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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1.15 [04:02]
예수와 석가가 꿈꿨던 세상의 차이는?
정성민 교수가 쓰는 [예수와 석가모니 51]
 
정성민

1. 석가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이 문제일까?

 

석가가 꿈꾸는 세상은 인간이 인간을 스스로 구원하는 도덕적인 세상이다. 이를 위해 신에게 의존하는 인간의 나약함은 제거되어야 한다. 사후세계를 기원하면 제사를 드리는 것도 아무런 쓸데가 없다. 죽으면 끝이지 사후세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후세계의 보상이나 심판을 의식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석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이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길 원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허무한 세상을 위해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말고 감각적인 쾌락의 대상들에 집착도 하지 말라고 한다. 석가는 수행자들이 하루하루를 만족하며 거룩한 떠돌이 생활을 할 것을 바랐던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도 수행자들처럼 살기를 바랐을 것이다. 인류가 당면한 고통을 종식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바로 성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길만이 고통스러운 세상에 무고한 생명들이 태어나는 것을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급진적으로 말해서 인류가 더 이상 태어나지 않고 아예 사라지는 것이 석가가 궁극적으로 꿈꾼 세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석가가 꿈꾼 세상은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은 너무나 나약하여 신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인간의 마음이 타락하여 세상 물질에 대한 소유욕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로 인간의 성적인 욕구는 정신적인 수련으로 막을 수 없는 본능이기 때문이다. 넷째로 사후세계의 보상이나 심판을 전제하지 않고서 현실의 삶을 도덕적이고 거룩하게 살아갈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하여 석가가 꿈꾸는 세상은 도저히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이상적인 세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대승불교의 역사적 출현으로 인해 증명된 것이다. 

 

2.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가 꿈꾸는 세상은 현실적으로 가능했을까?

 

앞서 말했듯이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예수가 꿈꾼 세상은 수도 없이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베네딕트 수도원, 클루니 수도원, 성 프란시스의 탁발 수도회, 칼빈의 제네바에서의 신정통치, 독일의 경건주의, 요한 웨슬리의 사회정화 운동 등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 예수가 꿈꾼 세상이 이 땅에서 실현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첫째로 예수의 유신론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의 뜻을 따라 순종하면 이 땅에서의 이상적인 세상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사후세계의 보상과 심판이라는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는 현실적인 고난을 감당하거나 도덕적이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데 힘들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도덕적인 삶을 위한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이다. 셋째로 영적인 존재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이라고 하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신앙인들에게는 기도의 응답과 같은 수많은 불가사이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고난을 이겨낼 용기조차도 성령께서 주셔서 순교도 감당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3. 그렇다면 기독교의 타락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기독교 역사 속에서 기독교의 타락은 피할 수 없었다. 313년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로 승인되고 381년에 로마의 국교로 지정되면서 기독교의 타락은 가속화되었다. 기독교가 타락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영적인 흐름보다는 명예와 재산을 선택한 것이 가장 주요한 이유일 것이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승인되기전 종교적인 핍박을 받을 때에는 명예와 재산을 가질 필요도 이유도 그리고 그럴 만한 환경이 되지 않았다. 그 당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순교를 각오하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현재 중국이나 북한의 지하교회를 다니는 성도들도 이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사유재산이나 명예보다는 신앙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를 자유롭게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신앙보다는 재산이나 명예를 선택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충동이 있었을 것이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40년간 광야를 돌다가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떠난 것과 같은 이유이다. 이스라엘 땅으로의 입성은 농사를 지어서 자신만의 소유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이제 그들은 농사를 위한 농경 신을 섬길 수 있는 선택이 주어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타락은 신앙과 물질 사이의 균형을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보다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회의 타락은 313년 로마의 기독교의 공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 교회사 교수인 곤잘레스는 말한다,

 

콘스탄틴 치세 아래에서의 교회의 번영을 모든 이들이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에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좁은 문은 이제 너무나 넓어져서 수많은 군중들이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기독교인의 생활과 세례의 의미도 알지 못하고 외부로 드러난 특권과 권위를 찾아 몰려드는 것만 같았다. 감독들(교회)은 보다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자들이 교회를 독차지한 것처럼 보였다.

