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설교문은 김명혁 목사가 2017년을 마감하는 12월 31일 좋은소식교회 주일예배 때 전할 설교문이다. 사도행전 20:24, 빌 1:20,21을 본문으로 "한 해를 돌아보고 새 해를 맞으며"라는 제목으로 행할 설교 전문이다.
다음은 설교 전문.
제가 2008년 9월 12일 주일부터 2017년 7월 23일 주일까지 9년 동안에 좋은 소식교회에 열 번 와서 설교를 했는데 오늘 2017년 12월 31 주일 열 한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허기정 목사님과 이영란 사모님 그리고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무슨 설교를 하면 좋을까 허기정 목사님과 함께 이야기 하면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오는 새 해를 맞으면서 어떤 다짐을 하면 좋을까 라는 내용의 설교를 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한 해를 돌아보고 새 해를 맞으며” 라는 제목으로 저 자신의 처절한 간증적인 고백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매년 또는 매일 고백하는 고백은 다음과 같은 두 마디의 고백입니다. 첫째 고백은 저의 죄와 허물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리로 보나 저리로 보나 저에게는 죄와 허물밖에 없는 죄인중의 괴수입니다.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인 죄밖에 없는 죄인중의 괴수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죄밖에 없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도 바울의 죄 고백을 저의 죄 고백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1-24).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제가 매일 아침마다 읽는 죄 고백의 말씀입니다. 저는 또한 다윗의 죄 고백을 저의 죄 고백으로 삼고 있으며 매일 아침마다 읽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하리이다. 내가 죄악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1-5).
둘째 고백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리로 보나 저리로 보나 저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밖에 없는 것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버림받아 마땅한 죄인을 아직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평생토록 심부름꾼으로 사용하시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망극하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도우심 때문이고 그리고 귀중한 신앙의 선배님들이 흘린 순교의 피 소리를 들으심 때문이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도 바울의 은혜의 고백을 저의 은혜의 고백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 5:20,21). 저는 또한 다윗의 은혜의 고백을 저의 은혜의 고백으로 삼고 매일 아침마다 읽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8-14).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저는 이와 같은 두 가지 처절한 고백을 하고 또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교회와 사회와 정치계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와 사회와 정치계가 세속화와 인간화와 의인 의식과 분열과 분쟁의 죄와 허물에 치우쳐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그 근본적인 책임은 한국교회에 있고 저 자신에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이 몸에 지녔던 처절한 회개의 신앙과 함께 십자가에 나타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가난과 고난과 섬김의 신앙을 거의 다 저버리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과 한국교회와 사회와 정치계는 극심한 죄와 허물에 치우쳐 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버림 받아 마땅한 저 자신과 한국교회와 사회와 정치계를 아직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남겨두시는 것은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 때문이고 그리고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이 흘린 눈물의 기도와 순교의 피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부끄러운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밖에 없고 그리고 귀중한 신앙의 선배님들께도 부끄러운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마디 더 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의 저 자신을 돌아볼 때 저는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죄밖에 없는 죄인 중의 괴수라는 사실을 위에서 지적했는데, 바로 몇 달 전에 제가 처절하게 깨닫게 된 사실 하나는 제가 정말 극심한 의인 의식과 극심한 독선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죄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글을 쓰면서 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 자신을 누구보다 못지 않은 대단한 사람으로 즉 의인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저는 기가 막혀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아 나는 정말 의인 의식과 독선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죄인중의 괴수로구나!” 라고 생각하며 기가 막혀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사용하시는가? 은퇴 후 지난 십 년 동안도 그리고 지난 일년 동안도 하나님께서 부족한 죄인을 버리지 않으시고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위로와 격려의 손길을 펴게 하시는가! 라고 고백하고 또 고백하지 않은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제가 새 해와 여생을 바라보면서 간절하게 기도하며 바라는 것은 남은 생애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는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께서 “은혜의 빚과 죄의 빚을 갚기”를 소원하신다고 고백하신 것처럼. 저도 저의 죄의 빚을 아주 아주 조금이라도 갚고 하나님의 은혜의 빚을 아주 아주 조금이라도 갚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은혜의 빚과 죄의 빚을 아주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서 가난과 고난과 매맞음과 핍박당함을 소원하게까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다가 죽기를 소원하게도 되었습니다.
사실 너무 풍족한 것을 소유하고 부요하게 사는 것이 문제가 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대로 가난하고 약한 대로 멸시를 받아 싫어 버림을 당하는 대로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면서 온유와 겸손과 낮아짐과 섬김을 몸에 지니고 가볍고 기쁘게 살다가 생을 마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부요하게 사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과 고난과 겸손과 사랑과 섬김을 몸에 지니고 사시다가 죽으셨고 이성봉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께서 가난과 고난과 겸손과 사랑과 섬김을 몸에 지니고 사시다가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소원과 고백을 저의 소원과 고백으로 삼고 싶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0,21).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3,14). 그리고 손양원 목사님의 다음과 같은 소원과 고백을 저의 소원과 고백으로 삼고 싶어졌습니다. “나는 다만 나의 선악이나 장래의 상벌이나 생사 문제는 이제부터는 상관치 않고 이미 내게 주신 은혜에 감격하여 보은 생활과 나의 이미 진 은혜의 빚과 죄의 빚을 갚기 위해 내 일생을 주가 힘 주시는 대로 충성만 하려 할 뿐이다.”
