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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9.19 [13:02]
힘겨운 일상에서 그리는 낙원에의 꿈
-박목월(1916~1978)의 시 세계-
 
금동철

오늘날 문학, 특히 시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기독교적인 관점을 지닌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물론 초보적인 수준에서 감상하는 경우에는 별 무리가 없겠지만 본격적인 이해를 위해 문학 이론들을 참조하기 시작하면 이러한 고통은 심해진다. 이는 문학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이론들이 반 기독교적인 관점을 견지하고 있고, 문학에 대한 인본주의적 해명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것이다. ‘과학적’이라는 명목으로 작품 이해에 있어서 종교성을 가능한 한 배제해 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기독교적 관점에서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을 시대착오적 발상처럼 만들어버렸다.
 
이러한 작품 이해 방법이 주는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기독교시를 기독교적 세계관이 우러난 시로 이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인 내용을 표면에 드러낸 시로만 한정하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한 시인의 시 세계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도록 만들뿐만 아니라, 기독교시와 세속시를 명확하게 구분하게 만든다. 오늘날 ‘신앙시’라는 이름으로 기독교인들조차 잘 읽지 않는 많은 시들이 쓰여지는 것도 바로 이러한 기독교 시관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관점의 정립이 필요하다. 단순히 작품 속에서 하나님이나 성경을 언급하고 있는 것에만 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한 작품 속에서 얼마만큼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녹아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그럴 때에 이 땅에 바람직한 기독교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박목월의 시세계를 통해 본 기독교 문학
 
‘박목월’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그네’나 ‘청노루’와 같은 자연시적 세계를 떠올리게 될 만큼 그의 초기 자연시는 일반인들에게 익숙하다. 이러한 익숙함이 박목월의 시는 모두 이러한 자연시만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박목월 시인으로 하여금 동양적 자연의 회복이라는 문학사적 평가를 받게 만드는 이들 초기 자연시의 세계는 사실 그의 시 전체를 놓고 볼 때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시는 1946년에 박두진, 조지훈과 함께 펴낸 시집 「청록집」과 1955년 나온 「산도화」에 실린 시에서 특징적인 것이지만, 그 이후의 시집들 속에서는 초기 자연시와는 전혀 다르게 인간적인 삶 자체에 대한 관심을 강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나중에는 그러한 삶에 대한 달관으로까지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박목월의 시 세계는 오히려 중기 이후에 더욱 정갈해지고 깊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의 관심인 기독교적인 특징 또한 이 시기에서부터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나서 후기 시에까지 그의 시를 지배하는 세계관으로 드러난다. 말년에는 「크고 부드러운 손」이라는 신앙시집을 발표할 정도로 그의 시에서 기독교는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박목월의 초기 시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은 낙원에의 환상이라고 할 것이다. 시 ‘청노루’에는 시인이 스스로 밝히고 있는 바 ‘우리 민족이 푸근하게 안식할 수 있는 어리숙한 천지’를 내세우는데, 이는 바로 시인이 꿈꾸는 낙원에의 환상이라고 하겠다. 식민지적인 삶의 고통스런 현실을 뛰어넘기 위해 전통적인 서정성을 차용하여 자연시의 모습으로 낙원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낙원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중기 시를 살펴보아야 한다. 중기에 이르러 시인의 시선은 자연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 속으로 내려오지만 낙원에의 환상은 더욱 강렬하게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시인의 눈에 비치는 생활 현실은 언제나 힘겹고 어려운 것으로 다가온다.
 
