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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08 [03:01]
진정한 찬양과 감사(엡1:3-15)
정준모 목사 (로키 산자락의 아침 햇살이 영혼의 빛이 되어)-【추수감사절 설교문】
 
정준모

 

▲  진정한 감사는 현세의 복이 아니라 신령한 복에 있다  © 뉴스파워  정준모




 

서론) 2019년도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성삼위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본질적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상 사람들처럼 결코 명예, 부귀, 건강 등 현세적이고 기복적인 것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 구원, 죄사함, 영생 등 신령한 복이요, 영원한 복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찬양할 이유와 감사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해결될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빼앗기지 않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소망과 영원한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고난과 환란과 역경 속에서도 감사드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라스도인들은 그 고난과 환란과 역경의 이유를 알고, 그 결과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역설적 감사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박국 선자자의 감사요, 바울 사도의 감사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에 소출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다고 할지라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하고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산 소망이 끊어진 위기 상황 속에서도 감사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삼위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복, 신령한 복, 구원의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라고 고난에서 제외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모두가 언제나 물질적인 복, 현세적인 복이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받은 복은 어떤 경우라고 빼앗거나, 포기되거나, 살아지거나,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신령한 복, 생명의 복, 구원의 복입니다.

 

에베소서는 바울의 서신서 중 왕관혹은 인간의 글로 표현된 글 중 가장 거룩한 글이라고 불리 울 만큼 매우 값진 말씀입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말씀의 사역자인 로이드 존스 목사님 에베소서를 가지고 무려 8년간 설교할 할 만큼, 진리의 보고입니다.

 

특별히 2019년도 한 해를 돌이켜 보면서, 사업의 실패나 패업, 직장을 잃은 힘든 경제고 속에 있는 분들, 질병과 투쟁 생활로 지친 분들, 가족 간의 갈등으로 별거 중에 있는 분들, 불의 사고나 질병으로 가족을 잃은 슬픔을 가진 분들, 삶의 목적과 의미를 상실하고 깊은 절망감에 빠진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는 무슨 감사냐?”, “무슨 배부른 소리를 하느냐?”, “나의 삶에는 감사라고 눈꼽 만치라고 존재하는 것이 있는가?”, “감사라는 허울 좋은 이야기, 뚱단지 같은 말은 내 앞에서 내배지 말라?” 하면서 영적 분노와 깊은 회의 빠진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 중에 복음인 에베소서 1장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을 할 이유, 감사를 드릴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은 기복적인 복을 받을 때, 노래가 있고 감사가 있고 행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밝히고 있는 복, 노래, 감사, 행복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차원을 초월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은 현실적입니다. 기복적입니다.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밝히고 있는 복은 현실을 초월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령한 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복입니다. 죄사함을 받은 복입니다. 하나님의 기업되는 복입니다.

 

1.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복을 감사드리며 찬양합니다.

 

13절에 찬송하리로다라고 힘차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찬송이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진정한 노래가 있습니다.

 

이미 경험하였듯이 세상 노래는 부를수록 허무합니다. 세상 노래는 우리의 심령을 밝게 하기보다 더욱 어둡게 만듭니다. 세상 노래는 인간을 갈망하고 인간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세상 노래를 부를수록 자기 연민에 빠지고, 서글퍼지고, 허무해 집니다. 그러나 찬송은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감격하여 노래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는 영혼의 노래입니다. 영혼이 힘을 얻고,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 영적 새 힘을 얻고 활력을 얻데 됩니다.

 

우리가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없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서 우리 나오는 노래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치료하고 우리의 메마른 영혼을 적셔줄 노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는 우리의 영혼에 안식과 만족과 기쁨과 감동을 가져다줍니다. 찬송은 바로 우리 영혼의 노래이며 우리의 심령을 채우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연애 계나 가수들의 세계는 비참합니다. 더 이상 인기가 없고 더 이상 자신의 연기를 발휘하지 못할 때, 마약 그 마약도 더 이상 강한 약이 되지 못할 때는 자살의 길을 택합니다.

 

그러나 오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향하신 놀라운 사역과 놀라운 계획을 바라 볼 때, 찬송이 나오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점점 더 크게 뭉친 눈덩어리 처럼, 점점 더 모여 떨어지는 거대한 폭포수처럼 노래하고 있습니다.

 

찬양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물질의 복입니까? 신령한 복입니다. 신령한 복 조금을 주셨습니까?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습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습니다. 어떻게 얻게 되었습니까? 내 노력 아닙니다. 내 행위의 댓가로 아닙니다. 세상이 준 것도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신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은 신령한 복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하나님께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신령한 복을 생각할 때, 우리가 기뻐하고 감격하고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신령한 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복입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기전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미술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깊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자신이 그릴 그림을 미리 다 계획하고 생각한 그 계획과 생각과 이미지를 그림에 나타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계획과 구원 계획에서 우리를 우주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놀라운 주권과 계획입니다. 우리는 이것은 우리의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 영역입니다. 이해가 되어 믿어지는 것은 이해되어진 자신과 자신의 머리를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믿어질 때, 이해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안으로 확인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안으로 확인되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세뇌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뇌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 선택되어 졌다는 사실을 매우 자연스럽게 조금도 의심없이 믿어졌습니다. 목사님에 말씀하실 때, 자연스럽게 믿어지고 또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영적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내가 대단한 존재이구나”, “나는 별 존재가 아닌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자녀로 나를 삼아주셨다”, “이것은 엄청난 축복이구나하는 사실입니다.

