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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섭 생태칼럼] 화분 속 화초들은 행복할까?
공학섭목사(순천대대교회 담임, 수필가)
 
공학섭   기사입력  2023/09/07 [08:05]

 

집안에서 화초를 기르는 일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고 실내 오염물질들을 정화해 주고 습도조절까지 해준다. 아이들에게 생태교육 자료가 되기도 한다. 사람의 편에서는 여러모로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화분에서 자라는 식물은 과연 행복할까? 식물은 자라면서 점차 공간이 좁아진다. 분갈이를 해주지 않으면 뿌리가 엉키고 공처럼 뭉친다. 분재로 키울 것이 아니면 큰 화분으로 옮겨주어야 잘 자란다. 

▲ 화분이 큰 편이나 그래도 나무에게 불편하여 가지치지를 해줌   © 공학섭


나무는 감정이 없다. 하지만 식물의 뿌리는 장벽을 만나면 성장 속도를 늦추거나 멈춘다. 화분 속에 갇힌 나무의 뿌리는 4분의 3이 바깥쪽 공간으로 몰린다. 마치 틈만 있으면 화분 밖으로 도망치려는 태세다.

 

화분의 크기를 두 배로 늘려 주면 식물의 무게도 거의 두 배로 커진다. 대부분 가정에서 키우는 화분의 크기는 식물에 비하여 터무니없이 적다. 머지않아 식물복지라는 용어가 도입될지 모를 일이다. 

▲ 겉은 화려하지만 좁은 공간 속에서 뿌리의 엉김이 심하다  © 공학섭


어항 속에 사는 고기들은 어떨까? 잡아먹힐 위험이 없는 공간이니 행복할까? 미국의 생태학자는 어항 속에 있는 관상어를 연구한 결과 가정에 보급된 어항의 크기로는 물고기의 스트레스를 방지할 수 없다고 했다.

 

수조가 좁을수록 먹이를 차지하고 새끼를 지키느라 사나워진다. 넓은 호수에서는 마음껏 헤엄치고 숨느라 싸울 틈이 없다. 좁을수록 공격적인 고기들만 먹이를 차지하고, 힘이 없는 고기는 부상을 당하고 스트레스로 병에 걸려 죽는다. 

▲ 관상용 고추인데 넓은 화분으로 옮길 계획이다  © 공학섭


애견이나 고양이들을 집안에서 살게 함도 같은 맥락으로 고민해야 한다. 집 밖으로 내보라고 하면 펄쩍 뛰는 분들이 많겠지만, 야생 기질이 있는 동물을 한정된 공간에 살게 하면 과연 행복할까 반문해 봐야 한다.

효자 아들이 어머니를 아파트로 모셔 옴을 후회했다. 노모는 밭에 나가서 식물을 가꿀 때 자유로운 영혼이었는데 아파트에 모신 후부터 치매가 오고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기 때문이다. 농사꾼은 흙을 만지며 살아야 행복하다.

▲ 좁은 공간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넝쿨식물  © 공학섭


진정한 사랑이란 내가 좋을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애견들의 마음, 나무의 입장, 고기의 처지를 마음을 품고 돌봐주는 것이 자연을 바르게 사랑하는 방법이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우리를 사랑하실 때 죄를 지은 사람의 모양이 되셨다. 사람의 육체를 가져보지 않고는 인간의 죄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입장에서 사랑을 주셨기에 감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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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9/07 [08:05]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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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목사는 1982년 로마한인교회를 부임하여 지금까지 목회하고 있으며, 1993년 유럽목회연구원을 설립하여 선교사와 목회자들의 영적 재충전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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