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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7.22 [21:36]
윤리의 파탄과 기독교적 회복
-박영준(1911~1976)의 <종각>-
 
임영천


작가 박영준의 소설세계를 소재나 배경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현저하게 눈에 띄는 것은, 해방 전에 ‘농촌’을 주된 배경으로 삼던 경향이 해방 후에 들어와서 ‘도시’로 바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소재나 배경의 변화는 그의 문학세계에도 변모를 가져와 해방 전의 궁핍한 농촌 현실을 드러내 보이던 것이 해방 후에는 도시의 시정인들이 드러낸 성 윤리관과 가치관의 문제가 그의 주된 관심사로 되었다.

만우(晩牛) 박영준은 도시 시정인들의 본능적인 삶을 묘사하여 애욕의 파탄이 인격 파탄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리되, 그러나 작품의 말미는 ‘인간성의 회복’으로 끝맺고 있다. 철저히 패륜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 이야기의 마지막은 인간성 회복으로 이어주는 그의 소설세계는 다소 도식성을 보이기까지 한다고 지적해 볼 수도 있겠다.

윤리의 타락과 회복의 구조가 세속적인 동기에서부터 종교적인 경지로까지 미세한 변화를 보이며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의 이런 경향을 대표해 주는 작품이 장편소설 <종각>(1965)이다. 이전의 작품들에서는 기독교 세계가 아닌 곳에서 작중인물이 자신의 타락을 스스로 ‘반성’함으로써 인간성을 회복하지만, <종각>에서는 주인공이 신을 향해 ‘회개’함으로써 자신의 과오를 씻는 것이다. 작가 자신의 기독교적 신앙이 이 작품 속에 잘 반영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장편 <종각>에 이르기까지 박영준은 몇 편의 이와 유사한 세계를 다룬 작품들을 썼다. 기독교 세계를 다룬  몇 편의 단편소설들에서 박영준은 개인의 윤리적 파탄을 기독교 신앙을 통해 회복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단편 소설들에서 보인 이러한, 타락한 윤리의 종교적 회복의 형식이 장편 <종각>에 이르러서는 보다 체계화되어 나타난다.

<종각>은 나사니엘 호손의 <주홍글씨>와 상당히 유사한 면을 지니고 있다. <주홍글씨>가 죄의 테마를 다루었듯이 <종각>도 죄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전자의 등장인물들이 육욕의 노예요 죄악의 하수인이듯이 후자의 주인공들도 육욕에 얽혀 허우적거리고 있는 죄악의 군상들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는 성서 구절을 연상하리만큼 <주홍글씨>의 주인공들의 말로가 비극적인 것처럼, <종각>의 등장인물들 역시 몹시 불행한 결과에 이르는 것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외형적(표면적)인 그들의 불행과는 달리 그들의 마지막이 철저한 회개로 인해 속죄와 구원에 이르게 되는 과정은 두 소설의 공통적인 점이라고 하겠다. 딤즈데일 목사가 죄의식 때문에 오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죄악에 대한 철저한 회개를 통해 영혼의 구원에 이르듯이, 최광주도 철저한 참회와 거의 고행이다시피 한 기독자적 희생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구원에 접근해 가는 점이 또한 서로 유사하다고 보겠다. 죄에 대한 가책과 죄의식에 따른 고행자적 속죄의 삶을 통해서 신에게 한 발짝 더 접근해 가려고 하는 주인공 최광주는 어느 면에서는 한국판 딤즈데일이라고 할 수 있다.

호손의 <주홍글씨>에는 세 가지 세계관이 들어 있다고 지적되고 있는데, 율법적(청교도적) 세계관, 낭만적 세계관, 그리고 기독교적 세계관 등이다. <종각>의 세계관도 결국 이 세 가지로 요약될 것으로 보인다. 김장로와 김집사는 율법적 세계관, 심삼애와 대주, 목사의 딸 등은 낭만적 세계관, 그리고 주인공 광주와 목사 등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종각>의 주인공 최광주는 현재 심삼애의 남편으로서, 미혼의 동생 대주와 세 자녀를 거느린 여섯 식구의 가장이다. 그런데 그의 처 삼애는 지금 반신불수의 몸으로 늘 자리에 누워만 있는 불구자이다. 삼애는 광주의 전처 신애의 친동생이다. 전처 신애는 딸 경선이를 낳고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여인이다. 남편과 동생(삼애)이 함께 놀아난 꼴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애가 두 아이를 낳아 놓은 뒤 반신불수의 처지가 되어 버렸다.

