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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9.23 [19:18]
하늘과 나무의 미학
- 정지용(1902~?)의 시 세계 -
 
금동철

우리 근대사의 아픔을 죽은 후에까지 뼈저리게 체험한 인물 중의 하나가 정지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지용 시인은 우리 문학사에서 1930년대 모더니즘의 중심에 서 있다가 1930년대 말 「문장」이라는 잡지를 통해, 전통적인 자연시의 세계를 보여주는 시인으로 평가받는 등 1920~30년대 한국 시사(詩史)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의든 타의든 한국전쟁 당시에 북쪽으로 넘어감으로써 1980년대 말 해금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인 중의 하나였다.
 
그동안 그의 시 세계는 일반인들에게 ‘향수’나 ‘유리창’ ‘고향’ 같은 초기 모더니즘의 세계와, ‘장수산’이나 ‘백록담’, ‘조찬’ 등과 같은 후기 자연시의 세계가 주로 알려져 왔다. 이런 면은 문학 전공자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그의 시세계는 이 두 측면에서만 주로 논의되어 왔다. 우리 문학사에서 정지용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그가 초기에 시도했던 모더니즘시는 우리 문학을 현대문학으로 본격적으로 진입할 수 있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후기시에 나타나는 문장파적인 세계는 전통 서정성이 우리 시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고, 그것은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가 중기에 시도했던 가톨리시즘에 바탕을 둔 기독교시의 경우에는 시인이 잠시 시선을 기독교적인 세계로 돌린 경우에 불과할 뿐, 시적인 완성도에서는 그리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기존의 평가를 따른다면 그의 시는 기독교와 거의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글에서 기독교와 무관한 듯한 그의 시세계를 굳이 다루고자 하는 것은 그가 시에 대해 갖고 있던 근본 전제 때문이기도 하고, 기독교적인 관점은 그의 시세계를 지탱하는 본질적인 근원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지용의 시에서 기독교성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정지용은 1939년경에 쓴 몇 편의 시론을 통해 시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 시기는 정지용이 동양적인 전통성의 세계, 즉 자연시에 깊이 몰입해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자연을 형상화함으로써 시의 서정성을 달성하고자 하는 자세를 보여 주는 것이다.
 
伐木丁丁이랬거니 아람도리 큰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맹아리 소리 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좃지 않고 뫼ㅅ새도 울지 않어 깊은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 뜻은 한밤 이 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판에 여섯번 지고 웃고 올라 간뒤 조찰히 늙은 사나히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듸랸다 차고 올 槍焞÷ 슬픔도 꿈도 없이 長壽山 속 겨울 한밤내
- 장수산 1

 
 전통적인 자연시의 정서가 물씬 풍겨나는 이 시는 1939년에 발표된 것으로, 정지용의 후기시가 지닌 특징을 잘 드러내 준다. ‘벌목정정’이라는 말 자체가 동양 고전인 「詩經」에서 가져온 것일 뿐만 아니라, 이 시의 분위기 자체가 전통적인 자연시의 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산과 그 속에서 자연과 동화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가 은연중에 나타나는 것이다. 산의 고요와 흰 달빛, 그리고 그 속에서 걸어가는 늙은 중의 모습은 전통적인 자연시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를 쓰던 시기에(3개월 후) 발표한 ‘시의 옹호’라는 글에서는 시에 대한 기독교적인 관점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시를 ‘제2의 창조’라고 규정하면서 시가 지향해야 할 바가 바로 신의 사랑에 협동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구극에서 언어문자가 그다지 대수롭지 않다. 시는 언어의 구성이기보다는 더 정신적인 것의 열렬한 정황 속에 왕일(旺溢)한 상태 혹은 황홀한 사기임으로 시인은 항상 정신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을 조준한다.”는 글에서 나타내고 있는 바와 같이 정지용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것’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 정신적인 것의 내용이다. “정신적인 것의 가장 우위에는 학문, 교양, 취미 그러한 것보다도 ‘愛’와 ‘기도’와 ‘감사’가 거(據)한다. 그러므로 신앙이야말로 시인의 일용할 신적 양도(糧道)가 아닐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시인이 무엇을 중요시하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에게는 종교적인 세계가 그만큼 결정적이고 중요한 요소로 다가온 것을 말한다. 그는 좀 이른 시기인 1934년경부터 기독교적인 시를 많이 발표하고 있다. ‘그의 반’이라든지 ‘임종’, ‘갈릴레아 바다’, ‘또 하나 다른 태양’ 등의 시편들을 「카톨릭 청년」지에 발표하고 있는데, 그가 시론에서 밝힌 바를 여실히 잘 드러내는 것들이라고 할 것이다.
 
얼굴이 바로 푸른 하늘을 우러렀기에
발이 항시 검은 흙을 향하기로 욕되지 않도다.

곡식알이 거꾸로 떨어져도 싹은 반듯이 우로!
어느 모양으로 심기여졌더뇨? 이상스런 나무 나의 몸이여!
오오 알맞는 位置! 좋은 우아래!
나의 적은 年輪으로 이스라엘의 二千年을 헤였노라.
나의 존재는 宇宙의 한낱 焦燥한 汚點이었도다.

목마른 사슴이 샘을 찾어 입을 잠그듯이
이제 그리스도의 못박히신 발의 聖血에 이마를 적시며

오오! 新約의 太陽을 한아름 안다.
  - 나무

 
 1934년에 발표된 이 시에서 시인은 스스로를 ‘나무’로 비유하면서 자신이 서 있는 위치와 지향하고 있는 세계가 어떠한지를 보다 명확하게 보여 준다. 나무의 뿌리가 검은 흙을 향해 있다는 것은 지상의 세계에 발붙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존재의 본질적인 한계를 말한다. 이처럼 시인은 이 지상적인 세계, 죄의 세계, 욕망의 세계에 살 수 밖에 없지만, 언제나 하늘을 향해 자라가는 나무처럼 그 얼굴이 ‘푸른 하늘’을 향하고 있기에 ‘신약의 태양’을 한아름 안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시인에게는 ‘알맞은 위치’, ‘좋은 우아래’가 되는 것이다. 자신을 우주의 하나의 오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자신이 느끼는 죄의 본질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리스도로 인한 은혜를 깊이 체험하게 되는 것임을 이 시는 보여 준다.
 
그의 친구였던 박용철은 「정지용 시집」의 발문에서 ‘촉불과 손’, ‘유리창’, ‘바다1’ 등이 정지용이 카톨릭으로 개종한 이후에 지어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시편들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살펴보면 초기의 모더니즘시에서 보기 힘든 절제의 미학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초기시가 화려한 수사를 동원한 선명한 이미지의 세계라면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기독교적인 세계를 시속에 직접 노출하거나, 아니면 감정적인 절제와 수사적인 측면에서의 절제를 동시에 보여 주는 시들이 많다.
 
이러한 절제의 미학은 나중에 후기 자연시에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그만큼 그의 시에서 기독교적인 세계관은 중요한 것이었다. 이러한 측면을 생각한다면 정지용 시에서 기독교성은 새로운 의미 부여를 받아야 할 것이다.
 
금동철님은 경북 청도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인문대 국어국문학과의 동대학원(문학박사)를 졸업했다. 1995년 시 월간지 「현대시」로 등단했으며, 저서에는 평론집인 「구원의 시학」이 있다. 현재 문학평론가이며, 서울대, 아주대, 경원대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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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11/30 [19:3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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