「밤차를 타면/ 아침에 내린다./ 아아 경주역// 이처럼/ 막막한 지역에서/ 하룻밤을 가면/ 그 안존하고 잔잔한/ 영혼의 나라에 이르는 것을// (중략)// 무슨 소리를./ 발에는 족가/ 손에는 쇠고랑이/ 귀양 온 영혼의/ 무서운 형벌을./ 이 자리에 앉아서/ 돌로 화하는/ 돌결마다/ 구릿빛 싯벌건 그 무늬를.」 (‘사향가’ 중에서)
 
이 시에서 말하는 ‘경주’는 물리적인 세계로서의 경주가 아니라 시인의 영혼이 쉴 수 있는 안식처로서의 낙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자리’와 ‘경주’ 사이의 대비이다. ‘이 자리’는 고통스런 인간의 시간이 지배하는 삶의 공간으로, 근대적 도시공간을 의미한다. 그 세계는 손발에 쇠고랑을 차고 형벌로서의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세계이며, 이러한 세계에서 시인은 유토피아의 공간인 ‘경주’에 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미지화된 현실은 낙원으로부터 추방당한 아담이 살아가야 했던 삶의 공간과 흡사하다. 이 현실은 언제나 고통스런 일상이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하관’에서 시인은 “이제/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으로 그리고 있는 바, 이는 고통스럽고 힘든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곧 ‘사향가’에서 말하는 형벌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힘겨운 일상에서 꿈꾸는 낙원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시인의 종교성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현실을 고통으로, 천국을 낙원으로 바라보는 이원론적인 시각에는 상당한 문제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에서 기독교적인 세계 인식 태도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이러한 낙원 이미지는 후기 시에서 삶에 대한 달관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박목월 시인이 보여주는 달관은 동양적인 세계관에서 나타나는 달관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전통적인 서정시가 보여주는 달관은 삶의 여러 가지 양상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자연 혹은 세계 속에 몰입하여 하나가 됨으로써 얻어지는 마음의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달관은 인간 내부에 존재해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확장하여 외부 사물을 포용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박목월 시가 보여 주는 달관은 외부의 힘을 빌어 얻어지는 평화라는 데서 명확하게 차이가 난다.
 
「어메야,/ 복이 따로 있나./ 뚝심 세고/ 부지런하면 사는 거지./ 하늘이 물을 대는 천수답/ 그 논의 벼이삭// (중략)// 오냐./ 내 새끼야/ 니 말이 엄첩구나./ 잘 살고 못 살고가 어딨노./ 제 길 가면 그만이지./ 수런거리는 감잎 사이로/ 별떨기 빛나는 밤하늘./ 그 하늘의 깊이」(‘천수답’ 중에서)라는 시에서처럼 시인은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 길을 가는 것’이 삶의 본질이라는 경지에 이른다. 이처럼 자본주의적인 현실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가볍게 초월할 수 있는 힘을 시인은 어디에서 얻는가.
 
그 해답은 ‘천수답’이 제공한다. 천수답은 전적으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 바라보고 농사를 짓는 논이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하늘바라기’라고 부른다고 했던가. 그만큼 그 논은 ‘하늘이 물을 대는 공간’, 즉 하늘로부터 오는 축복에 의해 살아가는 공간이다. 시인은 이러한 천수답 이미지를 통해 고통스런 현실을 가볍게 초월하여 삶을 관조하는 달관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시인의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게 하는 구절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이원론적인 삶의 태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러한 시인이기에 말년에 쓴 다음과 같은 시편이 가능해 진다. 「크고 부드러운 손이/ 내게로 뻗쳐온다./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고/ 그득한 바다가/ 내게로 밀려온다./ 인간의 종말이/ 이처럼 충만한 것임을/ 나는 미처 몰랐다./ 허무의 저편에서/ 살아나는 팔/ 치렁치렁한 성좌가 빛난다./목 언저리쯤/ 가슴 언저리쯤/ 손가락 마디 마디마다/ 그것은 보석/ 그것은/ 눈짓의 신호/ 그것은 부활의 조짐/ 하얗게 삭은/ 뼈들이 살아나서/ 바람과 빛 속에서/ 풀잎처럼 수런거린다」(‘크고 부드러운 손’ 중에서).
 
금동철님은 경북 청도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인문대 국어국문학과의 동대학원(문학박사)를 졸업했다. 1995년 시 월간지 「현대시」로 등단했으며, 저서에는 평론집인 「구원의 시학」이 있다. 현재 문학평론가이며, 서울대, 아주대, 경원대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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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11/23 [14:54]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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