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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섭 생태칼럼] 두 나무가 한 나무처럼 산다
공학섭목사(순천대대교회 담임, 작가)
 
공학섭   기사입력  2023/12/03 [16:11]

 

우리 교회 정원의 중심이 되는 나무는 팽나무와 회화나무다. 두 나무의 관계는 각별하다. 두 나무가 한 나무처럼 사이좋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옛말에 큰 사람 덕은 보아도 큰 나무 덕은 보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지만 두 나무에는 해당 사항이 아닌 것 같다.

 

두 나무는 적지 않은 세월을 공존하고 있다. 나무의 크기를 보면 팽나무는 500, 회화나무는 200년쯤 되어 보인다. 가까이에서 보면 두 나무가 분명하지만 조금만 떨어진 곳에서 보면 영락없이 한 그루 같다. 

▲ 팽나무와 회화나무가 한 나무처럼 사이좋게 서 있다.  © 공학섭


저들은 일부러 한 곳에 나란히 있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들은 의좋은 형제처럼 다정하다. 나무들도 사람들의 입시경쟁만큼 햇빛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나무는 자신의 생명이 부지될 수만 있으면 공존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낸다.

 

자기 몸을 구부려서라도 비켜설 줄 안다. 상대방에게 피해도 안주고, 자신도 상대에게 피해를 덜 받는 최상의 선택임을 터득한 셈이다. 나무엔 양보라는 언어를 몰라도 다툼이 아닌, 비켜서는 것으로 해결 방법을 찾는다.

 

두 나무는 이름도 다르고 겉모습도 완전히 딴판이다. 수피를 보면 확연하게 다름을 구별할 수 있다. 뿌리도 잎사귀도 다르고 열매도 다르다. 봄에 움이 돋는 시간도 다르다. 그런데도 두 나무는 한 그루처럼 되었다. 

▲ 서로를 위해 약간씩 비켜 주며 공존하고 있다.   © 공학섭


수형도 정원사가 다듬어 놓은 것처럼 한 나무처럼 균형이 잡혀 있다. 따로 또 같이 서로 불편하지 않게 거리를 뒀다. 기가 막힌 황금분할이다. 우듬지 쪽으로 올라갈수록 저들의 어울림은 더욱 아름답게 펼쳐진다.

 

마치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라도 한 것 같다. 두 그루가 사이좋게 영역을 나눠 전체적으로 완벽한 반원형을 만들어 냈다. 서로 대화하고 합의를 한 것처럼 완벽한 모양새를 갖췄다. 너무나 완전하여 보는 사람마다 한 그루로 착각한다. 함께 잘 사는 모습 그대로다.

 

사람들이 세상은 온통 싸움판이다. 자신들에게 불편을 끼치지도 않는 이웃과 이웃 나라를 공격하고 빼앗고 죽인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남북이 원수처럼 여기고, 여야 정치인들에겐 백성은 안중에도 없고 서로 비방하고 헐뜯기에 열중하고 있다.

 

두 나무에서 공존의 지혜를 배우면 어떨까? 두 나무와 같이 서로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하나처럼 살아가면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은 본성 속에 있는 다툼과 분노를 제어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약점을 아시고 최고의 처방을 내리셨다. 본래 유대인과 이방인은 원수였지만, 그 처방대로 했더니 누구도 나눌 없는 한 형제가 되었다. 이는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서다. 죄의 본성을 가진 사람에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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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2/03 [16:11]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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