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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9.15 [14:02]
칠흑 같은 캄캄함은 새벽을 부른다
로마에서 풀어놓은 한평우 목사의 교회사 이야기--교황 알렉산더 6세-
 
한평우

칠흑 같은 캄캄함은 새벽을 부른다-교황 알렉산더 6세-

▲ 원장 한평우 목사     ©뉴스파워

 

모든 사람을 두부류로 나눈다면 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 자다.

성경은 모든 인간을 악한자로 치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기준으로 보이는 대상을 평가한다.

그것을 기록한 것이 바로 역사다.

 

영적으로 가장 캄캄했던 시대를 살았던 교황 중, 한 사람이 바로 알렉산더 6(Alexander Papa. 214(재위1492-1503)로 본명은 로드리고 보르자(Roderic Borja).

그는 1431년 아라곤 연합 왕국 발렌시아(오늘날의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외가 쪽 삼촌이 알폰소 데 보르자가 교황 갈리스토 3세이었으니 가문이 아주 좋았다.

 

그는 당시 유명한 볼로냐 대학에서 교회법을 전공하였고 탁월한 실력으로 졸업하였다.

외삼촌이 교황이 되자 25살의 젊은 나이에 전격적으로 추기경이 되었다.

그리고 외삼촌에 의해 교황청의 가장 막강한 자리인 상서원장(재정담당)에 임명 되었다.

그는 상서원장이 된 후 다섯 명의 교황, 갈리스토3, 비오2, 바오로 2, 식스토 4, 이노첸시오 8세를 보좌했다. 처음에는 외삼촌의 후원을 통해 그 직임에 앉게 되었으나 계속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과 행정 능력이 탁월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목회자들의 모임에 가보면 똑똑한 사람은 곧 알아보게 된다.

사람들 앞에 나와 몇 마디 인사만 해도 말이다. 그렇다면 똑똑하다는 것은 타고나는 일일까? 아니면 노력의 결과일까?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항상 배신의 몸짓을 하는 자는 어김없이 똑똑한 자들 가운데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3;1절에 뱀이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했다고 했는데, 간교는 머리 회전이 빠른 것을 의미한다. 고로 잇속을 차리는 일에 탁월하고 배신에 셈법이 빠른 경우가 역사적으로 많다.

 

알렉산더는 다섯 교황을 보필하면서 충분한 행정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외교적으로도 많은 유력자들을 사귈 수 있었다. 또한 상서원장이라는 막강한 자리에 있는 동안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항상 돈은 정치를 도모하고 인맥을 관리하거나 협상을 요할 때 중요하기 때문에 정치적 야망을 가진 자에게는 반드시 요구되는 매체다.

칼뱅도 목회자가 친구에게 식사를 대접할 정도의 물질은 소유해야 한다고 했지만 말이다.

 

알렉산더는 상당이 재치 있고 매력적이며 뛰어난 인물이었다. 당대의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여성들은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그에게 끌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의 독특한 재능은 성직자로서는 합당하지 않을 수 있다.

여인에게 매력 있게 보이는 자는 이미 그만큼 유혹에 노출된 존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는 평생 수많은 여인들로 인한 추문에 시달려야 했고 사생자도 여러 명이었다.

거룩한 삶을 인도하는 교황에게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삶의 태도이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통이 큰지, 아니면 음욕이 대단한지는 독자들이 판단하기 바란다.

 

1492년 교황 인노첸시오가 선종하자 교황의 후보자로 여러 사람들이 나섰다.

밀라노의 후원을 받은 스포르차 추기경, 불란서의 지지를 받은 로베레 추기경, 독자적 세력을 구성한 보르자 추기경이었다. 그는 교황 선거를 위해 돈을 아낌없이 뿌렸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추기경 스포르차가 있는 곳까지 당나귀 4마리에 금은보화를 가득 실은

짐을 끌고 가게 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돈으로 상대방을 매수했던 것이다.

우리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총회장 선거에 많은 돈을 뿌려야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했다.

그런 모든 일은 교황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자부심이 개혁을 외치며 일어난 사보나롤라에게도 적용하려고 시도했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세 명의 여인으로부터 8명의 사생아를 둔 아버지이었다.

 

그가 교황으로 재직하는 동안 불란서의 샤를 8세가 1494년 로마로 진격하였고 로베레 추기경의 도움을 받아 베네치아 궁에 입성했다.