가라지들이 빨리 자라나 알곡들을 질식시키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1]      

 

이러한 교회의 타락을 슬퍼하며 자신만의 순수한 신앙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된다. 이들은 교회의 타락을 보지 않으려고 고독을 찾아 피신하게 된다. 그들이 어디로 피신했을까? 바로 사막이었다. 그것도 이집트의 사막이었던 것이다. 교회의 타락을 피해 자신만의 신앙을 지키길 원했던 사람들에게 사막이야 말로 가장 매력적인 장소였다. 사실 이들이 찾아 나선 곳은 불타는 모래가 있는 사막은 아니었다. 그들이 원하는 장소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고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오아시스였다. 아니면 인적이 드문 계곡 내지는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묘지들이었다.[2]이것이 바로 수도원 운동의 시작인 것이다. 그러므로 수도원 운동은 교회의 타락에 대한 반대적인 움직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타락은 중세교회를 지나면서 절정을 이루었다. 어쩌면 중세교회 1000년의 시기가 교회의 암흑기라고 해도 과언치 않다. 중세교회의 타락 가운데 교황제의 타락이 가장 중심적이라고 볼 수 있다. 교황의 절대적인 권력은 성직을 통해 상당한 수입을 가능케 하는 성직매매를 불러일으켰고, 성직 족벌주의도 가능케 했다. 이에 대해 곤잘레스는 설명한다,

 

샤를마뉴(칼 대제)의 대관으로교황들은 황제들을 임명할 권리까지도 지닌 듯이 보였으므로 알프스 산맥 넘어까지 거대한 특권을 향유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교황의 자리는 뇌물, 음모, 그리고 폭력까지도 사양치 않는 야망에 가득 찬 자들의 희생물이 되었다.

교황제의 타락은 카롤링 왕조의 몰락처럼 급히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제국의 권위가 약화됨에 따라 교황이야 말로 서부 유럽 전체에 통용될 수 있는 막강한 권위를 가진 존재로 간주되던 짧은 시기가 있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858년부터 867년까지 계속된 니콜라스 1(교황)의 통치는 대 그레고리 (590-604년까지 재임한 교황)이후 가장 뛰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다음 교황 요한 8(965-972까지 재위)때부터 노쇠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는 모슬렘족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하여 뚱뚱보 찰스와 비잔틴인들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교황은 자기의 궁궐 안에서 살해당하였는데, 그에게 독을 먹였던 비서는 교황이 빨리 죽지 않는 것을 보자 망치로 그의 머리를 부수어 버렸다고 한다. 그후 교황들은 제대로 재위 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계속 교체되었다. 로마 시내에 있던 서로 다른 당파들과 알프스 산맥을 건너 존재하던 유력한 가문들이 교황좌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계속 투쟁하였으므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음모와 잔학행위가 자행되었다. 교황들은 목 졸려 죽기도 하고, 혹은 그 자리를 찬탈한 자들에 의해 유폐된 지하 감옥 속에서 굶어 죽기도 하였다. 어떤 때에는 성 베드로의 후계자를 자칭하는 둘, 혹은 셋 이상의 교황들이 존재하였다.

 

4. 도대체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교회는 왜 타락할까?

