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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6.25 [00:11]
인간은 개인이다
<기독교 문학 산책>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의 <25시>
 
김승옥

<25시>의 줄거리
 
<25시>를 소설이 아니라 영화로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주인공 요한 모리츠 역할을 영화배우 안소니 퀸이 맡아 그 어리석은 표정으로 2차 대전의 폭풍 속을 떠밀려 날고 있는 나뭇잎 한 개 같은 개인의 운명을 인상 깊게 연기한  영화였다. 지금도 비디오 가게에서 쉽게 빌어볼 수 있는 영화이다.
 
그러나 역시 원작소설을 읽어야만 독자는 작가의 주제를 보다 선명히 이해할 수 있고 인생경험의 확대가 더 심오해질 수  있다. 영화를 통해서 사건의 줄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그리고 주제와 관련된 관념적인 내용을 담기에는 문자가 영상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분도 소설로 다시 한번 <25시>를 읽어보시기 바란다.  
 
내가 이 소설을 읽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1955년이다. 아마 일본어로 번역된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인 듯 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아주 많은 소설을 읽어댔다. 그런데 이 <25시>를 읽고난 순간 '이제야 진짜 문학다운 문학을 읽었구나!' 그렇게 큰 감동을 느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내가 살고  있는 20세기가 어떠한 시대인지를 한 눈에 알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셰익스피어도 톨스토이도 해주지 못하는 20세기에 대한 이야기, 그것이 <25시>였다.
 
<25시>의 줄거리
 
주인공 요한 모리츠는 루마니아 판타나 마을의 순박한 농부이다. 어느 날 그의 아내를 탐내는 헌병에 의해 유대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강제노동 수용소로 압송된다. 수용소에서 그는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라 루마니아인임을 주장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그는 헝가리로 탈출하는데 이번에는 루마니아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고문을 당한다. 헝가리 정부의 방침에 따라 독일로 팔려간다. 공장에서 기계적인 수칙에 따라 노무자로 일하던 중 그는 게르만 민족 연구가인 독일 장교의 눈에 띄어 순수한 게르만 영웅족의 후예라는 판정을 받는다.
 
독일 장교의 추천으로 포로 감시병이 된 그는 아내까지 맞이하여 잠시나마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지난 날 그의 동료였던 프랑스인 포로들의 요청에  따라 그들의 탈출을 돕고 그 자신도 연합군 점령지구로 도망친다. 연합군은 처음에는 포로의 탈출을 도운 요한 모리츠를 극진히 대우하지만 그가 적성국가인 루마니아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포로수용소에 감금한다. 그리하여 13년 동안이나 1백여 군데의 수용소를 전전하며 고난의 나날을 보낸다. 지칠 대로 지친 요한 모리츠는 자신이 무죄임을 주장하며 석방시켜줄 것을 요구하지만 수용소의 관리기구는 그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어느 날 체포될 때와 마찬가지로 자동적으로 석방된 요한 모리츠는 아내와 눈물겨운 재회를 한다. 아내는 점령군(소련군)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석방된지 18시간만에 서유럽(자본주의 국가들)에 살고 있는 동유럽인(공산주의 국가 국민들)  체포 때문에 요한 모리츠 일가족은 다시 수용소에 감금되고 만다.

작가 게오르규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루마니아의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침략자들이 쳐들어오는 길목에 있어서 주민들이 많은 고난을 받은 곳이다. 그의 조상들은 그리스 정교회의 성직자들이었다. 그리스 정교회 성직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명문귀족의 하수인 같은 착취적인 성직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성실하게 돌보는 성결한 성직자로 나눌 수가 있다. 게오르규의 조상들은 모범적인 성직자들이었다. 그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마치  전설 속에 나오는 성인(聖人) 같은 모습이었음을 게오르규는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인간이 지고지엄(至高至嚴)한 존재라는 사실을 배웠다. 하느님은 인간을 위하여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살도록 창조되었다고 배웠다. '자유롭게 살도록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개인 개인이 하느님처럼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존재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게오르규의 기본적인 바탕을  형성하였다. 인간이 짓밟히는 사회,  개인이 짐승처럼 '무리'로서 처단 당하는 상황에 대한 작가의 고발정신은 부친에게서 계승받은 성서(聖書)의 가치관에 기인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인간은 항상 '개인'이다. 따라서 '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자의 죄과는 전세계를 파괴하는 것과 맞먹으며 한 인간의 생명을 구제하는 자의 공로는 전세계를 구제하는 자의 그것과 대등하다'(<제2의 찬스> 머리말)고 그는 생각한다. 이러한 기독교적 인간관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이러한 인간관을 가진 사람이 볼 때 20세기를 주도한 문명은 지옥 중의 지옥이 아닐 수 없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 그리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을 벌인 20세기는 인간이란 조직의 일원으로서만 가치를 지닌 채 조직의 규약에 노예가 되어 자신의 생명을 바쳐야 하는 존재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대화하며 자신의 운명을  창조해 가는 개인이란 20세기의 이른바 민족주의 시대, 이데올로기 시대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아웃사이더(局外者)인 것이다. '신(神)은 죽었다'는 선언과 함께 하나님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민족주의나  이데올로기로 몰려가는 것을 20세기 인간들은 발전한 문명이라고 착각했다. 
 
그 결과는 민족대 민족의 처절한 전쟁일 뿐이고 이데올로기대 이데올로기의 용서 없는 살육뿐이었다. 선량한 개인들은 마치 죄인인 것처럼 조직의 폭력에 떠밀려 가족, 인격, 품위, 소망 등 모든 인간적 가치를 잃어버리고 기계의 부속품처럼 사용되다가 낙엽처럼 죽어야만 했던 것이다. 인간의 교만이 죽음의 길을 선택한 세기(世紀)에 대하여 작가 게오르규는 <25시>를 통하여 강하게 저항했다. 마치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구하러 떠나는 목자처럼.

하나님 앞에서는 것은 민족이 아니라 개인이다. 한  사람의 죄는 전우주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조직이 있어야 한다면 개인이 죄짓지 않고  하나님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도록 서로 서로 도와주는 조직만이 필요한 것이다. 가령  살인하지 않도록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간음하지 않도록 인격들을 서로 존중하고, 도둑질하지 않도록 서로 경제적 도움을 주는 그러한 조직, 오직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제사장이 지도하는  조직-그것을 우리는 교회라고 부르고 하나님 나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른바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왕을 세우고 국가를 만들고 온갖 법과 제도를 만들어 하나님과 개인 사이를 갈라 버린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사무엘상 8장에서 이렇게 경고하고 계셨다.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가  이러하니라. 그(집권자-필자주)가 너희 아들들을 취하여 그 병거와 말을 어거케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 아들들로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할 것이며 자기 병기와 병거의 제구를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 딸들을 취하여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를 삼을 것이며(중략)너희가 그 종이 될 것이라 그날에 너희가 너희 택한 왕을 인하여 부르짖되 그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지 아니하시리라" 20세기가 바로 그런 세기였다.
 
 21세기. 인간의 사회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세계의 조직, 세계의 의지(意志), 하나님의 의지는 교회에 있다. 개인 개인이 하나님과  대화하며 자기 직분을 지키는 유기체적(有機體的) 공동체 즉 교회가 바로 자유와 평화를 바라는 인간의 미래사회이다. 우리가 만들어야만 할 역사(歷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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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9/30 [13:24]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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