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
광고
광고
교계뉴스문화/교육국제/NGO/언론파워인터뷰생활/건강오피니언연재정치/경제/사회한 줄 뉴스
전체기사보기
편집  2019.11.17 [06:02]
도대체 팔정도란 무엇일까?
정성민 교수가 쓰는 [예수와 석가모니 35]
 
정성민

1. 팔정도란 무엇일까?

 

석가는 삶의 고통을 제거하는 구체적인 비결을 가르쳤다. 그것이 바로 팔정도이다. 팔정도는 사성제의 마지막 가르침이다. 이는 열반이나 해탈에 이를 수 있는 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길, 수단 또는 실천 덕목이다. 그는 말한다,

 

삶과 죽음은 지극히 괴로운 것이니 진리를 쫓아 득도하여

팔정도로 세간을 벗어나야 이것으로 모든 괴로움을 제거할 수 있느니라. (법구경, 191)

 

<잡아함경> 28 771경에 보면, 석가는 피안(마음의 절대 평안)에 이르기 위한 여덟 가지의 올바른 길을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피안의 세계가 아니며, 무엇이 피안의 세계입니까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삿된 견해는 피안이 아니고, 바른 견해가 피안이다. 삿된 생각, 삿된 말, 삿된 행동, 삿된 생활, 삿된 정진, 삿된 기억, 삿된 선정은 피안이 아니고,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 바른 정진, 바른 기억, 바른 선정이 피안이다.”

 

결과적으로 석가가 말하는 팔정도는 다음과 같다.

1) 올바른 견해

2) 올바른 사유

3) 올바른 언어

4) 올바른 행위

5) 올바른 생활

6) 올바른 정진

7) 올바른 새김

8) 올바른 집중 

 

불교에서 이 여덟 가지의 수행은 세 가지 배움을 닦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 여덟 가지의 각 요소들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의 순서적인 묶음으로 구분된다.

 

1) 지혜의 묶음: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2) 계율의 묶음: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3) 명상의 묶음: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

 

2. 팔정도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월폴라 라훌라는 위의 여덟 가지 수행은 순서대로 하나를 수행하고 나서 다음 것을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여덟 가지의 수행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각각의 수행은 다른 것의 수행을 서로 돕기 때문이다. 팔정도의 궁극적 목표는 올바른 견해를 깨닫는 것이다. 이러할 경우에 첫번째 덕목인 올바른 견해가 여덟 가지 수행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 되는 것이다. 이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은 수레바퀴와 같은 원형이라는 주장이다. 그 이유는 팔정도가 첫 번째 단계인 올바른 견해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단계인 올바른 집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올바른 견해로 돌아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라훌라는 말한다,

 

따라서 지혜를 구성하는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사유가 있는데 그것이 세속적인 올바른 견해나 올바른 사유가 되면 여덟 가지 수행의 출발점이 되고 출세간적인 것이 되면 궁극적인 지혜에 해당하게 된다. 올바른 견해는 출발이자 종착이므로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은 직선의 길이라기보다는 수레바퀴와 같다.[1]

 

하지만 <불교사상의 이해>는 팔정도를 그 순서대로 실천해야 한다고 기술한다. 왜냐하면 올바른 견해를 닦아야 올바른 사유가 생기고, 올바른 사유를 닦아야 올바른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항목들도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논리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팔정도의 마지막 목표는 올바른 집중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불교 사상의 이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8정도의 마지막 목표는 정정(올바른 집중)이다. 8항목 가운데서 앞의 7항목은 모두 정정에 이르기 위한 준비단계이다. 정정을 닦아 지혜를 얻게 되고, 지혜를 가짐으로써 열반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2]

 

결과적으로 <불교사상의 이해>에 따르면 팔정도는 올바른 견해에서 시작해서 올바른 집중으로 끝나는 직선적인 길로 여겨진다. 과연 어느 견해가 더 옳을까? 어쩌면 월폴라 라훌라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올바른 집중(정신통일)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진리가 바로 올바른 견해이기 때문이다. 이는 팔정도에서 올바른 견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석가의 주장이나 견해를 우리가 이성적으로 동의하고 따르는 것이 팔정도의 근본이요 결말이라는 것이다. 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석가의 관점, 즉 그의 세계관을 우리가 이해하고 따르는 것이 바로 고통에서 자유롭게 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올바른 정진(더러운 마음을 깨끗이 씻는 것), 올바른 새김(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관찰), 올바른 집중(정신통일)의 단계를 하나씩 밟는다는 것이다. 좀 더 급진적으로 표현하자면, 만일 당신이 석가가 깨달은 올바른 견해, 즉 그의 세계관 (연기론, 무아론, 무신론, 반윤회 등)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면 당신은 굳이 팔정도의 그 모든 수행의 단계들을 거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연기맵이면 누구나 깨닫는다>의 저자, 백창우 선생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 싯다르타는 6년 수행 끝에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찾기로 결심한다. 위파사나(관법)이다. 이전에는 사마타 수행을 했다. 통상 바라보기라고 알려진 이 수행법은 관찰수행을 말한다.

