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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0.14 [10:01]
기독자의 거듭남과 구원의 문제 추구
- 이청준(1939~)의 <낮은 데로 임하소서> -
 
임영천

이청준(1939~)의 작품 <낮은 데로 임하소서>(1981)는 안요한이란 이름의 한 맹인 목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안요한 목사의 이 이야기는 확실히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강한 감동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작가 이청준은 자신이 생산하는 작품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는 소설가로 소문나 있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와 같은 기독교 작품이 감동적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강력히 와 닿는 것은, 평소에 보여 준 작가 이청준의 창작 태도면에 드러나는 무서우리만큼 진지한 집필 자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보여 주려는 기독자의 거듭남[重生]과 구원의 문제를 추구함에 있어서 하늘은 그에게 기독교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정확히 투시해 보는 통찰력을 지니도록 도와 준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의 주인공 안요한. 그는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그의 갈 길과 운명이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어 있었다. 그는 어느 면으로는 성별(聖別)되어 있었고, 아버지의 서약에 의해 이미 하나님께 바쳐져 있었다. 그러므로 만일 그가 삼손이나 요나처럼 잘못 곁길로 들어섰을 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채찍을 맞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했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불행이었고, 아니 언젠가 그것은 그의 행복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슴푸레하나마 그의 아버지(안진삼 목사)가 요한 자신에 대한 빛[光明]의 차단자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거의 유랑생활에 가까운 아버지의 잦은 전직과 모진 가난을 그가 따라 살아가야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자신(요한)이 태어남을 계기로 가산의 대부분을 당시의 평양신학교에 자진 헌납해 버리고 그 결과 가족에게는 가난만을 물려주었던 안진삼 목사는 8․15 해방 이후 그의 가솔을 이끌고 평양에서 서울로 이사왔다. 6․25 사변을 만나 가족은 다시 거제도로 피난가야 했다. 그동안 안 목사는 지방 교회 목회자로 전전하기 시작했다. 이떻게 해서 겨우 시골 작은 교회나마 목회 일을 맡는다 해도 보수는 형편없었다.

세상의 빛 잃고 천상의 빛 얻기까지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안요한의 학창생활이 고달프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가난도 하나님의 뜻이라며 감사하자고 하는 아버지의 어이없는 태도에 그는 역겨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그러한 아버지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심리적 반항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어떤 못된 짓을 해도 참아내는 아버지의 인내는 의외로 끈질겼다. 안요한이 대학 과정을 마쳤을 때, 아버지는 그 끈질긴 설득을 다시 시작했다.


"이 돌멩이를 고무줄 끝에 잡아매어, 그걸 네 힘껏 돌려보아라."


아버지의 분부대로 그는 그 돌멩이가 매달린 고무줄을 머리 주위로 빙빙 돌려대었다. 이를 지켜본 뒤 아버지는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너는 그동안 아마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도망한 줄로 생각해 온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건 너의 오해다. 네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이 고무줄 끝의 돌멩이가 그러하듯 한계가 있는 일이다. 너는 이 고무줄 끝의 돌멩이처럼 언제나 주님의 세계 안에서 일정한 범위 안을 맴돌고 있었을 따름이다. 너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하나님의 종으로 택함을 받았으며, 품에 사로잡힌 것이다. 너는 언젠가 다시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운명지어져 있다."


