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
광고
광고
교계뉴스문화/교육국제/NGO/언론파워인터뷰생활/건강오피니언연재정치/경제/사회한 줄 뉴스
전체기사보기
편집  2019.12.08 [11:01]
중세 교회의 빛과 그림자
<간추린 교회사> 중세 교회사2
 
서요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 땅에 그의 몸 된 교회, 즉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셨다. 예수님은 친히 그 교회의 머리시며, 모든 정사와 권세를 가지신 만유의 주요, 만왕의 왕이시다. 그러므로 교회의 존재 목적은 그를 예배하며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말씀을 선포하여 모든 지체들의 신앙을 굳게 세우는 것이다.
 
또한 교회는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원한 생명을 위해 선택된 무리의 공동체이다.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소망하며 그의 피로 씻김 받아 성령으로 인친 바 된 하나의 우주적이며 보편적인 단체이다(히 12:23; 엡 5:25). 이런 신령한 교회는 내적으로 사람들의 눈에는 감추어져 있으나 이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추구한다. 이 교회(총회)는 신앙 안에서 형성된 지체들과 신앙을 고백하고 대화하며 맡은 바 직무와 사역에 힘을 기울인다. 그리스도의 분부에 따라 성찬과 교회 훈련을 실시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 제도와 고백과 교제를 통해 외적 성장을 도모한다.

중세 교회의 위기 

ad 313년 기독교 공인 이후 여러 신학적 논쟁을 통해 신속하게 안정을 찾아가던 교회는 다시 교리적 갈등에 부딪히게 되었다. 초대 교회는 지역적, 사상적 문제로 대립했으나, 중세 교회는 막강한 권력과 부의 축재로 사람들의 지탄을 피할 수 없었다.

한편, 4세기경 시작된 게르만 민족의 이동으로 중세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에 기독교 사상을 접목하여 활발히 발전하였다. 이후 끝없이 전개된 정치적, 사상적, 종교적 갈등과 대립은 고대의 역사적 문화를 무참히 파괴하였다. 하지만 교회는 폐허의 기초 위에 매우 독특한 중세 가톨릭 문화를 형성하며 비잔틴 문화를 융성시켰다. 당시 비잔틴 제국은 고도의 군사 체제를 통해 기독교 세계의 방파제 역할을 하였다.

7, 8세기경 이슬람의 발흥으로 기독교는 갈등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이슬람교는 짧은 기간에 중앙아시아에서 서구 스페인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로 인해 지중해를 사이로 십자가와 초생달은 극도로 대치하였다. 9~10세기 동안 이슬람은 당시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우며 서구 세계를 압도하였다.

11세기 말엽에는 발칸 반도에서 슬라브 민족이 남하하면서 비잔틴 제국의 슬라브화가 진행되었다. 동쪽에서는 셀주크족의 세력이 강화되어 비잔틴 제국의 소아시아를 침입하였다. 셀주크쪽은 나아가 곡창 지대인 이집트와 상업의 중심지인 시리아를 빼앗아 기독교와 이슬람 양(兩) 종교의 성지(聖地)인 예루살렘을 점령하였다.
 
그 결과 기독교적 중세 문화는 이슬람교와 접목하여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으나 십자군 전쟁을 야기하였다. 십자군 전쟁은 향후 여덟 차례에 걸쳐 약 200년 동안 계속되었으나, 별 소득 없이 엄청난 인명과 재산을 앗아간 채 종식되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기독교권의 결속과 새로운 무역항로를 개설하는 등 이후 유럽 사회는 크게 변모되었다.

중세 교회의 타락상

이 같은 외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교회는 내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였다. 초대 교회의 사도적 전통과 신앙적 유산을 통째 물려받은 중세 교회는 이전 어느 시대도 누리지 못한 영광과 축복을 구가할 수 있었다. 중세인들은 교회와 신앙을 중심으로 막강한 체제와 구조 속에 살게 되었다. 하지만 중세 교회는 초대 교회의 전통에서 벗어나 제도와 형식, 이성과 행위(공로) 중심의 로마 가톨릭 신앙과 신학, 문화와 전통을 형성하였다. 고난과 박해 속에 이룩된 교회의 전통은 거부되고, 부정되어야 할 신비적 관습과 세속적 전통이 자리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중세 교회는 사제주의와 성례주의, 이성주의를 신뢰하며 적극 실천하였다. 결국 말씀을 떠난 중세 교회는 항로를 이탈하여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함선처럼 사방팔방으로 튀기 시작하였다.

