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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7.24 [17:02]
올바른 언어는 무엇일까?
정성민 교수가 쓰는 [예수와 석가모니 38]
 
정성민

팔정도는 열반에 이르기 위한 여덟 가지의 방법내지는 길이다. 서로 다른 여덟 가지 방법들이 열반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협력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사유, 즉 지혜의 묶음에 대해서 풀어서 설명하였고, 이제부터는 계율의 묶음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계율의 묶음은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그리고 올바른 생활을 말한다.

 

1. 무엇이 올바른 언어일까?

 

석가는 인생의 고통에서 해방을 얻기 위하여 팔정도를 실천하라고 가르친다. 이 여덟 가지의 바른 길 가운데에 세번째 덕목이 바로 올바른 언어이다. 올바른 언어는 언어를 사용하여 일어날 수 있는 비윤리적인 것을 경계한 것이다. 올바른 언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이나 모함을 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증오나 분노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올바른 언어는 거칠고, 무례하고, 악의에 차 있거나 모욕적인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더 나아가 어리석은 말이나 쓸데없는 수다 그리고 농담조차도 하지 않는 것이다. 석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태어날 때 참으로 입에 도끼가 생겨난다.

어리석은 이는 나쁜 말을 하여 그것으로 자신을 찍는다. (Stn.657)

 

이는 석가가 올바른 언어의 사용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성경 또한 혀를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특별히 야고보서는 혀가 지닌 권세가 얼마나 큰지를 말한다. 그리고 혀를 잘못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아주 잘 설명한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 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그러므로 올바른 언어의 사용이 모든 종교의 공통적인 가르침일 것이라 여겨진다.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는 가운데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바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석가는 이렇게 말한다,

 

모임에 있든 무리 가운데 있든 간에, 누구도 남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거짓말을 시켜도 거짓말에 동의해도 안 된다. 모든 근거 없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Stn.397)

 

사실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계율은 구약 성경에 나타난다. 십계명 중에 제9계명인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가 바로 그것이다(출애굽기 20:16). 신명기 20 18-19절에 보면, “재판장은 자세히 조사하여 그 증인이 거짓 증거하여 그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고 말한다. 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는 거짓말이 사람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으로 사람을 더럽힌다고 말한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15:18-20)

 

흥미로운 것은 석가가 "거짓을 말하는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로 거짓말을 하는 것을 커다란 죄악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는 거짓말하거나 거짓 증거를 하는 자들을 비열한 사람들이라고 비판한다.

 

거짓을 말하는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 또한 했으면서 안 했다고 하는 자도 마찬가지다.

둘 다 똑같이 행동이 비열한 사람들이라 사후 내세에 동일한 업보를 받는 자들이 된다.

(Stn.661)

 

더 나아가 성직자나 수행자를 거짓말로 속이는 것은 더욱 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고 말한다. 석가는 말한다,

 

성직자나 수행자, 혹은 다른 걸식하는 이를 거짓말로 속인다면, 그것이야 말로 파멸의 문입니다. (Stn.100)

 

이는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 있는 그대로 진실만을 말하라는 것이다. 석가는 말한다,

 

진실을 거짓으로 여기거나 거짓을 진실로 여기게 되면

이는 삿된 계교라서 참된 이익을 얻지 못하리라.

아는 대로, 진실은 진실로 여기고 본 대로, 거짓은 거짓으로 여기게 되면

이는 올바른 계교라서 반드시 참된 이익을 얻으리라. (법구경, 011-12)

 

참사람은 진실한 것 만을 말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Stn.450)

 

거친 말을 하지 않고, 의미 있고, 진실한 말을 하며,

아무도 해치지 않는 님, 그를 나는 고귀한 님이라고 부릅니다. (Stn.632)

 

다음으로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중상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즉 이간하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상이란 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어 그 사람의 명예나 지위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에 대하여 나쁜 말이나 거짓말을 해서 그 사람을 모임이나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중상하는 말을 하는 이유는 경쟁하는 사람의 성공이나 신망에 대한 질투나 증오 때문이다. 그러므로 석가는 중상하는 것은 사람을 매도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갖가지 탐욕의 대상들에 빠져, 믿음도 없고 이기적이고 불친절하고,

