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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7.21 [02:02]
은총의 기적
- 이문열(1948∼ )의 「사람의 아들」-
 
임영천

등장인물인 아하스페르츠나 민요섭은 모두 신의 문제나 구원의 문제, 내지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문제 등을 천착함에 있어서 그렇게도 진지할 수가 없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이 어두운 세상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빛을 줄 수 있고, 또 어떻게 해야 병에 찌들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질병 치유와 의식(衣食) 문제의 해결을 보장해 줄 수 있을까?’하는 인간의 근원적이고도 현실적인 문제들이다.

이런 난문제를 안고 씨름(苦惱)하는 그들은 한결같이 전통적인 종교에 대해 저항적이고 또 전통적인 신에 대해서도 반항적이다. 아하스페르츠는 야훼 하나님에게 도전장을 내놓고 있으며, 동시대에 같이 활약하던 예수에 대해서도 적대적이다. 마찬가지로 민요섭도 지금까지 그가 믿어온 신과 구세주에 대하여 철저하게 항거한다는 것이다. 아하스페르츠가 야훼 대신 새로운 신을 끊임없이 찾아다니듯이 민요섭도 그의 추종자인 조동팔과 더불어 새로운 경전을 만들고 그에 따른 새로운 신을 창조해 내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들은 결코 이론에만 치우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추구하는 신에 적합한, 그 신이 요구하는 어떤 실천적 신앙인 상을 수립하는 데에도 결코 나태하지 않다.
 
아하스페르츠에게 비쳐진 예수는 이 땅에 낙원을 이루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받는 인간들에게 더욱 무거운 짐을 부과함으로써 더욱 그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데나 쓸모있는 존재에 불과하다. 이 아하스페르츠가 바로 민요섭의 정신적 분신이라고 한다면, 페르츠의 반기독적 사고(思考)나 언동은 곧 민요섭의 것이라고 할 때, 민요섭이나 조동팔이 세우려는 또 하나의 낙원이란 것 역시 “고통을 주는, 그리고 역할을 하지 못하는 그리스도”(페르츠 식의 표현)에 대한 저항에서 나온 역행동이란 것을 우리가 지적할 수 있겠다.

즉 그들은 철저히 인간적이다.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능력과 자기개발로 신의 위치에까지 도달하려고 한다.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을 뿐이라는 아하스페르츠의 신 인식과도 같이, 민요섭이나 조동팔 역시 자신들의 손으로 신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새로 만들어진 신이 자기들의 종교관과 인생관 내지는 실천철학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하나의 힘으로 남아 있어 주기를 그들은 바라고 있다. 조동팔 자신이 말했듯이, 그들은 다수의 소외자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그런 신관이나 종교관을 실험하는 하나의 실천 대상(對象)으로 삼을 수 있었다.

신이란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 신은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그러므로 신이 없는 이상 인간 자신이 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신인’(神人, 그리스도)에 대신할 존재로 인신(人神)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절대적 진리로 믿고 이의 실현을 위해 마침내 권총 자살을 감행한 인물이 바로 키릴로프였다. 「사람의 아들」의 주인공들은 키릴로프의 사상을 대변하거나 실천하는 자들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특히 조동팔의 경우 그 점이 두드러진다. 그의 마지막 자결 행위와 같은 극단적 처신이 더욱 키릴로프의 마지막 행동(자결)과 동일한 것이었다.

마침내 그들의 이 일사불란한 ‘새로운 신 찾기 운동’의 대열 가운데서도 민요섭이 먼저 이탈해버리고 만다. 조동팔이 마치 의적 홍길동과도 같이 불의의 재물로 치부한 사람들의 것을 탈취하려다가 그만 붙잡혀 옥살이를 하고 나왔을 때 민요섭은 옛 집에 없었고, 그들이 지금껏 양육해 오던 아이들도 모두 흩어져버린 채 거기에 남아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슨 곡절이 있으려니 하고 생각하던 조동팔이 그 사실을 확인한 결과 이미 오래전에 민요섭이 자기와의 관계를 끊고 어디론가 잠적해버렸다는 것이다.

민요섭을 자신의 선배요 스승이며, 아니 거의 우상으로까지 우러러보던 조동팔로서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기필코 민요섭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열의에 불타 있던 그는 끝내 민요섭의 소재를 파악해내는 데 성공한다. 의외로 민요섭은 기도원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찾아간 조동팔에게 민요섭은 불쑥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는 옛 하나님과 교회로 돌아가기 위해 지난 일을 청산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조동팔의 눈에는 고작 여자들과 노예들의 종교, 그 독선의 말(씀)과 피학대의 열정만이 남아 있는 그곳으로 민요섭은 다시 복귀하겠다는 것이었다.

신학의 탈개인화든 혁명의 신학이든, 또는 그 이상 마르크시즘과 손을 잡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 자신은 ‘신 안’에 남아 있어야 했을 일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설혹 불합리하더라도 구원과 용서는 끝까지 하늘에 맡겨둬야 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지금껏 민요섭으로 인해 의미를 지녔고, 그(조동팔)의 모든 행위 역시 정당성을 부여받았었는데, 바로 그 장본인(민요섭)이 자기에게 절연을 선언하는 순간 조동팔은 갑자기 세상이 텅 비어버리고 적막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환상에서 깨어난 돈키호테를 바라보는 산초 판자의 처참한 심정 그것뿐, 더 이상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없었다. 그러나 그는 민요섭 앞에 꿇어 손을 비비며 눈물로 애원해 보았다.

그 요구를 한마디로 거절당했을 때 조동팔은 갑작스런 증오심이 발동해, 이미 품어 가지고 갔었던 칼로 민요섭을 찌르고야 만다. 그리고 동팔 자신도 곧 자결하고 만다. 그러나 민요섭은 칼에 찔린 순간까지도 입가에 엷은 웃음을 띠고 있었으며, 눈길도 온갖 신비함을 다 끌어 모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의 생의 마지막 순간 민요섭은, 예수의 처형 때 좌우에 달렸던 강도들 중 운명(殞命) 직전에 회개한 ‘디스마스’의 경우처럼 죽음 직전에 구원을 얻게 되었지만, 반대로 조동팔은 기어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서지 않음으로써 구원의 대열에서 스스로 이탈하고 만 ‘사반’의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조동팔은 가룟 유다의 마지막이 그러했듯이 스스로 제 목숨을 끊고야 말았다.

결국 민요섭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되었다. 일시 무신론적 악마주의 화신인 키릴로프(혹 아하스페르츠)의 삶의 궤적을 따라갔던 그였지만, 생의 최종 단계에 이르러 요섭은 예수의 그 ‘은총의 기적’을 보게 된 것이다. 그가 과거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봉사의 사명을 안고 선지동산에 들어가 신학공부를 한 어엿한 신학도였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그에게 갑자기 내려진 ‘은총의 기적’의 근원이 어디에 있었을지는 쉽사리 짐작되는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의 다음 명제를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큰 회개의 가능성은 큰 죄의 가능성과 정비례한다.’ 즉 과거 신학도였던 요섭에게는 그동안의 죄가 너무도 컸었기에 또 그만큼 큰 회개의 과정도 수반되었으리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임영천님은 1940년 황해도 송회에서 태어나, 1?4후퇴 때 가족과 함께 남하, 광주(光州)에서 성장하여 조선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장신대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서울시립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 첫 평론집 「삶과 믿음과 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와 지금껏 문학평론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기독교문학평론가협회 회장이며,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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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4/06 [19:29]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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