 

14절에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선택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를 택하여 세웠나니”(15:16), 에서와 야곱 중 하나님이 야곱을 택하시듯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건과 상태를 보지 않으시고 우리를 택하여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의 자의로 된 것이 아닙니다. 또한 돌발적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어쩌다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조건을 따진다면 우리보다 나은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택하여 하나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 안에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고 흠없게 만드시려고 택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본성대로 버려둔다면 우리는 부끄러운 인생, 욕된 인생, 허무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에서 우리를 만세 전에 예정하시고 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주님께서 그를 부르시지 않으셨다는 그가 얼마나 흉측한 죄인으로 비참하게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가지 않았겠습니까? 마찬가지고 우리 자신을 생각해 봅시다. 내가 만약 주님의 선택받지 못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했다면 내 인생이 얼마 추악하고 더럽고 허무하게 살겠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6절에 보면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바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은 하나님이 거져 주신 은혜, 그 택함을 받은 영광을 찬송하려 함이라

 

시애틀에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의 사돈되시는 장로님의 손녀가 미국 전체 고등학교 졸업자 중 100명을 선발하여 대통령의 초정을 받아 백악관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그 장로님은 너무나 영예스럽고 자랑스럽고 감사해서 주일날 전교인들에게 잘 차린 식사를 한턱 내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 전체 고등하고 졸업자 100명에 백악관 초정을 받았다는 사실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본인과 가족들이 기쁘고 얼마나 영광이겠습니까? 그러나 천국의 초청을 받은 그 영광, 자격이 없는 자가 받은 그 영광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얼마나 영광스럽고 기쁘고 감격스럽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한턱을 내는 것으로 되겠습니까? 그 영광 그 축복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찬송을 돌릴 뿐입니다. 그저 감사하고 그저 찬양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2019년 한 해를 보내면서, 감사드릴 진정한 이유는 나같은 죄인이 이미 창세전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게 하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자녀로 삼으신 주님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찬송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2. 구속의 복을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선택의 복은 성부 하나님 아버지로 우리게 주신 복을 말합니다. 구속의 복은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얻는 복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우리는 받았습니다. 풍성한 은혜는 말로 표현될 수 없는 은혜이다. 우리가 너무 고통스러울 때, 너무나 놀라운 일이 생길 때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하기에 우리의 언어로 표현하기 한계가 있을 때가 많습니다.

 

경상도 사람은 억수로좋다합니다. 제주도 분들은, 호남 분들은, 이북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그 특유의 표현들이 있을 겁니다. 그 풍성한 감격, 그 놀라운 감격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 , 노래, 그림, 연극, 영상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영적 세계나 영감의 세계를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그 풍성한 은혜는 무엇입니까? 죄 사함 곧 구속의 은혜입니다.

구속은 값을 대신 지불하고 샀다는 의미입니다. 노예로 팔려가는 자를 그 몸값을 지불하고 이제 자유의 몸이 되게 했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마치 노예 시장과 같습니다. 이 세상 사람은 마치 노예와 같습니다.

 

요한복음 834절에 죄를 범한 자마다 죄의 종이라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배피로 구속을 받기 전에는 죄의 종이었습니다. 종은 시키는 대로 하는 자입니다. 종은 자신의 인격이나 자신의 자율권이 없는 자입니다. 죄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죄의 지배자는 사탄과 마귀입니다. 결국 우리는 어둠의 영, 죄악의 영, 사탄의 지배를 받아 죄의 종이었습니다. 죄가 지배를 받고 살았습니다. 죄 속에 살았습니다. 영적 인신 매매단 사탄의 종노릇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죄의 결과는 결국 사망밖에 없습니다. 그 죄의 종으로부터 구속 곧 자유와 해방을 받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종 노릇하고 있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죄의 종노릇하고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독생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담당하게 하셔서 우리의 죄값을 치루시고 우리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 주님은 모진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은 인간이 고안해 낸 최고의 고통스런 죽음입니다. 가장 치욕스런 죽음입니다. 가장 저주스런 죽음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예수님께서 외치실 만큼 고통스럽고 저주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잠잠히 끌려갔습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죄악과 질고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죄의 삯인 사망과 저주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은혜를 깊이 묵상하노라면, 나의 죄악된 모습, 나의 교만하고 나의 더럽고 나의 추악한 모습은 점점 드러나게 되고 나의 끔찍한 죄악이 들러 날수록 주님의 보배로운 피는 더욱 영롱하게 빛이 나고 그 주님의 보배로운 피가 얼마가 고귀하고 얼마나 감사한지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보배 피로 나의 지난 날 삶을 씻으시고 나의 흉악한 모습을 덮으시고 나의 죄악된 모습을 감추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 감격은 현세적 복, 잠시 눈에 보이는 복, 이생의 자랑의 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복이요, 감사요, 감격입니다.

