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공학섭 목사의 생태칼럼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공학섭 생태칼럼] 넝쿨, 나무에 그림을 그리다
공학섭목사(순천대대교회 담임, 수필가)
 
공학섭   기사입력  2023/09/12 [13:28]

가까운 야산 자드락길을 산책했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산책의 콘셉트는 나무를 타고 기어오르는 넝쿨이다. 산책길 좌우에 있는 나무들의 등을 타고 오르는 넝쿨들을 보니 지루할 틈이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무를 골똘히 들여다보는 나를 어떻게 여겼을까? 고상한 식물학자로 여겼을 수도 있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흘려보내는 새알꼽재기 중의 하나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여러 사람들이 지나가면서도 아무도 묻는 사람이 없으니 답해줄 일도 없다. 

▲ 넝쿨이 나무 등에 올라 멋진 그림을 그려낸다  © 공학섭


나무의 넝쿨은 오늘 처음 보는 것이 아닌데 넝쿨들의 뻗어 오르는 모양이 참 예쁘기 그지없다. 그리고 비슷하면서도 같은 모양은 하나도 없다. 각기 모습은 달라도 한 사람의 작품처럼 느껴지는 바가 있다. 마치 한 사람이 여러 그림을 그려내도 고유의 풍이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작품마다 공통점도 있다. 큰 나무에 작은 넝쿨들이어서 여백의 미가 있다는 점이다. 넝쿨의 더듬이 속에 예술의 혼이 있는 것처럼 퀄리티가 있는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한 점 한 점이 산드러진 작품이고 맵자한 예술이다. 미운 그림은 한 점도 없다.

 

넝쿨에 자신의 몸을 내준 나무도 한몫하고 있다. 넝쿨은 등을 타고 오르는 힘이 차고 넘치지만, 기댈 언덕이 없으면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것이고 시들부들 형편이 없을 것이다. 한 마디로 넝쿨 그림은 나무와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큰 나무 등을 캔버스 삼가 여백의 미를 살린 그림을 그려내다   © 공학섭


꽃이 아름다워도 꽃을 받쳐주는 잎사귀 없이 홀로 아름다울 수 없다. 잎사귀는 꽃의 화려함에 가려 눈에 띄지 않지만, 잎사귀가 없이는 꽃도 없다. 넝쿨도 나무 없이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나의 주변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중에 큰 힘이 되어 주는 이들이 있다. 부모의 희생, 아내의 내조, 스승의 가르침, 선후배들의 협력들이 한데 어우러지고 녹아져서 한 사람의 생애가 꽃피우게 된다. 

  © 공학섭


무엇보다도 나의 인생에 그리스도가 더해지지 않으면 꽝이다. 나무 없이는 땅바닥에 주저앉게 될 넝쿨처럼 예수님 없이는 죄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고 지옥의 수렁에서 헤어날 수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댈 때 우리는 하늘나라까지 비상할 수 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23/09/12 [13:28]   ⓒ newspower
 

le

ri

연재소개

전체목록

연재이미지
한평우 목사는 1982년 로마한인교회를 부임하여 지금까지 목회하고 있으며, 1993년 유럽목회연구원을 설립하여 선교사와 목회자들의 영적 재충전을 돕고 있다.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