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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섭 생태칼럼] 정원을 가꾸는 것도 믿음의 일이다
공학섭목사(순천대대교회 담임, 작가)
 
공학섭   기사입력  2023/11/14 [20:43]

 

우리 교회에서 아주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정원 가꾸기 강좌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열리는 강좌란 전도, 기도, 성장, 성경 등 신앙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어찌 정원 가꾸기 강좌가 교회에 열리게 되었을까? 이를 의아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내 생각은 다르다. 지상에 있는 여러 기관 중 교회만큼 정원에 대해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곳은 없다. 교회는 천국의 작은 모형이다. 교회는 이 땅위에서 천국의 아름다움을 어렴풋이나마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정원을 가꾸는 일이 전도나 기도에 못지않은 가치를 가진다. 

▲ 교회 정원의 정자, 음악회 무대로 삼기도 했다.  © 공학섭


성경은 에덴정원으로 시작하고, 정원의 창설자가 하나님이심을 선언한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에덴동산엔 온갖 과실수가 있었고, 수많은 꽃이 피어 있었고, 벌과 나비와 날짐승과 들짐승 공생하는 이상적인 정원이다.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셨다. 사람은 처음부터 에덴동산 곧 정원에서 먼저 지음 받은 모든 동식물과 함께 공존하며 살게 했다. 아담은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것과 에덴에 있는 모든 동식물들이 지닌 본성을 따라 가꾸고 관리하는 책임이 주어졌다. 

▲ 종탑이 정원의 운치를 더해준다. 매일 정오에 종을 울린다. 마을의 거룩한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 공학섭


하지만 아담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고 타락하므로 에덴 정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런데도 자비가 크신 하나님은 에덴에서 추방당한 인생을 에덴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실 뜻을 작정하시고 아담에게 약속해 주셨다.

 

때가 되매 에덴을 회복하실 이를 보내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공교롭게도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과 함께 올리브 정원을 자주 찾으셨고, 그가 체포된 곳도 올리브 정원이었고, 묻힌 곳도 그 정원이었다. 부활하실 때도 동산지기 곧 정원사의 모습이었다. 렘브란트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에 꽃삽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냄도 우연이 아니다. 

▲ 아왜나무가 우뚝 서 있는 이곳 역시 음악회의 무대로 이용되고 있다.  © 공학섭


예수 그리스도는 에덴을 회복할 구속자로서 정원사로 오심이 당연해 보인다. 창조주 하나님이 정원사이신 것처럼 구원 주 예수 그리스도도 정원사로 오셨다. 우리 죄를 위하여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에덴을 회복하실 것이다.

 

아담의 후예인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에덴 정원에 대한 한 조각의 추억을 현실의 세계에서 구현할 책임이 있다. 피조물의 수준에서 에덴의 창조적인 아름다움을 부족하나마 실현해 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와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 능소화가 정원의 색을 입혀준다.  © 공학섭


물론 사람이 에덴 정원을 회복할 수 없다. 완성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께서 하신다. 다만 우리는 정원사이신 하나님과 동역하는 심정으로 창조의 세계를 가꾸고 돌볼 따름이다. 정원을 가꾸는 일은 하나님과 동역이며,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동참하는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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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1/14 [20:43]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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