 

3. 인침의 복을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인침을 받았다”(1:13)는 것은 도장을 찍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증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보호를 뜻합니다. 우리 자신의 인감도장은 우리를 대신합니다. 인감도장을 아무나 찍을 수 없습니다. 죄 중에도 공문서 위조죄는 매우 큽니다. 도장의 원 주인의 허락없이 도장을 함부로 찍어 가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도장이나에 따라 그 권위는 대단합니다. 청나라 강희 황제 낙관이 베이징에서 경매가 되었습니다. 중국 돈으로 355만 위안(55700만원)입니다. 이 땅에 왕의 도장, 죽은 왕의 도장 값입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고 심판하시는 만유의 주님의 인, 도장으로 우리를 인을 치셨습니다. 대단한 보장, 대단한 가치, 대단한 의미입니다.

 

인침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입니다. 인침은 곧 구원받았다. 죄용서 받았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제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에스겔 성경에 보면 천사나타나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택함을 받은 백성들의 이마에 먹물을 찍으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천사를 보내어 이마에 먹물이 없는 사람을 살육하는 기계로 죽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는 바로 하나님의 보호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 13절에 보면 진리의 말씀, 구원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약속의 성령의 인침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우리는 모두 성령 하나님의 도장의 찍힘을 받은 자입니다. 놀라운 특권이요 놀라운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가 육신의 덩어리로 계산한다면 우리는 가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배로운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고 우리 가운데 주님께서 거하시고 성령의 거하시는 성전이 된 놀라운 존재 되었습니다.

 

14절에 따르면 성령은 우리의 기업, 유업에 대한 보증이 되십니다. 기업이란 제비를 뽑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제비를 뽑아 기업을 분배 받아 그 기업으로 얻은 땅에서 복을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기업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땅의 의미가 아닙니다. 기업은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그들 자손 대대로 복을 누리며 살도록 보장된 축복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은 자신들의 생명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업도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모두 빼앗기도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기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기업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 기업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령으로 인을 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긍극적 구원의 보장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를 중생케 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케 하시고 우리를 성화시켜 나가시고 우리의 믿음을 고백케 하시고 우리가 죄악을 고백케 하시고 우리가 주님을 주로 믿고 고백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어 가게 하시고 우리가 누릴 기업을 보증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결코 퇴출이나 부도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구원의 보증이 되어 주십니다. 보증이라는 모든 대금을 지불하셨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부도 낼 것까지도 다 미리 아시고 대신 지불을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의 안정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 영광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우리게 주신 은혜를 생각해 봅시다. 그 은혜를 막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표현해 봅시다. 표현 중에 제일 좋은 방법은 적어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감사의 조건을 적어 볼 때, 얼마나 우리가 받은바 은혜가 큰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 목사님은 자신의 교회에서 가장 어렵게 사는 한 여성도가 감사 봉투 속에 들어있는 감사의 쪽지를 보고 그 외롭고 힘들게 남편도 없이 홀로 4남매를 키우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자식들 먹는 것 입는 것, 가르치는 것 제대로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에 대하여 감사는 글을 보고 너무나 감격했다고 합니다.

▲  한 알의 남은 수확에 감사하듯,  내 영혼이 주님 때문에 감사하는 갈증이 감사이다.   © 뉴스파워



 

결론적으로 우리는 성도라면 누구나 예외 없는 가장 큰 감사와 찬송의 제목이 있습니다. 1. 하나님 자녀로 선택된 복입니다. 2. 죄사함 구속을 받은 복입니다. 3. 약속의 성령의 인치심으로 기업의 보증을 얻은 복입니다.

 

길게는 지나 온 자신의 생애, 짧게는 2019년 한 해를 돌아보시며, 내 인생의 구속사를 묵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다 잃어 버렸지만 그 가운데 나에게 복음이 있고,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있다면 그것은 감사 중 감사입니다.

 

다 깨어진 유리컵을 들고 땅의 물은 마실 수 없지만 내 갈한 영혼을 적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내 영혼의 반석에서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국 이 땅에서 삶은 육을 잃고 영을 찾고, 나 신을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입니다. 그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 속에 산다면 그것은 모든 것이 회복된 자요, 감사와 감격의 천상의 새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2019년 늦은 내 인생의 시간이지만 주님으로 인하여 감사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직 영광을 주님께!!!(SDG)


 

 



정준모 목사 《선교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니스트,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전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회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졸저가 있습니다. 자비량 집회 안내:농어촌, 미자립,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기사 제보 및 집회 문의 연락처 jmjc815@hanmail.net, 719.248.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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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06 [23:54]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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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은혜인 가시(고후12:7-10)
이유를 깨닫고 여호와께 감사하라
심판을 철저히 준비한 노아
예배 갱신 설교: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배
【히브리서 11장 믿음장 강해(3)】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믿음장 강해 (2)]더 나은 예배를 드리는 삶
[믿음장 강해(1)】믿음의 바른 정의와 바른 증거
[설교] 나라 사랑, 민족 사랑
[설교]심음의 원리와 거둠의 법칙
하나님을 갈망하는 애틋함(시8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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