광주는 신애가 자살을 한 후 데리고 살게 된 처제 삼애마저도 반신불수가 되자 이 일들에 충격을 받고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다. 그는 교회에 들어와 세례를 받은 뒤 자진해서 사찰 직분을 맡았다. 삼애가 비교적 죄의식을 크게 갖고 있지 않음에 비하여, 광주는 지금껏 너무도 큰 죄의식에 몸부림쳐 왔다. 이러한 그가 교회의 종을 칠 때는 꼭 열다섯 번씩 줄을 당기곤 했는데, 이는 자신이 범한 열다섯 여인들에 대한 속죄의식의 표현이었다. 그는 열다섯이란 숫자를 자기의 십자가로 생각하고 있다. 그가 과거에는 구제불능의 인간이었으나 지금은 참회와 속죄의 과정을 통해 새 사람으로 변화되고 있음이 신뢰할 만하다.

변화된 이후의 광주의 삶은 거의 고행자적이다. 과거의 죄에 대한 속죄의식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그는 금욕과 극기의 생활을 수년 간 해 오고 있다. 광주의 신앙에 찬 생활에 비할 때 그의 동생 대주는 육욕에 빠져 헤매다가 목사의 딸 선희와 깊은 관계를 맺어 목사와 광주를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만든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의 ‘일기장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우연히 어미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던 딸 경선이가 삼애의 과거를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극도의 불안감에 빠진 삼애가 경선이를 구박해 내쫓자, 광주는 경선이와 떠돌이 고아 명소를 함께 고아원으로 들여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를 죽일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경선이의 가출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 삼애가 다시 경선이를 데려오라고 하자, 광주는 일시 아내를 죽이려 했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경선이와 명소를 다시 데려오면서 명소를 자기 자식처럼 키울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가정의 평화 회복도 잠시뿐 폭풍은 새로운 방향에서 불어닥쳤다. 동생 대주와 목사의 딸이 어울려 외박한 사실이 들통나 목사는 교회에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고, 광주 역시 그의 동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결국 이 두 가정은 이삿짐을 꾸리게 되는 것이다.

일반 교회의 통상적인 치부까지 함께 고발하고 있는 이 작품은, 목사나 광주의 가정이 부딪치는 일시적 불행에도 불구하고 참된 승리자는, 김 장로나 김 집사-목사나 광주를 궁지에 몰아넣으려 애쓴-와 같은 부류의 교인들이 아니라, 목사나 광주와 같이 죄의식이나 책임의식에 둔감하지 않은 진실한 신앙인이라는 것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타락한 윤리의 기독교적 회복이다. 최광주와 같이 구제불능의 인간도 교회 안에서 회개할 때 신의 용서가 따른다는 것을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적 회복’과는 다른 ‘인간 스스로의 회복’이 그의 세속적인 작품들에서 보여준 세계라고 한다면, <종각>에서 보여준 것은 기독교적 회개와 속죄에 의한, 타락한 윤리의 회복이라고 하겠다.

이 작품은 한국문학사에서 본격적인 죄의 테마를 다루어 비교적 성공한 작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일종의 교훈소설로 머물러야 하는 약점도 자체 안에 지니고 있으며, 캐릭터 설정이나 구성 면에 있어서 ‘단선적’ 특성을 보여준 작품으로서의 약점도 지녔다고 보겠다. 이는 원래 작가 자신이 ‘윤리의 타락과 그것의 회복’이라는 일종의 도덕 지향적인 도식적 주제와 구성을 즐겨 쓴 데 따른 불가피한 약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임영천 님은 1940년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나, 1?4후퇴 때 가족과 함께 남하, 광주(光州)에서 성장하여 조선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장신대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서울시립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 첫 평론집 「삶과 믿음과 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와 지금껏 문학평론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기독교문학평론가협회 회장이며,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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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5/25 [18:2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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