다. 어느 종교를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 입장에선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대중매체의 발달로 인해서 여러 다양한 종교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현대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들 간에 새로운 문화적 융합이 이루어지는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융합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종교의 기원과 발전에는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교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함께 독자적으로 발전하였지만,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대교와 기독교와의 접촉을 통해서 발전된 종교가 이슬람교입니다. 힌두교는 인도 고유의 종교 사상들이 결합되어 만들어졌으며, 불교는 힌두교의 금욕적인 문화에 대해 반응하면서 발전되었습니다.

또한 주요 종교들로부터 파생된 분파 또는 이단 종파들이 있습니다. 이슬람교에서 바하이교가 나왔습니다. 기독교에는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크리스챤 사이언스가 있습니다. 개신교와 신유교와 불교를 혼합한 통일교도 있습니다. 또한 힌두교와 이슬람에서 나온 시이크교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한국 개신교에서 새롭게 발전된 이단 종파도 수없이 많습니다.

다양한 종교들은 서로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종교들의 기원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볼 때 그 어느 종교도 독자적으로 발생한 종교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매스컴이나 통신의 발달로 종교들 간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현대와 같은 시대에는 더더욱 고립된 종교란 있을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모든 종교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묵주를 사용하는 것은 불교에서부터 이슬람교와 가톨릭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입니다. 대다수의 종교 의식에서는 공통적으로 촛불과 향료가 사용됩니다. 힌두교도와 기독교인은 공통적으로 거룩한 떡을 먹습니다. 이슬람교와 힌두교, 그리고 시이크 교도들은 성소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종교들 간의 유사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종교들 간의 유사성은 위에서 언급한 종교적인 행위에서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믿음에서도 찾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와 힌두교는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공통된 교리를 믿습니다. 또한 유대교와 기독교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그 중심사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한 분 하나님, 즉 유일신을 섬깁니다.

그러나 종교들 간에 현저한 차이점도 있습니다. 기독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힌두교는 다신론을 믿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그 어느 쪽도 아닌 유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세상에는 배타적인 종교들이 있습니다.

위대한 철학자 헤겔은 기독교를 가장 고등하며 완성된 종교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종교들 가운데 어째서 기독교가 가장 고등하고 완성된 종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만약 기독교만 유일하게 참된 종교라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이 사실이라고 증명할 수 있을까요? 기독교의 진실성을 밝히기 위해서는 철학적이고도 종교학적인 증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신은 오직 하나라고 하는 유일 신관을 가장 고등한 종교의 형태로 배워왔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세계 3대 유일신교로는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가 있습니다. 이들은 유일하신 한 분의 하나님, 즉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들의 신으로 동일하게 부르며 인정합니다. 그래서 이 유일신을 믿는 종교들은 구약성경을 자신들의 경전으로 삼습니다.

이제 우리는 과연 어떤 종교를 믿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는 어떤 종교를 믿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가라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어느 하나의 종교를 선택하려는 당신에게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모든 종교들이 갖고 있는 배타적인 성격입니다. 배타주의는 하나의 특정 종교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는다는 믿음입니다. 각각의 종교들은 자신의 종교만이 참되다고 주장합니다.

종교의 배타적인 성향은 역사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낳았습니다. 배타적인 종교들이 남긴 오점들을 열거한다면, 중세의 십자군 전쟁과 현재의 중동전쟁을 포함하는 종교들 간의 전쟁들, 종교재판, 대학살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타적인 종교들이 남긴 오점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우리와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종교를 인정할 수는 없는가?