 한마디로 말해, 신학공부를 해 하나님의 종이 되라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어느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소명감이 부족했다. 일 년도 채 못 가 마음이 흔들리고 회의가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신학교를 자퇴해버리고 말았다. 군대 생활을 하는 동안 카투사병으로 근무한 일이 인연이 되어 그는 제대 후에도 미8군의 통역관으로 남아서 일하게 되는데, 그때 미국방성 산하의 군사외국어학교에서 한국어 교관을 선발하는 일이 있어 그는 여기에 뽑혔고, 이제 미국으로 향하기 직전 결혼식까지 올리게 되었다. 그는 신혼의 황홀하고 달콤한 꿈을 꾸며 이륙의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오른쪽 눈이 이상하게 뻣뻣하고 껄껄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안과 의사인 친구를 찾아가 보았다. 󰡒아마 괜찮을 거야, 자넨 워낙 행운아니까.󰡓 그러나 그의 눈에는 포도막염이란 증세가 찾아온 것이다. 그것은 불치의 병(안질)이었다. 둘째 딸까지 얻고 난 어느 해 여름, 이젠 왼쪽 눈마저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그동안 백방으로 노력하며 안과 병원이란 병원은 안 가본 데 없이 다녀 보았지만 점점 더 가산만 탕진했을 뿐 진전이란 없었다. 각종 민간 요법과 한방치료를 다 해보아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이제 생계의 위협마저 받기 시작했다. 벌어 놓은 돈은 다 써버렸으니 이제는 치료비도 환자 자신이 벌어서 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래서 지방 여고의 외국어 교사 생활을 얼마간 해 보기도 했지만 건강이 견뎌낼 수가 없었다. 생계 유지 문제와, 과로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양극적 모순 속에서 하루하루를 피눈물나는 고투로 버텨 나가는 주인공의 삶의 이야기가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눈물 없이는 이 대목을 읽어나갈 수가 없다.


 불가피하게 사표를 제출하고 마지막 고비에 다다른 안요한은 이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느 지방의 여자 침술사를 찾아가게 된다. 두 시간 사오십 분에 걸친 장시간의 시술은 그의 등짝에 3백여 개의 살구멍을 내게 하는 무서운 수술이었지만, 그 참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서도 그는 차도를 느끼지 못하였다. 간호하던 아내마저 간병 2개월 째에 접어들자 혼절해 쓰러져 버렸다. 그는 일백여 일 동안 버티다가 아무 효험도 없이 역시 기절해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혼수 상태가 유난히 길었는데, 그가 깨어났을 때 이미 그는 어느 종합병원에 입원되어 있었다. 그는 마침내 양쪽 눈이 모두 실명되었다는 의사의 선고를 받아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제는 아내마저 행방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리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그의 곁을 떠나갔다. 이제 그는 완전히 홀로 남게 되었다.

눈먼 이가 오히려 보는 이를 위로한 격


 그는 몇 차례의 자살 소동 끝에 드디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요한아, 요한아, 나는 너의 하나님이니라. 내가 아직 너를 버리지 않았는데 어찌 너는 혼자라 하느냐? 내, 네가 혼자가 아니라는 증거를 보이리라." 육안과 영안의 갈림길에서 처절하게 세상의 고독과 대결하고, 또 신의 방관 속에서 극한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주인공의 실존적 고뇌를 우리는 심신 양면의 떨림 없이 결코 읽어갈 수가 없다. 십자가 위에서의 극한적 고통을 겪고 나서 예수는 새로이 부활의 위업을 달성했듯이, 이제 안요한도 신의 침묵 가운데 완전히 버려진 채 하나님과 맞대결 하는 과정을 거쳐 온전히 다시 사는 삶을 얻게 된다.


 그가 세상적인 빛의 세계를 잃게 되면서 오히려 천상적인 광명의 세계를 되찾게 되는 것에는 매우 깊은 기독교적 역설이 숨어 있다. 확실히 인간은 무엇인가의 소유와 고정관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을 때라야만 하나님과 천상의 세계를 바로 볼 수 있는 영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는 어느 면, 눈뜬 소경들을 지도하는 눈먼 건강인이라 할 수 있다. 눈뜬 불구자들을 인도하는 눈먼 정상인! 확실히 주인공은 정상인보다 더 많은 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눈먼 뒤의 삼손처럼 더 큰 힘을 발휘하고, 또 밀턴의 경우처럼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인간상을 우리에게 하나의 자화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바울처럼 영안이 뜨임으로써 그 자신의 육안의 부족을 상쇄시킬 수 있었던 주인공은, 자신의 특이한 신앙체험을 통해 그 자신 스스로 걸어온 어두움의 인생 역정을 참회하고, 하나님 앞에 다시 온전히 매달리는 복귀 과정을 통해 참사람으로 거듭나는 새로운 인간상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임영천님은 1940년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나, 1․4후퇴 때 가족과 함께 남하, 광주(光州)에서 성장하여 조선대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장신대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서울시립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 첫 평론집 「삶과 믿음과 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와 지금껏 문학평론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기독교문학평론가협회 회장이며,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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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8/30 [09:56]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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