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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9.16 [18:02]
부활과 생명의 노래
- 박두진의 시 세계(1916∼1998) -
 
금동철

박두진의 시에는 사람을 잡아끄는 강한 힘이 흐른다. 남성적이면서도 웅장하며 생동감 넘치는 언어들을 통해 표출되는 이러한 힘을 이해하는 것은 박두진 시의 시적 근원을 이해하는 길이 될 것이다.

박두진이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 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할 수 있는 1930년대 후반이다. 제국주의 일본에 의한 조선 침탈이 가장 극대화되어 있던 그 시기에 시인은 자신의 시 속에 넘치는 기쁨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기쁨은 현실 이해에 맹목적이거나 현실 순응주의적인 처세술 때문에 지니게 되는 기쁨과는 전혀 다르다. 그에게 현실 자체는 마찬가지로 고통스럽고 힘겹기는 하지만, 현실을 초극하여 존재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소망이 그의 시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 이 기쁨의 세계는 한마디로 말해서 생명의 힘이 살아 있는 세계이다. 그에게 있어서 생명은 죽음의 공간마저 따뜻하고 포근한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 힘을 지닌 존재인 것이다.

북망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만 무덤들 외롭지 않으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읫 내도 풍기리
살아서 설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군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묘지송-

슬프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상황이 오히려 향기로움이 되는 자리, 살아 있음이 오히려 서러움이 되고 죽음이 서럽지 않음이 되는 자리에 시인은 서 있는 것이다. 이는 시인이 살고 있는 현실 공간이 생명이 사라져 버린 비생명적인 공간이며 이에 비해 죽음의 공간이 오히려 생명이 가득한 공간이라는 역설을 내포하고 있다. 무덤이 어둡고 고통스런 공간이 아니라 할미꽃이 피고 멧새들이 울며 포근한 봄볕이 내리 비치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현실로부터 분리되어 버린 죽음 이후의 공간이 오히려 더욱 밝고 환한 공간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부활 신앙을 만난다. 그의 시에서 죽음은 단순한 생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무덤 속 화안히 비춰줄 그런 태양”은 그러므로 생명이 죽음을 이기고 새롭게 부활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존재에 의해 어둡고 칙칙한 무덤이 오히려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박두진 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이러한 부활의 이미지는 전통적인 자연의 모습을 기독교적인 낙원의 세계로 바꿔 놓는다.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보리라(「해」 중에서)나, 핏내를 잊은 여우 이리 등속이, 사슴 토끼와 더불어 싸릿순 칡순을 찾아 함께 즐거이 뛰는 날을, 믿고 길이 기다려도 좋으랴?(「향현」 중에서)와 같은 데서 나타나는 자연은 결코 전통적인 자연이 아니다.

전통적인 자연이 안빈낙도하는 자족적인 자연이라면, 박두진의 시에 나타나는 자연은 기독교적인 의미로 바뀐 자연이라고 할 것이다. 꽃과 새와 짐승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함께 기뻐하는 자리, 여우와 이리와 같은 육식성 동물들이 사슴이나 토끼처럼 초식성으로 바뀌어 함께 뛰노는 자리는 이사야서 11장에 묘사된 낙원의 모습과 흡사한 것이다.

여기에 그의 생명의식이 지닌 독특함이 있다. 동양적인 사유구조 속에서 자연이 지닌 생명력은 생명 그 자체에 내재한 어떤 법칙 이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생명 그 자체에 내재한 어떤 원리일 뿐 생명 너머에 존재하는 더 깊은 근원을 지칭하는 기호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박두진의 시에서 자연은 그 생명력을 자연 자체의 법칙이나 원리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자연 너머에 존재하는 신으로부터 얻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부활의 신앙에 그 힘의 근원을 두는 것이다. 이러한 자리에 존재하는 자연이기에 관조적이고 동양적인  자연보다 훨씬 더 역동적인 존재가 되어 죽음을 이기는 강한 힘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생명의 본질 혹은 근원으로서의 하나님을 인식한 자리에서 출발하는 박두진의 시세계는 그러므로 고통과 어려움 등 생명을 파괴하고 억누르는 힘들을 극복하고 자연 너머에 존재하는 부활의 세계에까지 그 촉수가 닿아 있다. 이처럼 그의 시에서 부활의 의미가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한다면 이 부활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나 그 의미에 대한 인식이 자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입각해서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이러한 존재를 그는 「갈보리의 노레에서 노래한다.

마지막 내려 덮는 바위 같은 어둠을 어떻게 당신은 버틸 수가 있었는가? 뜨물 같은 치욕을, 불붙는 분노를, 에어내는 비애를, 물새 같은 고독을, 어떻게 당신은 견딜 수가 있었는가? 꽝꽝 쳐 못을 박고, 창끝으로 겨누고, 채찍질해 때리고, 입맞추어 배반하고, 매어 달아 죽이려는, 어떻게 그 원수들을 사랑할 수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강할 수 있었는가? 파도같이 밀려오는 승리에의 욕망을 어떻게 당신은 버릴 수가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패할 수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약할 수가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이길 수가 있었는가? 방울방울 땅에 젖는 스스로의 혈적으로, 어떻게 만민들이 살아날 줄 알았는가? 어떻게 스스로가 신인 줄 믿었는가? 커다랗게 벌리어진 당신의 두 팔에 누구나 달려들어 안길 줄을 알았는가? 엘리… 엘리… 엘리… 엘리… 스스로의 목숨을 스스로가 매어 달아, 어떻게 당신은 죽을 수가 있었는가? 신이여! 어떻게 당신은 인간일 수 있었는가? 인간이여! 어떻게 당신은 신일 수가 있었는가? 아!… 방울방울 떨구어지는 핏방울은 잦는데, 바람도 죽고 없고 마리아는 우는데, 마리아는 우는데, 인자여! 인자여! 마지막 쏟아지는 폭포 같은 빛줄기를 어떻게 당신은 주체할 수 있었는가?
 -갈보리의 노래 2-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모습을 절창으로 그려낸 이 시는 그의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다.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모습 속에서 신의 사랑과 승리를 읽어내는 시인의 눈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생명이 지닌 역동성의 근원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그리스도에게로 쏟아지는 “폭포 같은 빛줄기”는 죄와 타락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을 회복시키는 본질적인 힘인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그렇게 벌린 팔에 “누구나 달려들어 안길” 수 있기에, 생명은 “빛줄기”의 축복을 통해 죄와 사망의 힘을 벗어나 역동적인 삶의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박두진은 이 땅의 부패하고 타락한 세태에 대한 선지자적 비판을 보여 주기도 한다. 「거미와 성좌」나 「인간 밀림」과 같은 시집들에 실린 시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세계 또한 그의 부활의식의 또 다른 변주라고 할 수 있다. 박두진의 시를 읽는 기쁨은 생명의 역동성에서 온다. 박두진 시의 생명의식은 그 근원을 부활 신앙에 두고 있으며, 이것이 그의 시를 더욱 생동감 넘치고 절실한 것으로 만드는 힘이 된다. 이러한 그의 시세계에서 기독교시가 서 있어야 할 또 하나의 위치를 찾게 된다.

금동철 님은 경북 청도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인문대 국어국문학과의 동대학원(문학박사)를 졸업했다. 1995년 시 월간지 「현대시」로 등단했으며, 저서에는 평론집인 「구원의 시학」이 있다. 현재 문학평론가이며, 서울대, 아주대, 경원대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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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3/10 [17:26]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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