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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1.20 [08:02]
끝없는 역사의 미로
중세교회사 1
 
서요한

일반적으로 중세는 시간적인 장구함에도 불구하고 초대나 근대, 현대와 달리 역사학에서 상당히 무시되어 왔다. 하지만 우리가 꼼꼼히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사건과 인물을 통해 축적된 엄청난 보화를 발견한다. 왜냐하면 인류의 창조와 함께 시작된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사랑과 인도 속에 계속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역사 창조의 주체로 놀라운 역할을 감당해 왔다. 지금까지 역사 속에 흘러간 장구한 시간은 구약의 예언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의 임박한 종말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 끝(재림의 때)을 예측할 수 없다.


때문에 답답한 마음을 제어할 수 없으나 이를 통해 역사 속에 숨기신 하나님의 은밀한 비밀과 중후함에 압도당한다. 이로써 우리는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의 유기적으로 결합된 다양성과 통일성, 보편성과 독특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역사, 특히 중세 역사는 끝없는 미로가 아닌 신적 예정 속에 확정된 종말의 완성을 지향하는 역동적 과정이다. 따라서 장차 이루어질 미래에 대한 역사적 기대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신 역사의 하나님께서 연대(年代)를 주장하심으로 장차 우리를 원수와 핍박자의 손에서 건지실 것이다(시 31:15).


중세 역사의 실상


크레인 브린튼에 따르면 중세는 초자연적인 것을 자연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신앙의 신비적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즉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매일의 일상적 생활, 바로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실제로 중세인들은 신의 목소리와 손길을 언제 어디서나 가까이에서 느꼈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 만물 하나 하나, 혹은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 하나 하나가 모두 신이 몸소 쓰신 글이요, 편지였기 때문이다. 들판에 피어나는 풀꽃 한 송이도 신이 인간에게 보내는 전언을 담고 있었으며, 가을 잎새를 스치는 바람 한 오라기도 신의 입김을 싣고 있었다. 천둥, 번개, 요란한 폭풍우는 신이 자신의 노여움을 표현하는 방법이었으며, 태양을 잡아먹는 달의 그림자는 신이 인간들에게 내리는 벌이었다.


나는 내 집이라는 둥지 속에 자리하며, 내 집은 마을과 교회라는 더 커다란 둥지 속에 편안하게 숨어 들어가고, 마을과 교회가 이루는 인간 세계는 신의 섭리라는 우주적 둥지 속에 깃들어 있었다. 나의 의미는 나의 개인적 의미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건드리고, 풀꽃을 흔들어 우주적 공명을 일으키고 반향을 이끌어낸다.


따라서 중세는 신의 양팔에 안겨 있었던 세계, 신의 품안에 둥지 튼 사람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함께 모여 살던 평화로운 시대였다. 이들에게 하나님과 초자연적인 존재들은 하늘 위 높은 곳에서 인간적 합리성과 목적을 가지고 아래 세상을 다스리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함께 공존하고 함께 나누는 신적 질서로 정돈된 세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인들은 영적인 실재를 믿었기 때문에 마귀를 악한 존재로 간주했고, 미신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들은 신의 모양을 본떠 미래의 영원을 향해 분발토록 했다. 이들의 이런 지극한 신앙심은 사도들의 전통을 왜곡시켜 성상 숭배나 면죄부 같은 종교 행위를 통해 교회를 타락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소망과 용기를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그와 함께 절망은 없다. 역사는 당신의 계획을 실현하는 하나님의 활동 무대이기 때문이다.


중세의 역사 이해


중세 혹은 중세인은 역사를 어떻게 이해했는가? 학자들에 따르면 중세인들은 역사를 신(神) 혹은 신앙 중심으로 이해하였다. 이는 대개 연대나 연보, 전기나 업적, 민족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이 과정에서 역사의 객관적 평가나 진보 대신 정체 혹은 침체, 편파성이 현저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중세의 역사는 해석 시에 많은 어려움을 맞게 된다. 하지만 중세는 고대와 근대, 그리고 현대를 이해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때로 학자들 사이에 중세 무용론, 혹은 무가치론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신앙적 관점에서 그렇게 폄하할 것은 아니다. 이유는 역사가 혹 절망적이고 암울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단절된 역사는 없기 때문이다. 그 분은 친히 역사의 창조자이자, 섭리자시며, 완성자시다.


하지만 역사는 때로 고대와 중세, 근대에서 보듯이 불연속성과 연속성이 존재한다. 역사는 신앙적 혹은 학문적으로 연속성과 통일성이 더 많이 발견된다. 중세가 어둠의 역사로 치부되는 동안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 갈망은 다양한 신앙 형태 속에 더욱 강력히 표현되었다. 말하자면 고대보다 중세가, 중세보다 근세가 더 넓고 광활한 세계로 우리의 안목을 확대해 준다. 물론 중세는 외형상 신앙의 전통이 체계화되었으나 곳곳에 비성경적인 부분들이 많이 발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중세를 역사에서 제외하듯 극단적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중세인은 좋든 싫든 기독교 문명을 이룩하였는 바, 그 안에서 과거와 현재를 의미 있게 종합하였기 때문이다.


역사 속의 성속(成俗) 관계


신앙적으로 이 시기는 다른 시대의 역사처럼 인간 타락의 심각성과 구원이 절박하게 요청되었다. 사실 역사는 어느 시대나 동일하지만 중세는 역사적으로 가장 인간적이며 세속적인 것이 특징이었다. 예를 들면 교회와 국가 간의 갈등인데, 실제적으로 어느 편이 우위에 있는가를 두고 오랫동안 대치하였다. 중세의 성직자들처럼 세상을 악한 것으로, 영적인 것은 선한 것으로 취급하는 흑백논리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영적 권위로 세속 권세를 압도하려던 일련의 사태는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켰다. 만약 우리가 세속적인 것은 죄악된 것으로 일축하여 편협하게 취급하면 역사적 객관성을 상실하게 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죄로 타락한 세상에 살면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그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 이 점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신앙관이나 세계관에서 불신자들과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흑백논리에 빠지지 않고 이것과 저것을 포용할 수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우리가 중세를 연구할 때 비록 치욕적인 면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여기서 승리한 신앙인들의 향취를 발견하는 것은 또 하나의 기쁨이 아니겠는가? 중세를 기반으로 종교개혁사를 연구하면 더욱 풍요하게 역사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중세 없는 종교개혁은 있을 수도 없고, 역사의 발전에 있어서 그 참된 의미를 이해할 수도 없다.


역사 속의 나의 존재


결국 역사의 주제는 하나님의 활동에 관련된 교회 역사, 즉 구원을 가르친다. 때문에 역사를 인간 생활의 단순한 보조 수단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교회의 역사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교회의 고백, 역사의 드라마는 오늘 나의 고백이요, 창조물이 되도록 해야겠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는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이다.
 
교회사는 항상 고백적인 관점에서 폭넓은 개방성을 요구한다. 역사를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혹은 교파적인 선입관에 사로잡혀 해석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우리는 어떤 시대이건 역사 속의 공통분모를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중세는 오늘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제공한다.



서요한: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과 교수, 영국 웨일즈복음주의신학대학 박사(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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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9/21 [15:0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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