이 지점에서 합리적인 사람들은 ‘왜 하나님은 특정 종교를 통해서만 구원을 베푸시는 갗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종교다원주의, 배타주의 그리고 종교포괄주의라는 개념으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

배타주의

종교포괄주의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음 오직 우리 종교에만 구원이 있음 우리 종교 때문에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생겼음
종교간 교류와 대화 강조 타종교를 인정치 않음 다원주의와 배타주의 갈등 해소
분명한 신관(神觀)이 없음 분명한 신관(神觀), 전능하신 하나님을 강조 종교적 열심이 불필요함, 사랑의 하나님을 강조
결국 무신론적인 믿음(종교의 윤리화) 각 종교만의 뚜렷한 믿음 종말론전 신앙의 상실

배타주의는 오직 자신의 종교에만 구원이 있다는, 즉 자신의 종교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입장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종교다원주의는 하나님이 모든 종교를 통해서 구원을 베푸신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므로 각 종교의 주장은 절대적인 진리이기 보다는 상대적인 진리인 것입니다. 종교포괄주의는 이러한 두 주장에 대한 갈등을 묶어주는 주장입니다. 이제 각 주장들에 대해서 세심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종교다원주의란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은 다양한 민족들과 다양한 문화들 속에서 각각의 문화에 맞게 자신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어느 종교든 간에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살아간 성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하여 선하고 의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이들 성자들을 통해 인격의 감화를 받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이는 그들의 종교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은 모든 사람들이 신을 알고 숭배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특정시대나, 문화 그리고 특정종교에만 자신의 구원을 제한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추측은 우리로 하여금 종교다원주의로 이끕니다. 종교다원주의는 특정종교에만 구원이 있다는 배타적인 신앙을 버리고 다른 종교들에게도 구원이 있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종교다원주의의 입장은 시각장애자와 코끼리라는 잘 알려진 이야기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코끼리를 이전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시각장애자들에게 코끼리 한 마리를 끌고 갑니다. 한 시각장애자는 다리를 만져보고서 코끼리는 매우 큰 살아있는 기둥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은 몸통을 만져보고서 코끼리는 매우 큰 뱀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코끼리의 상아를 만져보고서 코끼리는 날카로운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코끼리에 대한 시각장애자들의 다양한 주장은 그 각각 모두 옳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단지 코끼리의 일면만을 말했을 뿐입니다. 이러한 편협한 주장이 나오게 된 이유는 시각장애자들에게는 코끼리를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다원주의는 각 민족과 종족이 특정의 역사와 문화에 너무나 깊숙이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특정 종교에만 구원이 있다는 편협한 주장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다원주의는 문화적 상대주의를 그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문화적 상대주의란 하나의 문화만을 절대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서로 입장을 상대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종교 다원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예수에게서 성육신되었고,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하나님이 계시된다는 주장을 반대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성육신 교리 자체를 부정합니다. 이들은 진정한 종교는 인격의 변화라고 주장합니다. 종교가 각 개인의 인격을 변화시키는데 성공한다면 그 종교는 참이라고 주장합니다. 종교다원주의 입장에서 종교의 의의는 신 중심적인 삶에서 개인중심적인 삶으로 변화되는데 있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적인 믿음들은 인격 변화의 수단으로 중요할 뿐이지 그 믿음 자체의 절대적이고 고유한 중요성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다원주의적 입장은 언뜻 보기에 매우 매력적입니다. 다른 종교를 인정하면서 그 종교의 좋은 점들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종교적 갈등이나 이로 인한 민족 간의 분쟁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종교 다원주의의 문제점
  
그러나 신보다 인격을 우선시 한다는 점에서 종교 다원주의는 공산주의의 유물론적 무신론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또한 어떤 종교든지 다 인정하는 종교 다원주의는 하나님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범신론과도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종교다원주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조차도 부정하는 불신앙의 일종입니다.

종교 다원주의적 입장에서는 신앙인들이 독실하고도 배타적인 신앙을 버리는 것이 옳습니다. 종교 다원주의자는 기독교의 진실성을 무조건 의심하고 보는 회의주의적 입장을 취합니다. 독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종교인의 경우에 이런 종교 다원주의는 매우 거북하고 대하기 껄끄러운 이론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인들이 무조건적으로 다원주의적인 통찰을 거부할 수만은 없습니다. 다원주의적인 입장이 없이는 다른 종교인들과 대화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배타주의란 무엇인가?