제가 최근에 내가 이번 추석연휴 기간에 밤에 들어 누어 자면서 “나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미쳐서 살다가 미쳐서 죽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사울아 사울아” 라고 자기를 부르시는 예수님을 만난 다음부터 세상의 유익하던 모든 것을 거의 다 배설물로 내어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고백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1,2).
사도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증거했을 때 베스도가 사도 바울을 향해서 미쳤다고 소리를 질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것 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행 26:23,24).
사도 바울은 그와 같이 미쳤다고 소리지르는 비난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과 부활하신 것만을 평생 전하고 또 전했습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3-15).
사도 바울은 정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과 그리스도의 사랑에만 붙잡혀서 살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에 미쳐서 한 평생을 살다가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고백도 했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찌어다 아멘”(갈 6:17,18).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도 사도 바울처럼 세상의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면서 즉 나의 지식과 나의 업적과 나의 명예 등 내가 귀중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면서 모두 다 내어버리고 그리고 가난과 고난을 몸에 지니고, 오직 나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성자 예수님의 사랑에 미치고, 나 대신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내어버리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에 미치고, 나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탄식하시면서 기도해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랑에 미쳐서 살 수는 없을까? 이것이 내가 추석연휴에 가슴에 지니게 된 나의 간절한 소원과 기도였습니다.
사실 나는 나도 모르는 가운데 나 자신의 지식과 나 자신의 업적과 나 자신의 명예에 치우쳐서 스스로 속아넘어가면서 위선과 독선을 지니고 살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처절한 고민을 하나님 앞에서 토로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한 평생 목회의 일도 잘 했는데… 내가 한 평생 교수의 일도 잘 했는데… 내가 한 평생 선교의 일도 잘 했는데… 내가 한 평생 섬김의 일도 잘 했는데… 내가 한 평생 구제의 일도 잘 했는데… 나는 지금도 은퇴 후 작은 교회들을 주일마다 방문하면서 순회 목회의 일도 잘 하고 있는데… 나만한 사람도 별로 많지 않을 텐데… ”
나는 이와 같은 위선과 독선 의식에 사로잡혀서 살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처절한 고민을 하나님 앞에서 토로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위선과 독선으로 가득한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가장 죄악시 하시던 의인 의식을 지니고 살아가는 죄인중의 괴수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를 몽둥이로 쳐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부족한 죄인인 나도 이 세상의 귀중한 것들을 배설물로 모두 내어버리고 그리고 가난과 고난을 몸에 지니고, 성자 예수님께 미치게 하시고 성부 하나님께 미치게 하시고 성령 하나님께 미치게 하실 수는 없으십니까?”
“신앙의 선배님들 이야기는 너무 많이 하면서도 신앙의 선배님들을 닮는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하나님 아버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스데반 집사님 이야기는 너무 많이 하고, 폴리캅 감독 이야기는 너무 많이 하고, 성 프랜시스 이야기는 너무 많이 하고,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 이야기는 너무 많이 하고, 이성봉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 이야기는 너무 많이 하는데, 신앙의 선배님들을 닮는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위선자를 몽둥이로 쳐 주시옵소서.”
