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
교계뉴스문화/교육국제/NGO/언론파워인터뷰생활/건강오피니언연재정치/경제/사회한 줄 뉴스
전체기사보기
편집  2019.09.18 [03:02]
III.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핀 속죄권 판매
- 종교개혁사 3 -
 
김의환

루터의 종교개혁은 신학적 동기에서 일어났으나, 직접적 계기는 교황청의 속죄권 판매 때문이었다. 1506년, 교황청에서 파송한 속죄권 판매단원들이 독일의 전역을 돌기 시작하였고, 비텐베르크 시에도 속죄권 판매를 위해 교황기를 들고 한떼(一群)의 종교 모리배들이 들이닥치게 되었다.

베드로성당 완공 위해 속죄권 판매

그 당시 교황 레오 x세는 막대한 공사비가 필요한 베드로성당의 완공을 위해 속죄권 판매를 강권하고 있었다. 100년 동안 끌어 온 공사비용을 메우기 위해 1506년부터 속죄권 판매를 재개(再開)한 것이다. 판매의 촉진을 위해 판매 수입의 반액을 지방 감독이 차지하고, 판매 책임자가 판매량에 따라 보상을 받은 후 나머지는 교황청으로 보내게 했다.

테첼 vs 루터

마인즈의 감독 알브레흐트(albreght)의 파송을 받은 판매 책임자인 도미니크 교단 수도사 테첼(johann tetzel, 1465∼1519년)은 당대의 웅변가요 학자로 유명하였다. 가는 곳마다 그는 “속죄권을 사는 사람은 즉시 죄를 용서받을 것이요, 연옥에 있는 자를 위해 사면 그 은화가 헌금함 속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순간 곧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간다.”라고 외쳤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는 진리에 감격하여 후진을 기르고 있던 루터는 테첼 일행의 도전을 묵과할 수 없었다. 그는 테첼의 입성을 금하고 속죄권 판매에 대한 반대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대학 교회 게시판으로 사용되는 성문에다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게시하였다. 이 사실이 독일 전역에 곧 퍼졌고, 얼마 후에 북유럽 전역에 널리 퍼져 속죄권 판매 실적이 급격히 떨어졌다.

95개 조항의 항의문 골자는 다음과 같다. “속죄권은 죄를 속할 수 없다, 속죄권은 죄의 벌을 면케 할 수 없다, 연옥에 있는 영혼은 구할 수 없다, 회개한 자는 이미 죄 용서함을 받았다.” 이 새로운 진리에 접한 비텐베르크 시민들은 앞을 다투어 베껴서 독일에 있는 친구, 친척들에게 전해 주었다.

이단으로 정죄되다

 당황한 교황은 다음 해 7월, 루터를 로마로 소환했다. 소환에 불응하자 추기경 카에타누스(cajetanus, 1469∼1534년)를 시켜 속죄권 판매 비난을 철회하도록 했다. 루터는 “교황에게 잘 말씀 드려 오해를 풀도록 하세요.”라는 말을 추기경에게 남기고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회의장을 떠나 비텐베르크로 돌아왔다. 루터는 이때부터 교황의 권위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1519년, 드디어 격돌의 날이 왔다. 라이프치히에서 학자 에크(john eck)와 루터 및 루터의 동료 칼쉬탓(kalstadt)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칼쉬탓의 미지근한 변론에 이어 루터의 칼날 같은 변론이 따랐다. 노련한 에크는 루터의 95개조 변증에서 시작하여 교황의 유오성(宥誤性), 그리고 요한 후스를 정죄한 교회 총회(constance council)의 잘못을 인정하는 변론이 나오도록 유도하였다. 이때 에크는 루터를 이단으로 단정하고 말았다.

교황권이 속권보다 우월하지 못하다

 이 역사적 토론 후 루터는 자기 입장을 폭넓게 밝힐 필요성을 느끼고 1520년에 세 개의 중요한 신학적 논문을 썼다.

첫 논문이 「독일의 크리스천 귀족에게」(to the nobility of the german nation)였다. 이 논문에서 루터는 첫째로 ‘신자들이 다 제사장들이기 때문에 교황권이 속권보다 우월하지 못하다.’라는 것과, 둘째로 ‘신자들이 다 제사장들이기 때문에 교황만이 성경 해석권을 갖는 것은 잘못되었다’, 셋째로 ‘신자들이 다 제사장들이기 때문에 교황만이 교회회의를 소집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이 논문에서 교황의 월권, 성직자의 독신주의, 교회의 사치 등을 비난하고, 신학 교육의 개혁을 주장했다.

화체설과 공재설

두 번째 논문은 「교회의 바빌론 포로」(ba- bylonish captivity of the church)라는 라틴어로 쓰여진 신학적 논문으로 로마 교회가 성례의 포로가 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성례는 오직 세례와 성찬 두 가지뿐으로 신의 약속을 증명하는 표시이며, 중요한 은혜의 방편이다. 그러므로 평신도에게 분잔을 거절함은 잘못이다.’라며 ‘공재설’(共在設, con-substantiation, 성찬식 때 먹는 떡과 포도주는 보이는 그대로이지만, 영적으로 볼 때에는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교리- 편집자 주)을 주장하고, ?화체설?(化體設, transubstantiation, 신부가 성찬식을 위해 기도하는 순간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주장하는 교리. 이와 같이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신부에게 주어졌다고 함- 편집자 주)을 부인하는 입장을 밝혔다.

크리스천은 자유로운 종

세 번째 논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on christian liberty)였는데, 이 논문에서 그는 ‘그리스도인은 율법에 매어 있지 않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기 때문에 자유인이다.’라는 사실과, 또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스스로 이웃을 섬기기 때문에 ‘자유로운 종’이다.’라는 아이러니컬한 사실을 지적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06/07/28 [20:44]  최종편집: ⓒ newspower
 
뉴스
연재소개
간추린 교회사
연재이미지1
사회참여로 이어진 청교도 영성
애정적 영성을 공급한 청교도
이상적인 교회 건설을 추구한 청교도
내적 개혁을 추구한 청교도 경건운동
청교도운동, 지펴진 개혁의 불씨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
V. 루터의 종교개혁, 그 업적과 확장
IV. 종교개혁의 불이 타오르다
III.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핀 속죄권 판매
마침내 개혁의 봉화가 오르다
중세의 뉴 패러다임, 종교개혁
중세 교황권의 발흥과 몰락
깨끗한 자본주의의 본보기 유일한 회장 ⑤
이슬람의 태동과 십자군 운동
중세를 적신 평화의 오아시스, 수도원
중세 교회의 이단 유형과 특징
중세 유럽의 복음전파 과정
중세 교회의 빛과 그림자
끝없는 역사의 미로
기독교가 국교가 된다면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후원 및 광고 만드는사람들기사제보기사검색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136-5) 본관 107호 TEL 02-391-4945~6| FAX 02-391-4947,
Copyright2003-2019뉴스파워.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power@newspower.co.kr 등록번호 서울 아 00122 등록일 2005.11.11 발행 및 편집인 김철영. 청소년보호책임자: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