 

중세교회의 타락은 그 시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마도 지금 전 세계의 기독교가 세속화로 몸살을 앓고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교회도 예외는 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한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 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예레미야 2:19)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라. (예레미야 17:13)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영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 사이의 균형을 잃고 육신적인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육신적인 선택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물질 만능주의다. 이 시대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거나 하나님과의 영적인 소통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결국 교회가 예수의 가르침을 더 이상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세상을 선택한 것이다. 여기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석가의 가르침은 너무나 이상적이어서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고, 예수의 가르침은 현실세계에서 성취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도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물질을 선택한다면, 결단코 예수가 말하는 이상적인 세상은 도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는 말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런 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24, 33)

  

이러한 영적인 것보다 육신적인 것을 선택한 물질만능주의는 기독교의 타락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물론 물질이 필요하다. 하지만 물질은 하나의 수단이요 도구일 뿐이다. 만일 우리가 재물을 우상으로 섬긴다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을 저버린 것이다. 더 나가 영적인 존재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포기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성 프란시스코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재물이 얼마나 해가 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를 따르는 탁발 수도사들로 하여금 재물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를 것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곤잘레스는 말한다,

 

피터 왈도와 마찬가지로 프란시스는 심오한 종교적 경험을 통하여 청빈의 생활을 포용하였다…. 그는 자기의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하였다. 부모들이 그에게 이를 보충하기 위해 더 많은 물질을 주면, 그는 즉시 그것으로 구제하였다. 그는 몸에 넝마를 걸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난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거나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예배당들을 다시 짓거나 혹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즐기며 소일하였다.

 

결국 그의 아버지는 그를 지하실에 가두고 성직자들에게 이 문제의 해결을 요청하였다. 그곳의 주교는 만약 프란치스코가 자기 가족의 재산을 지혜롭게 사용할 능력이 없다면 이를 포기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는 이러한 판결을 받자 마자 자기의 유산을 포기하고, 자기가 당시 입고 있던 의복 마저도 벗어서 부친에게 돌려준 후 벌거벗은 몸으로 숲 속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시작하였다. 그후 1209년경 그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금과 은은 지니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고 내보는 복음서의 말씀(마태복음 10:7-10)을 낭송하는 것을 들었다. 그 때까지도 그는 단지 자발적인 빈곤과 이를 통해 발견한 기쁨만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가난과 설교를 연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즉 그는 곧 자기가 처한 곳이 아무도 찾지 않는 조용한 고독의 장소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법석대는 시중으로 들어가 이들을 교훈 하고 빈자와 병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곧 서부 유럽에 걸쳐 설교하고, 찬양하고, 그리고 구걸하는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운동의 성공이 오히려 그 종말을 불러오리라는 점을 두려워하였다. 그의 추종자들이 존경받기 시작하였을 때 그는 이들이 겸손을 잃지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또한 누군가에게 금화 한 잎을 받고 기뻐하며 돌아왔던 한 수도사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프란치스코는 그 수도사에게 이빨 사이의 금화를 물고 이를 똥 무더기 속에 파묻으라고 명령하였다. 바로 그 곳이야 말로 금을 위한 최적의 장소라는 의미였다. 자기의 수도회가 번영하게 될 때에 직면해야 할 여러 유혹들을 너무나도 잘 깨달았던 프란치스코는 추종자들이 일체의 재산을 소유하는 것을 금하였으며…. 1220년 총회 석상에서 그는 수도회의 지도자 자리를 사임하고 자기의 후계자에게 순종하는 겸손을 보이기 위하여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결국 1226103일 그가 젊은 시절에 재건하였던 한 예배당에서 숨을 거두었다.[3]  

 

그렇다. 예수가 가르쳤고 꿈꾸던 이상적인 세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따른다면 말이다. 지금은 혼란의 시대다. 도덕이나 윤리는 간데없고 인간의 본능이 지배하는 시대이다. 더 나아가 신의 존재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무종교의 시대이다. 모든 종교가 똑같다고 믿는 종교 다원주의는 결국 무종교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종교적 무관심의 시대에 신앙인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께 무릎을 끊고 우리의 죄를 고백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우리 자신의 욕망을 좇았음을 말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선택했음을 말하다. 이는 또한 우리가 하나님보다 돈을 선택했음을 말한다. 이를 통해 역대기하 7:14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한번 이 땅을 고칠 기회를 주실 것을 기대해본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1]초대교회사, 217.

[2] Ibid, 221.

[3]중세교회사, 1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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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21 [04:04]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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