이제 배타적인 종교들의 특성을 살펴보겠습니다. 비록 다른 종교들이 아무리 경건하고 도덕적이라도 그들의 종교를 통해서는 결단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관점이 종교 배타주의입니다. 이러한 배타적인 종교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전도와 선교에 대한 열정이 뜨겁습니다. 배타적인 종교들의 특징은 참된 구원은 오직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는 점입니다. 자신들을 구원하려는 인간적인 시도들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고 진정한 구원은 신의 전능하시고 주권적인 능력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배타적인 종교들 중의 하나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참된 계시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 4:12)

기독교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특별하게 진리를 보여주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고 믿습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다시 말해 기독교의 배타주의는 단순히 이기주의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배타주의는 계시된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것입니다.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기독교의 신앙에서 볼 때, 다른 종교들은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는 인간적인 시도로서, 결국 불가능한 시일 뿐입니다. 반면에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특별한 종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만이 다른 종교에 대하여 배타적인 성향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배타적인 종교들은 자신들의 종교 지도자나 창시자를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자로 봅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이슬람교에서는 마호메트, 불교에서는 석가모니를 하나님의 계시자 또는 중보자로 주장합니다. 각각의 종교는 하나님이 그 종교의 창시자를 통해서 나타났다고 믿는 것입니다.

종교포괄주의란 무엇인가?

과연 기독교는 배타적인 신앙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종교의 진실성을 인정할 수는 없을까? 그 해답은 종교포괄주의에 있습니다. 종교포괄주의자들은 구원이 오직 한 종교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보는 점에서 종교다원주의자들과는 다릅니다. 종교포괄주의는 오직 한 종교에서만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종교배타주의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종교포괄주의는 종교배타주의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그 차이가 있습니다. 포괄주의는 한 종교의 절대적인 진리를 옹호하는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다른 종교인들도 자신의 종교로 인해 구원될 수 있음을 주장합니다. 결국 종교포괄주의는 배타주의와 다원주의의 혼합입니다.

가톨릭의 유명한 신학자인 칼 라너(1904-1984)가 바로 종교포괄주의의 대표자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임을 주장합니다. 또한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음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라너는 예수의 속죄와 구원사역을 온 인류를 위한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입니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예수의 구원사역의 결과를 온 인류에게 적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에 대해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이교도나 타종교인들 조차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에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과 죽음은 죄 가운데 있는 온 인류를 구원하기위한 하나님의 속죄행위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의 이름을 듣고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구원을 베푸시는 그러한 편협하고 불공평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포괄주의자 라너는 바로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라너의 포괄주의적인 입장은 보편구원론 혹은 만인구원론이라고 불립니다. 기독교 이전에 살았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 그리고 다른 종교들을 신봉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예수의 속죄사역이 적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독교의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현재의 타문화권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은 타락한 온 인류를 위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객관적이고 역사적이며 그리고 보편적인 구원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라너는 예수를 믿지 않는 타 종교인들을 ‘익명의 기독교인들’이라고 부릅니다. 기독교에 대한 배타적인 신앙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종교포괄주의는 관대하면서도 매력적인 신앙으로 보입니다.

종교 포괄주의의 문제점

그러나 독실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종교포괄주의가 각 개인의 주관적인 믿음을 너무 지나치게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신앙고백만이 각 자의 영혼을 구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눅 7:50)라는 말씀을 통해서는 각자의 개인적인 믿음이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또한 종교포괄주의는 기독교에 대한 종교적 열심을 약화시킨다는 점에 문제점이 있습니다. 종교포괄주의는 굳이 기독교에 열심을 품을 필요성을 상실시킵니다. 어느 종교를 믿든지 간에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 온 인류를 위해 성취되었다면 기독교라는 특정종교에 대한 열심과 열정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틸리히라는 신학자의 말대로 만일 종교가 궁극적인 관심에 사로잡힌 상태라면, 우리는 우리를 죄에서 용서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종교는 우리의 일상과 함께하는 문화의 일부가 되어야만 합니다. 즉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개인의 삶과 모든 민족의 문화는 무엇인가 궁극적인 것에 사로잡혀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종교다원주의와 포괄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종교에 대한 관심이나 열정을 떨어뜨립니다.
 
