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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08 [12:01]
중세 유럽의 복음전파 과정
중세 교회사 3
 
서요한

로마의 멸망과 함께 시작한 중세 교회는 초대 교회의 신앙적 바탕 위에서 발전하였다. 이 교회는 고대 문화의 정수뿐만 아니라 신앙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변모시켰다. 그런데 당시 교회가 상대해야 할 민족들은 사방으로 둘러싸인 이방 종교와 이교도들, 그리고 이단적인 아리우스파 기독교인들이었다. 이들 중 가장 위협적인 것은 아리우스파로 그리스도를 만물보다 먼저 나신 피조물로 믿고 가르쳤다. 그 영향으로 유럽의 일부 야만족들은 그리스도를 영광스러운 바이킹의 한 추장으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당시 교회의 과제는 비기독교적 이교도들과 기독교적 이단들을 제압하는 일이었다. 당시의 정황으로 볼 때 교회가 이들을 전도하여 정통 신앙으로 개종시킨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 헌신된 사람들과 단체, 민족들을 통해 놀랍게 이 일을 이루셨다.
 
선교의 급속한 확장
 
예수님의 말씀은 성령의 능력으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국경을 넘어 땅끝까지 급속히 확장되었다. 이로써 그 동안 복음의 불모지였던 아일랜드와 영국, 스코틀랜드,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북유럽 전 지역에서 선교가 시작되었다. 
 
그 중에 특이한 것은 만족(蠻族) 출신 울필라스(ulfilas)와 프랑크 왕국의 클로비스의 개종에 의한 집단 전도와 회심이었다. 무엇보다도 클로비스의 회심은 당시 이단에 빠져 있는 북유럽의 교회를 정통 신앙으로 회복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당시 선교는 수도원의 수사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 바, 성경과 교부들의 저서를 연구하여 신학의 발전과 선교에 기여하였다. 특히 수도원은 성경의 사본을 필사하고 연구하는 등 학문의 중심지로서 오늘날 대학의 배경이 되었다. 이들은 안락한 생활 대신 찬송과 기도로 영적 경건과 신앙 성숙을 꾀하였다. 낙후된 환경과 재정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개종한 제후들과 성도들이 제공하는 기부금과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이런 환경에서 수도사들은 더욱 경건과 실천에 주력하고 선교에 진력하였다.
 
선교의 다양한 실례들
 
중세 선교는 교황청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신속히 여러 국가로 확장되었다. 그런데 초기의 선교는 로마 제국의 멸망 이전 아일랜드의 성 패트릭(st. patrick, 389∼461년)과 함께 시작되었다. 패트릭은 16세 때 영국의 약탈자에 의해 북아일랜드의 한 추장에게 노예로 팔렸다. 6년 만에 극적으로 탈출한 그는 전에 자기를 포로로 잡아갔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이렇게 복음화된 아일랜드는 스코틀랜드에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이들 중 성 콜롬바(st. columba, 521∼597년)는 12명의 동료와 함께 아일랜드의 아이오나(iona) 섬에서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선교하였다. 그 후 콜롬바누스(columbanus, 543∼615년) 또한 수도원에 들어가 훈련을 받고 12명의 선교단을 구성하여 갈리아(프랑스)에 보내 사역케 하였다. 610년 스위스의 조상(祖上)이 거주했던 수에비(suevi)에서 이교도의 사원을 불사르고 우상을 부숴 수도원을 세웠다. 그리고 613년에는 스위스를 떠나 알프스산을 넘어 이탈리아로 건너가 그곳에 수도원을 세워 전도하였다.
 