샤를8세가 로마에 진격한 것은 교황선거에서 패한 불란서의 지지를 받았던 줄리아노 로베레 추기경(알렉산더 교황 후임이 된 교황 율리오2-1503-1513)의 부추김 때문이었다.

우리는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을 철저한 배신자로 낙인을 찍지만 로마가 망하고 1,400년 동안 도시국가 형태로 목숨을 연명해온 이태리에서는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교황은 샤를 8세의 침략 앞에 크게 두려워했다. 샤를 8세가 자신의 성직매매의 혐의에 대한 고발로 자신을 교황 직에서 폐위시키고 새로운 교황을 지명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결국 산탄젤로(S,angelo) 성으로 피신했던 교황은 두 주후에 샤를 8세와 첫 회동을 가졌고 교황은 자신의 협상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즉 교황은 샤를 8세의 측근이자 생말로 교구장인 기욤 브리소네를 추기경에 임명함으로 샤를8세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베드로 대 성당 광장에 도열한 불란서 군인들 앞에서 보란 듯이 샤를 8세를 복자(미사를 돕는 사람)로 세워 미사를 집전했다. 자신을 토벌하러온 불란서 왕을---

 

이후 불란서로 돌아가던 샤를 8세는 반역의 기미를 보이는 나폴리 공국을 공격하기 위해 돌아왔다. 스페인의 군대가 나폴리를 향해 남쪽의 칼라브리아에 상륙하였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 그리고 샤를 8세의 군대는 손쉽게 나폴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샤를 8세는 의기양양하게 불란서로 돌아갔고 리용에서 군대를 해산했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즉 나폴리를 정복할 때 콜럼부스의 배 3척이 카리브 해에서 스페인으로 돌아올 때 유럽 대륙에 매독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그 후 나폴리 왕을 지원하기 위한 스페인 용병들이 이 병을 옮겼고 샤를 8세가 나폴리를 정복할 때 불란서 군대에게 매독을 옮겼다. 결국 샤를 8세는 병사들에 의해 매독을 북 구라파에 널리 퍼지게 한 장본이 되었다.

 

그동안 눈에 가시 같던 불란서의 샤를 8세가 돌아가자 알렉산더 6세는 자신의 의도를 맘껏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첫 째 아들 조반니는 간디아(스페인지역)의 군주였고 나폴리의 왕관을 쓰도록 내정되었는데 테베르(Tevere) 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를 사랑했던 교황은 너무 슬퍼하여 3일 동안 전혀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하나님의 징계로 여겼고 이 시점에서 삶을 추스르고 교회를 개혁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겼다.

교황은 개혁을 위한 독실한 6인의 추기경을 뽑아 개혁의 초안이 작성되었는데, 교황이 성직을 판매하는 것을 금했고, 주거지의 규모도 사람은 80, 말은 30마리로 제한했다. 추기경이 사냥, 극장, 사육제, 그리고 마상시합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했고, 모든 뇌물과 축첩을 멀리하도록 했다. 사실 이 모든 개혁의 초안은 교황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교황은 이런 개혁의 초안을 받아보고 수용하지 못하고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말았다.

회개는 다윗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비우려는 결단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것은 앉아 있던 용상에서 땅 바닥으로 내려와야 하기에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맏아들을 잃은 슬픔은 곧 평정심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교황에게는 보통 사람들이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무기가 있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가톨릭 신자들의 마음 판에 또렷하게 각인된 신앙심과 그를 대항하는 것은 곧 주님을 적대하는 일이라는 의식과, 그로부터 파문이나 책벌을 받

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징계라는 사실이 마음에 뿌리박혀 있었다.

그래서 황제들은 가능하면 교황과 대립하기를 원치 않았기에 칼을 빼들었다가도 스스로 감정을 억제하고 칼집에 도로 꽂곤 하였다.

이런 일들이야 말로 교황에게는 승리의 큰 도구가 될 수 있었다.

 

교황의 임기 끝, 몇 년은 자신과 아들 체사레의 야망을 충족하는 일에 힘을 다했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어야 하는 데 말이다.

사람은 늙어갈 수록 자식을 의지하게 되고 자식을 통해 편안함을 도모하려고 한다.

그래서 큰 교회는 가능한 자식에게 자리를 물려주려고 안간힘을 다한다.

당시 로마에는 두 가문이 세력 다툼으로 날 샐 틈이 없었다.

