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
교계뉴스문화/교육국제/NGO/언론파워인터뷰생활/건강오피니언연재정치/경제/사회한 줄 뉴스
전체기사보기
편집  2019.10.19 [07:01]
[예수칼럼] 내 인생과 신앙의 마지막 계단에서
다시 읽는 김준곤 목사의 ‘예수칼럼
 
김준곤

1983년이 저물고 이제 1984년은 한국교회 100주년을 맞이하고 천주교는 200주년, 한국CCC는 26주년, 해방 이후 약 70년, 그리고 외람되지만 내 환갑이 되는 해이다. 해 저무는 인생 사양의 언덕길에서 먼 마을 교회의 종소리를 들으며 기도보다 절실한 것들을 안고, 한 생애 가난한 보따리에 꾸려 들쳐 매고 잠시 걸어온 길을 회고하며 산마루를 전망해 보는 시간이다. 내 생애는 숙명같이 비극적인 일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우리들의 통념으로는 팔자소관이라 하겠소 신앙적으로는 섭리라고도 할 것이다. 태어나서 의식에 눈뜬 순간부터 미인이었고 슬픈 여인이었던 어머니는 저녁때 물레를 돌려 무명실을 뽑거나 베를 짜고, 문풍지 울고 뒤뜰 대밭에서는 옥수수 겨울 바람소리가 나는 동지섣달 깊은 밤에 슬픈 노래를 부르며, 웃풍이 세차서 어깨가 시려울까봐 이불을 고쳐 덮어주시며 나를 끌어안고 주루루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니는 새벽같이 얼아 나서 디딜방아를 찧고 여러 머슴들에게 일을 시키시고 들로 나가셨다가 해가 져서야 들어오셨다. 아버지에게는 제2 부인이었고 사업처가 따로 있어 일 년이면 두세 번밖에 집에 오시지 않으셨다.
 
자주 내 종아리를 때리고 일찍 깨워 선산의 묘를 데리고 다니시던 아버지가 어딘가 엄하고 무서워서 집에 오신 기간에는 숨어서 동면해 버리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어머니는 식모요, 머슴이요, 침모, 유모 같은 일을 하셨다. 주관적 인상이겠지만 나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그리고 어머니는 키가 크고 서구형 미남미녀였던 것 같다. 외할아버지는 학자였다.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복잡한 환경 때문에 고아처럼 외롭기만 하던 나의 어린 시절에 좀 죄송한 표현을 쓰자면 맘씨 좋은 동네 개처럼 내게 가장 다정스럽고 소중한 분이었는데 그는 고아인 백치 사촌형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키웠고 한 집에서 살았다. 읍내 학교에서 운동회 같은 것이 있을 때면 으레이 나는 혼자일 경우가 많았는데 백치형은 도망 와서 나를 호위하고 훔쳐 왔는지 엿꾸러미 같은 것을 꼴말 속에서 꺼내 나를 주면 나는 창피해서 짜증을 내고 했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미안해서 못 견디겠다. 세상에서는 그렇게 부담 없고 착한 사람이 없다. 귀가 길에 이웃마을 깡패아이들이 나를 놀려주는 것을 보면 의분을 못이겨 아이들에게 덤벼들었다가 몰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던 일도 생각이 난다. 초상집에 가서 심부름을 해주고 상한 음식을 얻어다가 내게 먹여 배탈이 난 일도 있다. 동네 사람들은 마을 강아지 다루듯 누구든지 심부름시키고 자신 또한 만인을 상전처럼 섬겨야 할 종인양 눈 속에서도 이웃마을까지 심부름을 다녀오곤 할 때는 어린 나에게도 분한 생각이 들었다. 음식 같은 것을 훔치는 버릇이 있었는데 마을에서 도난 사고가 나면 으레 속죄양처럼 내 백치사촌 형이 허물을 뒤집어쓰고 아무리 호되게 다뤄도 묵비권을 행사하며 억울하게 당하고 만다. 몸이 아무리 아파도 그것이 아픈 것인지 조차 구별의식이 없어 끙끙 앓으면서 일을 했다. 그 형이 어느 겨울 폭설이 쌓인 날 아침에 눈 속에서 동사체로 발견되었다. 누군가의 심부름으로 이웃마을을 가다가 고갯길에서 동사한 것이다. 이어서 어머니가, 사랑하는 다른 세분의 형님들이 차례로 급사하고, 6․25때 아버지와 가족들이 눈앞에서 산당에게 학살당하고 나는 8․15, 6․25 사선을 수없이 헤매다 25시 주인공처럼 기적을 살고 있다. 내 어린 시절 사랑하던 잘생긴 동생하나가 집배늘에서 불놀이하다가 불에 타서 죽던 날 밤, 그가 당하는 고통과 서서히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숨이 막히듯 슬펐던 일. 또 다른 동생 하나가 우리집산 벌목 현장에서 구경하다 나무에 치어 죽고 2년 전에는 고등학교 교감하던 착하디착한 동생이 10~16세 된 딸 네 명을 남겨놓고 간암으로 죽고 작년에는 내 딸 신희가 두 어린 딸을 부탁하며 157일간 논스톱 극한 고통 속에 위암으로 죽고 막내 동생은 간경화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고아원을 차려야 할 정도로 모두들 남겨 놓고 간 부모 없는 유자녀들을 더 맡아야 한다. 나의 90% 현실은 내세(來世)에 있다.
 
