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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14 [20:01]
중세의 뉴 패러다임, 종교개혁
종교개혁사 1
 
김의환

영어로 종교개혁을 ‘reformation’이라고 한다. ‘개조’(改造, reform)의 뜻을 갖는다는 점에서 ‘혁명’(革命, revolution)과는 다르다. 가톨릭 교회의 잘못을 고쳐서 신약 교회의 원형으로 개조하려는 운동이었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95개 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wittenberg)의 교회 정문에 게시할 때 종교개혁의 결정적 계기가 이루어졌으나, 개혁운동은 훨씬 그 이전부터 일어나고 있었다. 루터의 이러한 단일 사건은 유럽에 이미 일고 있던 개혁의 기운(氣運)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16세기의 종교개혁은 루터만의 운동은 아니었다. 루터 이전에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깨닫고, 그 운동의 터를 닦은 사람들이 있었다. 종교개혁 이전의 개혁자들은 다만 때가 성숙하지 아니했을 때 태어나 움직였을 뿐이다.


 이런 사람들 중에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위클리프(john wyclliffe)나 후스(johannes huss)는 사상적인 개혁자들이었고,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같은 이는 도덕적인 개혁자였으며, 버나드(bernard of siena)나 타울러(johannes tauler),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같은 이들은 신비적인 개혁자들이었다. 이들에 의하여 닦아진 종교개혁은 성경의 절대 권위, 이신득의(以信得義)의 교리, 모든 신자의 제사장직을 기본 원리로 하여 가톨릭 교회의 변화를 촉구하였다.
 루터와 칼빈은 이러한 운동을 보다 더 효과적이고 광범위하게 전개했을 뿐이다. 루터와 칼빈은 보다 더 준비된 시대에 태어나 개혁의 사명을 완수하였다. 일반적으로 종교개혁을 준비시킨 요인(要因)으로 세 가지를 말한다.

도덕적 요인 :  속죄권 판매의 성행

 만일 루터가 속죄권 판매를 정당시 한 테첼(tetzel)과의 대결이 없었다면 종교개혁은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교회가 신령한 축복을 돈 받고 파는, 즉 장사처럼 하면서도 그것을 합리화시키려 하자 루터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속죄권 판매 외에도 성직매매(聖職賣買)가 성행하였다. 게다가 신부(神父)들의 독신 생활이 해이해져 그들의 문란한 도덕 생활이 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이러한 도덕적 타락은 일부 주교(主敎)들이 교회 개혁을 교황 바울 3세에게 정식으로 건의하기에 이르기까지 했다.

지적 요인 :  르네상스 운동과 인쇄술의 발명

 르네상스는 유럽의 지적인 생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 왔다. 고대 문학에로의 복귀, 개인주의적 각성, 지리상의 발견에 따른 동서 문화의 교류, 봉건 제도의 붕괴와 뒤이은 상업 인구의 격증, 스콜라 철학의 퇴조와 함께 등장한 우인론(偶因論, occasionalism; 인간 행동을 인간의 자유의지보다 신의 의지의 작용이라고 보는 사상)의 득세 등 이 모든 것들이 중세의 사상적 기초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북유럽에서는 인본주의가 대학가를 휩쓸었다. 파리대학은 헬라 연구의 센터가 되었고, 비엔나, 하이델베르크, 에르푸르트대학들은 새로운 학문의 전당들이 되었다. 르네상스에 뒤따른 새로운 학구열은 교부신학과 성서 원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 연구에 불을 지피고 종교개혁의 사상적 배경을 제공해 주었다.

 중세의 긴 지적인 통제(統制)는 성서적 인문주의의 세찬 도전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르네상스 정신과 종교개혁이 그토록 폭발적으로 유럽 전역에 퍼질 수 있었던 것에는 종교개혁 직전에 발명된 인쇄술의 영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인쇄술은 개신교 운동과 르네상스로 대변되는 현대 문화를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고 할 수 있다. 인쇄술 발명이야말로 신학문의 결실을 가능케 했고, 그것을 대중화시키는 촉매가 된 것이다.

 종교개혁 이전에 발간된 책들은 대체로 라틴어로 기록되었으며, 육중하고 값비싼 2절판과 4절판으로 제작되어 한정적으로 보급되었다. 과거에는 책을 필사(筆寫)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책의 가격은 상당히 고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신구약 성경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였다. 성경책이 귀했기 때문에 도서관에 있는 사본들은 도둑 맞지 않도록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며, 사제 중에는 성경을 한 번도 읽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인쇄술의 등장으로 루터의 독일어역(譯) 성경을 비롯하여 각기 자국어 성경이 값싸게 출간되었을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의 사상을 담은 각종 서적이 널리 보급될 수 있게 되었다. 종교개혁의 시작에 있어서도 인쇄술의 영향이 아니었다면 ‘95개 조 반박문’의 반향이 그토록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로 르네상스와 인쇄술의 발명이야말로 종교개혁을 성공시킨 요인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회적 요인 :  봉건 사회와 붕괴와 상업 경제 발달

 십자군 운동 이후 봉건 사회가 점차 무너지고, 상업의 발달로 인해 농업 경제가 상업 경제로 옮겨지는 과도기에서 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나타났다. 국가주의의 등장으로 스페인과 프랑스에서는 교회가 국가의 지배 아래 들어오게 되고, 교황청의 아비뇽 유수(avignonese captivity; 1309∼1377년까지 로마 교황청을 프랑스 아비뇽으로 이전한 사건. 이로 인해 교황권은 잠시 동안 프랑스 군주들의 세력에 지배 받았다.)로 인한 교황 위신의 실추는 교회 개혁을 부채질하였다.

 더구나 교회가 부과하는 세금과 교황청의 사치는 백성들의 원망을 사게 했고, 드디어 루터가 개혁의 봉화를 들자 독일의 농민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봉기하여 전국적으로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십자군 운동의 결과로 동방의 사치품이 수입되어, 서방 사회는 사치풍조에 휩쓸리게 되었다. 또한 사제주의(司祭主義)의 횡포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가 단절된 무리들은 영적인 해갈을 위하여 현실 도피의 신비주의에 쏠리게 되었다.

 이렇듯 교회와 백성 사이에 생긴 괴리를 잇는 새로운 개혁의 가교(架橋)는 누군가에 의해서 놓여져야만 했다. 그 가교가 바로 루터의 종교개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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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12/23 [09:55]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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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개
간추린 교회사
연재이미지1
사회참여로 이어진 청교도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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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 개혁을 추구한 청교도 경건운동
청교도운동, 지펴진 개혁의 불씨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
V. 루터의 종교개혁, 그 업적과 확장
IV. 종교개혁의 불이 타오르다
III.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핀 속죄권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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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뉴 패러다임,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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