인색하고 중상을 일삼는다면, 그 자는 말로써 남들을 매도하는 것이다. (Stn.663)

 

선량한 사람을 매질하거나 죄 없는 사람을 망령되게 모함하면,

그 재앙은 열 배가 되는데 재앙이 신속하여 용서받을 겨를도 없느니라. (법구경, 137)

 

이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을 중상하고 이간하는 것이 올바른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 얼마나 나쁘고 심각한 것인가를 보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성경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비뚤어진 말을 하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고, 중상하는 사람은 친한 벗들을 이간시킨다.” (잠언 16:28) 결국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불교의 공통된 가르침은 올바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을 중상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석가의 입장에서는 중상하는 것이 심각한 악업을 쌓는 것이고, 유대교 입장에서는 미련한 짓을 행하는 것이다. “미움을 감추는 사람은 거짓말하는 사람이요, 남을 중상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다.” ( 10:18) 사도 바울은 중상하는 것을 음행이나 우상숭배 그리고 탐욕 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여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가 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석가는 중상하는 말대신에 화합의 말을 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진실을 말하라고 가르쳤던 것처럼 이제는 중상하는 말을 하지 않는 대신에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는 말을 하라는 것이다. 석가는 말한다,

 

홀로 지내며, 거짓이 없고, 탐욕스럽지 않으며, 인색하지 않고,

무모하지 않고, 미움을 야기하지 않고, 중상에 관계하지 않습니다. (Stn.852)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고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 그러한 말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정말 잘 설해진 말입니다. (Stn.451)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기 위한 세 번째 덕목은 추악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추악한 말은 거칠고 상스러운 말로서 듣는 자에게 불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석가는 이렇게 말한다,

 

추한 말이 마땅치 않는 것은 상대도 말하길 당연히 두려운 말로 답하리라.

악이 가고 나면 화가 찾아오듯이…… 칼과 곤장이 제 몸으로 돌아오게 되느니라. (법구경, 133)

 

참사람은 사랑스런 것 만을 말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말, 사랑스런 말 만을 말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불화를 가져오지 않고, 사랑스러운 것에 대해서만 말해야 합니다. (Stn.450, 452)

 

이러한 석가의 가르침에 월폴라 라훌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추악한 말은 성내고 화를 내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추악한 말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가 욕지거리를 들 수 있다. 둘째는 모욕적인 말을 하는 것이다. 셋째는 비꼬아 하는 말이다. 추악한 말은 진에를 수반하고 있다. 이 추악한 말은 의도적이 아니다. 충동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거짓말이나 이간질보다는 심각한 악업을 초래하지 않는다.[1]

 

석가는 이러한 추악한 말을 하지 말고 그 대신 상냥하고 부드러운 말을 하라고 가르친다. 도둑이나 강도를 만났을 때조차도 화를 내거나 악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심지어 살인자를 대하는 순간에도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화를 내지 말라고 한다. 오히려 그들의 마음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바뀌도록 기도하라는 것이다. 석가는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양쪽에 자루가 달린 톱으로 강도들이나 살인자들이 사지를 하나씩 자른다고 하더라도 그때 마음을 더럽히면 그는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러한 때에도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우리들의 마음은 바뀌지 않으리라. 우리들은 악한 말을 하지 않으리라. 우리들은 측은한 마음으로 자비스런 마음을 내며 화내는 마음을 품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을 자비스런 마음으로 채워주십시오. 그를 비롯한 모든 세상은 크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해가 없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채워주십시오.’ 이와 같이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배워야 한다.[2]

 

사실 이러한 석가의 가르침은 예수의 삶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난다. 특별히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보여준 사랑의 마음과 따뜻한 용서의 말씀은 석가의 가르침을 그 누구보다도 잘 실천한 분이 바로 예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죄수 두 사람도 예수와 함께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그들은 '해골'이라고 하는 곳에 이르러서, 거기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죄수들도 그렇게 하였는데, 하나는 그의 오른쪽에, 하나는 그의 왼쪽에 달았다. 그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제비를 뽑아서,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백성은 서서 바라보고 있었고, 지도자들도 비웃으며 말하기를 "그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그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이고, 택하심을 받은 자이거든, 자기나 구원 하라지" 하였다. 군인들도 예수를 조롱하였는데, 그들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신 포도주를 들이대면서 말하기를 "네가 유대인의 왕이거든, 너나 구원하여 보아라." 하였다. 예수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쓴 죄 패가 붙어 있었다. 예수와 함께 달린 죄수 가운데 한 죄수도 그를 모독하며 말하기를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똑같은 처형을 받고 있는 주제에,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이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다." 그런 다음에 그는 예수께 말하였다. "예수님, 예수님께서 그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누가복음 23:32-43) 