『사실 저는 추석 연후 이후 매일 잠 자리에 들면서 그리고 자면서 무의식 중에 “하나님 아버지! 부족한 죄인으로 하여금 성자 예수님의 사랑에 미치고, 성부 하나님의 사랑에 미치고, 성령 하나님의 사랑에 미쳐서 살게 하시옵소서! 손양원 목사님께서 주님 사랑에 미치고, 나환자 사랑에 미치고, 원수 사랑에 미치고, 순교 사랑에 미치고, 천국 사모에 미쳐서 살다가 죽으셨는데 부족한 나도 조금이라도 예수님 사랑에 미치고, 하나님의 사랑에 미치고, 성령님 사랑에 미치고 원수 사랑에 미쳐서 살게 하시옵소서!” 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간절한 사랑 고백의 기도문을 읽어 봅니다. “주여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심 같은 사랑을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라리 내 몸이 저들과 같이 추한 지경에 빠질지라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만약 저들이 나를 싫어하여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저들을 참으로 사랑하여 종말까지 싫어 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 하오나 인위적 사랑, 인간적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는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를 위하여 이들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보다는 더 사랑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내가 또한 세상의 무슨 명예심으로 사랑하거나 말세의 무슨 상급을 위하여 사랑하는 욕망적 사랑도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내용에서 되는 사랑으로서 이 불쌍한 영육들만을 위한 단순한 사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의 남은 생이 몇 해 일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몸과 맘 주께 맡긴 그대로 이 애양원을 위하여 충심으로 사랑케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손양원 목사님의 원수 용서와 원수 사랑의 심장을 토로한 고백을 적어 봅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동희야 내 말 잘 들어 봐라. 내가 무엇 때문에 5년 동안이나 너희들을 고생시키면서 감옥 생활을 견뎌 냈겠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겠느냐? 제 1,2 계명과 함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똑같은 하나님의 명령인데 내 어찌 이 명령은 순종치 않는단 말이냐.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에 순종치 않는다면 과거 5년 간의 감옥살이가 모두 헛수고요, 너희를 고생시킨 것도 헛고생만 시킨 꼴이 되고 만다. 그러니 동희야, 가만히 생각해 보아라. 그 학생을 죽여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느냐? 동희야, 용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사랑하기 위해 아들을 삼으려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님의 삶은 또한 천국과 종말신앙에 의해 지배된 소망의 삶이었습니다. 그의 가슴과 의지와 시선은 세상이나 세상의 안일에 매이지 않았고 오직 천국과 내세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이 세상의 재물이나 평안이나 명예에는 티끌만큼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난을 애처로 삼고 고난을 선생으로” 삼으며 천국을 바라보면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옥중 생활을 하면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손수 지은 “주님 고대가”를 불렀습니다. 이 가사를 보면 그가 얼마나 간절히 재림의 소망 가운데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결국 1950년 9월 13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2주일간 온갖 수모를 다 당하시고 9월 28일 밤 11시쯤 미평 과수원에서 총살당하여 48세에 순교하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총 개머리 판으로 입을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리면서 하늘 나라로 가셨습니다. 그가 그렇게도 그리고 사모하던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이튿날 아침 남편의 순교 소식을 접한 정양순 사모님은 남편의 시신 앞에서 지난 밤에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서 비통해 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오! 당신 소원대로 됐군요. 평소 주기철 목사님을 그렇게도 부러워했는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평생 동안 주의 일을 하게 하시고, 손양원 목사가 소원하던 순교를 허락해 주신 은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께서는 주님 사랑에 미치시고, 나환자 사랑에 미치시고, 원수 사랑에 미치시고, 순교 사랑에 미치시고, 천국 사모에 미치셔서 사시다가 스데반 집사님처럼 자기를 보시고 기뻐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죄악밖에 없는 죄인 중의 괴수인 나도 사도 바울처럼 세상의 유익하던 모든 것을 모두 배설물로 여기면서 즉 나의 지식과 나의 업적과 나의 명예 등 내가 귀중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면서 모두 다 내어버리고 그리고 가난과 고난을 몸에 지니고, 오직 나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성자 예수님의 사랑에 미치고, 나 대신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내어버리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에 미치고, 나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탄식하시면서 기도해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랑에 미쳐서 살 수는 없을까요? 나에게 맞지 않는 너무 높은 수준의 삶과 죽음을 염원하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 아버지 그저 소원하고 간구하는 것뿐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앞서 가신 신앙의 선배님들이 사시다가 죽으신, 사도 바울과 손양원 목사님께서 살다가 죽으신 “미친” 삶과 “미친” 죽음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살다가 죽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면서 성부 하나님께 간구 드립니다. 아멘!”』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오늘 2017년 12월 31일 금년의 마지막 날과 마지막 주일을 맞으면서 “한 해를 돌아보고 새 해를 맞으며” 라는 제목으로 저 자신의 처절한 간증적인 고백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저 자신은 위선과 독선으로 가득한 죄인중의 괴수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하나님께서 저를 버리시지 않고 지금도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사용하시는지 그 은혜와 사랑이 너무 망극하다는 고백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위선과 독선의 죄를 모두 다 벗어버리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에 미쳐서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을 수는 없을까? 라는 분에 넘치는 소원과 고백을 지니게 되었다는 고백도 했습니다. 저는 순교의 길로 달려갈 수는 전혀 없는 이기적이고 정욕적인 죄인중의 죄인입니다.
그러나 내가 저지른 수 많은 죄악의 빚을 아주 조금은 갚고 내가 받은 분에 넘치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빚을 아주 조금은 갚기를 소원하며, 저의 부친 김관주 목사님께서 걸어가신 “제물 되는 죽음”의 길로 걸어갈 수는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허락하시면 불쌍한 북한 동포들을 위한 그리고 불쌍한 아프가니스탄 모슬렘 이웃들을 위한 “제물 되는 죽음”을 죽을 수는 없습니까? 라는 분에 넘치는 지나친 소원과 간구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시여, 부족한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한국교회와 한국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아니 지구상의 모든 교회들과 모든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