그 두 가문은 콜론나 가문과 오르시니 가문이었다.

아버지에게 간청하여 추기경직을 내어 놓은 아들 체사레는 늙은 교황 뒤에서 온통 악한 일을 스스럼없이 자행하였다.

 

교황의 이름으로 두 가문을 겁박하기도 하고 때로는 교황청의 감옥에 가두기도 하고 때로는 저들의 목숨을 빼앗았고 재산을 몰수하기도 했다.

그리고 더 많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추기경의 자리나 성직을 공개적으로 팔았다.

지위가 있는 로마인들은 언제 당할지 몰라 공포에 떨어야 했다. 체사레는 하나님의 심판인지 매독으로 외모가 끔찍하게 변하여 항상 마스크를 써야 할 정도였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으니 사람의 부패함은 끝이 없는 것 같다.

 

하나 더 첨가할 것은 그의 동생 루크레치아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오빠와 교황인 아버지와 근친상간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요란했다.

그러나 이런 소문들은 정적들이 만든 가능성이 크다. 워낙 많은 여인들에 둘러싸여 있었던 교황이었기에 어떤 얘기도 개연성이 있었고 거기에 덧칠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교황은 이태리 사람이 아니고 스페인 출신이었으니 시샘하는 일이 많았다.

루크레치아는 열세 살에 밀라노의 통치자 스포르차와 결혼을 하였고, 그가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이혼을 시켰다. 이혼을 통해 교황으로부터 받은 페사로(Pesaro)시를 내놓게 되었기에 스포르차는 이혼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교황을 이길 수 없었다. 발기부전이라 혼인을 지속할 수 없다는 모욕적인 이유에 강제로 동의하고 말았다.

그러나 당시 루크레치아는 스포르차의 아기를 잉태 중에 있었다.

그후 루크레치아는 아라곤의 알폰소에게 두 번째 시집을 갔으나 알폰소는 루크레아의 오빠 체사레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남편의 죽음으로 무척 상심하는 루크레치아를 알렉산더 6세는 페라라의 왕자 알폰소에게 또 다시 결혼을 시켰다.

이 결혼식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교황 알렉산더는 교황청의 새로운 직위 80개를 팔았고

9명의 새로운 추기경을 임명(그중 5명은 스페인 출신)해야 했다.

그는 사생아 딸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여 딸의 행복보다는 자신의 권력을 더 우선시했다.

 

15038월 유난히 날씨가 더웠다.

마치 20188월 현재 우리가 전에 없는 더위를 치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교황은 별장에서 식사를 하다가 쓰러졌다. 그 때 그의 나이는 72세였다.

교황으로부터 고해성사를 받은 사제에 의하면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이 저질렀던 모든 죄에 대하여 눈물로 회개하였다고 한다.

 

그가 한일 중에 예술가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들을 후원했다는 사실이다.

브라만테, 라파엘, 미켈란젤로, 핀투리키오 등등...

또한 스페인과 폴투갈의 분쟁을 해결하여 브라질을 폴투갈의 지배에 두도록 했다.

그런 결정에 따라 지금도 브라질은 폴투갈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그는 스페인과 폴투칼, 프로방스에서 강제로 추방당한 유대인들을 교황령으로 이주하게 허락했다. 더 나아가서 그들로 하여금 조상 고유의 관습과 전통, 그리고 사유재산을 인정했고 시민과 차별 없이 동등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허락했다.

그는 모든 문제를 가능한 교섭이나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장점이 있었다.

 

그는 무더운 8월에 죽었기에 시신이 대중 앞에 공개되었을 때에 악취가 진동하여 신심이 높은 신자도 교황의 손이나 발에 입을 맞출 수 없었다.

그는 61세에 교황이 되어 72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면 11동안 교황 직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 막강한 교황의 자리도 결코 영원한 자리가 될 수 없었다.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가룟 유다는 주님의 떡을 먹었으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떡을 먹었다.

알렉산더 교황이 이 말씀에 귀를 기우렸다면 영성에 좀 더 관심을 가졌을 텐데 당시의 대부분의 교황들은 지극히 현실주의자들이었고 내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한 마디로 영성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런 교황들로 인해 세상은 더욱 칠흑 같은 캄캄함이 지배했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새벽을 부르는 전주곡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둠에 있나요?

밝음을 추구하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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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22 [12:06]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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