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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7.17 [02:01]
하늘과 바람과 별의 노래
윤동주의 시 세계(1917∼1945)
 
금동철

우리의 근대사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 간 한 고독한 시인으로서 우리는 윤동주를 기억한다. 이 땅에서 뿌리뽑힌 자들이 힘겹게 삶의 터전을 만들어 조국을 꿈꾸며 살아가던 만주에서 태어나, 평양 숭실중학교와 서울의 연희전문에서 공부하고, 동경에서 유학하다가 해방되기 직전에 사상범으로 투옥되어 옥사한 시인. 윤동주의 이 같은 일생은 당시의 양심적인 한국 지식인들이 걸어갈 수밖에 없는 길을 선연하게 보여 주었다는 데서 무척이나 의미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윤동주의 시를 다시 생각해 보고 싶은 이유는 단지 이러한 그의 인생 역정이 지니는 민족사적인 의미를 되새기고 싶어서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시가 한 시대의 요구에 어떠한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으며, 특히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진 시인일 경우에 그것이 어떠한 방식이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이다. 우리 신문화 초창기인 1900년대에 벌써 기독교에 입교하여 교회의 장로가 된 조부의 영향으로, 태어나자마자 유아세례까지 받았던 윤동주라는 한 시인의 삶의 역정과 시세계는 그래서 매우 의미 있는 것이다.

사실 윤동주의 시에서 기독교적인 색깔을 찾기는 쉽지가 않다. 표면적으로 볼 때 그의 대부분의 시들은 기독교적인 세계와는 무관하게 쓰여진 단어와 문장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에는 기독교적인 세계 인식 태도가 진하게 묻어 있다. 그의 시세계의 깊은 차원에서는 진한 신앙의 자취가 배어 있는 것이다. 단어나 문장이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고 인식하며 그 세계에 대한 대응 방식에서 기독교적인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것이다. 윤동주의 시는 기독교 시의 중요한 방향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윤동주 시에서 나타나는 기독교적인 의식의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속죄양 의식이다. 속죄양이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올리던 제사 의식에 사용되는 양을 말한다. 죄를 지은 인간이 치뤄야 할 죄값을 대신 짊어지고 제단에 올려지던 양이 바로 속죄양이며, 가장 지고의 형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속죄양 의식에 ‘십자갗의 이미지가 따라오는 것은 당연하다. 윤동주는 힘든 시대를 살아내는 민족의 고통을 대신 지고자 하는 의식을 ‘십자갗라는 시를 통해 내보인다. 이 시는 기독교적인 이미지를 직접 사용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시 중의 하나이며, 시인 자신의 세계 인식 태도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윤동주의 시를 이육사의 시와 함께 일제 말기의 대표적인 저항시로 꼽는다. 그런데 윤동주의 시에서는 이러한 저항적인 모습이 상당히 우회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적이다. 물론 윤동주 또한 당대의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민족의 고통을 대신 짐 지고자 하는 기독 지식인의 모습을 윤동주 시인은 보여 준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바로 속죄양 의식이며, 이는 그의 시에서 ‘십자갗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위의 시에서 십자가는 두 가지의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기독교적인 구원의 십자가라는 전통적인 상징이라면, 다른 하나는 윤동주 스스로 짊어지고자 하는 ‘역사의 짐’이라는 개인적인 상징이다. 우연히 햇빛을 따라가다가 바라보게 된 십자가를 매개로 하여,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희생 제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자신의 삶 속에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의 고통을 대신 지겠다는 속죄양 의식은 윤동주 시의 특징적인 세계관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의식의 저변에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에다, 숭실중학교에 다니다가 신사참배를 반대하기도 했던 그의 신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신앙은 〈서시〉나 〈별 헤는 밤〉 등에서 천상적 존재인 별에 대한 강한 지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해방 후에야 간행될 수 있었던 그의 유고시집 제목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데서도 이러한 천상적 질서에 대한 강한 애착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지향을 그는 〈서시〉에 그대로 담고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그는 정결한 삶을 살고자 하는 자아에게 끊임없이 불어닥치는 시대의 오욕을 ‘잎새에 이는 바람’으로 묘사하고, 이것을 넘어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지니고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하고자 한다. 당시의 상황 속에서 ‘모든 죽어 가는 것’이란 당시의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일 수밖에 없다면, 이를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민족에 대한 강한 애착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러한 사랑이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하늘의 질서를 이 땅에 가져오겠다는 신앙적인 세계관이 내밀하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그는 이 땅의 존재에 대한 애착이 아니라 천상적 질서를 소망하는 종교적인 비약을 갈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천상적 질서인 별에 대한 애착은 ‘별헤는 밤’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기독교 시를 논제로 삼을 때 윤동주의 시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의 시에 나타나는 신앙의 내밀함에 있다. 기독교적인 어휘를 사용하지 않고도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무리없이 녹여내고 있는 그의 시는 신앙시의 한 중요한 전범(典範)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제 새벽이 오면 / 나팔 소리 들려 올 게외다.’(‘새벽이 올 때까지’)와 같이 부활 신앙을 암시하는 구절을 사용하기도 하고, ‘가자 가자 / 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 백골 몰래 /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또 다른 고향’)에서처럼 또 다른 고향, 즉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시에 기독교 신앙이 내면화되어 나타난다는 것은 시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시인의 신앙이 직접적이고 관념적으로 노출된 경우보다 문학적인 깊이를 달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다 넓은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동주의 시가 우리 민족 누구나 누리는 노래의 하나가 된 이유도 이러한 그의 시가 달성한 문예 미학적인 성공에 있다고 하겠다.

윤동주의 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기독교인의 삶에도 매우 중요한 시사를 던져 준다. 한 시대의 아픔으로부터 눈돌리고 자신만의 삶 속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나가는 신앙인의 자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동주의 시는 지나치게 개인주의화 되어버린 오늘날의 우리들을 일깨우는 또 하나의 작은 소리인지도 모른다.


금동철님은 경북 청도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인문대 국어국문학과의 동대학원(문학박사)를 졸업했다. 1995년 시 월간지 「현대시」로 등단했으며, 저서에는 평론집인 「구원의 시학」이 있다. 현재 문학평론가이며, 서울대, 아주대, 경원대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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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3/22 [10:5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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