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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9.23 [04:02]
<영화평>'자기희생' 기독교의 영원한 가치
콘스탄틴, 기독교 관점으로 엿보기
 
정원철

“나는 콘스탄틴이다. *자식아~”

여느 액션영화와 마찬가지로 핸섬한 얼굴에 의기양양한 발검음, 거기다 담배 한 개피를 피어물며 의당 문제의 해결사로 나서는 콘스탄틴(키아누 리버스 분)이 악령들 앞에서 던지는 선전포고의 대사다.

   
▲ 콘스탄틴 역의 키아누 리브스는 영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해결사의 역할로 나온다.

영화의 사전 홍보가 워낙 매트릭스의 후광을 많이 입은 터라 뭇모르던 필자는 이 영화가 매트릭스의 또다른 속편인가 하고 속아넘어 갔었다. 그러다 지인(知人)으로부터 “기독교 색채가 강한 영화”라는 말에 선뜻 영화를 골라 감상하게 됐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같은 남자지만 호감을 많이 느끼는 키아누 리브스가 이번엔 또 어떤 호연을 펼칠지 자뭇 기대가 됐다.

첫 장면은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콘스탄틴이 이번에는 가죽 자켓이 아닌 검은색 롱코트에 정장차림을 하고 나타나서 악령을 멋지게 제압해 버린다. 무표정한 카리스마를 지녔으면서도 차갑거나 거칠어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은 강인한 남성적 이미지와 애틋한 로맨스의 남자 캐릭터의 이중적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세월이 흘러서일까? 사실 고등학교 시절 ‘스피드’로 그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근육질의 단단한 이미지와 지금의 그는 사실 많이 비교가 된다. 그의 작품들 또한 액션과 로맨스를 넘나들기에 한국 배우를 굳이 들자면 장동건 타입이라고 할까? 강인하면서도 내적인 부드러움을 묻어내는 캐릭터가 정말 닮았다.

콘스탄틴은 다름 아닌 기독교를 박해하다 끝내 수용하고 전쟁을 통해 회심했다는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의 이름에서 딴 것. 제목부터가 기독교적 뉘앙스가 강하다. 영화의 주인공 콘스탄틴 또한 처음 무신론자로 나오지만 악령들과의 싸움을 통해 진정한 자기희생과 구원의 의미를 깨달아가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 안의 선한 본성 또한 되찾게 된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기독교의 선악의 대칭구도를 그대로 닮다. 천사 가브리엘과 사탄 루시퍼의 대결이 그렇고 키아누 리브스의 상대역인 레이첼 와이즈(안젤라 역)와 사탄의 아들 마몬(부(富)를 뜻한다고 한다)의 대립 또한 그렇다. 영화에서는 또 예수를 찔러 죽게 만든 숙명의 창(흔히 ‘롱기누스 창’이라 불린다)이 이번에는 사탄의 아들에게 생명을 주는 매개체로 등장한다. 예수를 살인한 도구가 사탄의 아들을 탄생시킨다는 설정은 그럴싸하나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숙명의 창에 묻은 예수의 피는 어찌 처리했단 말인가? 이것이 좀 아이러니하다.

   
▲ 여주인공은 레이첼 와이즈로 쌍둥이 언니의 죽음을 경험하는 여경찰 역할을 맡았다.
매트릭스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했던 네오가 구원자 ‘예수’를 비춰줬듯이 콘스탄틴 또한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이것이 지나쳐 영계를 자유로이 넘나들고 영계를 좌지우지하는 신격화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결국 세상을 구원하는 역할을 보여 줬다. 영화의 클라이막스 부분은 루시퍼의 등장과 그로 인한 콘스탄틴의 죽음 그리고 부활(?) 장면인거 같다.

콘스탄틴은 가브리엘에 의해 마몬이 처리되려는 순간 의도적으로 악의 사자인 루시퍼를 부르기 위해 자살을 택한다. 자기의 죄로 인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지만 가브리엘의 존재를 누설함으로서 새롭게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지만 자신의 목숨 대신 “안젤라의 쌍둥이 언니를 천국으로 보내 달라”는 자기 희생의 부탁을 한다. 그러자 세상에 광명이 비취고 잠시 하나님의 현현이 비친다(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위엄이었다) 드디어 정작 천사와 악마와 대면하면서도 신의 존재를 거부하던 콘스탄틴 그가 ‘자기 희생’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진정한 구원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이 '자기 희생‘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믿음 없던 무신론자가 드디어 구원의 가치를 실현하게 된다는 것이다(영화적 장치가 주인공이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에 이른다는 보편적인 정로를 따른다면 얼마나 좋으려마는).

그리고 영화 또한 콘스탄틴을 거저 순순히 천국으로 보내주진 않는다. 천국행을 못마땅해 하는 루시퍼로 인해 다시금 생명을 연장받는 콘스탄틴, 다시금 죄악을 쌓으며 살아가게 되나 싶지만 “콘스탄틴, 네 속에 선한 본성이 살아나고 있어!”라고 기뻐 외치는 가브리엘의 말이 앞으로의 콘스탄틴의 선한 행보를 예상케 했다.

필자는 영화의 끝이 주인공의 해피엔딩으로 이뤄진 것에 대해 안도의 기쁨을 누렸고 속편에 대한 기대감도 가지게 되어 오랜만에 좋은 느낌을 가져본다. 그리고 콘스탄틴이 기독교 영화는 아니지만 이렇듯 기독교적 색채를 드러내고 있어서 기독교적 안목으로 즐겁게 볼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참으로 감사하다.

그러면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 속에서 양자택일의 기로 속에 설 때가 많은 우리들이 분명한 가르침 속에서 한쪽 편에 서서 살아가든지, 아님 콘스탄틴처럼 애써 신의 존재를 거부하며 살던 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를 생각했다. 하나님은 구원에 있어 중도는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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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2/11 [20:04]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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