무엇을 바라본다는 말인가?

모든 존재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소멸하는가를 관찰하는 것이다.

먼저, 전체적인 그림으로는 제행무상(모든 것이 변한다)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때는 삼법인으로 연기법의 핵심을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연기법을 사유하는 수행으로서는 이러한 설명은 다소 부족하다.

연기법을 사유한다는 것은 모든 존재방식을 있는 그대로 살피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실체적 사고 → 통찰적 사고 방식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석가의 연기법은 기존의 사고방식을 전환시키는 혁신이다……

연기법 수행은 우리의 이성적 사고에 가장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러한 점이 여타 수많은 수행과 차별된다.

굳이 힘들게 다리를 꼬고 용쓰지 않아도 된다.

한마디로 생각만 할 줄 알면 얼마든지 가능한 수행이다.

굳이 수행이라고 할 것도 없다![3]

 

다시 말해서 올바른 사유,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그리고 올바른 집중 등의 최종목표가 바로 올바른 견해이기 때문에 만일 당신이 올바른 견해를 깨달을 수 있다면 굳이 그 어려운 수행의 모든 덕목을 실천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바로 석가가 깨달은 세계관을 우리가 지적으로 동의하고 그 다음에 그대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최고의 경지, 즉 열반에 이른다는 것이다. 바로 이 세상에서 겪는 그 모든 정신적인 고통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3. 과연 석가의 세계관은 어떤 것일까?

 

올바른 견해는 곧 석가의 세계관을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석가의 세계관일까? 그것은 바로 자연 과학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무신론적 자연과학의 시각을 말한다. 과연 인간이 신과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과연 사후세계는 존재할까? 과연 인간은 환생할까? 이러한 신비주의적인 질문들에 대한 자연과학 철학자, 석가의 대답은 모두 단호한 ‘No!’이다. 석가는 신비주의를 배격하는 과학적인 철학자이다. 그에게 있어 삶은 우연이고, 단지 죽음으로써 끝나는 허무한 것이다. 석가가 말하는 팔정도의 핵심은 이러한 고통스럽고 허무한 세상을 정신적으로 초월하자는 것이다. 신이 없으면 어떠냐는 것이다. 사후세계가 없으면 어떠냐는 것이다. 영원히 존재하는 영혼이라는존재가 없으면 어떠냐는 것이다. 그냥 이러한 불편한 진실들을 담담히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고통스럽고 허무한 세상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받아들이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진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고통 가운데 경험하는 마음의 절대 평안이다. 즉 열반이나 해탈은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그 모든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은 후에 얻게 되는 마음의 절대적인 평안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평정심이 바로 석가가 추구하는 정신세계이다. 이런 면에서 팔정도는 피할 수 없는 세상의 그 모든 고통 가운데 어떻게 하면 정신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이다.

 

 

 



[1]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 93.

[2]불교사상의이해, 95.

[3]연기맵이면 누구나 깨닫는다, 77-78.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18/08/22 [04:27]  최종편집: ⓒ newspower
 
뉴스
연재소개
정성민 교수가 쓰는 [예수와 석가모니]
연재이미지1
예수와 석가가 꿈꿨던 세상의 차이는?
예수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일까?
올바른 기독교 신앙은 무엇일까? (2)
올바른 기독교 신앙은 무엇일까? (1)
석가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일까?
올바른 집중은 무엇일까? (2)
올바른 집중은 무엇일까? (1)
올바른 새김은 무엇일까? (2)
올바른 새김은 무엇일까? (1)
올바른 정진은 무엇일까?
올바른 생활은 무엇일까?
성 생활에 관한 예수와 석가의 차이는?
올바른 행위는 무엇일까?
올바른 언어는 무엇일까?
올바른 견해는 무엇일까?
올바른 사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팔정도란 무엇일까?
건강한 금욕주의는 무엇일까?
석가가 깨달은 중도는 무엇일까?
과연 석가는 신비주의자일까?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후원 및 광고 만드는사람들기사제보기사검색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136-5) 본관 107호 TEL 02-391-4945~6| FAX 02-391-4947,
Copyright2003-2019뉴스파워.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power@newspower.co.kr 등록번호 서울 아 00122 등록일 2005.11.11 발행 및 편집인 김철영. 청소년보호책임자: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