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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7.14 [16:05]
고독의 노래
김현승의 시세계(1913~1975)
 
금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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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에는 /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떨어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로 시작되는 시 ‘가을의 기도’로 잘 알려진 김현승 시인은 기독교 시인을 거론하는 자리에서 빠질 수 없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때로는 내면을 끝없이 더듬어 가는 세밀한 촉수로, 때로는 자연 속에 깃든 아름다움을 통해 신에 이르고자 하는 노래로, 때로는 기도하는 자세로 자신의 시세계를 열어 간 시인이다. 어릴 때부터 기독교적인 환경 속에서 자라난 그는 언제나 신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생각하는 시인이었다.

그의 시는 문학사의 중요한 하나의 페이지를 장식하면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진 못했다. 물론 〈눈물〉이나 〈가을의 기도〉와 같이 많이 알려진 작품들이 몇 편 있기는 하나 대부분의 작품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시가 지닌 난해함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사실 그의 시는 일반적인 시처럼 다양한 이미지들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쉽게 접근하기 힘든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그의 시가 외부 세계에 대한 묘사보다는 내면적인 정신의 세계를 지향함으로써 지니게 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주시다/

‘꽃’과 ‘열매’의 상관관계를 ‘웃음’과 ‘눈물’의 상관관계와 대비시키고 있는 이 시는 눈물이라는 물질적이고 외적인 사물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물들 너머에 존재하는 시인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꽃’이 시들 수밖에 없는 순간적인 것이라면 ‘열매’는 흠도 티도 없는 영원성을 지닌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눈물’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눈물에의 집착은 인간 내면의 정신적인 세계에 대한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표피적인 웃음이 아니라 인간 내면을 강하게 물들이는 정신적인 세계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접근인 것이다.

이 시는 자식을 잃은 슬픔을 표현하고 있는데, 슬픔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냉정하게 절제된 감정과 심오한 신앙적 경건성을 느낄 수 있다. ‘눈물’을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 곧 영원성의 지향과 자아의 내면 세계에 대한 지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절제는 자아의 내면 세계에 대한 철저한 탐색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고독’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1960년대 이후 그의 시를 지배하는 핵심적인 이미지는 바로 ‘고독’이다. 고독에는 두 가지의 모습이 있을 수 있다. 외부적인 사물들과의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사회적 고독이 하나라면, 내면적인 절대성의 인식에서 오는 존재론적 고독이 다른 하나일 것이다.

그의 시가 초기부터 보여 준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인 정신 세계에의 지향은 이 ‘고독’이라는 것마저도 일체의 외부 사물들과의 단절을 말하는 일상적인 차원의 고독이라기보다는 신 앞에 선 인간이 절대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내면적인 고독의 모습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의 시집 제목이 「견고한 고독」, 「절대 고독」의 이름을 달고 있는 데서 그가 얼마나 ‘고독’의 세계를 지향했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960년대의 그의 시에 나타나는 ‘고독’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신을 잃은 고독’이라는 측면을 강하게 지닌다.


거기서
나는
옷을 벗는다.

모든 황혼이 다시는
나를 물들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끝나면서
나의 처음까지도 알게 된다.

신은 무한히 넘치어
내 작은 눈에는 들일 수 없고,
나는 너무 작아서
신의 눈엔 끝내 보이지 않았다.

- 고독의 끝


무한한 신과 너무 작은 자아의 대립 속에서 발견하는 ‘신이 없는 고독’은 신앙적인 회의에 찬 극단적인 모습이면서 자아의 내면 세계에서 부딪히는 고독의 절대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사회적인 관계가 아니라 신과의 내면적인 관계에서 존재의 본질을 찾아 온 시인에게 그 신과의 관계 부정은 존재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시작된 이러한 고독의 모습은 시 속에서 메마른 가지나 겨울의 이미지, 까마귀의 이미지 등을 통해 다양하게 표현된다. 잎이 다 져버린 겨울 나무나 주검과 같은 까마귀의 세계를 통해 생명력이 사라져버린 자아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아침상 위에
빵이 한 덩이,
물 한 잔.
가난으로도
나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신 주여.

겨울의 마른 잎새
한 끝을,
당신의 가지 위에 남겨 두신
주여.

주여,
이 맑은 아침
내 마른 떡 위에 손을 얹으시는
고요한 햇살이시여.

- 아침 식사


생명력이 고갈되어 메말라 가는 ‘겨울의 마른 잎새’ 한 끝이 ‘당신의 가지 위엷 닿아 있기에 시인은 오히려 빵 한 덩이, 물 한 잔의 가난에도 감사할 수 있다. 그것은 고독의 세계 속에서 주어지는 신의 은총에 대한 새로운 확신이라고 할 것이다. 절대고독의 지경에서 만나는 신의 은총 앞에 시인은 조용히 무릎 꿇는 것이다.

김현승의 시속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은 신앙의 세계를 말하면서도 그것이 단순한 찬양의 모습으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내면적인 절대고독 속에 나타나는 신앙에 대한 회의는 신 앞에 선 인간들의 자연스런 모습일 수도 있다. 이러한 회의를 거쳐 도달하는 신앙은 그만큼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기독교적인 신앙시가 지녀야 할 미덕 중의 하나를 여기서 발견한다.

단순한 찬양을 넘어서 인간적인 회의와 갈등의 모습까지 진솔하게 담아낼 때,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더 깊은 믿음의 경지를 열어 갈 때, 그 시를 읽는 독자들은 더욱 깊은 공감과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금동철님은 경북 청도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인문대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문학 박사)을 졸업했다. 1995년 시 월간지 「현대시」로 등단했으며, 저서에는 평론집인 「구원의 시학」이 있다. 현재 문학평론가이며, 서울대, 아주대, 경원대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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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3/29 [19:3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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