그레고리 1세의 영국 선교
 
일찍이 영국은 로마의 통치 아래 기독교를 전수 받았으나 아직 대부분은 이교적이었다. 그런데 6세기 말 로마 교황 그레고리 1세의 선교사 파송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선교사 어거스틴은 켄트에 교회를 세우고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그는 로마의 전통을 따라 계급적인 감독 제도를 정착시켰다. 그 후 영국은 급속히 복음화되었으며 윌리브로드(willibrord, 657∼739년)를 독일에 파송하여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는 당시 많은 냉대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정부의 후원을 이끌어 내며 40년 동안 선교하였다. 남부 프리즐랜드에 기독교 터전을 세우고 선교를 위해 덴마크 소년 30여 명을 훈련하였다. 영국의 웨섹스 출신 보니파키우스(winfrith or boniface, 680∼754년)는 교황 그레고리 2세를 만나 로마의 예전과 법도를 배웠다. 그리고 719년 5월, 게르만 민족의 전도를 위해 프랑크 왕국에 들어갔다. 당시 샤를 마르텔(charles martel)은 그를 게르만의 여러 족장들에게 소개하였다.
 
이탈리아와 스칸디나비아 선교
 
처음 이탈리아는 이단적 아리우스주의 오스트로고트(arian ostrogoths)족의 지배를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정통주의 신앙을 열망한 사람들은 정치적 이유로 반역의 의심을 받았다. 당시 데오도릭은 계몽 군주로 34년간 재위하며 한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였다. 그러나 아리우스주의자인 그는 518년 이후 박해자로 돌변하여 당대의 정통주의자 보에티우스(boethius)를 투옥하였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로 구성된 스칸디나비아인(노르만)들은 일찍부터 이 지방에 살던 이교도들이었다. 스칸디나비아인들 중에 북방의 사도 안스가(ansgar, 801∼865년)는 당시 이방 국가였던 덴마크 왕과 왕후, 부하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곳에서 선교하였다. 그 후 덴마크는 몇 번의 변화를 겪었으나, 왕세자의 회심으로 기독교화되었다.
 
노르웨이는 국왕 하랄드 하아르프그르(harald haarfagr)의 서자 하콘(hakon)이 영국 유학 중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그 후 귀국하여 형제 에리크(eric)를 대신하여 왕위에 올라 노르웨이 전역에 기독교를 전파하였다. 기독교는 노르웨이로부터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로부터 그린란드로 전파되었다.
 
슬라브족 선교
 
슬라브인들은 서북부에 모라비안, 폴란드인, 체코인, 동남부에 불가리아인, 러시아인, 세르비아인 들로 구성되었다. 그 중 불가리아인들은 본래 몽고인이었으나 슬라브인과 섞여서 슬라브어를 사용하였다. 헝가리인들은 나라를 세우고 토지를 분리하여 북에는 보헤미아국을, 동에는 폴란드 왕국을, 인근 접경에는 러시아인이 거주케 하였다.
 
한편, 보헤미아와 폴란드는 독일에 접근하여 서쪽에서 밀려오는 기독교 문명을 전수하였다. 그리고 폴란드의 밀키슬라브 1세가 처음 기독교를 받아들였을 때 러시아도 복음을 받아들였다. 특히 블라디미르(vladimir)는 기독교를 수용하여 국교로 삼았다. 블라디미르는 자신의 종교적 만족을 위해 사신을 각국에 보내 시찰케 하였다. 마침내 그 사신이 돌아와 콘스탄티노플 성당의 성대함을 칭찬하였다. 이 보고를 들은 블라디미르는 즉시 기독교를 국교로 결정하였다.
 
지상 명령의 효과적 태도와 전략
 
중세 유럽의 복음 전파는 교회의 타락과 부패에도 불구하고 급속히 확산되었다. 그 누구도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억제하거나 방해할 수 없었다. 복음은 시대와 사상, 인종과 국경을 넘어 온 세계에 전파되었다. 결국 복음 전파는 우리의 연약을 체휼하셔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분의 집요한 열정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지상명령의 효과적인 이행을 위해 사도 바울처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 15:10)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오직 그 분만이 선교의 동기요, 방법이요, 목표이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는 그 분의 도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온 힘을 기울여 그의 명령을 겸손히 준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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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10/27 [13:19]  최종편집: ⓒ newspower
 
뉴스
연재소개
간추린 교회사
연재이미지1
사회참여로 이어진 청교도 영성
애정적 영성을 공급한 청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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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 개혁을 추구한 청교도 경건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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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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