특히 교권 절대화의 상징인 교황은 모든 중세인의 삶을 정교하게 통합하며 통치하였다. 교황은 사도 베드로에게 부여된 지상(至上)적 권위의 계승자로서 예외 없이 모든 사람에게 절대 복종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교황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원을 이루시고 교회를 설립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약탈하였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를 낳는다"는 말처럼 교황의 타락과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는 끝 모를 사치와 방종을 잉태하여 숭고한 교회의 명예와 권위를 짓밟았다. 이로써 교회는 더 이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없는 나락(奈落)으로 빠져들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승리하셨는데, 그 승리한 교회는 이제 존경과 경배의 대상이 아닌 조롱과 부끄러움의 상징이 되었다. 교회 내외적으로 곳곳에서 불평과 불만, 갈등과 대립이 고조되었다.

공로 사상의 등장

뿐만 아니라 중세 교회는 초대 교회의 신앙을 의도적으로 변질시키고 왜곡하였다. 고난과 박해 속에 이룩한 헌신과 봉사, 순교적 신앙과 열매들은 이제 역사 속의 망각일 뿐이었다. 복음전파와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열망은 형식화된 현실 안주의 덫에 무참히 좌초되었다. 더욱이 당시 성도들의 상실된 신앙과 미래에의 추구는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더욱 피폐케 하였다. 구원에 필수적인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즉,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믿고 따르기보다는 사제에 의한 고해성사, 면죄부를 통한 구원을 강요하였다. 소위 교권과 함께 행위에 의한 구원인 공로 사상이 널리 확산되었다. 그 결과 사도적 교회의 가르침, 믿음에 의한 구원은 더 이상 관심을 받지 못했다.

오랫동안 수도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초기의 신학 전통은 사변적 스콜라 신학으로 대치되었다. 주목할 것은 5년 동안 매일 5만 명의 노동자를 동원하여 완성한 직경 31m, 높이 56m의 청동 원형 지붕(돔)에 벽화와 모자이크로 장식된 성 소피아 성당은 교권과 행위에 의한 구원의 상징임을 잘 보여준다. 성당의 완공 시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노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 속에 종교적 이상에 따른 다양한 운동과 조직들이 강한 생존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역사 속 하나님의 섭리

이처럼 타락하고 부패한 상황에서 중세 교회는 과연 본래의 목적을 회복할 수 있는가? 사실 한번 잃어버린 영광은 다시 찾기가 어렵다. 이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필사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다양한 계층의 중세인들은 절대 권력에 맞서 계속적으로 개혁을 전개하였다. 깊은 산이나 광야의 동굴에 들어가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당시에 만연된 여러 의식과 제도들을 개혁하였다. 온갖 비난과 조소, 육체적 고통과 고난을 감수하며, 이단으로 정죄되어 죽을지라도 꿋꿋하게 개혁을 주창하였다. 실로 개혁의 길은 멀고 험하며, 역사 속에서 인생은 너무나 짧다. 그러나 개혁자들의 참 교회에 대한 열망은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한 시대, 중세는 가고, 다시 새 시대, 종교개혁이 도래하였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인식 과제는 무엇인가? 역사는 우리에게 끝없는 도전을 촉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 속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로 인식해야겠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05/09/29 [10:24]  최종편집: ⓒ newspower
 
뉴스
연재소개
간추린 교회사
연재이미지1
사회참여로 이어진 청교도 영성
애정적 영성을 공급한 청교도
이상적인 교회 건설을 추구한 청교도
내적 개혁을 추구한 청교도 경건운동
청교도운동, 지펴진 개혁의 불씨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
V. 루터의 종교개혁, 그 업적과 확장
IV. 종교개혁의 불이 타오르다
III.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핀 속죄권 판매
마침내 개혁의 봉화가 오르다
중세의 뉴 패러다임, 종교개혁
중세 교황권의 발흥과 몰락
깨끗한 자본주의의 본보기 유일한 회장 ⑤
이슬람의 태동과 십자군 운동
중세를 적신 평화의 오아시스, 수도원
중세 교회의 이단 유형과 특징
중세 유럽의 복음전파 과정
중세 교회의 빛과 그림자
끝없는 역사의 미로
기독교가 국교가 된다면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후원 및 광고 만드는사람들기사제보기사검색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136-5) 본관 107호 TEL 02-391-4945~6| FAX 02-391-4947,
Copyright2003-2019뉴스파워.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power@newspower.co.kr 등록번호 서울 아 00122 등록일 2005.11.11 발행 및 편집인 김철영. 청소년보호책임자: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