신희의 두 딸이 까닭 없이 우는 석양이 되면 소월의 초혼을 생각하며 하늘을 쳐다본다. 정직하게 고백하면 나는 하나의 웃는 얼굴로는 웃고 다른 얼굴로는 운다. 내 영은 주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깊은 곳에서 샘물같이 환희가 솟는다. 그러나 다른 마음의 하늘에서는 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있다. 옆을 보면 정신 착란증에 걸릴 것 같고 위를 보면 현기증이 나고 내 안을 들여야 보면 죄와 치사한 것들이 있고 과거는 회한과 슬픔뿐이고 미래는 안개처럼 불확실하고 불안하다. 나는 주님만 바라봐야 한다. 과거는 아무리 더럽고 아프고 서러워도 내일과 새해와 미래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페이지.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 공주 같은 처녀성이 백지같이 열려있다. 시집가는 처녀처럼 새날을 맞이하여 새 집에서 새 살림 꾸려 새 사랑을 살자. 한해 한해를 사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도 아니다. 한 발짝 한 호흡 주님 사랑하며 창세기 첫날처럼 날마다 영원한 첫사랑을 살자. 주님을 호흡하며 살자. 인간은 영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창조되었다. 영은 본질상 영원을 사모하며 하나님을 목마른 사슴처럼 사모한다. 하나님과 영원을 상실한 영은 무한정 목 타고 외롭고 고달프고 숨이 막힌다. 영원한 소망과 하나님이 끊어지면 영혼의 질식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내게 깊은 위로와 감사와 찬송과 평안이 있다. 그것은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주신 것이다.

 

*한 손에는 복음을, 한 손에는 사랑을’이라는 쌍손 선교를 실천한 한국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의 <예수칼럼>. 한국 기독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참된 신앙인인 저자의 선지자적 영감과 시적 감성으로 쓰인 잠언록이다. 민족과 역사,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외침을 담아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고백뿐 아니라, 복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우리 영혼을 전율시킨다. 출간 이후 최장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로써 수많은 젊은 지성인들의 영혼을 감동시키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 <예수칼럼>은 파스칼의 <팡세>에 필적할 만한 현대적인 고전으로 평가되며, 특히 문체의 간결성과 심오한 기독교 사상은 독자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안겨 준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19/07/01 [04:11]  최종편집: ⓒ newspower
 
뉴스
연재소개
[다시 읽는 김준곤 예수칼럼]
연재이미지1
[예수칼럼] 정치 스포츠 금메달
예수 농도 100퍼센트 절대 사랑
[김준곤 목사 예수칼럼] 생명 언어
[예수칼럼] 최장의 연쇄기도
[예수칼럼] 한국창조과학회
[김준곤 예수칼럼] 기도 최우선의 삶
[예수칼럼] 기도는 창조의 산실
[예수칼럼] 왕국적(王國的) 꿈
[예수칼럼] UN. 신전(神殿)
[김준곤 예수칼럼] 12시 3분 전
[예수칼럼] 미래 상실병을 치유하자
[예수칼럼] 기도의 폭탄을 터뜨리자
[예수칼럼] 민족복음화운동에 대한 생각
[예수칼럼] 밀알의 역설
[예수칼럼] 나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설계도
[예수칼럼] 내 인생과 신앙의 마지막 계단에서
[예수칼럼] 민족 부흥을 여는 열쇠
[예수칼럼] 묵상을 잃은 크리스천
[예수칼럼] 무신론 지성의 바벨탑
[예수칼럼] 믿음의 건망증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후원 및 광고 만드는사람들기사제보기사검색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136-5) 본관 107호 TEL 02-391-4945~6| FAX 02-391-4947,
Copyright2003-2019뉴스파워.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power@newspower.co.kr 등록번호 서울 아 00122 등록일 2005.11.11 발행 및 편집인 김철영. 청소년보호책임자: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