 

물론 구약성경에도 추악하고 더러운 말은 삼가라고 가르친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언 15:1, 4)

 

결과적으로 올바른 언어의 사용을 위하여 추악한 말을 하지 말라는 계율은 기독교, 불교, 유대교 모두가 공통적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기 위한 네 번째 덕목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횡설수설을 하거나 아무런 가치도 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농담이 바로 그것이다. 석가는 이러한 쓸데없는 말 대신 오히려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 말을 하라고 가르친다,

 

쓸데없는 말을 버리고 쓸데없는 말을 삼간다. 올바른 때에 말하며 사실에 맞는 말을 하며 유용한 말을 하며 가르침에 합당한 말을 하며 계율에 맞는 말을 하되 가치 있는 말을 적당한 때에 합리적으로 신중하게 의미 있도록 행한다.[3]

 

거친 말을 하지 않고, 의미 있고, 진실한 말을 하며,

아무도 해치지 않는 님, 그를 나는 고귀한 님이라고 부릅니다. (Stn.632)

 

석가는 말로써 죄를 짓는 자들에게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이는 말을 많이 할수록 사악하고 거짓된 말을 하게 되고 이간하는 말이나 추악한 말 그리고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되니까 그렇다는 것이다. 차라리 말을 적게 해서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거룩한 사람은 말을 자제하고 많이 하지 않는 자라는 것이다.           

 

입이 험하고 진실하지 못한 천한 자여, 산 것을 죽이고 사특하며 악행을 일삼는 자여,

비루하고 불행하고 비천한 자여, 이 세상에서 말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

그대는 지옥에 떨어진 자이다. (Stn.664)

 

그리고 자각적으로 자제해서 자각적으로 많이 말하지 않는다면,

그는 성자로서 성자의 삶을 누릴 만하며, 성자로서 성자의 삶을 성취한 것입니다. (Stn.723)

 

예수도 우리로 하여금 쓸데없는 말을 삼가 하라고 가르친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는 말로 우리가 죽은 후에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를 받으리라. (마태복음 12 36-37)

 

결과적으로 우리가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해탈을 경험하기 위하여서 팔정도를 실천해야 하는데, 그 중에 올바른 언어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올바른 언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거짓말을 하지 않고 그 대신 진실을 말하는 것이며, 둘째로 다른 사람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중상하여 이간질하지 않고, 그 대신 서로 화합할 수 있도록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하는 것이며, 셋째로 추악한 말을 하지 않고 그 대신 상냥하고 부드러운 말을 하는 것이고, 넷째로 농담과 같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그 대신 때와 장소에 합당한 가치가 있고 의미 있는 말을 하는 것이다. 때와 장소에 합당한 가치 있는 말을 하는 것에 대하여 구약성경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너는 서둘러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내 네가 이웃에게서 욕을 보게 될 때에 네가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니라.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을 누설하지 말라.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네게 대한 악평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잠언 25:8-11)

 

그렇다면 왜 올바른 언어가 중요할까? 도대체 올바른 언어가 열반에 이르는데 어떠한 역할을 할까? 그 답은 바로 올바른 정진을 위한 준비단계라는 것이다. 올바른 정진은 깊은 명상수행을 하기 전에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러운 마음이나 사악한 마음내지는 산란한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먼저 우리의 입을 정화하라는 것이다. 이는 언어의 사용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곧 마음의 정화를 이루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종교들이 진실되고 절제된 언어의 사용을 중시한다는 사실이다.



[1]붓다의가르침과팔정도, 101-02.

[2] Ibid, 102쪽에서재인용.

[3] Ibid, 103쪽에서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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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26 [08:21]  최종편집: ⓒ newspower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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