종교다원주의는 어쩌면 하나님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불신앙적이고 인간적인 삶을 권장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종교포괄주의는 종교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나 열정을 빼앗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개인적인 헌신과 사후에 있을 마지막 심판에 대한 소망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기독교는 결단코 자신의 배타적인 신앙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로서는 다시 배타적인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믿음으로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이고, 그를 통해서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신앙을 꼭 붙잡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의 불필요한 고집이 아니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라는 성경의 분명한 선언을 믿는 것입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부활과 같은 신화적인 사건들이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지 않더라도 예수를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결단코 그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7)

예수를 알지 못하고 예수를 핍박하던 유대인 바울은 예수를 만난 이후로 그를 위해 일생을 바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이는 바울의 증언입니다.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을 받게 하려고 가더니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웠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행 22:4-8)

예수를 만난 사람들에게 있어 예수는 그들의 운명을 걸어야 할 궁극적인 분이십니다.
종교는 단순한 인격의 변화만이 그 내용이 아닙니다. 종교는 신앙인의 운명을 거는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를 개인적으로 믿고 따르면서 자신의 운명까지도 맡기는 것입니다. 종교가 궁극적인 관심에 사로잡힌 상태라면, 궁극적 관심의 대상으로서의 궁극적 존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를 개인적으로 만나고 체험한 사람들에게는 예수에 대한 신앙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유일한 길이신 예수님

복음주의 기독교 사상가 존 스토트에 의하면, 성서를 통해 예수의 생애를 고찰하게 될 때  예수에 대한 3종류의 견해를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 첫째는 예수는 정신병자일 가능성입니다. 둘째는 그가 위대한 종교 사기꾼일 가능성입니다. 셋째로 예수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일 가능성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사기꾼이 아니라 정신병자였다면, 예수님은 자신이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스스로 믿었고 또한 그것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쳤을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종교 사기꾼이었다면,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을 속인 것이고 또한 자신의 제자들을 속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유대교에서 나온 이단 사이비 교주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나 만약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기독교는 참된 종교이며 성경에 나타난 모든 초자연적인 기록들은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진리인 것입니다.1)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은 1889년 9월 3일에 인도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독실한 힌두교도였으며 썬다 싱이 14살 되는 해에 죽었습니다. 그녀는 죽기 전에 썬다 싱에게 훌륭한 종교가가 되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그는 15세에 이미 어려운 철학이나 종교서적을 섭렵했으나 인생의 심오한 진리를 터득할 수는 없었고 그로 인해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당시에 기독교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힌두교는 물론 기독교에서도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고, 1904년 12월 18일에 기독교에 관련된 성경과 서적들은 모조리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는 허무와 절망 속에서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살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5시에 지나가는 급행열차에 몸을 던지려고 철로 변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습니다. “힌두교의 신이든 기독교의 신이든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대답해 주시오!” 이때에 기적적으로 예수님께서 나타나 “어째서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너를 위하여 십자가를 졌다. 이젠 네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겠다는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세계적인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 22-24)

예수라는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기독교는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시각에서 받아들이거나 이해하기가 어려운 종교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그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며 영생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예수라는 청년에게 자신들의 운명을 거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를 믿는 것을 감춰진 보화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어진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사실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태어난 예수를 직접 눈으로 보고 만졌던 유대인들은 예수를 거부하고 그를 처형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직접 눈으로 보지도 못한 채 단지 성경의 증언만으로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입니까?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이 증명할 수도 없고 또한 알 수도 없다는 것이 현대철학의 결론입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기독교는 정말 이성적으로 납득하기가 어려운 신앙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라는 어거스틴의 명언이 기독교 신앙을 가장 역설적으로 설명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에 대한 신앙은 이성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믿고 나면 이해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예수를 믿는 신앙을 가진 뒤에 따라오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직접 찾아오셔서 자신을 보여주신 계시의 종교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이로 인해 영생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혼란한 시대에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다고 성경은 선언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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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 스타트, 기독교의 기본 진리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2), 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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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1/14 [14:55]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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